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재만현 큰스님 법문 글/..법문 글 2010년

[법문글]현지궁 현지사 자재만현큰스님 정기법문 대전편 2010.9.15.수 / 계율(戒律)

불제자 2012. 3. 13. 09:13

 

 

  

 

 

 

 

 

자재만현 큰스님 정기법문

 

 

현지궁 현지사 대전 분원 

2010.9.15.수(음8.8)  


 

계율(戒律)

 


오늘 법회에 처음 나오신 분 손을 들어주세요. 많은 박수로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스님의 법문을 하나도 빠짐없이 잘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21세기 우리가 사는 이 시점에 이 나라 불교나 여러 나라의 불교는 부처님의 정법과 거리가 너무 멉니다. 내가 항상 이야기하는 말입니다. 오늘은 계율(戒律)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말씀드리기 전에 스님이 이 나라 사랑스러운 우리 참한 불자님들, 그리고 전 세계의 불자님들에게 힘주어서 알려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나는 이 거룩한 법좌에서 다시 한 번 힘주어서 선언합니다. 부처님, 보살님, 모두 계십니다. 마음 안에도 아니고, 마음 밖에도 아니고, 유․무를 초월한 '무아 속 절대세계(적멸계)'에 여여히 계십니다. 극락도 있습니다. 보살 인가를 받은 성자가 가는 극락세계는 분명히 있습니다. 지옥도 있고, 아귀세계도 있고, 하늘천국도 있습니다. 외부적(객관적)으로 존재합니다. 명부를 들어가지 못한 무주고혼들이 사는 중음세계도 있습니다. 중생은 스스로 업을 지어 육도(六道)라는 여섯 세계를 윤회생사(輪廻生死)합니다. 이 모든 사실은 부처님 공부를 잘해서 붓다가 되면 확실히 봅니다(압니다). 이건 진실입니다.


심즉시불(心卽是佛),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하면서 부처! 부처님이 없다고 대망어 하지 마시오. 지금 근심걱정 번민하는 그 자리가 지옥, 번뇌를 떠나 행복을 느끼는 그 순간 그 자리를 극락이라고 합니다. 그런 대망어로 눈먼 중생을 오도하면 과보가 무섭습니다. 기뻐하다가 곧 괴로워함을 윤회라고 한답니다. 영혼 따위는 인정하지 않고, 인과(因果)는 끝나는 것으로 보고, 다음 생도 없다고 말하는 법문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본래의 위대한 불교는 이렇듯 망가졌습니다. 신근(信根)이 있는, 믿음의 선근이 있는 선남자 선여인들을 어찌 구원한단 말입니까? 부처님께서는《정토삼부경》《아함경》《능엄경》등 수많은 방등경전,《법화경》《화엄경》등 대승경전 곳곳에서 극락을 말씀하셨고, 지옥을 이야기하셨고, 육도를 설하셨고, 윤회를 확실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모두를 방편(方便)으로 설한 것이 아닙니다. 일부 학승들, 불교학자들, 선승들, 포교사들은 대망어의 과보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있다 없다를 초월한 자리, 거기서도 더 나아가 '무아 속 절대계'를 알지 못하고 함부로 법을 설하면 무간지옥에 간다고 부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우리 교주 불세존, 이 말씀은 부처님세계에서 붓다님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말씀이십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최초 불이요, 붓다 중의 붓다이시고, 삼계의 지존이시고, 미래제가 다하도록 남섬부주의 대교주이십니다. 우주 온 법계의 주(主)이시고, 법계의 법왕이신 진정한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나는 여기서 이 나라, 그리고 세계의 수많은 불자님들 앞에 힘주어 선포합니다.

 

부처님께서는 큰 지혜와 복덕, 원력과 자비, 항하사의 신통과 크신 위신력을 지니신 지존이십니다. 백천삼매, 해인삼매, 대적정삼매에 자유자재하시고, 법․보․화 삼신(三身)을 구족히 갖추셨으며, 그래서 삼천대천세계에 당신의 천 만억 화신을 나투어 중생을 교화하고 계시는 지존이십니다. 무아 속 절대계에 천억 아승지색깔의 억종무량광 빛으로 된 32상 80종호의 인격적 우주적 색신, 소위 지복의 몸, 영원불멸의 몸뚱이를 지니고 계십니다.

 

경험세계(상대세계, 중생세계)에 나투실 때의 거동 거동은 실로 삼천위의 팔만세행(三千威儀 八萬細行)이 맞는 말입니다. 제자를 대함에 있어서 그 지극한 자비는 흉내를 낼 수 없고, 음성(목소리)은 최상의 미묘음이어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 몸(佛身의 몸)의 구석구석 어느 한 곳을 보고 있으면, 너무나 예쁘고 아름다워서 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시는 말씀마다 거룩하고 희유한 법의 감로비, 법보 아님이 없습니다.


