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사의 불서/깨달음을넘어붓다까지

아라한, 보살 그리고 붓다

불제자 2010. 1. 13. 11:51

 

 

 

 

아라한, 보살 그리고 붓다

 

 

 


 현지사 두 분 큰스님의 법 세계(法世界)는 정말 희유하고 거룩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분 큰스님의 법 세계를 조용히 관조해보면 초 인류의 신성(神性), 아니 우주적인 성심(聖心)이 내재되어 있음을 여실히 목도할 수 있다.

 

 그리고 두 분 큰스님의 법 세계를 통해서 희유하시고 거룩하신 석가모니부처님의 법 세계를 대면할 수 있어 정말 복된 이가 아니고서는 이러한 인연을 얻기는 참으로 힘들다고 본다.

 

 이 점 깊이 석가모니부처님과 두 분 큰스님께 감사드리며 본고에서는 현지사의 법 세계 중에서 아라한, 보살 그리고 붓다의 위계에 대해서 논고하고자 한다.


 무릇 불제자라면 엄연히 견성, 즉 깨달음과 여기서 더 나아가 아라한, 보살 그리고 붓다의 경지에는 모두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불후의 성서(聖書)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 큰스님께서는 시종일관 아라한, 보살 그리고 붓다의 위계(位階)에 대해서 역설하셨다. 이는 서양에서 일컫는 존재의 하이어라키(Hierarchy)에 대한 불교적 실재 세계의 모습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아라한, 보살 그리고 붓다의 위계

 


고대 유가(儒家)에서도 전해내려 오는 장유유서(長幼有序) 사상을 아라한, 보살, 붓다의 위계를 통해서 여실히 목견(目見)할 수 있다. 즉, 장유유서의 사상이 우주적 법계의 위상으로 투영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장유유서의 사상보다 더 이전에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몸을 받아 오셨을 당시에도 불문(佛門)에 먼저 들어온 스님이 불문에 늦게 발을 들여놓은 스님보다 서열이 높았다고 경전에는 전한다.


 하물며, 이와 같이 사바세계 현상계에서도 스님들의 위계와 서열이 정해져 있는데, 어찌 우주 법계라는 지고한 존재계에 거하시는 불보살님과 아라한(聖衆)들의 세계에 위계와 질서가 없겠는가?


큰스님께서 아라한, 보살, 붓다라는 법계의 구도(構圖)를 설하신 것은 지극히 탁월하신 지견(智見)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큰스님께서 이를 사자후하시기 전까지는 거의 모든 선지식들과 불제자들은 아라한, 보살, 붓다의 위계를 간과하거나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큰스님의 광명광대(光明廣大)한 법 세계에서 아라한, 보살, 붓다의 위계만을 떼어내어 고찰하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법 세계의 일면만을 바라볼 수 있어 우리 불제자의 시각을 제한시킬 수도 있다.


 왜냐하면 성서(聖書)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 큰스님의 법 세계는 수많은 보석같이 영롱한 가르침들이 화엄사상(華嚴思想)처럼 상호융섭(相互融攝), 상즉상입(相卽相入), 원융회통(圓融會通) 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한 부분만을 조망하는 것은 큰스님의 법 세계를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능한한 지엽적이고 부분적인 시각을 지양하고 통합적이고 유기적이며 거시적 관점에서 큰스님의 아라한, 보살, 붓다의 위계에 대한 법 세계를 언급하고자 한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서문을 친설(親說)해 주신 석가모니부처님의 말씀 중에서 불가(불가)에 귀의한 구도자가 아라한에 이르는 도정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옥과 천상이 있고

 업보중생이 육도에 윤회생사하느니라.

 윤회에서 벗어나려면

 존재의 근원을 철견해야 하느니라.


 이후부터 중요하노니

 음계 등 중계를 호지하면서

 나 없는 공부 두타행으로 나아가라

 그래서 증득하면 성중(아라한)이니라.


먼저, 불가에 귀의한 부처님의 제자라면 누구나 지옥과 천상 등의 육도 윤회가 존재함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윤회를 벗어나고 해탈하여 사바세계의 중생심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운 청정인(淸淨人)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존재(Sein)의 근원을 철견해야 한다. 이 존재의 근원을 철견하는 것을 견성(見性), 또는 큰스님 말씀대로 현성(現性)이라고 한다.

 


 큰스님께서는 이렇게 설하신다. “조사선을 공부하는 이는 의단이 자리잡아 화두 타파하는 순간 경계가 확 뒤집히는 과정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 때 드러나는 것은 자성 광명뿐, 내 앞의 모든 게 공이 되어 나도 없고 나라는 생각까지도 사라집니다.

 

 아공, 법공, 구공입니다. 생각 이전의 본래 면목, 진여 자성입니다. 태양광과 달라서 여여하면서도 신령스러운 빛이요, 공적 영지입니다. 법계를 비추는,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정화된 마음의 빛’입니다.”라고 말이다.

 

 또한 큰스님께서는 “주와 객의 벽이 무너져 버리고, 툭 터져 허공같이 비었습니다.적조요 만고의 광명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마음은 실체가 없어서 가고 옴이 없고 여여 부동하다는 것을 확실히 보았습니다.”라고 자상히 밝히시고 계신다.

 


 그리고 더 나아가 큰스님께서는 “소위 견성에 이름으로써 저 일신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우상일 뿐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말하자면 ‘절대적인 창조주란 없다!’고 선언하는 단계가 바로 견성의 경지였습니다. 이 경지에 이르면서 이 몸뚱이란 4대(지수화풍)로 이루어진 옷이나 집과 같은 ‘가짜 나’라는 것과, 나라는 것도 오온으로 이루어진 인연 소생의 가아(가아)이며 이 세상은 꿈이나 그림자 또는 이슬과 같은 무상한 존재라는 사실도 발견하였습니다. 분별하고 사량하는 것은 생각일 뿐, 마음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 출처 / 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PP 196 ~ 2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