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재만현 큰스님 법문 글/..법문 글 2009년

7. 15. 큰스님 부산 법문 /부처님은 어떤 분인가. 품계의 인가. 유대교..

불제자 2010. 6. 29. 21:57

 

 

 

2009. 7. 15. 수(윤.음5.23) 큰스님 부산 법문


영산불교와 교육 Ⅳ


(부처님은 어떤 분인가. 품계의 인가. 유대교 밀교 도교의 수행법)

 


오늘 처음 나오신 분 손을 들어봐 주세요.

여기는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라고 합니다.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는 어떤 절인가? 우리 영산불교의 법의세계를 소개하는 책자가 여러 권 나와 있습니다. 그 내용은 여러분들이 많이 정독을 하셔서 아시겠지만 대단히 깊고, 경천동지(驚天動地)할만한, 또 어느 학자는 ‘파천황(破天荒)에 가까운 법(진리)이다’라고 평가를 합니다. 스님이 쓴 책 세권(《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Ⅱ권》,《영산불교와 본문묘법연화경》)을 모두 읽어보시면 참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100회에 가까운 법문(동영상법문), 앞으로도 계속 하겠지만 밀장이기 때문에 말 못할 사정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법문 한 것은 스님이 하고 싶은 말의 ⅓도 안 될 것입니다. 그 이상은 밀장이어서, 하면 안 되기 때문에 할 수 없습니다. 기왕에 지금 나와 있는 스님이 쓴 책, 이 책의 진리를 여러분들이 알기 쉽게 부연해서 해설한 주석서가 또 여러 권 나와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종교에 뜻이 있고, 그리고 구도(求道)하는 수행자라면 모두 따라 오겠지만 읽어보지를 않습니다. 읽지를 않고 그저 염불, 염불을 주장하는 책, 한국불교는 무조건 그러한 책, 혹은 그러한 사상은 다분히 외도시합니다. 대단히 잘못된 것이지요.


어떤 신도 분들이 오셔서 자기들이 10여년 혹은 20여년을 그 큰스님이 부처인줄 알고 따르고, 신(信, 믿고)하고 했는데 요즈음 와서 보니까 의심이 많이 갑니다. 부처를 이룬 분은 어떻게 행(行)을 하고, 그 법은 어떻고 하는 것을 좀 자세히 말씀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신도 분들을 만났습니다. 아주 적절한 질문이었고, 여러분도 아마 그러한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부처(佛,부처님)라고 하면 어떤 분이냐? 여러분, 정말 알고 싶고 궁금해 하실 겁니다. 여러분, 꼭 알아두십시오. ‘붓다는 당대에 한 사람뿐입니다.’ 이것을 아십시오. ‘붓다는 당대에 한 사람뿐이다. 처음 대수행자가 이 사바 세상에 와서 불과를 이루는 것은 정말로 희유하다. 겁에 하나이다.’ 하는 것을 또 알아두십시오.

 

