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에서 삼매까지/칭명염불

칭명염불

불제자 2011. 12. 11. 00:03

 

 

 

 

 

 

 

자재 만현 큰스님 대전 법문중 발췌

 

 

 

칭명염불

 

 

 

이제 새해 신묘년입니다. 경인년도 다 가고 신묘년을 맞이했습니다.

금년 한해 우리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 우리 신도 분들은 정법이 무엇인지, 부처님은 어떤 어른이신지를 확실히 알고, 부처님 공부 잘하고, 그리고 선근공덕을 많이 짓는 해로 설계를 하십시오. 스님이 우리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는 부처님 교단이고, 정법회상이고 하는 것을 누누이 말씀드렸습니다. 기존 신도 분들은 잘 아시시만, 오늘 처음 오신 분도 있고 해서 우리 현지사 수행법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법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현지사 수행법은 부처님 입멸 후 2500년이 흐른 지금, 이제 진정한 정법으로서의 수행법입니다. 염불정법, 팔정도칭명염불법, 팔정도칭명염불선, 이것이 우리 현지사의 수행법입니다.

염불과 선(禪, 參禪)을 하나로 보는 어느 큰스님이 염불을 네(4)가지로 분류했습니다. 일일이 다 해설할 시간도 없고 대충 말씀드립니다.

▸실상염불(實相念佛: 실상(實相), 곧 진리를 관조하는 염불),

▸관상염불(觀像念佛: 부처님의 원만한 덕상(德像)을 관찰하면서 하는 염불),

▸관상염불(觀想念佛: 부처님의 무량공덕을 상념(想念)하면서 하는 염불),

▸칭명염불(稱名念佛: 부처님의 명호(名號)를 외우는 염불),

 

이렇게 네(4)가지로 분류한 바 있습니다. 지금 선불교(禪佛敎)에서는 염불을 많이 하는 신도 분들도 있고, 염불을 주장하는 스님도 있고 해서 염불선을 하고도 있습니다. 염불선이라는 것은 ‘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하고 많이 부르도록 합니다. 그런데 끝에 가서 ‘염불하는 요놈(이놈)이 뭣고?’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염불선입니다. 간화선(看話禪)과 하나도 다름없지요. 그렇게 권하고 있습니다.

 

저기 남방불교의 염불 위빠사나에서는 부처님이 실제로 계시는 것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상세계의 속성인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를 철견하는 수단(방편)으로,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도록 하는 방편으로 염불을 권합니다. 그 염불은 아미타부처님, 우리 석가모니부처님 등 그 부처님을 관(觀)하는 것입니다. 관(觀)하는 것이어요. 32상을 갖추고 십호(부처님의 열 가지 명호)를 생각하면서 관하는 것이어요. 부처님을 관(觀하)는 그런 염불입니다. 또 정토종(염불종)에서 하는 염불은, 다만 아미타불만을(나무아미타불만을) 하루에 만 번, 칠만 번 까지 계속 한 분도 있어요. 아미타불만, 나무아미타불만을 부르는 칭명염불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영산불교에서의 염불정법, 팔정도칭명염불은 어떻게 다르냐? 여러분들이 아셔야 됩니다.

▸첫째, 우리 염불은 선불교나, 남방불교에서 하는 염불과 다릅니다. 정토종에서 하는 염불과도 다릅니다. 어떻게 하느냐? 삼계의 지존이시고(영원한 삼계의 지존이시고), 남섬부주 대교주이시고, 영원한 우리의 스승인 우리 부처님, 부처님 경전이 있습니다. 그건《금강경》입니다.

 

―반드시《금강경》을 일독(一讀)하고,

 

―부처님 다라니(비로자나총귀진언)를 최소한 다섯 번을 하고,

그 후에(그 후입니다) 여기서부터 다르잖아요.

 

―그 후에 자기의 신분을 밝힙니다(부처님께 여쭙니다).

00사는(어디어디 사는), 00생(무슨 생), 000(아무개)입니다. 이렇게 밝히는 거예요.

 

―그리고 벽을 향해서 눈높이에 점을(마음의 점을) 찍고, 그 점에다가 두 눈을 아주 고착(固着)시켜 버립니다. 우리 영산불교의 염불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면서 과거 생에, 또 금생에 와서 지은 죄업(허물)을 참회하고, 부처님께 귀의 하는 거예요. 마음속으로 귀의를 합니다. 말로 해도 좋습니다. 귀의를 하고,

 

―그리고 그 한 점을 두 눈으로 따~악 관(觀)하면서(보면서) 입으로

'석가모니불'을 칭명합니다. '석가모니불'을 주~욱 칭명합니다.

