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사/21세기붓다의메시지

왜곡된 부처님의 가르침(21세기붓다의 메시지 (4번 )

불제자 2022. 5. 25. 08:37

오늘의 한국불교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많이도

 왜곡되어 있습니다.

 

생사관生死觀 하나 뚜렷하지 않고 불교수행의 기본은 철저한 지계持戒에

있는 데도 승려들의 승행僧行은 심각할 정도로 타락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크게 눈뜬 성자가 없어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으려고 하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구하는 것과

같다고 지금의 불교에서는 말합니다.

 

이 마음이 부처요, 마음자리가 극락이라고 합니다.

 

지옥과 극악을 마음 안에서만 찾으며 "지옥과 극락은 따로 존재하고

있는 실재가 아니라, 우리 마음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마음 밖의 지옥 극락, 불 보살 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과연 눈을 뜨고 나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인지요? 불안佛眼이나

오안五眼을 갖추고 나서 하는 말인지요? 실제로 지옥과 극락이 안

보입니까? 정말로 마음에도 안팎이 있다는 말입니까? 공空에도

안팎이 있습니까?

 

마음眞如自性은 수긍삼제竪亘三際요, 횡변시방이며 불생불명不生不滅입니다.

일심一心 혹은 법성法性은 시방법계 어디에도, 심지어 티끌이나

먼지 속에도 주변하여 뻗쳐 있습니다.

 

동시에 시공時空을 초월超越해 있습니다.  영원히 경계에 물들지

않습니다.

 

자성自性은 청정무구요, 여여如如부동不動입니다.

그런데 이 마음자기를 깨친 정도로는 아직 지옥과 극락이 안보입니다.

 

이 경지에 이르러서는 결코 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려분! 지옥과 극락은 실제로 있습니다.  불 보살도 계십니다.

 

윤회도 사실입니다.  200여 불교 경전에서 지옥 등을 분명히 말씀

하신 부처님이 거짓말쟁이란 말입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공空을 지나, 무아 속 삼매에

들어 그동안 보고 들은 것을 간략히 줄여 전합니다.  공부해서 뚫은

바를 수행인의 양심으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고민 있으면 지옥?_지옥은 실제로 있다!

 

 

지옥은 분명히 있습니다.  '고민이 있으면 마음은 무간지옥' 이라

는 설법은 실제로 하나만 알고 들은 모르는 말입니다.

 

지옥은 우리 육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영체 세계의 남방 지장

궁 방향에 있습니다.  차별의 현상세계에서 볼때 지옥은 엄연히 존

제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무아 속 삼매에 들어 보니, 지장본원경에 나오는 지옥은 그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여기서는 중지옥 가운데 한곳만 소개하겠

습니다.

 

열 손가락 손톱 밑을 대꼬챙이로 찌르는 그런 지옥도 있습니다.

 

이곳에서 우리의 영체는 고통으로 까무러쳐서 하루에도 만 번 죽

고 만 번 살아날 정도로 지독한 벌을 받습니다.  그 고통은 육신이

당하는 고통과 똑같이 느껴집니다.

 

오역죄, 사중죄를 지으면 보다 무서운 무간지옥으로 갑니다.

 

극무간지옥도 있습니다.  그곳의 수명은 한량없는 시간으로 정

해집니다. 지옥의 벌은 자동自動으로 집행됩니다.  하나의 지옥은

사바세계보다 넓습니다.  그것이 특징입니다.

 

지옥으로 들어갈 때는 크나큰 철문을 통과합니다.  지금은 이 정

도만 말해 두겠습니다."

 

 

무량광을 보다

조사선을 공부하는 이는 의단이 자리 잡아 화두타파하는

순간 경계가 확 뒤집히는 과정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때 드러나는 것은 자성광명뿐, 내 앞의 모든 게 공이

되어 나도 없고 나라는 생각까지도 사라집니다.  아공, 법공,

구공입니다.  생각 이전의 본래 면목, 진여자성입니다.  태양

광과 달라서 여여하면서도 신령스런 빛이요, 공정 영지

입니다.  법계를 비추는,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정화된 마

음의 빛' 입니다.

 

여기가 견성경계입니다.  이후에 보림을 마치면 아라한의 반

열에 듭니다.

 

이제 보살의 경지부처는 타력, 곧 부처님의 절대하신 가피력

이 없이 자력만으로는 결코 오를 수 없는 경지라는 것을 선언

합니다!

 

<<열반경>> (여래성품)의 '대열반광명이 중생의 털구명으로 들어

가는 자는 반드시 불도를 이루리라'는 말씀대로, 수행인이 공부하

는 중에 선정에 들어 빨강가사, 장삼을 수하신 문수 보현보살 그

리고 관음 세지보살께서 방사하시는 부처님의 광명대열반광명

을 온몸의 털구명 속으로 받아들이는 경계를 종종 만나면 보살의

위에든 것으로 봅니다.

 

부처님의 광명으로 씻겨진, 보살영체의 빛은 자성광명과는 차원

이 다릅니다.  자성광명이 보름달의 하얀 은백색이라면 보살의 빛

은 아침에 떠오르는 햇살 정도이니 비교할 수조차 없습니다.