겁 전에, 혹은 무량겁 전에(많은 과거생전에) 불과를 이미 이룬 분이 다시 보살행을 하기 위해서 이 사바세계에 올 수도 있습니다(오십니다). 다만 보살행을 하기 위해서 오십니다. 그분들 역시 그렇게 많이 오지 않습니다. 1세기(100년)를 주기(단위)로 해서 한 분 꼴로 올 수도 있습니다. 당대에 두 분의 붓다는 없습니다. 그러나 현지사는 부처님세계에서 “쌍불이 출세했다”고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두 분은 되도록이면 한 바운다리에 있어야 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스님들이 지금 화두(話頭)를 참구합니다. 우리나라 스님들이 화두를 참구합니다. ‘이뭣고(시심마 是甚麽)’ 입니다. 많은 화두 중에서 많이 참구하는 것이 ‘이뭣고’입니다. 그 다음에‘무’자입니다. ‘이뭣고’를 참구하는데, 화두타파(깨친 분)한 분이 얼마만큼 나오느냐? 정말로 적은 숫자가 나옵니다. 천(千)에 하나, 만(萬)에 하나정도 나옵니다. 그러면 깨친 분은 부처님하고 얼마만큼 다르냐? 깨친 분의 위상은 어느 정도인가? 그것도 아마 여러분들께서는 궁금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불교를 하고, 이론 적으로 법을 많이 연구한 분들은 그것을 몹시 궁금해 합니다. 화두타파한 분하고 부처님하고 어떻게 다르냐? 매우 궁금해 할 것입니다. 오늘은 우선 육바라밀 중에서 정진바라밀을 제목으로 해서 법문을 하려고 했는데, 그 신도 분들이 질문한 부분에 대해서 우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부처인 줄 알고 20년간을 따랐는데 자꾸 의심이 간다. 부처란 분은 어느 정도의 법위에 계시는 분이냐? 얼마만큼 위대한 분이냐?’ 이것에 대하여 알고 싶어 하는 궁금증은 당연하지요. 불과(佛果)를 이룬 분을 '부처'라고 합니다. 혹은 '부처님' 그럽니다.

 

'여래'라고도 하고, '세존'이라고도 하고, '불세존'이라고도 합니다.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청정법신에 자기 불신(佛身)이 생겨야 됩니다. 이것은 분명한 이야기입니다.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청정법신에 자기 불신이 생겨야 된다. 조금 달리 이야기합니다.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유무를 초월한 '무아속 절대계'에 자기 불신이 생겨야 됩니다. 지금 스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여러분, 녹음테이프를 구입해 가실 테니까 꼭 이 부분은 알아 두십시오. 절대계에 그 부처님이 없으면 그 사람은 부처가 아닙니다. 절대계라고 줄여서 이야기 하는데, 자세히 이야기하면 방금 말씀드린 바와 같이 ‘유․무를 초월한 무아속 절대계’입니다.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청정법신 속에’라고 표현합니다. 자기의 불신, 자기의 부처 몸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결코 부처가 아닙니다. 화두타파한 분들, 보림을 마치면 조사(祖師)라고 합니다. 인가를 받으면 조사라 부르기도 합니다.

 

여러분, 그 사람들은 서방정토극락세계에 갈 수 있는 그러한 도인도, 수행인도 아니라는 것을 스님이 힘주어서 말씀드립니다. 화두타파 가지고는 안 됩니다. 혼자 고생고생 해가지고 몇 십 년을 ‘이뭣고’를 붙들고 공부해서 이제 도(道)를 깨친 분들, 이 분들은 이제 부처를 이루기 위한 머나먼 도정(道程)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스님이 맨 처음 세상에 나올 때 ‘견성은 머나먼 도정(道程)의 시작일 뿐이고, 이것은 부처의 자리도 아니고, 보살의 자리도 아니다.’라고 했을 겁니다. 여러분, 이 말은 확실합니다. 견성(見性), 화두타파를 견성이라고 합니다. 견성(見性)이란 무슨 말이냐? 성품(마음자리), 조금 어려운 말로 하면 공(空), 서구 일신교에서 말하는 Who I AM(줄여서 I AM, 하나님, 스스로 존재하는 자존자)을 봤다(드러났다, 깨쳤다) 그거예요.

 

이것을 견성이라고 합니다. 견성(見性)은 마음자리, I AM, 공(空)의 자리를 봤다(깨쳤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견성이 곧 성불(成佛)이 아닙니다. 견성(見性)이 곧 성불은 결코 아닙니다. 견성해서 이제부터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음계(婬戒)가 중요하고 중계(重戒)가 중요합니다. 살생, 크게 화를 내는 것,... 이런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야 됩니다. 음계(婬戒), 여자를 보는(범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견성을 해가지고 다 된 줄 알고, 견성이 성불인 줄 알고, 신도들이 여불(如佛)대접 하니까(부처님같이 대접하니까), 많은 선사들의 어록이나《금강경》을 보니까 자기가 깨친 것이 맞아. 훌륭한 경지여. 그래서 자기가 부처인 체 해. 신도들도 그렇게 대접을 해. 그래서 자만해져 가지고 보림을 잘못하는 깨친 이들이 많습니다. 스님이 말씀했다시피 견성(見性)한 분들은 이제 시작입니다. 견성(見性)하고 부처님(부처님 자리)하고는 천지현격도 더됩니다.