상품보살 가운데 불종자(佛種子)가 인신을 받아와 정진하는 중에 깊은 삼매에 들어서 부처님 빛(무량억종광)을 보게 됩니다. 너무 밝고 아름다워서 이 세상천지, 아니 하늘과 극락에도 없는 그런 희유한 빛을 볼 때, 비로소 그 두터운 무명의 껍질이 타파되는 것입니다. 이때 수행자는 깊은 선정에서 지옥과 극락, 중생이 윤회전생(輪廻轉生)하는 그 모습도 분명히 봅니다. 사랑하는 불자여러분! 지금의 여러 나라 불교는 부처님 말씀, 진리와 너무 멀리 떠나있습니다. 본래의 위대한 불교는 너무 왜소화 되었고, 왜곡되고 망가진 불교가 되어버렸습니다. 방금 스님이 여러분 앞에서 힘주어 선언한 바를 모두 믿어 주십시오. 진실입니다. 잠깐 염불하겠습니다.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고아일심귀명정례


무시무종(無始無終), 이건 어려운 말인데 ‘시작도 없고 끝이 없다’는 말이에요. 스스로 있는 자존자, 우주에 충만한 하나의 큰 생명, 모양도 없고 모습도 없고 따라서 생각도 없고 행위 하지도 않고 판단하지도 못하는 이 실상, 이것은 비 인격이면서 하나의 생명, 시작함과 끝남도 없이 언제나 우주에 두루해 있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이것은 비 인격입니다. 우주이법이요, 자연법칙이요, 인과법이요, 인연의 도리올시다.

 

우주만물을 창조한 그런 인격적 절대자는 없습니다. 창조한 절대자가 있다면 처음과 마지막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계속 진행 중입니다. ing입니다. 그러므로 힌두교의 창조론도 거짓입니다. 영원 이전부터 미래제가 다하도록 우주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을 합니다. 다른 우주도 그렇습니다.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 인간을 포함한 유정들은 언젠가 공(空, 스스로 있는 자존자), 원래의 실상자리로 돌아갑니다.

 

그러다가 다시 자연법칙에 따라서 영원히 성주괴공을 시작합니다. 소위 기세간(器世間), 무정의 세계, 천지(天地) 일월성신(日月星辰) 같은 것, 이것은 자연법칙에 따라 생성 진화 소멸합니다. 인간을 포함한 유정은 자유의지가 있어서 인연의 도리와 인과의 법칙에 따라서 지옥까지 스스로 만들어 거기에 들고(떨어지고), 윤회를 벗어난 자도 있고, 불․보살이 된 자도 있습니다. 지금 현재 이대로가 과거요 영원 이전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이게 아주 깊은 이야기입니다. 그 어디에도 없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미처 말 못한 우주의 깊은 수수께끼입니다.

 

하나님이라고 하는 창조자가 있어서 어떤 이에게는 복을 주고, 어떤 이에게는 비참한 운명으로 살도록 벌을 주고, 남편을 주고 아들딸을 주고,...이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창조론은 처음과 끝이 있게 됩니다. 그러면 처음 이전, 과거전생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론은 허구(虛構)입니다. 착한 이가 가난하게 살기도 하고, 악한 사람이 잘사는 현실, 창조론 가지고는 이것을 설명 못합니다.

 

배넷병신(배안의 병신, 선천적 병신으로 태어난 것)을 설명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라면서 그럴 수 있습니까?

소위 영혼체를 보는 수준이면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실히 압니다. 영혼체, 스님이 영혼체를 윤회의 주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형이상적인 실체로서 중생들은 못 봅니다. 영혼체가 윤회생사의 본체(本體)요, 기체(基體)입니다. 이 영혼체를 볼 정도이면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의 그 유무를 확실히 압니다. 우주만물이 어떻게 해서 생기고, 인간을 포함한 유정과 남녀는 어떻게 해서 생겨났고 하는 것을 봅니다. 

 

이 우주 만법은 자연법칙, 다시 말씀드려서 우주법칙에 따라서 생성되고 소멸되는 것을 반복한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인간을 포함한 유정들은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인연의 도리와 인과의 법칙에 따라서 죄를 지으면 지옥까지 가고, 착하게 살면서 성인(聖人)의 법을 따라 살면 극락을 감은 물론, 붓다까지 됩니다.


우리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전에 아난존자에게 마지막 유언(유계)을 하셨습니다. 중요한 말씀은 “계(戒)로서 스승을 삼아라. 내가 반열반 후에 스승을 잃은 너희들은 슬퍼하지 말라. 계(戒)로서 스승을 삼고 살아라”하고 이계위사(以戒爲師)를 말씀하셨습니다.《화엄경》에서도 “계(戒)라는 것은 위없는 보리를 이룰 수 있는 근본이 되고, 그렇기 때문에 마땅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구족계를 선지할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능히 이 맑고 청정한 구족계를 지니면 모든 부처님들이 칭찬할 것이다.” 나는 여기서 말씀드립니다. ‘동진출가(童眞出家, 어렸을 때 출가)해서 계(戒)를 잘 지키고 염불한다면(염불로 한 생을 보내는 그런 스님이 있다면), 그 스님은 분명히 왕생극락 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요즘 신문이나 TV를 보니까 무서운 사건들이 빈발합니다. 여러분, ‘묻지마 살인사건’있지요. 행복해 하는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듣기 싫어서(자기보다 행복해 하는 저 사람들이 보기 싫어서) 그 웃음소리가 나는 그 집에 들어가서 사람을 죽였대요. 30대 남자가 부부를 살해했지요. 또 우리나라에 도박중독자가 20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아마 이 숫자보다 더 많을 거예요. 한 400만 명은 될 거예요. 4억 원의 도박 빚 때문에 부인을 목 졸라 죽이고, 잠자는 아들을 둔기로 쳐 죽인 40대 살인범이 잡혔습니다.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외부적(객관적)으로 지옥도 없고 극락도 없고, 윤회도 없고, 육도도 없고, 귀신도 없고, 불보살도 없다면, 모든 수단 방법을 다 강구해서 한 생 적당하고 멋지게 살아야지요. 아무것도 없으니까 죄도 적당히 짓고요. 죽어서 가는 자기도 없고, 가는 저 지옥도 없고, 육도도 없고, 극락도 없고, 불보살도 없고 한다면 마음대로 살아야지요. ‘마음껏 살아라 하는 것’이 선(善)이지요. 선(善)의 가르침이지요.