 

―또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마음속으로 주인공으로(뜻으로)하여금 '금강반야바라밀'을 외우도록 합니다. 그러니까 입으로는 '석가모니불'을 소리 높여서 칭명하고, 생각으로는 '금강반야바라밀'을 하는데, 동시에 해야 됩니다. 이게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처음부터 그렇게 공부하지 말고, 마음속으로 '금강반야바라밀'하는 것은 생략을 하고, 일단 두 눈을 한 점에 고정해서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을 불러가다가 들뜬 마음이 가라앉고, 마음의 고요함이 오면 그때 '금강반야바라밀'을 하십시오. 입으로는 '석가모니불', 뜻으로는 '금강반야바라밀'을 동시에 합니다. 오래하다가 보면 됩니다. 입으로는 '석가모니불', 생각으로는 '금강반야바라밀'. 이건 마장(魔障)이 올 수 없는 대단히 좋은 진언입니다.

 

―그렇게 하다가 공부가 잘 되면, 이제 우리는 그랬습니다. 석굴암 불상, 그 석굴암 불상이 미간에서부터 빛을 방광하는 것을 관(觀)해야 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의 칭명염불 하는 방법이고, 부처님 공부입니다. 여러분, 이걸 많이 해야 됩니다. 공덕은 말할 수 없어요. 공덕이야 말할 수 없어. 이 공부를 해야 돼.


스님이 가끔《열반경》이야기를 하지만,《열반경》에서도 그렇습니다. 지금까지의 공부법(공부, 가르침)은 반쪽글자(半字)이다. 반쪽글자(半字), 글자가 반(半)쪽이다. 이제 3000년 후에 부처님께서 오셔서, 이 말을 이해해야 됩니다. 3000년 후에 동방의 조용한 아침의 나라(대한민국)에 오셔서, 이제 진짜글자(온전한 글자, 滿字)인 참 진리를 말씀하시게 되는데, 바로 지금이 올 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수행법과 조금 다르지요.

 

우리 영산불교의 수행법은 염불정법(念佛正法), 팔정도칭명염불(八正道稱名念佛)이 올 시다. 좀 더 부연하자면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아야 된다’ 그럽니다.

우리는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아야 돼. 깨끗하게 산다는 것은 더 이상의 업을 짓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더 이상의 몹쓸 짓을 하지 말고, 이제는 정직하고 깨끗하게 십선도(十善道)를 수행하면서 불쌍한 이웃(착한 이웃)을 보살필 줄 알아야 됩니다. 공덕이 있어야 됩니다. 우리는 좋은 일을 정말 많이많이 해야 됩니다. 이게 보살행이어요.

 

불쌍한 이웃을, 그 이웃이 대단히 착해. 그런데 너무너무도 불쌍해. 그런 이웃이 있으면 지나치면 안 됩니다. 지나치면 우리 부처님제자가 아닙니다. 이게 보살행(보살심)입니다. 그러면서 큰 공덕을 지어야 됩니다. 3000년 만에 부처님의 정법이 이제 이 세상에 나와서 많이 퍼지고 있습니다. 이때에 부처님의 교단을 위해서 큰 공덕을 지어야 되요. 선근공덕을 지어야 되요. 여러분, 이것이 사는 길입니다. 이게 사는 길이어요.


누구라고 거명은 안 합니다. 어떤 큰스님이 돌아가셨어요.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는 한 시간도 내 공부를 한 적이 없느니라. 말만...” 그 이후는 생략합니다.

여러분, 부처님 공부를 해야 됩니다. 부처님 공부를 해야 돼. 이유가 있습니다. 왜 해야 되느냐?

▸부처님은, 불과(佛果)를 이루신 모든 붓다님들은 무아속 절대계에 여여히 계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모든 붓다들은 중생 사랑하기를 사람들이 자식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그 붓다들은 능력이 무한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불교는 부처님이 어떤 분인 줄 몰랐습니다. 부처님이 계신지, 계시지 않는지 까지도 몰랐습니다. 우리 영산불교 현지사에서는 여러분들에게 깊이깊이 이야기 해 주잖아요. 염불을 하려면 부처님이 어떤 어르신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깊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그렇지 못하고) 염불하는 것은 길게 가지 못하고 진짜 염불이 안 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지금까지의 불교, 불교학자들은 부처님의 위신력을 몰랐습니다. ‘부처님은 길을 가리켜주는 안내자 이상은 아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잘 들어야 됩니다. 그것은 망어(妄語)입니다. 부처님을 친히 뵙고, 법문을 듣고, 항상 함께하기를 10여년 한 영산불교 큰스님 법문을 꼭 마음에 새겨야 됩니다. 마음속으로 새겨야 됩니다 여러분.