 

견성해가지고 보림을 잘해서, 두타 행을 잘하고, 나 없는 공부를 잘해서 이 몸뚱이에 대한 착(着)이 뚝 떨어져버려야 이제 거기가 ‘공성(空性)을 증득했다. 아라한이 되었다’고 합니다. 거기가 이제 아라한(阿羅漢)입니다. 아라한이 부처의 경지까지 가려면 정말로 험난한 여정이 가로 놓여 있습니다. 중간단계가 이제 보살입니다. 보살이 되어야 극락정토에 왕생합니다. 아라한이 극락정토에 가서 나려면 보살이 되어야 됩니다. 그런데 보살이 된다는 것은 정말로 어렵습니다. 혼자 수행해가지고는 결코 안 됩니다. 혼자 수행해서 아라한이 된다는 것도 무리입니다. 깨칠 수는 있습니다.

 

거기까지는 갈 수 있어요. 거기서 이제 ‘공성을 증득한다? 아라한이 된다?’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제 자력을 기반으로 한 타력이 필요한데 부처님의 큰 가피가 필요합니다. 부처님의 큰 가피가 없으면 안 돼. 절대로 보살이 될 수 없어요.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의 불교, 미얀마, 태국, 서장(西藏,티베트)의 불교는 아닙니다. 보살이 못나옵니다. 절대로 보살이 안 나옵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정토에 나려면 여자분들 같으면 남자가 되어야 됩니다. 그것을 전녀성남(轉女成男)이라고도 하고, 변녀성남(變女成男)이라고 합니다. 자세히 말씀드리면, 여러분의 몸속에는 영혼체가 네(4)개로 겹쳐있습니다.

 

여러분, 아시죠? 여러분들은 내 책을 읽어 봤고, 법문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우리 인간 영혼의 실체에 대해서 많이 알 것입니다. 이 영혼의 실체, 영혼체가 넷으로 겹쳐 있다는 이 말도 정말 처음입니다. 영산불교에서 세상에 내놓은(선포한) 말입니다. 사람 몸속의 네(4)개의 영혼체가 다 남자상징인 성기(性器)를 달아야 됩니다. 이것을 혼자 하겠습니까? 안 돼요. 인간은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아라한은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위신력(가피력)으로 그렇게 만들어 집니다. 그래서 변녀성남(變女成男)이 안 돼요. 극락을 가려면 남자 몸으로 가게 되는데 변녀성남(變女成男)이 안 돼. 그 다음에 아주(정말로) 어려운 것이 있어요. 뭐냐? 극락이라고 하는 것은 이 사바세상하고 조건이 달라요.

 

조건이 다른 것도 보통 다른 것이 아니어요. 이 사바세계와 지옥․아귀․축생의 저 명부하고도 여건이 굉장히 다릅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4개의 영체 중에서 4번 영체(겉의 영체)는 저 명부에 못 들어 가요. 그래서 끊어집니다(잘려집니다). 잘려진 4번 영체는 1~3년 지나면 없어지는 거예요. 조건이 안 맞아. 4번 영체는 저쪽에 가서 적응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4번 영체는 카트(cut)당하는 거예요(잘려지는 거예요). 1․2․3번 영혼체는 항상 뭉쳐서 다니는데, 이 영혼체가 명부에 들어가는 거예요. 하물며 저 극락은 이 사바세상하고 거리가 얼마만큼 되느냐? 영산불교에서는 하늘만 해도 54품(54하늘)을 이야기합니다. 거기의 각 하늘 하늘마다 올라가기가 그렇게 어려운 거예요.

