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에서 삼매까지/타수행과 비교

[스크랩] 아라한의 깨달음

불제자 2009. 6. 5. 20:25

 

 

 

 

 

아라한의 깨달음

 

 

 

 

  흔히 선 불교나 인도 요가 그리고 천주교에서 말하는마음의

개오, 즉 깨달음은   Enlightenment라고 하여 '내면세계에

빛을 가져옴'을 의미합니다.  또한 탁한 에너지가 있을 때 그 에

너지를 연금술처럼 정화하고 통합시켜 하나의 황금빛(Golden

Light) 에너지로 바꾸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수행 기술이라고

수행자들 간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영적 성장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탁한 의식을 좋은 의식(에너

지)으로 바꾸어나가면서 탁한 의식을 탈각시켜 나가는 것이라 전

해지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내적인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

며 또한 외면 세계에 대한 통찰이 요구됩니다.  한편, 테아르 샤

르뎅 신부는 정신적 통일체로서 오메가 포인트(Omega Point)를

이야기하였습니다.  오메가 포인트가 바로 때달음(Enlightenment)

을 말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바로 아라한위라는 것

을 명지해야 합니다.

 

전대 미문의 대역작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는

이를 소상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 점에서 큰스님의 서적을 높

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많은 이들이 아라한위 경지가

수행의 종착역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

다.  더 나가야 합니다.  단지 아라한위는 우주적 격률에 맞

는 존재로소 거듭나게 되는 시작점에 불과합니다.

 

물론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

니다.  그러한 많은 노력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숨을 거는

것과 인내하는 것이라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도 여정은 참

으로 힘듭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루지 못할 과업은 아닙니다.

 

얼마나 치열하고 지성스럽게 구도의 길을 걷느냐가 중요하며

그러한 과정 속에서 항상 불보살의 가피를 기원하는 자세가 필

요합니다.  자신의 내면에 잠재하는 모든 에센셜 포르테(본질적

장점)를 끌어내서 모든 것을 바쳐야 합니다.  명예,

지식, 재능, 재산, 목숨 등 모든 것을 걸어야 얻을 수 있는 것

이 아라한의 경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라한이 끝이 아닙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

서는 큰스님께서 강렬한 어조로 여기서 보다 험난한 길을 더

걸어야 보살위에 이른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더 험난한 길을

걸어야 붓다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인생을 통해서 경험하고 배

우고 진지하게 마음을 탐구하고 치열하게 성찰하고 세상을 명

민하게 통찰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경지를

얻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성찰과 통찰에 의한 위빠사

나선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큰스님 말

씀처럼 칭명염불선을 통해 보살위와 붓다위로 나가야 할 것입

니다.

 

구도자에게 있어서 수행이란 어둠의 강를 건너는 것과 같습

니다.  그 어둠의 강을 건넜을 때 덧없고 허망한 세계는 망각되

고 밝은 실존의 세계, 즉 빛의 세계가 현전합니다.  그리고 과거

에 자신이 경험했던 모든 영적 경험들이 하나로 통합됩니다.

 

이러한 통합을 위해서는 누구나 불확실성의 시기를 경험합니다.

 

하지만 공을 항시 꿰뚫어 보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이러

한 불확실성의 시기는 '창조적 불확실성의 시기'로 다가오게 됩

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과 번뇌들은 불확실성의 시기에서 비

롯되지만 그것이 깨달음이라는 열매를 맺는 거름이 되어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가에서 말하는 쉬바 의식의 창조성을

얻게 해 줍니다.  또 화이트헤드의 '과정이 실재

라는 말'은 바로 거름이 곧 열매로 이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깨달음의 세계 속에서, 즉 공심의 세계 속에서는 그 속

에서 주인공으로 앉아서 사유하고 이야기를 하고 행위를 하는

각인은 바로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포용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자유(해탈, 모크샤)를 이루며 하나의 거대한 맑고

건전한 담론 공간을 잉태합니다.  따라서 그가 경험하는 세계는

완전히 하나로 통일되어 있으며 어떠한 말을 해도 진리

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여기서의 진리란 바로 아라한의 견처에서의 진리입니다.  그

이상의 세계에서 바라보면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물론 제가 배우고 경험하고 책과 선지식의 가르침을 듣고 보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는 아라한위

이상의 세계를 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히 어마어마하게 장

대한 스케일로 불보살님의 세계를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아라한위에서 불가능한 점과 가능

한 점 등을 설명해 주시고 계십니다.

 

재삼 강조하는 바, 중요한 것은 일반 수행자는 아라한위가

깨달음의 종착지라 생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잘못되었

음을 알아야 합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통해서 그러

한 잘못된 인식을 혁파하고 퇴락된 불교의 위상을 쇄신 및복

원시키고 더 나아가 격상시키고자 하시는 큰스님의 위대한 염

원이 매우 경건하게 메아리치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가슴 깊이

느껴야 할 것입니다.

 

깨달음으로서의 진리는 논리를 포함하지만 논리 자체는

아닙니다.  논리를 초월하여 보다 고원한 세계를 다루는 것이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진리는 바로 정의와 자비가 하나로 융섭

되어 있는 상태라고 저는 봅니다.  그 진리 속에서는 언어

의 모순을 초월한 보다 큰 사랑과 자비 그리고 대학에서

말하는 지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곳을 향하는 발심자의 마음이 항상 바른 길을 걸어간다면

언젠가는 맞닿을 수 있는 왕도로 이어집니다.  발심

자의 마음은 왕도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가 진실로 간절하

게 구한다면 말입니다.  그리고 그가 원하는 것을 구하려고 하

는 참다운 노력을 한다면 말입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는 진정한 왕도가 무엇인지를 여실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인도

에서는 박티 요가, 쿤달리니 요가, 즈나나 요가, 하타 요가, 라

자 요가, 만트라 요가, 카르마 요가, 등 다양한 유형의 요가를

수행자들을 위해서 마련해 두었습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는 이러한 요가 수행법의 기교적인

수행을 초월하여 계율의 중요성과 염불선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는 그리스도 바바지의 수

행이나 다른 어떤 요가 수행자들이 얻은 의식 세계, 즉 에너지

세계와는 차원이 다른 보다 깨끗하고 청정한 에너지 세계를 우

리들에게 전해주고 계십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는 큰

스님의 정신세계와 불보살님들의 세계를 정합적으로 구성하여

농축시킨 매우 희유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읽는 것만으로 환희

심을 갖게 해 줍니다.