 

이렇게 되면 안 됩니다. 현재의 불교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불교 집안, 승속(僧俗)간에 죽어서 어디로 가는 가를 보니까 대부분 삼악도로 떨어지더라 그거예요. 이거 안 됩니다. 즐거웠다가 금방 또 괴로움으로 바뀌어 지는 것(바뀌어 돌아가는 것), 이것이 윤회라고 한답니다. 지금 이런 실정입니다. 큰스님들이 다니면서 이렇게 포교를 해요. 여러분, 이건 대망어입니다. 법을 모독하고 능멸한 이야기인 거예요. 이것은 큰 죄인 거예요. 오역죄보다도 더 무서운 죄인 거예요. 지금 이걸 알아야 되요. 세상이 이렇게 되어서 모두(冒頭)에 스님이 여러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소위 ‘전생, 육도, 윤회, 이것은 불교의 가르침이 아니고 힌두교에서 주장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거든요. 힌두교에서 주장한다는 이 부분은 맞아요. 그런데 왜 불교에서 주장하지 않았어요? 부처님이 왜 주장하지 않았어요? 부처님은 이 우주 이치를 보다 깊이 들어가 봤어요. 그래서 중생이 업을 지어서 육도를 윤회전생(輪廻轉生)하는 것을 보셨어요. 성자의 법을 따라서 법답게 잘사는 사람은 윤회를 벗어나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 아라한도 되고, 보살도 되고, 붓다가 되는 것까지도 부처님께서는 보셨습니다. 그래서 경전 곳곳에, 방등대승경전인《아함경》부터 곳곳에 지옥을 말씀하시고, 극락을 말씀하셨어요. 왜 안했어? 힌두교를 따랐다고?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힌두교보다도 훨씬 깊이 보셨습니다. 이것을 말씀드립니다.


이제 계율(戒律)에 대해서 쭈~욱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사람 몸 받기 어렵습니다. 인신난득(人身難得)이라고 합니다. 사람 몸 받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사람 몸 받아 와서도 불법(佛法)만나기 어렵습니다.  불법난봉(佛法難逢)입니다. 불법(佛法)만나기 어렵습니다. 불법(佛法)을 만나야 구원을 받습니다. 구제가 됩니다 여러분. 그런데 이 불법(佛法)이 지금 현재 이렇게 망가졌어. 스님이 가끔 말씀을 드리지만, 수적으로는 불교도 숫자를 3억, 5억 그래. 그런데 우리 영산불교 신도 분들 처럼 알차게 믿는 가?

 

아니어. 그런 포교사들, 그런 큰스님들의 법문에 그저 적당히 살면 되는 구나. 그저 적당히 살고, 우리 남편 잘되고, 자식 잘되고, 적당하게 즐기면서 살아야 된다 하는 생각으로 살다가 보니까 지나친 업도 짓고 해서 악도에 간다고요.

 

부처님께 계(戒)를 받으면서 ‘확실히 지키겠습니다’하고 약속을 한 스님들은 무섭습니다. 스님들이 부처님께 약속한 바는 죽을 때까지 책임지고 가야 됩니다. 부처님께 한 말(약속)은 대단히 무섭습니다. 내가 10여 년 전에 우리 도반, 포교사나 종단의 지도층 스님들끼리 앉아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아! 이 불교가, 이 승단이 너무도 문제다. 계(戒)를 지키는 사람이 없다. 계(戒)를 지키는 사람이 없다.

 

오계(五戒)를 반듯하게 지키는 사람이 하나 둘 셋 될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요, 저 서구의 일신교, 인도 쪽의 대단한 철학사상을 지닌 힌두교라든지 자이나교의 계명 수(계목 수)는 다섯 가지 내지 열 가지를 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불교의 계목(계본)이나 율장(律藏), 저기 남전(南傳) 팔리어 율장(실론, 태국, 미얀마 쪽으로 흘러간 불교의 율장)을 보면 비구는 227계, 비구니는 311계의 계목이 나옵니다. 이것을 지키라는 것이 나옵니다.

 

다섯 가지, 열 가지가 아니라 227가지와 311가지를 지키라고 말입니다. 또 북전(北傳), 저기 티베트, 중국, 한국, 일본 쪽으로 포교해서 우리 불법(佛法)이 전해졌잖아요. 그 북전율장(北傳律藏)이 오부율(五部律 : 불교교단의 기강 확립과 불교도들의 본분 유지를 위해 필요한 여러 부(일종의 종파)의 계율을 한데 모은 것을 율장이라고 한다. 그 중 유명한 다섯 가지 율장을 오부율(五部律)이라고 한다. 오부율은 대중부의《마하승기율》, 법장부의《사분율》, 유부의《십송율》, 화지부의 오분율》, 음광부의《해탈율》을 말한다. 이 중《해탈율》은 전하지 않아 나머지 율만을 모아 사대광률(四大廣律)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백제 성왕대에 백제승(百濟僧) 겸익(謙益)이 인도에까지 가서 범어(梵語)를 연구하고 오부율(五部律)의 범어 경(梵語 經)을 가지고 와서 번역하여 율부(律部)72권을 펴내고 백제 율종(律宗)을 성립시켰다)이라고 해서 다섯 개가 있는데, 그 사분율만 보더라도 비구는 250개, 비구니는 348개를 지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질과 양에 있어서 다른 종교는 불교에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잖습니까? 또 율장에 있는 것은 놔두고, 기타 여러 경전에 쓰여 있는 계(戒)가 있습니다.《범망경(梵網經)》에 보살계(대승보살계)가 있지요. 그건 십중대계와 48경계, 그러니까 58계를 말해요. 58가지를 또 지키라고 되어 있어. 보살이 되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지켜야 돼. 그리고 재가불자들한테 준 계율이 있어요. 삼귀 오계 대승십선계가 있어. 거기에다가《화엄경》이나《해심밀경(解深密經)》을 보면 삼취정계(三聚淨戒)라고 있어. 삼취정계의(三聚淨戒儀)란