 

54하늘을 벗어나면 그 다음에 성중 27하늘이 있어요. 크게 나누면 셋 하늘로 보지만, 자세히 말하자면 27하늘(27품)이 있어요. 거기를 올라가야 돼. 한품 한품씩 올라간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워요. 거의 불가능 합니다. 그런데 27품을 넘어가면, 27품에서 아주 위품인 1,2,3품이 아라한입니다. 거기가 아라한인데 거기를 넘어가면 이제 무루대아라한이어요(무루대아라한 자리이어요). 무루대아라한 이라고 그래. 거기를 넘어가면 천녀정토가 있어요. 거기를 넘어가면 이제 정토대기가 있고, 거기를 또 넘어가면 이제 극락정토가 있어요.

 

그 극락정토도 27하늘(27품)이 있어요. 그렇게도 먼데 어떻게 가겠습니까? 그래서 여러 부처님의 가피에 의해서, 그 사람이 충분히 공부를 많이 했고, 공덕을 많이 지었다고 판단이 되면, 이제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그 극락세계에 자기꼬마(아기)가 생겨요. 인가가 나오면 작업을 해서 아기가 생겨요. 그 놈이(아기가) 자라요. 그래서 보살이 될 때에는 여기 수행자의 1․2․3번 영혼체만 갑니다. 1․2․3번 영혼체만 자기 몸뚱이 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야 그 극락세계에 적응할 수가 있어요. 1․2․3번 영혼체는 적응할 수가 없으니까 속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거기서 만들어진(태어난) 아기는 적응이 되니까 적응을 해서 커가는(자라는) 거예요. 그래서 1․2․3번 영혼체가 그 아기의 몸속으로 들어가요.

 

크게 말하자면 이 두 가지를 수행자는 못 만듭니다. 그것은 안 됩니다. 변녀성남(變女成男) 못하고, 정토보살인 자기 몸뚱이를 못 만들어요. 그것은 할 수가 없어요. 이제 영산불교에서 그것을 알았거든요. 그걸 알았어요.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여러분을 어디까지 끌고 가고 싶으냐? 보살이 되는 서방극락세계까지 끌고 가고 싶어요. 거기는 불퇴전이어요. 거기의 극락은 얼마만큼 즐겁고 환희의 세계냐 하면, 말로 표현 할 수가 없어서 극(極)자를 붙인 거예요. 극락이라는 곳은 하늘세계의 복락(즐거움)은 아무것도 아니어요. 하늘세계에서도 하늘세계라는 곳이 성중하늘 세계이고, 성중하늘 세계에서 하늘이라는 곳이 극락인데, 이 극락세계는 말로 할 수 없는 즐거움입니다.

 

여러분들이 살아오시면서 ‘햐! 내가 이렇게 행복할 수가 있단 말이냐?’ 하는 즐거움도 극락에다가 비교할 수가 없어요. 영원히 그렇게 살 수 있어요. 여기가 극락세계입니다. 극락세계 가기는 어려워요. 정말 부처님 회상 만나지 않으면 절대로 못갑니다. 부처님의 가피가 아니면 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부처님 회상을 만나지 못한 그 시대에서는 보살이 거의 나오지를 않아요. 겨우 아라한이 나올 뿐이어요.


이제 부처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부처님은(부처는, 불과를 증하면) 저기 청정법신에 자기 불신(佛身)이 생긴다고 했지요. 여기 불신(佛身)은 극락세계 자기 꼬마(아기)하고 또 틀립니다. 극락하고 부처님의 나라인 절대계하고는 또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 빛, 그 세계 자체가 하늘과 땅차이어요. 그 절대계에 적응을 해야 돼. 적응할 자기 불신(佛身)이 생기는 거예요. 그 절대세계에 적응할 불신이 생겨. 그 부처님 나라(절대계) 빛은 중생이 보면 중생이 가루가 될 수도 있어요. 가루가 되어 버릴 수 있어. 하늘사람, 성중들도 그 빛을 강하게 쏘아 버리면 그 영체가 타 죽어버려요.

