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불교냐?
지금부터 1400년~1600년 전, 1400년 전으로 올라갑니다. 중국의 최고 지성인들이 불법을 구하려고 인도를 갑니다. 지금부터 약1500년 전이라고 합시다.
1500년 전, 법을 구하기 위해서 중국에서 인도를 갑니다. 그 당시 인도 이름은 천축이었습니다. 이분들이 지적인 수준은 대단한 분들이었습니다. 그 당시 유교, 도교가 중국을 먹었지만 그 가르침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도교는 장생불사하는 종교입니다.
오래사는 것을 보람으로 알고 그 공부를 하는 교가 도교입니다. 우리 불교는 오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오래 사는 것이 아니고, 불교는 죽지 않는 법입니다. 죽지 않는 법을 구하기 위해서 대단히 고생도 많이 한 삼장법사를 소개 합니다.
'법현' 입니다. 법현이라고 하는 삼장법사가 동료를 이끌고 그 속에 '혜외' 스님도 들어가 있지요. 대단히 계율이 엄정한 큰스님입니다. 내 책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에도 나오지요. 그 일행이 도보로 갑니다. 이제 중국에서 인도로 들어가는 거요. 그런데 중국에서 인도로 갈 때는, 인도로 가는 길은 1500년 전이고 히말라야산맥과 사막이 가로막혀 있지요.
우리나라보다도 더 넓은 사막이요. 그러니까 빙 돌아가야 돼요. 돌아가야 되니까 인도의 우리부처님 나라까지 가려면 3만리 정도입니다. 3만리. 여러분! 이 이야기는 아마 처음일 것이고 꼭 들어야 됩니다. 3만리라고 하는 그 먼 길이 평탄하지 않습니다. 1500년 전이니까 길이 없었어.
여러분! 500년 전만 해도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요. 500년 전만 해도 부산에서 서울까지는 천리 길, 한 달 걸려야 돼. 다행히도 이 나라는 그 당시에도 인구가 상당해 가지고 이 마을에서 저 마을, 이렇게 길이 있고 해서 길 없는 곳만 어떻게 들어가면 돼. 서울 갈 수가 있어. 그러나 중국 낙양이나 장안에서 저 우리 부처님 고향 쪽으로 가려면 3만리도 더 되는 머나먼 길인데 3년이 걸려. 지금 1500년 전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3년이 걸리기 때문에 법을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딱 바치고 가는 거요. 부처님이 가신지 약1000년 만에 입소문으로 우리 부처님의 위대한 것이 많이 소문이 나갔어요. 부처님이 가신지 약1000년 되었으니까. 그래서 너무너무도 그 부처님의 위대하고 거룩하신 그 지성과, 인품과, 도의 깊이가 중국에까지 소문이 퍼져가지고 이제 그러한 구법승들이 나온 거요.
나는죽어도 좋다. 죽지 않는 법을 나는 얻어야 되겠다. 알아야 되겠다 그거요. 그때 죽지 않는 법이 있었어요. 힌두교도 삼매에 들기 위해서 범행(梵行)을 하고, 범행이라는 것은 청정한 행을 말해요. 범행을 하고 삼매에 들어서 범천에 나는, 그러면 영원히 산다고 하는 그 가르침도 있어요. 그 대단한 힌두교에서도 그 가르침이 있어.
그러나 힌두교를 구하려고 간 사람은 없어. 우리 불법을 구하기 위해서 이제 너도 나도 갔다고요. 그리고 더더구나 기독교라든지 이슬람교의 교리를, 그 진리를 얻기 위해서 간 사람은 없어. 이런 측면에서 불교가 위대하다는 거요. 얼마나 고생을 했느냐? 이건 눈물 없으면 들을 수 없습니다.