 

▸첫 번째, 섭률의계(攝律儀戒)입니다. 모든 계를 지켜라 그거요.

 

▸두 번째, 섭선법계(攝善法戒)입니다. 착한 일은 전부해라. 착한 일은 부지런히 해라.

 

▸세 번째, 섭중생계(攝衆生戒)입니다. 불쌍한 저 중생들, 한 사람이라도 힘이 닿는 데까지 건져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삼취정계(三聚淨戒)를 호지(護持)하도록 원하십니다. 우리 현지사에서는 우리 출가승들에게 삼취정계(三聚淨戒)를 줍니다. 그러니까 오계가 문제가 아니라 수 백 가지입니다. 우리 신도 분들한테는 삼귀 오계 십선을 지키도록 합니다. 거기에다가 플러스 보살계를 지켜야 돼. 항상 공부하고 보살계까지 받아서 지켜야 돼. 거기에다가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4가지 계를 더욱 지키도록 합니다. 율장에도 없는, 그러니까 북전오부율(北傳五部律)이나 남전팔리어율에도 없는, 또 보살계에도 없는, 또 재가승들에게 준 계율에도 없는, 계목에도 없는, 2600년 전이기 때문에 시대가 다르다 보니 어떤 게 빠졌느냐?

 

▸흡연이 빠져있습니다. 담배 먹는 것. 담배 먹는 것은 율장에 없으니까 먹어도 괜찮다 해서 먹어요. 저기 남전(남방) 쪽의 스님들, 담배 먹는 분들이 많은데 먹으면 안 됩니다.

 

▸아편하지 말라.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아편하지 말라 한다고. 율장, 보살계목에도 아편 말이 없어.

 

▸도박(돈을 걸고 내기 하는 것)을 하지 말라. 화투, 투전, 당구, 요즘은 골프까지 돈을 걸고 한다 그래요. 그런 것 하면 안 되는 거요. 도박을 해서는 안 됩니다.

 

▸동성연애가 빠져 있습니다. 모든 율장(율목), 소승 대승 보살계목을 훑어봐도 동성연애라는 말이 없어. 그런데 우리 부처님께서는 그걸 강조하시거든.


우리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는 부처님 교단이라고 했지요. 그 말은 삼계지존 석가모니부처님을 비롯해서 기라성 같은 부처님들이 와계신다 그 말이어요. 그 부처님은 법신불도 아니고, 화신불도 아닌 보신불(중심불)이어요. 눈 코 입이 다 달렸어. 너무나 거룩해. 앞에서 말씀드렸잖아요. 여러분, 부처님을 내가 그려놨으니까 테이프를 구입해가지고 여러 번 들어보세요. 제자의 약점을 너무도 잘 아시기도 해서 지적도 하십니다.

 

잘못한 것은 불벼락이 떨어집니다. 공부한 정도에 따라서는 법계(법위)를 인가해 주십니다. 그리고 삼매로 이끄시고, 업장도 씻어주시며, 병을 낫게 해주십니다. 이러한 부처님, 이게 중심(진짜) 부처님이어요. 법신 보신 화신할 때의 보신불이어요. 우리 영산불교는 보신부처님이 계신단 말이어요. 그래서 부처님회상이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겁에 하나 이러한 교단이 이 사바세계에 있게 된다 그거예요. 겁에 하나 붓다가 나오니까 그렇단 말입니다. 그 제자를 붓다 만들어 데려가기 위해서 와계신단 말이에요.

 

이 나라만 해도 문수보살님의 주처가 저기 강원도 오대산, 오대산을 그렇게 말하지요. 관세음보살님의 주처는 남해 보리암, 낙산사 홍련암, 강화 보문사라고 하지요. 또 지장보살님의 주처는 어디죠? 전라북도 도솔암, 강원도 심원사라고 하지요. 약사여래부처님의 주처는 어디라고 보는지 아십니까? 저기 대구 팔공산 허공에 있는 갓바위 절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여러분, 이 모든 부처님들이 전부 우리 현지궁 현지사에 계셔요.

 

그래서 큰스님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책을 낸 것이《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Ⅱ》권입니다. 그리고 법문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저 사람들이 처음에는 영산불교 현지사에 대해 아주 그냥  말도 못하게 텃세를 부렸어. 텃세가 무서웠어. 지금은 영산불교 현지사를 많이 주목하지요. 지금은 아무 소리를 못합니다.

 

몇 달 전에 신문 한 면에다가 우리의 사상을 광고했지요. 또 양면을 인터뷰 했잖아요. 수준이 상당히 높습니다. 그 아무도, 학승도, 큰스님도 아무 말 못합니다. 그 사람들이 대답할 수 없지요. 무아(無我)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어떻게 대답합니까?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형이상적 실체요, 윤회의 주체(主體)요, 본체(本體)요, 기체(基體)인데.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볼 수 없기 때문에 엉뚱하게 무아(無我)를 해석해가지고 불교를 그냥 망쳐버린 거예요. 여러분, 대단히 심각한 이야기입니다. 이 무아(無我), 무아설(無我說)의 진리를 알아야 되요.