 

그런 세계입니다. 그래서 그 세계를 상적광(常寂光)세계라고 해요. 거기에 적응하는 자기 불신이 생기는 거예요. 이것은 3대 아승지겁 토록 수행을 해야 되고, 보살도를 완성해야 돼. 3대 아승지겁, 아승지겁을 3아승지겁을 두고 수행을 하고 보살도를 완성해야 거기에 자기 불신이 생겨요. 그 불신이 또 커요(자랍니다). 그래서 이제 성인이 되면, 그러면서 여기 이 몸(육신)이 열반에 들 때(명이 다할 때) 이 영혼체 4개가 자기한테 가서 계합이 됩니다. 자기한테 가서 계합이 되어요. 이 영혼체는 자기 불신하고 정말 털끝만큼 달라도 계합이 안 돼. 그건 빛덩어리예요. 이 영혼체가 빛덩어리가 되어야 돼. 그래서 불과를 증 한다는 말은 대단히 깊은 이야기입니다.

 

부처는 저 절대계의 청정법신 그 속에 자기 불신이 생겨야 된다. 이것이 필요충분조건이어요.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20년을 두고 믿었다? 저 사람이 부처인 줄 알았다? 물론 절대계에 그 분의 불신이 있는가의 여부는 중생이니까 알 수가 없지요. 그러나 불과를 증했다면 한 번쯤이라도 이야기를 했어야 하고, 또 할 것입니다. 한 번쯤이라도 저 절대계의 이야기를 할 거예요. 자기 불신 이야기를 할 거라고요. 그런데 그것이 없었다면 첫째 의심을 해야 되고, 당대에 한 분이니까 여러모로 검토하고 뜯어 봐야 됩니다. 어느 세상을 막론하고 ‘내가 부처다’ 하는 사람들이 5~10명은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도 ‘내가 예수 못지않다. 예수보다 위에다. 예수다.’ 하는 사람도 5~10명은 있습니다. 그러니까 분간할 수가 없어요. 누가 예수와 같이 훌륭한지, 누가 불과(佛果)를 증했는지, 이거 자기가 실력이 없으니까 알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또 말씀을 드립니다. 앞에서 언급 했듯이 ‘부처님은 자기 청정법신 속에 자기 불신을 지니고 있다.’ 그게 원만보신이어요. 원만보신이 청정법신에서 나올 때, 그 원만보신을 하늘사람이 본다고 해도 하늘사람은 재가 되어버릴 거예요. 그 원만보신은 광도(光度)와 강도(强度)에 있어서 너무나도 강렬한 빛 자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만보신은 빛을 전부 흡수하고 변화신으로 싹 바꾸어서 나타납니다. 지금 사바세계에서 보살행을 하고 계시는 관세음보살님, 지장보살님, 문수보살님, 보현보살님이 변화신으로 와 계십니다. 빛을 흡수해야 돼. 빛을 흡수하지 않으면 안 돼.

 

그 자리는 청정무구하고, 정토의 빛보다도 훨씬 강하고 밝은 광도를 지닌 빛 세계입니다. 여기 영혼체(4개의 영체)도 자기한테 따라 가려니까(죽으면 자기한테 계합이 되려니까) 부단히 닦고 닦아야 돼. 그것은 우리 부처님들께서 항상 가피력으로 해주셔요. 가령, 어디에 가서 꽃을 한 송이 꺾었다든지, 흙을 만졌다든지 하면 부처님들께서 관리를 해 주시는데, 마치 티끌 하나 묻지 아니한 큰 거울에 손을 대어 봐요. 흔적이 생기지요. 그러면 그 흔적을 닦아야 되잖아요. 그와 같이 부처님들께서 관리를 해주십니다. 그리해서 여기 불과를 이룬 스님은 청정이 생명이어요. 순도(청정도)가 100% 되어야 됩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냐?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청정계율,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계율은 정말로 100% 지켜야 돼. 안 지키면 큰일 납니다. 그러니까 20년 동안 그 스님을 믿고 따랐다?