법현! 이분이 지금부터 1600년 전 사람인데 천축(인도)을 다녀와서 쓴 기행문이어요. 우선 중앙아시아의 길도 없는 황무지를 가로 질렀는데 그 사하(沙河)에는
(사하, 사막. 사막이 어떻게 넓던지 '하(河)' 라고 했어. 우리나라보다도 더 넓으니까. 그 사막의 길을 어떻게 갔던가봐요. 길이 없으니까 왔다갔다 하다가...) 악귀와 열풍이 심해서,
(이 악귀가 있습니다. 여러분! 서유기(西遊記)알지요. 서유기 보신 바 있지요. 그게 상당히 맞습니다. 이 악귀들, 지금이나 그때나 이 악령들(악귀들)이 있습니다. 귀신도 종류가 많습니다. 그런데 악한 놈들이 있거든요. 그것들이 끼리끼리 모여 삽니다. 그래서 이 영역이 있어요. 악귀의 영역을 만약에 통과하다가 잠을 자게 되면 이거 죽는 거요. 자기 구역에 들어왔다고. 아마 서유기를 보면 그런 장면이 나올 거요. 사막이니까 악귀가 출현하고 열풍이 아주 심한 장면이.)
이를 만나면 모두 죽고 한사람도 살아남지 못한다. 하늘에는 나는 새도 없고 땅에는 달리는 짐승도 없다. 아무리 사방을 둘러봐도 망망해서 가야 할 길을 찾으려 해도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다.
오직 언젠가 이 길을 가다가 죽었는지 모르는 죽은 사람의 고골(뼈)만이 길을 가리켜 주는 이정표가 되어준다. 길은 험하고 울퉁불퉁한 산길이었으며(이제 산길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낭떠러지는 험준하기 짝이 없었고, 오직 돌로서 이 산은 천척 만척 벽과 같이 서있어 가까이 하면 어지러워서 앞으로 나아가려 해도 발 놓을 곳조차 찾을 수 없다. 이거 몇 천 미터 정도 되니까. 그런 히말라야 산을 그래서 못가요. 못 가는데 야산이라고 가도 이런 험준한 절벽을 만나더라 그거요. 아래로는 인더스 강이 흐르고 있었다.
옛날에 어떤 사람들이 돌을 깎고 쪼아 통로를 만들었는지 의지할 사다리가 만들어져 있는데 그 사다리는 700계단이나 되었다. 여러분, 생각해 봐요. 이제 앞으로 나갈 수 가 없어. 천길만길 낭떠러지인데 아래는 강이야. 그런데 묘하게 어떤 여행객이 만들어 놓았는지 계단을 만들어 쪼아 놓았어.
조금 머리가(정신력이) 약한 사람은 몇 발 못가서 떨어져 죽습니다. 그런데 700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거요. 법현은 세일론(실론, 현재의 스리랑카)에서 2년 정도 머모른 뒤에 중국으로 가는 항해 길에 올랐다. 이제 돌아 올 때입니다. 그러나 바다에서의 어려움은 그가 인도로 가면서 부딪혀야 했던 사막과 산에서 겪은 고난과 위험 못지않았다.
바다로는 좋게 올 줄 알았는데 이 바닷길은 더 어렵더라 그거요. 사나운 폭풍을 만나서 법현은 200일 이상을 바다에서 표류하기도 했다. 이거 어떻게 됩니까? 이렇게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 가져온 경 · 율 불경들을 많이 한문으로 번역한 분이 법현입니다. 그렇게 고생고생 해가지고 중국에 불교를 전했어요. 그 후 100~230여년 후에 '현장' 이라고 하는 삼장법사가 중국을 갑니다.
그분의 기행기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맨몸으로 구법여행을 떠났는데 무더위, 갈증, 살을 에는 혹한의 추위를 견뎌내야 했다. 도적들로부터는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장장 2만5천km(62,500리죠)의 대장정을 통해 1,335권의 겨전을 가져와 가지고 번역을 했다. 이분은 17년 동안 인도에서 쭈욱 공부하면서 구법을 했습니다.
그 후 약40~50년 후에 '의정' 이라는 삼장법사가, 이분은 해로(海路)로 인도를 가서 많은 경 · 율 · 론 삼장을 가지고 와서 번역을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불교가 이제 동양권에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왜 불교가 위대하느냐 하면, 그 내용면에서 가져온 모든 경전마다 인간의 고통(윤회생사하면서 겪어야 할 고통), '어떻게 하면 이 고통에서 벗어 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이 모든 경전에 쓰여진 내용입니다. 각 경전마다 그 방법이 좀 다르죠.
<<금강경>> 같은 것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철저히 부정하라고 가르쳤고...다 달라요. 그런데 이제 그러한 정도는 여러분이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내가 볼 때 왜 불교가 이토록 위대하느냐? 불교는 과연 죽지 않는 법이 있지요.