 

깨달음의 세계에는 언어의 모순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은 모순이

아닌 하나의 거리감 해체라고 보아야 합니다.  깨달음에는 여기

서의 세계가 저기서의 세계입니다.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는

<<과학과 근대세계>>라는 저서에서 "어떤 의미에서 모든 것은

언제나 모든 곳에 있다."고 갈파하였으며, 이는 카오스 이론의

나비 효과처럼 "불경에서 나비가 날면 북미에서 비가 온다."라

는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즉, 거리감이 와해되고 해체되는 공간

이 바로 깨달음의 공간입니다.  깨달음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다는 것이 바로 이러한 뜻입니다.

 

이 때달음의 공간에서는 어떠한 진리도 하나로 회통합니다.

그리고 거짓은 모두 탈각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진리의 회통

이 가능한 것입니다.  세계는 변화해도 깨달음의 세계는 변화하

지 않습니다.  그래서 숭산 선사의 제자이신 현각 스님께서는

변화의 충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선 수행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언제나 깨어있는 마음, 그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선 수행은 이제는 화두선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위빠사

나선이나 염불선 등 다양한 선 수행을 포괄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큰스님이 상세하게 알려주신 칭명염불선은 오늘날의 불제

자라면 꼭 수행해야 할 수행법입니다.

 

미혹한 구도자들에게는 <<21세기 붓다의 메시지>>가 논리적

모순으로 보일 수 있어도 그것은 논리적 모순이 아니라 보다

큰 세계의 모습입니다.  즉, 상위 차원의 세계를 하위 차원으로

투영한 것이라 보면 됩니다.  깨달음은 자신의 정신을 비상시키

는 일입니다.  하나의 훈력이요 수행입니다.  따라서 하위

차원에서 고차원을 바라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해가 되기

위해서는 남다른 고행이 필요합니다.

 

수행은 바로 정신과 영혼의 비상이자 비월입니다.  마하라쉬

마헤수라는 인도의 요기는 미국에서 초월 명상을 창안하여 많

은 구도자들에게 가르침을 폈습니다.  이러한 초월 명상이 바로

대표적으로 인간의 영혼과 정신을 보다 높이 비월시키는 힘을

얻게 해 줍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진실과 진리를 증득하게

해주는 게 바로 수행입니다.

 

자비로움과 엄중함이 서려있고 한편으로는 수려하고 출중한

필치로 쓰여 진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는 보이지 않는 불보

살님들의 세계를 보다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우리가 알고 있는 의식을 보다 고원하고 지고한 정점으로 확장

시켜 준다는 것입니다.  의식이 확장되어야 포용력과 수용력이

확대되며 타인들의 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원한 불보살님의 세계를 큰스님의 법문과 서적을 통해 마음

에 그리는 것만으로도 시시한 세속의 문제에 연연하지 않고 초

연해 할 수 있습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는 또한 큰스

님께서 몸소 우리를 데려다가 불보살님의 세계를 관람하도록

해 주시는 느낌을 받습니다.  큰스님의 서적을 많이 읽을수록

우리의 마음은 보다 높은 곳을 향하여 향상심을 갖고 정

진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초월이란 바로 거리감을 일소시키고 거리감을

완전히 해체시키는 작업입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는

이러한 세속과 승가에 대한 거리감을 지워줍니다.  무아의 세계

에서는 세속과 승가의 분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또한 나와

너라는 대립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와 너, 너와 나라는 이원

론적인 테두리를 벗어나서 너와 나는 우리라는 하나의 공동체

의식으로 발전시켜 이를 통해서 세계를 하나로 완성시킨 후 그

것을 증득하는 것이 깨달음의 체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명상은 바로 마음을 고요하게 하여'주체적 나'와

'상대적 너'의 거리감을 상실시키고 그것을 통해서 나와 너의

일체감을 얻어 하나의 통일된 세계를 얻어내는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바라보는 너의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

이라는 것을 깨달음의 거울을 통해서 영롱하고 선명하게 비춘

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거리감을 없애는 수행이 바로

학인이 깨달음의 왕도로 걸어가는 길입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읽는 순간 많은 수행자들과 신

도들의 갈등과 번뇌를 제거해 주며 마음의 갈증을 시원히 해소

시켜 줌으로써 지복의 파라다이스로 데려다 줍니

다.  그리고 나라고 생각하는 관념들을 제거해 주고 무엇이 구

도자 또는 불제자의 바른 길인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흔히

초인으로 알려진 성자들 중에는 부처님과는 다른 에너지체를

갖추고 있음을 간파해야 합니다.

 

부처님의 법광은 너무나도 고결해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성자들의 에너지와는 비교할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

야 할 것입니다.  읽을수록 법열의 물결을 전해주는 <<21세

기 붓다의 메시지>>는 선남자 선여인을 청정광명의 불보살님

세계로 선도하는 거룩하신 가르침이라는 것을 반드시 명각

해야 할 것입니다.

 

 

 

 

 

 

출처/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출처 :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
글쓴이 : 연 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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