 

그 스님은 청정해야 돼. 그 말은 무슨 말이냐? 도(道)를 이룬 후부터 지금까지 정말로 여자에 대해서 깨끗해야 됩니다. 제일 무서운 것이 여자이어요. 깨끗해야 돼. 뒤로 여자를 봤다(범했다)? 이건 100% 1000% 아니어. 이것은 아니어. 또, 술 고기 담배... 이거 없는 거요(이런 이물질은 근처에도 안가는 거요). 그래서 우리 부처님께서 계시는 우리 현지궁에서는 우유, 꿀 따위는 안 되는 거예요. 안 돼. 그러니까 우선 그 큰스님이 얼마만큼 계율에 충실한가를 보십시오. 또 말은(언어는) 어떠해야 되느냐? 우리 부처님께서는 그 말에 대해서 굉장히 주의를 주시는데 “한번 한 말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라. 한번 한 말에 대해서는 절대로 뒤집지 마라.”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그 분이 10여년을 함께 하셨지만 한 번도 헛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단 한 번도요. 말을 굉장히 아끼고, 한 말씀을 하려면 굉장히 생각해서 해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 중생들은 안 그럽니다. 말이 가볍지요. 말이 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데 함부로 말하거든요. 자기가 행해놓았으면서도 안했다고 딱 잡아뗄 때에 ‘내가 했으면 벼락을 맞아 죽지.’ 이런 말을 하거든요. 벼락을 맞아 죽을 수가 있어요. 그건 그렇게 죽는 거요. 우주의 질서는(이법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정말로 극락에 갈 것을 목표로 하셨다면, 이제는 인생사는 것을 정말로 그렇게 그냥 간단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정말 조심조심해야 된다고요.

 

조심조심해야 돼. 그래서 우리도 말하는 것을 굉장히 아낍니다. 이것은 잘못하면 큰일 납니다. 또 그것을 보장하기 위해서 내가 그걸 했다든지, 혹은 하지 않았다든지 하면 뭐라고 하잖아요. ‘내가 그걸 했다면 지옥에 갈 수도 있지. 지옥에 간다. 지옥을 가지.’ 그러면 지옥에 가게 됩니다. 지옥을 가라 그거요. 기어이 보내는 거예요. 그렇게 무서워요.


우리 절에서 다보탑을 건립했지요. 다보탑, 다보부처님을 아시는 분은 우리 현지사 스님들뿐일 것입니다. 다보부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전혀 몰랐지요.《법화경》에서 나오긴 나왔지만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명하지 않게 생각을 했지요. 다보탑이 전국에 다섯 개 정도가 된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잘 되었다고 하는 것이 저기 경주 불국사에 있는 다보탑입니다.

 

그 다보탑이 하자가 있어서 지금 해체하고 있거든요. 우리 현지사의 다보탑은 그 하자가 나올 수밖에 없는 그런 부분까지 완벽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현지사 다보탑은 다섯 다보탑 중에서 제일이라고 합니다. 현지사 다보탑은 돌멩이가 아닙니다. 다른 절의 것은 그렇게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현지사의 다보탑은 돌멩이가 아닙니다. 저기 동방으로 아승지 불국토를 지나서 다보부처님께서 교주로 계시는 그 보정정토(보정국토)의 그 다보탑이 우리 현지사의 다보탑하고 도킹해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다보부처님은 꼭 다보탑 속에서 선정에 들어 계신다 그거요.