 

우리 영산불교 현지궁의 무아(無我)에 대한 견해를(시각을) 배워 알아야 됩니다. 이 무아(無我)의 잘못된 해석 때문에 ‘이 불교는 종교도 아니고, 이건 아니다’ 해가지고 아쇼카대왕께서 전인도를 통일하면서 불교화 했던 그 황금 밭 인도 땅을 잃어버렸습니다. 인도에서 쫓겨나버린 거예요. 이 위대한 불교가 완전히 소멸되어 버렸어. 이거 그럴 수가 없는 거예요. 역사상 그럴 수가 없어. 이 무아(無我)가 잘못 전해져가지고 부처님 말씀이 왜곡 되어버렸어. 그래서 불교가 망해버린 거예요.


당초 부처님께서 모든 사람을 살펴보니까 이 몸뚱이를 자기의 것으로 착각을 해. 이 몸, 이 생각을 진짜 자기로 봐. 이건 내가 아닌데, 이건(이 몸뚱이는) 내 것이 아닙니다. 이 몸뚱이는 분명히 가짜입니다. 이 생각도 가짜예요. 그런데 모든 사람들(중생들)은 진짜 자기로 보거든. 여기에 집착을 해가지고 탐진치 번뇌가 일어나서 업을 지어. 그래서 그것을 막아주기 위해서 무아(無我)를 말씀했던 것입니다. 그것은(몸뚱이는) 내가 아니다 그거요.

 

너희들이 생각하는 이 몸뚱이, 이 생각은 진짜 내가 아니고, 너의 것도 아니다 그것이어. 한발 더 나아가서 “나(我)라는 것은 없다”해버린 거예요. 이건 방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우주만법은 인연생기(因緣生起)한 것들이기 때문에 인연이 흩어져버리면 공(空)으로 돌아가. 그런데 이 사람을 포함한 유정은 안 그래. 사람, 유정은 달라. 이제 공부를 많이 해서 보니까 몸속에 들어와 있는 형이상적인 실체가 있어. 그것이(형이상적 실체인 영혼체) 윤회의 주체가 되어 있어. 그것이 윤회의 주체다 그거요. 주체가(主體), 본체가(本體), 기체가(基體) 없이 윤회를 못하는 거예요.

 

원판(본판)이 있어야 돼. 사진을 딱 찍어가지고 이것을 현상하면 100개 1,000개가 나오잖아요. 원판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원판(본체) 없이 어떻게 윤회를 해. 이건 아닌 거예요. 그래서 영혼체 이야기를 조금씩 했던 거예요. 이제 ‘영혼체가 윤회의 주체다’하고 나온 거예요. 그러니까 불교계에서 심상치 않게 생각하지요. 맞는 것 같지요. 조금도 모순이 없어요. 흠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말을 못하는 거예요. 여기서는(현지사에서는) 보고 말하고, 저기서는 보지 못했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  반론할 수가 없는 거예요. 내 이 말이 얼마나 자신 있으면 여기서 이런 말을 합니까 여러분!


진짜 불법(佛法) 만나기는 어렵습니다.

차신불향금생도(此身不向今生度)하면, 갱대하생도차신(更待何生度此身)이리요. ‘내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못하면, 언제 이 몸을 제도하리오’ 라는 말이어요. 부처님 교단을 만나면 이 몸을 제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스님이 항상 강조하잖아요.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현지사에서 벌써 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 아라한 이상이 30여 명 나왔습니다. 이건 엄청난 이야기입니다. 무루대아라한 하나 출세, 이 세상에 한 50년 만에 하나 나올까? 자기의 힘으로는 거의 안 되게 되어있습니다. 부처님의 가피 아니면 안 됩니다.


다시 계율(戒律)로 들어갑니다. 그 많은 계목(戒目)이 있는데 반듯하게 지키는 사람이 거의 없지요. 오계도 지키는 사람이 하나 둘 셋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어느 포교사가 조계사 법회에서 법문할 때 그 말을 한 거예요. ‘우리 종단은 큰일났다. 오계를 지키는 스님이 거의 없어’라고 말해버렸습니다. 그래버리니까 이 말이 술렁거려가지고 문제가 되었었지요. 그러나 그 말이 맞기 때문에 아무 말도 못해버린 거예요. 이렇게 되면 불교는 망합니다.

 

부처님의 가피가 올 수가 없습니다. 계율이 없으면 부처님께서 가피를 주지 않습니다. 계율이 없으면 절대로 가피가 내려가지 않습니다. 가피가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 사람의 미래는 안 보이지요. 그 교단은 안 되는 거예요. 망하는 거예요. 불교는 망할 수 없습니다. 우주의 진리인데 망해서는 안 되지요. 이거 다시 살려야 됩니다. 여러분! 이 기치를 들고 일어난 것이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입니다. 불교 계율의 본질적인 성격이 있습니다. 우리 부처님은 우주의 진리와, 우주 자체와 하나가 되어버리신 거예요. 하나가 되셨어요. 이걸 법신불이라고 해요. 우주적인 입장에서 “아! 중생들이 이렇게 이렇게 사니까 지옥을 가고, 천국을 가고, 윤회를 벗어나고, 보살이 되는 구나”하는 것을 잘 아시기 때문에 계율을 설한 거예요.