우리 부처님이 교주로 있기 때문에 위대한 것인데, 우리 부처님은요 완전히 뚫어가지고 불과를 증한 분이기 때문에, 또 불과를 아주 헤아릴 수 없이 오래전에 이루었습니다. 최초로 불과를 이룬 분입니다.
그래서 그 동안에도 많이 사람 몸을 받아 와가지고 붓다로서, 혹은 보살로서 많은 보살행을 하고 가시고 하고 가시고한 분인데, 여러분! 이분의 이러한 측면만 봐도 대단히 위대한 분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아드님, 부인, 새어머니(이모), 사촌형제, 인근의 국왕 장자들, 그 국왕 장자들의 형제 · 자매 등 만나는 사람마다 외도의 총수도 우리 부처님하고 만나서 생사문제를 가지고 답론을 하게 되면 백전백패해. 우리 부처님은 확실한 신념이 있고, 끝까지 통해 버렸기 때문에 막힘이 없어.
그래서 부처님을 만나서 답론을 한 사람들은 모두 승려가 되었거나 재가 신도가 됩니다. 얼마만큼 생사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으면 그렇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생사관이 정립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가령,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된다. 또 거기서 어떻게 된다. 전부 통찰하게 된 거요. 삼생(과거, 현재, 미래)을 그대로 똑바로 보는것이어. 이걸 생사관이라고 그래.
그런데 그 이후로는 우리 부처님처럼 생사관에 밝고, 자기의 사상에(불교사상에) 투철하고, 신념이 확고한 분들이 그렇게 많이 안 나왔어요. 그런 분들이 많이 나왔으면 오늘날 불교가 이렇지는 않았을 거요. 이렇지는 않습니다.
신념이 확고한 사람, 그 분의 가르침을 따라야 됩니다. 그분의 법문을 들어야 시원합니다. 변재라 해서 아닙니다. 변재도 아니고, 더더구나 부처님 법을 설할 때에는 반드시 청중들로 하여금 자기가 살아 온 중에 잘못을(과오를)범했거나, 죄를 지었거나 했다면 그것을 뉘우치게끔 일침을 가해 주어야 됩니다.
뉘우치게끔 해 주어야 되고, 햐! 나는 정말로 보람 있게 살아야 되겠구나, 잘 살아야 되겠구나, 나는 함부로 살면 안 되겠구나, 지옥도 있고, 명부에 못 들어가는 중음세계도 있고, 지옥에 가서도 또 나오고, 거기서도 짐승이 되고, 사람 되고... 이걸 계속, 생사를 이렇게 윤회 하는구나. 이건 사실입니다. 윤회 한다는 그것이 아주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건 정말이구나. 이런 확신이 있어야 됩니다.
지금 학자들을 위시해서(불교학자들을 위시해서) 스님들, 아마 신념이 확고하게 정립 된 분들이 참 드물걸요? 드물지요. 모르지요. 법상에서는 이야기하지요. 이야기는 하는데 그 말에 힘이 없습니다. 힘이 없죠. 여러분! 이 세상 사람들이 죽으면 대부분 악도를 가는 거요. 악도를 간단 말이에요. 명부에도 못 들어간단 말이에요. 아! 이거 큰일 났단 말이에요.
이래서는 안 되거든요. 바로잡아 줘야 되고, 일깨워 줘야 된ㄴ데 일깨워 주려면 상당한 호소력이 있어야 됩니다. 저승을 보고, 윤회를 보고, 윤회 밖을 보지 않으면 확신이 안섭니다. 절대 확신이 안섭니다. 우리 부처님은 정말로 신념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법을 따르게 되면 이세상도 잘삽니다. 이세상도 잘살고요, 다음 세상도 잘삽니다. 삼재팔난 만나지 않습니다. 아까 진짜 관세음보살 기도를 하는 우리 단월님들, 삼재팔난 비켜 갈 수도 있고 적게 오지요.
진짜 부처님 교단(회상)을 만나게 되면 관세음보살님이 직접 와서 여러(모든)기도 입재 회향하는 사람들을 그 지혜로서 모두 아셔서 한 가지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정말 착하게 살고, 정말 저놈은 되겠구나, 사람이 쓰겠다 싶으면 절대 감응이 갈 것입니다. 절대 가피가 내려갑니다.