또, 거명을 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갑작스럽게 큰 병을 얻었습니다. 이제 생명에 자신이 없습니다. 우리한테 살려달라고 원조 요청이 옵니다. 우리 광명 만덕님하고 그랬습니다. ‘그 사람이 무슨 선근 공덕이 있다고. 그 사람을 살리려면 적어도 약사부처님께서 나서야 되는데, 또 약사궁의 특별기 두 대는 내려와야 되는데, 무슨 선근 공덕이 있다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스님의 말에 깊은 뜻이 있습니다. 선근 공덕을 지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팔정도칭명염불만 해서도 부족합니다. 보살행 중에서도 최고의 보살행이라고 하는 부처님 교단을 위해서 큰 공덕을 지어야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금생도 살고, 다음 생도 삽니다. 금생도 살고 다음 생도 삽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그 사람은 내가 살릴 것이니라. 그 사람은 2500년 전에 오백 결집에 참석한 사람이다.”

오백 결집에 참석했다는 말은 부처님 제자가 대단히 수행도 잘하고, 정말 나무랄 데 없이 인격이 갖추어진(자질이 갖추어진) 1,250명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지금 교학에서 말하고 있는 1,250명하고 좀 다릅니다. 부처님 회상에 출가해서 수행하다가 나가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많았어요. 끝까지 부처님을 따르고,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한 생을 마친 참한 불자들 1,250명이 있었습니다. 이분들 중에서 500명을 가려서 '가섭과 아난'이 1차《아함경》결집을 합니다. 아시죠? 그것을 오백 결집이라고 합니다. 그 사람이 오백 결집에 참석한 비구야. 그러므로 “나는 그를 살릴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명은 않습니다.


우리 현지사 수행법인 '팔정도칭명염불', 팔정도(八正道)란 무슨 말이냐? 앞에서 해석을 했는데 ‘정직하고 깨끗이 살면서’, 이렇게 우선 이해하면 됩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기 때문에 오늘 자세히는 해석을 않습니다. 깨끗하게 살아야 돼. 업을 짓지 않는다 그거예요. 십악(十惡)을 짓지 않고, 오역 십악죄(五逆 十惡罪)를 짓지 않고, 십선(十善, 十善道)으로 살아간다. 깨끗이 산다. 또 정직하다. ‘정직하고 깨끗이 살면서 칭명염불을 해라’ 그거예요. 칭명염불을 해라. 그 칭명염불은 중요하기 때문에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영산불교의 칭명염불은,

저기 남방불교의 염불 위빠사나 하고도 다르고, 선불교(禪佛敎)에서 이야기하는 염불선과도 다르고, 정토종에서 이야기하는 그저 '나무아미타불'만 하는 그런 수행법도 아닙니다. 영산불교의 칭명염불은 무엇이 다르냐?

- 반드시《금강경》을 1독(一讀)하고,

-부처님 다라니(비로자나총귀진언)를 최소한 5회 이상 독송하고,

-그 다음에 단정히 앉아 벽을 향해 눈높이에 점(마음의 점) 하나를 찍어서 두 눈을 거기에다가 매달아 버려라.

-그리고 공부하기 전에(중간에도 좋습니다) 자기의 소속을 밝혀라.

00사는(어디 어디 사는) 00생(무슨 생) 000(누구누구, 성명 혹은 불명)입니다 하고서,

-지난날(과거 생이나 금생)에 지었던 몹쓸 죄업을 참회하고, 거룩하신 부처님께(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歸依)한다고 하고, 발원(發願)을 해라.

 

발원(發願) 아시죠? 여러분, 발원이 세간 욕심이 들어가면 안 됩니다. 순수해야 됩니다. 어떻게 하느냐? 발원을 하라고 했는데, 어떤 사람은 스님의 가르침을 이해 못하고 ‘우리 남편이 내일 무슨 입찰을 하는데 꼭 입찰(낙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세간적인 원(願)은 발원이 아닙니다. 사실 진정한 발원이 아닙니다.

 

진정한 발원은 여러분이 다겁 생으로 내려오면서 지은 업장을 참회하고, 그래서 그 업장이 소멸되기를 바라야 되고, 또 다겁 생으로 내려오면서 못 갚은 은혜(갚지 못한 빚), 그러한 것을 갚도록 능력을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업장을 벗겨주소서, 소멸해 주소서. 이 못난 000의 과거 생의 업장을 벗겨 주소서 부처님.’ 이게 훌륭한 발원이어요.