 

계율이라는 계(戒)자는 범어로 ‘실라(SILA)’라고 합니다. 방비지악(防非止惡)이라는 말이 있어요. 죄나 악을 더 이상 짓지 말라 그거예요. 방지해준다 그거요. 율(律)은 불교 교단의 규율(법률)이어요. 그러니까 계율이라는 것은 우리 불교도가 지켜서 죄악을 더 이상 짓지 않고, 부처님 말씀대로 여법하게 살 수 있도록 제정하신 규율(법률)이어요. 이건 지켜야 되는 거요. 지켜야 돼. 비구250계, 비구니311계, 100가지의 중학법(衆學法)이 있어요.

 

칠취(七聚)중에서 마지막 계율인데, 오늘날 우리 스님들이 그걸 보면 ‘이거 너무도 하찮은 것 아니냐’하지만 아니어요. 그것을 꼭 배워서 몸에 배이게 해야 돼. 그 100가지가 위의(威儀)를 말씀해 놓은 것인데, 성자로 갈수록 위의(威儀)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위의(威儀)가 서야 돼. 그래서 부처님 정도 되면 삼천위의 팔만세행(三千威儀 八萬細行) 이어요. 나는 그 계율 모두가 부처님 말씀으로서 존중히 여법하게 지켜야 할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계율은 우주법칙입니다. 오계 십선, 이것이 모든 계법의 근간입니다. 오계(五戒)는 우주법칙이어요. 이 오계(五戒)가 우주법칙인지 아닌지를 봅시다. 다른 종교인 일신교, 그건 우주법칙이 아닙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계(五戒)중에서,

 

▸‘사람을 죽이지 말라’ 그랬거든요. 이것은 불살생(不殺生)이어요.

여러분, 누가 칼을 들고 와서 '묻지마 살인범'처럼 죽인다고 하면, 그 단란하고 평화로운 가정을 이루고 잘사는데, 어떤 살인범이 들어와서 이유 불문하고 찔러 죽이면 그거 어떻게 됩니까? 남은 아들딸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건 과보가 무섭습니다. 죽이면 어떻게 되지요? 분명히 영혼체가 있기 때문에 그 정보가 영혼체에 반드시 들어갑니다. 그대로 그대로 들어갑니다. 말(言) 행동 생각, 신구의(身口意) 삼업이 그대로 그 영혼체로 흘러들어간다는 거예요. 그것이 맞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은 사람의 그 영혼체가 알아. 그래서 기어이 복수할 날을 기다리는 거예요. 이건 무섭습니다.

 

오늘 시간이 있으면 많은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은데, 이 계율에 대해서는 몇 날 몇 일을 해도 부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님 말씀을 하나도 빠짐없이 마음에 꼭 새기십시오. 가면 오는 거예요. 콩을 심으면 꼭 콩이 나는 거예요. 팥이 안 나와. 팥을 심어야 팥이 나오는 거예요. 뺨을 한 대 때리면 ‘아이구! 고맙소’할 사람 없어. 주먹뺨이 들어와. 이게 이치입니다. 이게 우주의 이법이어요. 이것을 인과법(因果法)이라고 해. 그렇기 때문에 살생계(살인계)를 첫 번째로 하신 거예요. 사람 목숨보다 더 귀중한 것이 있습니까? 나에게 있어서도 가장 귀중한 것이 목숨 아닙니까? 돈(재물)은 그 다음이어요. 정조는 세 번째요. 명예는 네 번째이고요. 이건 상식이어.

 

▸두 번째 무서운 것은 재물을 뺏는 거예요. 피땀 흘려서 1,000만원을 모아 장롱에다가 넣어 놨는데 도둑놈이 가져가버렸어. 이거 죽을 일이야. 이거 용서 안 되는 거예요.

 

▸계율을 소중히 지키는 여스님(비구니)을 범했다? 이거 용서가 안 되는 거예요. 이걸 바라이죄라고 해.

 

▸또, 도를 이루어 가지고(도를 통해서) 나는 이미 성자의 반열에 올라간 사람인 양 행세를 하는 그 망어 죄는 큽니다. 우리나라에 지금도 있어요. 기껏 천마에 빙의되어 가지고 신통이나 좀 하고, 귀신도 좀 본다고 어떻게 어떻게 하면서 자기가 붓다인양 최고라고 하는 사람이 지금 있어. 이건 사바라이어. 이것은 사바라이죄예요.

 

이런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되느냐? 앞에서 업을 지으면 그 종자가 자기의 영혼체로 영혼체로 흘러 들어간다고 했지요. 시간이 흘러 큰스님이 보면, ‘아! 저 사람은 전생에 큰 죄를 지었구나’하는 것을 알아요. 그래서 지옥에 가서 지옥 벌을 받고, 어떻게 선근을 지었던지 왔단 말이에요. 보면 왔어도 있어요. 그 사람은 또 지옥에 갈 사람이야.