또 죽을 때 똥오줌을 안 눕니다. 정법을 만나고, 그 스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경전을 읽고, 염불을 하게 되면, 절대 죽을 때 똥오줌을 안 눌 것이고, 잠자듯 갈 것이고, 그리고 과거에 자기가 잘 몰라가지고 죄를 많이 짓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 나한테 물어 와요. 스님! 참회하는 법이 있습니까? 있지요.
정법에서는 업장도 소멸 할 수 있습니다(정법 교단에서는 업장도 소멸됩니다). 이 정법, 현장 · 법현 · 의정 이런 사람들이 진짜 정법을 찾기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 간 거예요. 그런데 그분들은 많은 경전을 가지고와 번역을 해서 불교를 소개 했지만 진짜 정법의 핵은 그분들도 몰랐어요. 진짜 정법의 핵이 있습니다. 이건 <<법화경>> 에 있습니다.
진짜 정법의 핵이 <<법화경>>에 있는데 그것까지는 모르고, <<법화경>> 은 '구마라즙' 이 번역해 나왔어요. 그 이후로 <<법화경>>이 좋다고 막 읽어도 저 사람들은 어디가 핵인 줄 몰라요. 오늘 그것까지 말씀을 드리려고 했는데 그 말씀은 다음 기회로 미룹니다. 그리고 정법을 함부로 비방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 정법을 비방 못하게 하세요. 여러분 친구, 친척 등이 우리 현지사 정법을 비방하면 안 됩니다.
왜 부처님 회상인줄 그렇게 말씀을 드린 줄 아세요. 이건 겁에 하나 나오는 붓다, 그 붓다로 하여금 불과를 증하게 하기위해서 부처님이 오시는 거요. 이건 지금 세상이 몰라요. 이건 최고의 비밀이어요. 이렇기 때문에 여기는 부처님이 계셔요. 여기는 상주하셔요. 그래서 부처님 회상이라는 거요. 이 붓다 회상을 만나게 되면 구원 받을 수 있는 거요.
여기를 못 만나면 안돼요. 여러분들은 정말로 복이 많아요. 현장, 아까 말씀드린 법현, 이분들이 정법을찾으려고 얼마나 고생한 줄 압니까? 여러분은 그렇게 고생 안하고 지금 만나 버렸거든요. 아무고생 없이 만났어요. 만났는데도 여기 말씀 들으면 옳은 것 같고, 또 어느 절에 가서 들으면 옳은 것 같다는 말을 내가 듣거든요. 여러분! 우리가 적어도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교육을 받지 않았습니까? 여러분들의 마음 안에는 본래 이성(양심)이라는 것이 있어요. 이성의 기준에 의해서 판단 할 줄 알아야 돼요. 누구 말듣고 이리 흔들 저리 흔들 하면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앞에 많은 사교집단이라든지, 민속종교라든지 이런 이야기를 했지만, 그들에게는 계율이 없어요. 이것을 하나의 기준으로 삼으세요. 계율이 없어요. 우리 불교도 정법이냐 아니냐가 있어요. 지금 불교가 다 수박 겉과 같아요. 그러나 모두가 그런다는 것 아니어요. 좋은 스님도 있어요. 그런데 이것을 찾을 줄 알아야 돼요.
그 사람 법문의 핵을 딱 짚을 줄 알아야 되요. 저분 법문은 정말로 참 좋다라고 평가 할 줄 알아야 돼요. 그분 말씀 흐름 속에 청정이 들어있어야 돼요. 가르침 속에는 계율이 들어가 있어야 돼요. 모든 종교가 사(邪)냐, 정(正)이냐(옳지 않은 것이냐, 옳은 것이냐)의 기준은 게율이어요. 빙의된 사람들은 전부 음욕(淫慾)이 많아요. 뒷구멍으로 음행을 해요. 간음(姦淫)을 해요. 입으로는 깨끗해요.
그러나 여러분이 아무리 지혜가 없어도 딱 보면 저 스님은 참 바른 스님 같다는 것을 아는 거예요. 여러분 불성이 있어서 알아요. 계율이 없으면 지저분해요. 그리고 우리 현지사에서 부처님 이야기를 많이 하지요.
