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성, 깨달음 이후의 솔직한 경지
아라한과를 얻으면 세상이 텅 빈 허공과 같음을 통찰(Insight)할 수 있다.
아무 것도 없고 너도 없고 나도 없고 모든 것이 없는 공관(空觀)을 얻고 공심(空心)을 심득(心得)한다. 우주 전체가 꽉 찬 허공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내면에서 빛이 생긴다. 그럼으로써 삼라만상 우주 대자연을 하나의 ‘가득 찬 공허’로 인식하고 깨닫게 되며 이로 인해 음욕(婬慾)이 지멸(止滅)된다. 빛은 번뇌와 음욕을 녹이고 잠재운다.
만현 큰스님께서 아라한과는 수행자의 영체가 은백색을 띤다고 하셨는데 윤회, 즉 흔히 세간에 알려진 말로서 매트릭스(Matrix)를 벗어나야 아라한과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일단 견성을 해야 ‘가득 찬 공허’를 철견(徹見)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견성은 공간계의 변형을 의미하지 생사경(生死境)에 완전히 도달한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아라한 삼매는 멸진정삼매로서 여기서 더 나아가 보살들이 드는 삼매인 해인삼매(海印三昧)에 들어야 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불과를 증위하는 대적정삼매(大寂定三昧)를 통과해야 한다고 큰스님께서는 설하신다.
이는 깊은 삼매를 통해서 고차원으로 의식의 상승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이해하고 있다. 큰스님의 말씀에 의하면 불과를 증득하면 법신(法身)을 얻게 된다고 하는데 이는 바로 생사관(生死觀)을 확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생사관을 얻지 못하고는 결코 자신이 붓다라고 자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천이삼백년 전 중국(唐)에서 골격을 갖춘 소위 선불교(禪佛敎)에선 즉심시불(卽心是佛)이라 하여 마음이 곧 부처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마음을 깨치면 성불로 본다. 부처가 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마음의 본성, 곧 공성(空性)을 증득한 것만으로 성불이라 보는 견해는 사과 씨를 사과라고 말하는 것과 같으며, 이제 겨우 깨달음을 증험한 것만으로 부처라 주장함은 사실과 천지차이가 나는 위험천만한 사견(邪見)인 것이다.
<<법화경>> (비유품)에서 사리불 존자는 자기가 공의 법을 증득하고, 참된 완전한 멸도로 생각했으나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어보니 분명 사견이었다고 고백한다. 천인과 야차, 용신들이 공경하여 따르는 곧 32상과 지혜, 자비, 복덕과 항사의 신통으로 천백억 화신, 32응신을 나투어 육도 중생, 성중, 보살을 구제할 수 있는 색신(불신)을 성취해야 비로소 붓다라 선언했다.
이 색신의 성취는 공성의 증득과 더불어 무량 겁을 두고 쌓은 온갖 공덕으로 인하여 가능하다는 것. 아라한 성문들에게 먼 미래세에 색신의 몸으로 성불하게 된다는 부처님의 수기를 싣고 있다. 우린 이를 주목해야 한다.
자재 만현 큰스님께서는 불신(색신)을 얻지 못했다면 결코 성불이 아니라고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 강조하심을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
금강승이라고 하는 밀교에서는 무상한 육신 속에 사신(사신 또는 삼신)을 현증해서 생사를 진실로 초월한 붓다가 된다고 하지만 자재 만현 큰스님께서는 밀교의 법신·보신설은 진정한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단언하신다.
미세한 분별의 마음이 완전 탈각한 일체공(一切空)의 빛 곧 정광명(淨光明)과 화합한 상태에서, 바르도(中有)에서 얻은 의생신을 불신(報身·色身)이라 보는 것은 진정한 보신을 모르는 견해라 하신다.
티베트 밀교의 수행 체계 등을 가장 높이 평가하시는 자재 만현 큰스님은 붓다의 삼신설에 대한 보다 깊은 법설을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Ⅱ>>에서 다룰 것이라 하시니 자못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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