이름을 밝히지 않겠습니다. 우리 스님 중에 3년 동안 부처님 교단에 정말로 공을 세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저녁이면 자기도 모르게 악을 써. 소리를 지른다고요. 그러면서 목이 조금 기울어져 있어. 그리고 그저 뱀(구렁이) 꿈 생각을 많이 하고, 실제로 또 구렁이가 입 맞추는 꿈도 꾸는 등 그런 환상도 가끔 떠오르고 해. 그런데 겹겹이 벗기고 벗겼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불안(佛眼)이니까 보시고 알지요. 다 압니다. 보시고, 세 번인가 벗기고 벗기고 씻고 했는데 천여마리의 구렁이가 목을 감고 있어. 그런데 그 중에 한 마리가 입을 목 부위에 탁 대고 있었기 때문에 목이 약간 기울어져 있어. 이것을 이번에 처리했습니다. 이건 자력으로는 안 됩니다. 역사 이후로 처리해 줄 큰스님이 없어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이야기 거리가 많은데, 어쨌든 신구의 삼업으로 업을 짓게 되면 그 업의 종자가(업의 세력이) 영혼체로 흘러들어간다. 그래서 때가 되면 그것이 큰스님의 눈에 띈다. 붓다는 그 업이 들어간 것까지 아니까.

 

그래서 우리는 계율을 지켜야 되고, 계율을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계율을 가볍게 생각한다는 말은 함부로 업을 짓는다는 거예요. 함부로 업을 지으면 그렇게 되어요. 이러한 깊은 이치,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 신근(信根)있는 착한 신도 분들이 잘못 법문을 듣고, 그저 적당히 인생을 엔조이(enjoy)까지 해. 엔조이(enjoy)해도 좋다는 식으로 산다고. 이거 큰 일 날 생각이어. 계(戒)가 없고, 경전을 읽지 않고, 염불하지 않고, 삼매가 없으면 정법교단이라고도 할 수 없고, 불교의 지도자 자격이 없는 거요.

 

▸사자신중충(獅子身中蟲)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자는 여러 산짐승뿐만 아니라 동물의 왕이어요. 산중 동물의 왕이 사자입니다. 이 사자는 어찌나 무섭든지 다른 동물들이 살아 있는 사자는 물론이고, 죽어 있는 사자의 고기도 뜯어 먹지 못해. 너무 무서운 놈이라서 죽어 있어도 못 뜯어 먹어. 그게 사자야 사자. 그런데 사자가 신중충(身中蟲), 몸속에 벌레가 생겨 뜯어 먹혀 죽기도 하고, 죽은 후에 그 충이 다 갉아 먹는 거예요. 몸속에 생긴 조그마한 벌레가 그런단 말입니다. 이걸 사자신중충(獅子身中蟲)이라고 합니다.


이 불교 교단이 너무도 위대한 종교이기 때문에 모든 인류들이 다 불법을 듣고 구원 받아야 돼. 그렇기 때문에 우리 성직자는 책임감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성직자로서 부처님 앞에서 사미십계를 받고 비구250계를 받고, 비구니는 또 사미니 십계를 받고 식차마나니계를 받고 또 비구니계를 받았다면, 그 250계 311계 348계를 다 모른다고 하더라도 절반 이상은 알아야 돼. 그걸 지키려고 해야 돼. 그런데 다섯 가지도 못 지킨다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여러분. 다섯 가지도 못 지킨다고 하면 그 불교는요, 이건 말할 수 없어. 이건 망가져버렸어. 썩어버린 불교, 이거 문제예요. 이것은 큰일이어.

 

부처님 당시 포살자자(布薩自恣)가 있었습니다. 포살자자(布薩自恣),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이 좋은 제도를 그대로 살릴 겁니다. 설명은 나중에 하기로 하겠습니다.

 

▸파계한 스님들은 깨끗이 환계하고 속가로 가야 되요. 내 말이 틀립니까? 부처님 팔아서 살면 안 됩니다. 깨끗이 환계, 계를 받쳐야 되는 거예요. 받치고 속가로 가서 살아야 되는 거예요.

 

▸둘째, 그리 못한 스님들아! 우리 영산불교로 오라. 와서 부처님께 정말로 참회하고, 다겁생으로 지은 은혜와 빚은 조상님 천도재로 해서 갚고, 그리고 부처님 공양을 많이많이 해서 지은 죄업을 씻고, 그리고 부처님 교단에 귀의해서 부처님 공부 잘 하기 바란다 하는 것을 이 자리를 빌러 오늘 스님들한테 말씀을 올립니다.


죄 중에서 제일 무서운 죄가 불효 오역죄예요. 오늘 시간이 좀 부족해서 낱낱해설을 못합니다. 두 번째로 훼욕삼보(毁辱三寶)예요. 불법승 삼보를 훼손한 죄예요. 세 번째로 파어금계(破於禁戒)입니다.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계법, 이건 파계할 수 없어요. 그 다음, 국가의 법을 지켜야 되요. 이게 무서운 죄목입니다. 우리는 인륜과 도덕, 준법정신의 자세로 살아야 되지요. 인륜도덕을 존중하고, 나라의 법을 지키고 살아야 되요. 여기서 한걸음 아니 몇 걸음 더 나아가서 착하고 바르게 살아야 되요. 맑고 깨끗한(청정한) 삶을 살아야 되요. 불교는 그것을 요구합니다.


여러분한테 꼭 알려드릴 것이 있네요. 부처님 가신지 100년 쯤 되어서 우리 교단이 둘로 쪼개어집니다. 그 이유는 십사비법(十事非法)이라는 게 있어요. 또한 대천오사(大天五事)가 있어요. 이것도 다음 어느 시간에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 교단이 둘로 갈라집니다. “영산불교는 둘로 갈라지면(가르면) 안 된다”고 부처님께서 영산불교 교훈에다가 박아버렸어요. “누구를 막론하고 우리 교단을 둘로 분열시킨 책임자는 무간지옥에 넣으리라” 하고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셔요. 불행하게도 우리 교단은 둘로 나누어졌습니다. 이것이 100년 200년 흘러가지고 20개 부파로 나뉘어져 버렸어.