 

그래서 보살의 마음은 그지 없이 청정합니다.  상품의 보살이

붓다의 경계에 들 때에는 무량광이라는 수백 수천의 태양

을 합한 것 이상의 광도를 띤 빛덩어리를 보게 됩니다.

 

무량광은 부처님의 본원엑기스광 입니다.  경계에 오염되지

않고, 영원히 손상되지 않습니다.  내외명철이 특징입니다.

 

안팎이 수정처럼 드러나 영롱하기 그지없습니다.  백종오색광

이요, 억종광입니다.  햇빛에 반짝이는 금강석의 빛과

같습니다.

 

무량광이라는 빛덩어리는 붓다만이 볼 수 있기 때문에 불의

경계입니다.  붓다 되는 관문이 바로 무량광입니다.  보살에서 붓다

로 뛰어 오르는 유일한 관문입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공을 깨친 후 무량광을 보기 이전에 불 보살이 있다

없다 말하는 것은 한낱 범부가 지껄이는 망언일 뿐입니다.  무량광

은 불과를 등하는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분명히 만고에 공부인의 발길이 닿지 않은 처녀림

이지만, 이 경계를 발견한 수행자는 2500년전 부처님 이후

오직 수보리 사리불 존자뿐입니다.

 

부처님께서 스스로 깨달은 법이 매우 깊고 미묘해 알기 어렵

고 들어가기 어렵다 생각하셔서 전도를 포기하려 하셨지만, 범

천의 강력한 권청에 따라 법을 설하기 시작하셨던 것처럼, 나

는 이땅에 부처님의 정법을 세우기 위하여 그동안 부처님들을 친

견하고 들은 여러 소식을 조심스레 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무량광의 경계를 지나면 드디어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습니다.

 

중생과 성중아라한이나 보살은 절대로 불신이나 부처님을 뵐 수 없

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온몸이 천문학적인 광도를 띈 무

량광으로 이루어젺기 때문입니다.

 

불과를 증한 대성자는 이런 엄청난 빛으로 이루어진 자기의

불신을 무아 속의 절대계, 곧 상적광토인 부처님 나라에 둡

니다.  그분의 불신이 있다는 것은 곧 그분이 불과를 증했다는 의미

입니다.

 

불신을 교가에서는 원만보신 또는 보신 이라고 하거나

지복의 몸 이라고도 합니다.  여기서 나는 불신을 종래의 법신

개념에서 벗어나 보신 개념으로 과감히 대치하고자 합니다.

 

'이 마음이 곧 부처' 라는 가르침이 보편화되어 있는 오늘날의

불교계에서 부처님들이 '무아 속 절대세계에 빛으로 계신다'는

이 법설은 일대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소폭탄과도 같을 것입니다.

 

이 엄청난 발견으로 수없이 왜곡된 부처님의 가르침들이 재조명

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부처님들은 모두 무량광으로 이뤄진 몸을 지니셔서 무량수

가 되므로, 삼세의 여래가 똑 같습니다.  무량광으로 이루어

진 불신에서 백천만 억의 화신이 현현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거짓몸뚱이와 그 안에 불성이라는 보물창고를 가지고 있

습니다.

 

하이데거는 그의 존재와 시간 이라는 저술에서, '인간

존재' 를 존재해명의 실마리로 삼았습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만

이 인간존재 안에서 본각심체의 진상을 구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이야말로 진여 곧 존재를 깨우친 몇 안 되는 철학자 가

운데 한 분입니다.  자성광을 보왔으나, 열반광이나 무량광을

알지 못한 것은 못내 안타까운 일입니다.

 

무량광으로 이루어진 불신에서 법보화삼신, 부처님의

8만4천 신통, 백천 삼매, 지혜와 자비, 복덕이 우러나옵니다.  바로

무량광이 지혜 자비 복덕 삼매 신통능력 자체인 불가사의한 빛덩

어리기 때문입니다.

 

무량광을 꿈에도 모르는 무당이나 공부수행인이 부처님을 뵙고

부처님과 대화한다고 말한다면, 하늘 마에 속아 그리 말하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하늘 마가 얼마든지 불 보살님의 모습으로

나투어 현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량광명만은 절대로 방광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빛을

거둬들이고 난 이후에 현신한 부처님이라도 두광, 배광, 신

광의 광휘가 나타나기 때문에 변화술에 능한 천마라도 그

것만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것입니다.  안팎이 드러나는 억종광명

백종오색광명 그리고 눈과 몸에서 방사하는

자비 선정의 빛도 만들어 낼 수가 없습니다.

 

 

내 가진 것 일체를

 

다 버렸더니

 

일체를 소유했더라

 

하나가 여럿 되고

 

여럿이 하나 되어

 

하나까지도 없는 것

 

무아 속 절대세계는

 

청정하고 깨끗하고

 

영롱한 빛무량광명 뿐~

 

출처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34~38쪽/영산불교 현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