 

도킹이라는 말은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거예요. 우리 현지사의 다보탑과 도킹되어 있습니다(하나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해서 다보탑 속에 계시는 다보부처님께서 우리 현지사에 상주하십니다. 현지사에 상주하시기 때문에 영적으로 볼 때, 땅 아래 저쪽 허공에 한없이 많은(셀 수 없이 많은) 본화 보살님들이 우리 현지사를 중심으로 해서 가끔 계십니다. 본화 보살님들의 교주가 다보불이에요. 다보부처님이 계시는 곳에는 항상 본화 보살님들이 거기를 중심으로 계십니다. 현지사가 그러합니다.

 

그래서 다보부처님께 공양드리는 분은 다보부처님께서 축복을 내려 주시기도 하지만, 본화 보살님들이 그 사람의 집이나 공장에 가서 전부 영적으로 청소를 해주고 축복을 해주십니다. 이런 곳 여기가 지금 현지사예요. 그러니까 현지사에 오시면 다보부처님께서 항상 계시기 때문에 탑돌이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탑돌이는 5번, 8번, 여러분 나이만큼, 혹은 108번을 하시는데 ‘다보여래불’을 염송하시면서 탑돌이를 해주십시오.


저가 어떤 큰스님을 대단히 존경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큰스님은 지금 입적을 하셨지만, 15살에 승려가 되어가지고 90살을 먹도록 중노릇(승려 생활)을 잘 한 분이었어요. 아마 그 분의 법위가 상당할 것입니다. 그런 분은 없으니까요. 그분이 6.25전쟁을 치렀습니다. 여러분들은 6.25전쟁을 치룬 나이가 아닌 것 같습니다. 70~80대, 70대 후반~80대․90대는 6.25전쟁을 치렀을 거예요. 남자가 6.25에 살아남았다면 그것은 대단한 사람이에요. 승려가 살아났다면 정말 그건 뭐가 있어요.

 

이 분은 뭐라고 했느냐? 나는 왜 살아났느냐? 그 많은 승려들을 마구 죽였는데 나는 왜 살아났느냐? 부처님에 대한 신심하나로 생각합니다. 그 분은 부처님에 대한 신심이 깊었어요. 다른 승려들은 ‘이뭣고’만 찾았는데 이분은 부처님을 찾았답니다. 그래서 승려가 된 이후부터 관세음보살님을 그렇게 많이 불렀데요. ‘이뭣고’라는 것은 부처님(부처님의 말씀)하고 아주 다릅니다. 마음, 마음만가지고 뚫고 간 것이 선정이어요. 이것이 ‘이뭣고’하는 것인데, 이 분은 부처님 중에서도 관세음보살님을 아주 많이 불렀데요. 그리고 ‘《금강경》을 아마 1,000독은 했을 것이다.’라고 그때 그러더라고. ‘《금강경》을 1,000번은 읽었을 거요. 그래서 나는 믿는 구석이 있었소.’라고 하더라고.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래서 살아났다 그거요.


여러분, 우리 현지사는 저기 절대계에 부처님이 계심을 알았습니다. 이건 최초입니다. 절대계에 부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았어요. 불과를 증한 분은 모두 그 대적정삼매 속에 계셔요. 그런 사실을 알았어요. 그런데 당신 이름을 부르면 그렇게 좋아하고 오셔요. 이것을 알았습니다. 또, 경전에 그 사실도 있더라고요. 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것을 간과하거든요.

 

여러분, 아침에 먼저《금강경》을 읽으시지요. 그리고 '비로자나총귀진언'을 읽으시고 이제 '석가모니불'을 많이 정근 하실 텐데, 1시간을 공부하더라도 공부답게 하시면 좋겠습니다. 공부답게 하시면 좋겠어요. '석가모니불'을 부르실 때에는 반드시 '석가모니불' 화신이 오시기 때문에 그 이상의 영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화신불이 가시기 때문에 거기를 놓치지 마시고, 그 시간은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모아서 발원을 하십시오. 발원의 내용은 스님이 강조하지만, ‘다겁 생으로 내려오면서 지은 업장을 씻어 주옵소서. 소멸해 주옵소서.’ 이 내용이 꼭 들어가야 돼. 업장소멸이어야 돼. 업장소멸이 되어야 돼. 부처는 이 업장이 제로(zero, 영)입니다.