 

그런데 ‘십사가 비법이다’ 하고 인정을 한 장로 쪽에 나는 손을 들어줍니다. 십사라는 것이 아주 사소해요. ‘돈도 받지 마라’ 이렇게 되어 있어. ‘금은 돈은 만지지도 말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이거 참 엄청나지. 그런데 ‘이런 정도는 그냥 덮어 놓고 가자’ 한 것이 대중부예요. 그런데 상좌부는 ‘아니다! 부처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우리는 절대적으로 따라야 된다. 바꿀 수 없다’ 하는 것이 그때 가섭존자의 주장이었습니다.

 

이 광률, 율장을 보면 동서고금(東西古今), 시대와 장소가 다르기 때문에, 또 그 당시는 경제 환경이 열악했기 때문에 2600년 전 영산당시의 출가승려 비구 250계로 봐서 아무리 그런다하더라도 나는 그 계본이(계법이, 그 행동규범이) 옳았다고 봅니다. 지금의 21세기 경제문화의 선진국 입장에서 볼 때 맞지 않는 계율이 있어요. ‘때 아닌 때 밥 먹지 말라. 금은 돈을 만지지 말라...등등.’ 그러나 그것은 부처님께서 그 계목을 제정하신 취지를 봐야 돼. 합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중생은 다겁 생으로 죄업을 짓고 왔어요. 이 마음이 얼마나 원숭이처럼 교활한 줄 압니까? 이걸 묶어놔야 되는 거예요. 속박해야 되는 거예요. 틀에 짜는 데에다가 넣어서 이걸 몸에 배이도록 해줘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윤회를 벗어나게 되어 있어. 죄를 짓지 않게 되어 있어. 지금 악의 유혹이 얼마나 심합니까?

 

그래야 이길 수 있어. 그렇기 때문에 나는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그 모든 계법을 지지해야 된다고 봅니다. 지켜야 된다고 봅니다. 백중학법(百衆學法)을 보더라도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성자는 위의(威儀)를 갖춘 수행이 필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소속애 역시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우리 부처님께서 열반하실 때 “소속애는 버려라. 버려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부처님의 유계에는 “부처님 계시지 않은 세상에서는 글쎄 큰 계도 지키지 못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차라리 소속애 정도까지는 봐준다”고 하셨어요. 그러나 소속애까지도 ‘출가한 우리 승려들은 꼭 그 위의(威儀)도 배워서 몸에 배이도록 공부해야 되겠다’해서 우리는 열다섯 행동수칙을 인쇄해서 아침저녁으로 읽고 있습니다.


▸이《범망경》의 보살계, 보니까 빠져야할 계목(戒目)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언젠가 짚고 넘어가야할 줄 압니다만, 그 계목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계율이 아닙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말하는 것보다 덮어 두고 있다가 언젠가 지적하고 갈 것입니다.

 

▸또 아쇼카대왕이 전 인도를 통일하는 과정에서 부득이 야기된 수만에서 수십만의 인명 살상 건(件)이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잠시 언급합니다. 아쇼카대왕은 붓다의 후신입니다. 불교를 국교화 하고자 서원을 세워 어느 부처님이 몸 받아 오셨습니다. 그 대왕에 의해서(그 대왕으로부터) 희생된 수 만 명의 생명들은 지옥에서 온 사람들이거나, 그때 죽어야할 중생들이었습니다. 대왕의 대작불사에 희생양이 된 공덕도 있습니다. 이 정도만 말해줍니다.

 

▸구마라즙이 또 붓다의 후신입니다. 그런데 여인들과의 동거설이 있습니다. 큰 불사를 위해서 부득이한 삶은 부처님세계 안에서 양해된 사안이었습니다.

 

▸일본 진종(眞宗)의 개조 '진단', 13세기의 인물입니다. 그의 스승 '법연', 법연은 정토종의 개조이지요. 이분들 중의 한 분은 취첩을 했습니다. 이 부분도 살펴보니까 그 분은 불격(佛格)을 갖춘 최상수보살로 계시다가 오셨습니다. 염불하도록 일본 불자들을 교화하기 위해서 몸 받아 오셨습니다. 이러지 않고는, 그러니까 불보살이 아니고는 모두가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청정계율을 지켜야 하는 겁니다. 이유 없습니다. 절대 지켜야 됩니다.


지금 시간이 어떻게 되었나? 한 시간 넘었나? 이거 한마디도 빼면 안 되는데... 우리 신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꼭 삼귀 오계 십선을 지켜야 되요. 그리고 보살계를 앞으로 설할 것입니다. 보살계도 받으시고. 그래서 우리 모두 삼악도에 가지 않아야 되요. 그리고 윤회를 벗어나야 됩니다. 이때 못 벗어나면 안 됩니다. 모두가 다 저 극락세계에 가야 되요. 거기는 영원히 극락입니다. 불퇴전(不退轉)입니다. 꼭 그것을 당부 드립니다. 오늘 설법한 계율, 여러분에게 조금 수월하게 말씀드려야 되는데 이 방송은 녹화 중에 있습니다. 전국의 스님들이나 많은 신도들이 보기 때문에 이 계율에 대한 개요를 짚고 말씀을 한 것입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스님 따라서 염불하고 마치겠습니다.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고아일심귀명정례


여러 신도 분들! 스님이 말씀하신 것이 옳습니까, 어떻습니까? 옳지요? 終

 

 

 

작성자/허정(민병석)거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