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사의 불서/깨달음을넘어붓다까지

견성의 체험담과 증험적 세계

불제자 2010. 1. 20. 10:31

 

 

 

 

 

 

견성의 체험담과 증험적 세계

 


사실, 이 정도로 명료하게 견성의 체험담과 증험적 세계를 펼쳐 보이신 불가(佛家)의 선지식(善知識)은 극히 드물다. 아니 전무(全無)하다. 깨달아 보니 어떻게 깨달았는지도 모르고 , 자신이 어느 경지에 와 있는지 모르는 선지식들과 수행자들을 직·간접적으로 많이  대면해 봤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 매우 적게 할애해서 다룬 견성과 보림 후의 아라한 경지에 대해서도 이토록 자세하고 극명하게 설명해 주셨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큰스님의 법 세계가 얼마나 장대하고 광대한지를 우리는 짐작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성서(聖書)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의 내용은 큰스님의 법 세계의 단면일 뿐이다. 왜냐하면 밝히기 어려운 밀장(密藏)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서(聖書)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는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창시하신 불교의 전체 맥락과 큰스님의 법 세계를 이해하고 통찰하는데 큰 힘을 제공하기 때문에 반드시 이 미증유의 성서(聖書)를 두뇌에 각인될 때까지 거듭 반복해서 정독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편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음계(婬戒)를 매우 중시하셨으며 큰스님께서도 음계를 선지(善持)할 것을 누차 강조하셨다.


 일단 견성을 했으면 부처님 세계에 발을 확실히 들여놓기 시작한 시기이므로 결코 음계를 범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명지해야 할 것이다.

참으로 끊기 어려운 것이 음욕(淫慾)이다. 따라서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처럼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아낼 수 있는 인내를 가져야 하면 이 음욕과 투철한 내적 투쟁을 감행해야 한다.

 진실로 영웅은 내면의 적, 특히 음욕(淫慾) 및 삼독심(三毒心)과 싸워서 이기는 승자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나 없는 공부’로서 투타행으로 나아가야 아라한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하셨다. 이 두타행은 큰스님의 법문과 가르침에 의하면 삼천대천세계 모든 붓다들께서 입을 모아 하신 말씀이며 이기심을 버리고, ‘나’라는 생각을 버리도록 하는 공부이며 무아(無我)를 위한 가르침이며 ‘나’가 있음으로 인해 탐욕이 일어나기 때문에 설하신 가르침이시다.


 또한 ‘나’의 존재감 때문에 끄달림, 산란심, 분별심, 집착, 머묾이 일어나며 그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세상의 허망함을 깨닫게 된다고 하셨다. 이 얼마나 상세하게 조목조목 열거하신 가르침이며 일전에 익히 들어본 적이 없는 진귀하고 수승한 가르침이 아닌가 말이다.

 큰스님의 법 세계는 잘 조망하면 할수록 아름답고 황홀하기 그지없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사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유가(儒家)의 가르침에서 수신(修身)이 끝나면 제가(齊家)를 하는데 제가를 할 때는 더 이상 수신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고 본다. 즉, 수신을 해서 제가를 하고 치국(治國)을 하여 평천하(平天下)가 되어도 수신은 부단히 행해져야 한다.


 자신을 닦는 수신의 행(行)이 영속성을 지니지 못한다면 가정을 다스리는 제가는 어불성설이며 나라를 다스리는 치국은 더욱 요원한 일일 것이다.

 따라서 두타행으로 아라한과를 증위했어도 이 두타행을 끝까지 밀고 나가 보살과를 증위하고 더 나아가 불과도 증위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음계를 선지(善持)하여 아라한과를 증위하고, 아라한 하늘에 태어난 후 다시 원력 수생으로 사바세계에 몸을 받아와 보살과를 증위하기 위해서도 음계를 더욱 잘 호지(護持)해야 할 것이며, 불과를 증위하는 과정 또한 음계를 보다 더 잘 수지(守持)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서문에서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불제자가 아라한에서 보살에 이르는 도정에 대해 친히 설해 주셨다.


 아라한이 다시 몸을 받아와

 보살이 되는 공부를 할 때에는

 음계를 생명처럼 지켜

 이타행하면서 대승경전을 읽고

 염불선 되도록 정진하라.

 부모님께 효를 다함으로써

 불보살의 가피를 입어야

 보살의 성과를 얻어

 정토에 가 나니라.


 이 얼마나 지고(至高)한 법문인가? 어느 누가 석가모니부처님처럼 아라한과에서 보살과를 증위하는 도정을 이와 같이 명확하고 심오하며 자상하게 설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큰스님께서는 이러한 석가모니부처님의 가르침을 매우 상세하게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 풀어 쓰고 계신다.


 아라한이 보살과를 증위하는 과정에서도 음계(婬戒)를 철저히 지킬 것을 강조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타행을 해야 한다고 설하신다. 간략하게 이타행에 대해서 논구하면 이렇다.


 큰스님께서는 이타행을 보살행이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보살행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나 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라는 아상(我相)을 타파하고 아집(我執)을 죽여야 한다. 그것이 바로 ‘나’라는 착을 떼어 가는 두타행과 맥락을 함께 한다.


 그리고 이러한 두타행을 ‘정글’ 등의 구렁이와 독충이 많이 나오는 곳에서 해나가면 결국 ‘자아라는 존재의 실재성이 공(空)하다는 것’을 더 절실히 체득한다.

 

 


출처 / 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PP 200 ~ 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