 

또 많이 공부한 사람들은 ‘부처님! 이 사람은 다음 생에도 붓다 회상을 꼭 만나 출가해서 기어이 생사를 해결하겠습니다(윤회를 벗어나겠습니다 그말이어요)’라고 발원합니다. 윤회를 완전히 벗어난다는 것을 영산불교에서 뭐라고 했지요? 삼계를 탈출해서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것을 발원하십시오. 이것이 큰 발원입니다.

 

여러분, 금생만 있는 것이 아니어요. 금생만 있다고 하면 발원할 때, 우리 남편 낙찰해야 되고, 우리 자식 이번에 서울대학교 합격해야 되고...어찌 해야 되고 해야지요. 그런 발원을 해야지.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여러분이 꼭 해결해야 될 근본적인(기본적인) 것이 두 가지가 있어요. 여러 생을 살아오면서 지은 지중한 죄업, 지은 죄업의 업장소멸, 이 업장소멸은 그 누구도 안 돼. 지금까지 2500년 불교에서는 정업(定業)이라고 했어요. 업이 딱 정해져 버리면 그건 받게 되어 있어. 그건 맞아. 업의 종자는 썪지 않습니다. 영원히 죽을 수가 없어. 업의 종자는 멸(滅)할 수가 없는 거예요. 업을 지어 놓으면 반드시 그 과보가 오게 되어 있어. 이게 소위 '카르마 법칙'이라는 거예요. 업의 법칙이라는 거예요. 맞는 말이어요.


2500년의 가르침은 그렇고, 이제는 뭐냐? 부처님이 절대계에 계셔. 자비와 지혜와 복덕과 항하사의 모든 신통과 위신력을 지니신 우리 부처님이 계셔. 여러분이 부르면 곧 달려오시는 그 자비스러운 부처님이 계셔. 그렇기 때문에 그 부처님의 가피(위신력)를 의지해서 이 업장이 소멸되기를 여러분들은 발원을 해야 돼. 부처님께서는 업장을 소멸해 줄 수가 있어요. 업장을 소멸해 줄 수 있습니다. 이런 부처님의 능력을 지금까지 몰랐어요. 위빠사나 염불, 위빠사나도 몰랐고, 저쪽 티베트 밀교도 모르고, 선불교도 몰라. 부처님, 불과(佛果)를 증한 부처님이 어디로 갔는지 몰라. 어디로 갔는지 조차도 몰라. 그러니 부처님의 위신력을 어찌 압니까?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너무도 잘 알아. 모든 부처님의 법신불이 소위 부처님의 비로자나불(청정법신비로자나불)이어요. 그 비로자나 부처님의 위신력은 우주적이라고 표현해도 못 미쳐. 우주와 온 법계의 능력을 구사할 수가 있어요. 그걸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확실히 알아.

 

이제 팔정도칭명염불법을 아시겠지요. 오늘 처음 오신 분을 위해서 스님이 두 번 정도 여러분한테 말씀드린 거예요. 이것이 정말 부처님의 공부입니다. 이 공부를 하루에 한 시간씩 정도만 해주었으면 좋겠어. 여러분, 1시간 정도만 해주면 좋겠어요.

 

앞에서도 부처님 말씀을 간단히 소개 했지요. “그 사람, 내 공부를 한 적이 없느니라.” 그런데 들어보면 우리 현지사 신도 분들은 석가모니불 공부를 잘 해. 잘 하지.《금강경》도 잘 읽고. 부처님 다라니도 잘하고. 그렇지만 아쉬운 것은 이제 두 날개가 갖춰져야 돼. 공부도 있고, 그리고 선근 공덕(보살행)이 있는 거예요. 이것을 여러분이 유념해가지고 선근 공덕을 짓도록 해야 돼.

 

선근 공덕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죽을병이 와가지고 우리한테 요청하지 말고요. 공덕이 없으면 그 사람을 살려 낼 수가 없는 거예요. 그 공덕도 큰 공덕을 지어라 그거요. 꼭 돈만 있어가지고 짓는 것이 아니어요. 돈이 전혀 없어도 우리 영산불교를 위해서 정말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헌신적으로 포교에 임하는 분들이 있잖아요. 우리 눈에 한 두 사람이 띄어. 그 사람은 구제 되는 거예요. 그 사람은 왕생극락 하는 거예요. 선근 공덕을 지어야 돼. 아셨지요?

 

출처/현지궁 현지사 자재만현큰스님 2011.2.6일 일요일 정기법문중 발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