부처님 이야기를 많이 해서 오늘은 안하는데 저들은 천마라고 하거든요. 천마에 섭했다 그러거든요. 이 천마(天魔)에 대해서 우리 현지사에서 너무 잘 알아요. 하늘 마(魔), 하늘 마(魔)는 우리 부처님과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하늘을 넘으면 어디가 있지요?
성중하늘이 있지요, 위에 아라한이 있지요, 더 위에는 무루 대아라한이 있는 도솔정토(내원궁), 그 위에 천녀정토, 그 위에는 정토보살이 가는 극락이 있지요(27품). 그 위에는 약사정토가 있지요(27품). 그 위에가 유·무를 초월한 '무아 속 절대세계' 가 있습니다. 무량광 억종광으로 이루어진 붓다가 거기 계신다고요.
그러니까 그 부처님과 천마를 비교한다는 것은 왕과 거렁뱅이를 비교하는 것으로도 표현이 안 돼요. 이건 우리가 잘 알아요. 여기 천마라든지, 모든 종교의 본질에 대해서는 현지사에서 너무도 많이 알아요. 이렇게 아는 데가 하나도 없어요. 역사적으로 그 어떤 스님도 이런 법문 못해요. 지금 용신, 이매망량이 무엇인지도 몰라요.
우리는 많이 파헤친 거요.그렇게 아시고, 이야기 할 내용이 너무도 많지만 여러분은 행복하다고 생각하시고, 진짜 불법을 만났으니까 이때에 여러분들은 정말로 악도에 가면 안 됩니다. 왜 악도를 갑니까? 길이 있는데요. 지옥 한번 떨어지고, 축생 한번 떨어지면 못나옵니다. 그쪽만 돌지요. 우리가 그래서는 되겠습니까? 절대 안가는 길이 있어요.
그러려면 진짜 회상을 만나야 된다니까요. 그래서 가르침대로 살아야 되는 거요. 가르침대로. 하늘가기가 어렵습니다. 하늘가기가 어려워요. 그러나 하늘 갈 수 있어 여러분. 하늘이 문제가 아니어. 성중하늘까지 갈 수 있어. 여러분! 성중하늘도 문제가 아니어.
아라한도 될 수 있어. 윤회를 완전히 벗어난 아라한도 될 수 있고, 또 그리고 현지사의 정법을위해서 정말로 신명을 다해서 포교를 하고, 이 정법이 이렇게 서서 이제 나아 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하면 정토보살도 될 수 있어요. 삼계탈출 합니다.
어제 대전에 사는 어떤 착한 선남자가 5층 빌딩을 대전 포교원으로 써 달라고 기증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곧 부처님께 고(告)했습니다. 그랬더니 다섯 식구 모두에게 엄청난 복을 주었습니다. 여러분! 달걀을 삶아서 껍질을 딱 까보면 하얀창이 굳어있찌요.
그 속에 또 쏙 들어가면 노른자위가 굳어있지요. 노른자위를 쏙 빼내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노른자위를 맑은 영혼체라고 하면 하얀자위는 억겁을 살아오면서 지은 업이라고 생각하세요. 다섯 사람 모두에게 그 순수한 영체를 쏙쏙 빼주어 버렸습니다.
우리가(내가) 이 시주(施主)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꼭 돈을 밝히는 사람 같아서 굉장히 조심을 합니다. 그러나 보시로서도 정토에 갑니다. 보시로서 정토에 갑니다. 서울에서 누가 가령, 100억짜리 빌딩을 하나 준다면 충분히 그 식구들은 정토탈출(삼계탈출)하지요. 이 정법, 우리 정법회사에 주면 말입니다.
출처/2008녀 1월 2일 수요일 큰스님 부산 법문 중 발췌
'염불에서 삼매까지 > .....불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교의 목표는 완전한 생사해탈 (0) | 2011.05.12 |
---|---|
우리는 정법을 만나야 됩니다 (0) | 2010.12.07 |
겁에 한 분 나온다는 희유한 붓다 (0) | 2010.10.21 |
세계 불교의 문제점 (0) | 2010.10.04 |
본체계 아의 세계 없으면 불교의 위대성 주장할 수 없어 (0) | 2010.08.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