현지사 600

언론에 보도된 글 모음

염불선, 거룩한 성자되는 淨業수행 ( 현대 불교신문, 2003. 8. 20 ) 견성은 부처되는 공부의 시작일 뿐입니다. 견성한 이라도 보임과정에서 계율을 철저히 지키고 불·보살의 불법을 모독하는 말을 삼가야 합니다. 동산반야회 법주인 무진장 스님과 함께 조계종 중앙상임포교사로서 활동하다 돌연 자취를 감춘 뒤 20여년간 수행에만 매진해 온 춘천 현지사(033-243-1787) 회주 만현 滿顯스님. 3년 전부터 간간히 불교방송을 통해서만 설법하던 만현 스님의 법문이 본지 435호 ‘지상 백고좌’에 소개되자 많은 출·재가 수행자들의 문의전화가 쇄도했다. 방송 설법이 나갈 때마다 보였던 이러한 반응은 ‘견성 즉 성불 見性 則 成佛’이라고 하는 선종의 불문율에 대해 과감히 다른 목소리를 내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

[언론에 보도된 현지사 글 모음-1]

[언론에 보도된 현지사 글 모음-1] 견성은 공부의 시작일뿐 염불·禪으로 결판 내세요 ( 지상 백고좌, 현대 불교신문, 2003. 8. 20 ) 오늘의 한국 불교. 부처님의 가르침은 많이도 왜곡되어 있습니다. 생사관(生死觀)하나 뚜렷하지 않습니다. 특히 승려들의 지계정신은 심각할 정도로 타락해 있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크게 눈뜬 성자가 없기에 그렇습니다.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으려고 하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구하는 것과 같다고 지금의 불교에서는 말을 합니다. 이 마음이 부처요, 마음자리가 극락이라 합니다. 지옥과 극락을 마음의 산물로만 봅니다. 마음 밖의 지옥, 극락, 불˙보살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에 안팎이 있다는 말입니까? 공(空)에 안팎이 있습니까? 마음은 시방법계를..

불교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불교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중생들은 각기 종자가 있다는 불가의 유식법상唯識法相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 말씀이 전혀 먹혀들지 않고 귀 꽉 막 힌 지옥종자도 분명히 있습니다. 육도에 윤회할 종자가 있는 반면 윤회를 벗어날 종자, 특히 희유하지만 보살 종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옥 종자라 해서 마냥 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교화하면 됩니다. 마치 아무리 나쁜 나무라도 접接을 붙이면 좋은 나무를 얻 을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착하게 살면 된다, 남 못할 일 안하면서 바르게 살면 된 다' 고 합니다. 좋습니다. 인생을 대과大過없이 살 수 있다면 좋은 일이겠습니다만, 그렇게 산다 해도 윤회의 생사고에서는 벗어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나고 죽는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해 탈의 길을..

다보여래불

다보여래불 화홍유록의 물질, 그 존재는 '에테르'의 파동에 따른 마음의 식에 불과하다고 과학에서는 그렇게 보고 있는 것입니다. 거짓 몸뚱이의 세계! 불교에서는 이 현상 세계를 꿈이라고 봅니다. 여몽환포영입니다. 현실은 일시적인 가상태요, 환상이라 합니다. 본질적으 로 '가'라고 봅니다. 오직 시공을 초월한 해탈 세계만 실재 합 니다. 이 우주 공간에 지구만한 별이 실로 헤아릴 수 없이 많다고 합 니다(10/500개). 우주의 수명은 '150억년 혹은 200억년 X 150억(~200 억)' 이상이랍니다. 이 우주, 이 세계는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으 로부터 영원으로 창조화 재창조, 진화와 분해를 반복합니다. 성주 괴공을 반복합니다. 이는 우주의 섭리, 연기의 이법에 따른 것입니다. 단지 무에 서 이 크나큰..

겁에 하나 출세하는 붓다!

겁에 하나 출세하는 붓다! 불교의 위대한 점은, 불교에서는 이러한 붓다가 나온다는 점입니 다. 삼신을 구족한 붓다는 오직 불교에서만 출세합니다. 실제로 어느 대성자라도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볼 수 있다면 감격의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원만보신과는 비교도 안 되는, 모든 붓다의 청정법신을 한 몸뚱이로 하는 세존의 진불인 청정법신 비로 자나불 말입니다. 여름 한 낮의 햇살, 눈이 시려 볼 수 없는 그런 빛을 백천만 개 합친 것과도 비교가 안 될 만큼 엄청난 밝은, 수미산만한 대지 의 빛 덩어리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보고, 하나님이나 창조주 따 위를 넘어서 우주 자체가 되어 버린 무서운 그 부처님의 능력과 지혜를 감득할 수만 있다면 불교의 위대함에 감읍하지 않고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한 분의 붓다는 그 위..

불교가 지향해야 할 방향

불교가 지향해야 할 방향 오늘날 수행자들이 구가(謳歌)하는 정신세계는 견성(見性), 즉 깨달음이다. 하지만 는 이러한 수행자의 한계, 즉 견성을 초월하여 아라한, 보살, 붓다를 거론한다. 지극히 장엄(莊嚴)한 세계가 견성의 세계를 넘어서 존재한다는 것을 극명하고도 자상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지금까지 어느 누가 아라한, 보살, 붓다라는 존재의 계층적 도식(Hierarchy Schema)과 붓다의 삼신설(三身說) 그리고 칭명염불에 의한 염불선(念佛禪)의 중요성을 이렇게 큰스님처럼 명료하게 서술하였던가? 우리 불제자는 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야할 것이다. 는 기존 선 불교를 건전한 시각에서 올바른 비판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불제자들은 명료하게 인식해야 한다. 즉, 큰스님께서 선 불..

불교 위대한 가르침이여!

불교 위대한 가르침이여! 교학하는 이들은 불교의 무진연기 무아사상 등이 불교의 위대 한 점이라고 합니다. 법계의 위대한 경전 화엄경의 일중다一中多 사상, 보살의 원행願行 사상이나 신비로운 밀교사상, 정토삼부경에 기초한 정토사상 역시 위대한 발견이라고 하여 불교가 제일이라 주장합니다. 시방삼세를 회통하는 불교의 심오한 교의와 철학 사상 은 과연 위대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한편 불교경전의 방대함도 다른 종교의 그것과 비교해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아함부만 해도 1만 8천여의 경들로 이뤄져 있 습니다. 그리고 방등, 반야, 화엄 등의 수많은 대승경전들이 있습 니다. 티베트 쪽으로 흘러 들어간 밀교의 그 수많은 분량의 경전 들까지 합한다면, 분량에서도 가히 위대한 종교라 아니 할 수 없 습니다. 또한 불교는..

불교의 목표는 완전한 생사해탈

불교의 목표는 완전한 생사해탈 윤회에서, 삼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어른은 아라한 성자부터라고 했습니다. 아라한부터 빙의가 없습니다. 명부에도 못 들어간 영가귀신가 빙의된다면 성자가 아닙니다. 성자의 몸은 청정하며 보살은 청정하다못해 발광發光하는 것입니다. 붓다는 발광 정도가 아니라 빛덩어리 그 자체가 됩니다. 성자는 자기 나라의 말로 자기만의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는 공空을 깨쳐서, 혹은 묘유 속으로 헤엄쳐 나가며 부르게 됩니다. 따라서 그 노래는 착이 없고, 상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오도송을 읊고, 법거량하는 것은 공부의 완성이 아니라 이제 겨우 시작입니다. 옛 스님의 것을 표절하여 흉내나 낸다면 더더욱 안될 일입니다. 먼저 불성을 보왔다면, 나의 본질도 보아야 합니다. 인간 영혼체의 비밀도 보아야한다..

불교가 지향해야 할 방향

불교가 지향해야 할 방향 오늘날 수행자들이 구가(謳歌)하는 정신세계는 견성(見性), 즉 깨달음이다. 하지만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는 이러한 수행자의 한계, 즉 견성을 초월하여 아라한, 보살, 붓다를 거론한다. 지극히 장엄(莊嚴)한 세계가 견성의 세계를 넘어서 존재한다는 것을 극명하고도 자상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지금까지 어느 누가 아라한, 보살, 붓다라는 존재의 계층적 도식(Hierarchy Schema)과 붓다의 삼신설(三身說) 그리고 칭명염불에 의한 염불선(念佛禪)의 중요성을 이렇게 큰스님처럼 명료하게 서술하였던가? 우리 불제자는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야할 것이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는 기존 선 불교를 건전한 시각에서 올바른 비판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겁에 하나 출세하는 붓다

겁에 하나 출세하는 붓다! 불교의 위대한 점은, 불교에서는 이러한 붓다가 나온다는 점입니 다. 삼신을 구족한 붓다는 오직 불교에서만 출세합니다. 실제로 어느 대성자라도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볼 수 있다면 감격의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원만보신과는 비교도 안 되는, 모든 붓다의 청정법신을 한 몸뚱이로 하는 세존의 진불인 청정법신 비로 자나불 말입니다. 여름 한 낮의 햇살, 눈이 시려 볼 수 없는 그런 빛을 백천만 개 합친 것과도 비교가 안 될 만큼 엄청난 밝은, 수미산만한 대지 의 빛 덩어리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보고, 하나님이나 창조주 따 위를 넘어서 우주 자체가 되어 버린 무서운 그 부처님의 능력과 지혜를 감득할 수만 있다면 불교의 위대함에 감읍하지 않고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한 분의 붓다는 그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