 

불과를 증한 분은 업장이 제로입니다. 그리해서 무죄를 선고한 거요. 무죄, 열시왕이, 지장보살이, 모든 부처님이, 너는 죄가 없다고 무죄를 선고하는 거예요. 불과를 증한 분은 업장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렇지 않거든요. 업장이 더덕더덕 붙어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현지사에 큰 행사가 있으면 부처님께서 꼭 그 청정한 무량억종광을 놓으셔서 여러분을 벗겨줘요. 여러분들이 너무 불쌍하니까. 이때 안 벗겨 주면 없어요. 그러니까 많이많이 벗겨 주시거든요.


저기 유대교에는 카발라라고 하는 신비주의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신(神)이 그 수행 행자의 정수리에다가 빛을 쏟아 붓는다’ 하는 것이 나와요. 그건 그 쪽의 밀장인데 밝혀 놨더라고요. 그런데 거기 신은 그네들의 종족 중에서 하늘에 간, 높은 하늘로 올라간, 그 언젠가 수행도 잘하고 ․ 보살행도 잘하고 ․ 좋은 일 많이 해서 아주 높은 하늘로 올라간 분들입니다. 즉, 종족 신들입니다. 그 분을 말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부처님께서 쏘는 청정광명의 빛하고는 비교가 안 됩니다.

 

하늘 중에서도 하늘이지만, 천지차이입니다. 그 종족 신들은 윤회를 벗어난 데까지는 간 분들이어요. 특별히 선택된 행자한테 정수리에다가 당신의 기(氣)를 쏘아 주는 거예요(빛을 내려 주는 거예요). 그런데 앞에서도 언급 했듯이, 우리 부처님의 그 광명은 하늘광명도 아니고, 성중하늘 빛도 아니고, 정토하늘 빛도 아니어요. 무량억종광이라는 절대계의 빛이어요. 그 무량억종광으로 여러분을 씻어 주셨기 때문에 그 종족신이 카발라 행자에게 빛을 쏟아 붓는 것 하고는 비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부처님께서 열 번 백 번... 여러번 했을 것입니다.

 

카발라의 그런 정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게 우리 현지사 신도 분들은 현재 축복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모르겠지만, 저 사람이 죽어서 어디에 갈까(갈 것인지) 하는 것은 영혼체의 색깔을 보면 아는 거예요. 색깔을 보면 알아요. 지옥․아귀․축생으로 떨어질 사람은 영혼체의 색깔이 거무튀튀합니다. 그것을 벗겨줄 수 있는 분은 오직 우리 부처님인데, 부처님께서 가끔 가끔 청정한 빛으로 여러분의 업장을 씻어낸다 그거예요. 씻어내 줘요. 그래서 스님이 가끔 이야기하지만 아마 우리 신도 분들의 70~80%는 거무튀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지옥․아귀․축생에 안 떨어진단 말입니다. 그만큼 축복을 받았어요.


스님은 가끔 지난날에 신심이 물러날 즈음되면 떠올리는 생각이 있습니다. 어떤 생각을 떠올리느냐? 여러분도 그래야 됩니다. 돼지를 잡는 장면을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돼지를 잡으려면 큰 새끼로 앞발 뒷발을 꽁꽁 묶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앞 뒤 네발을 꽁꽁 묶어요. 그리고 악을 쓰지 못하게 입을 또 그렇게 묶어요. 그런 후에 떡쌀 찧는 망치(떡메)보다도 두 세배나 큰 도구로 대고리(머리)를 내리 칩니다. 탁 탁 때려 버려요. 그런 후에 시퍼런 칼을 가지고 목을(모가지를) 확~ 딴다고. 그러면 피가 콸콸 나오잖아요. 그 돼지는 그렇게 죽어요.

 

여러분, 지금 우리 현지사 신도 아닌 분들, 대단히 안타깝지요. 대단히 안타까워요. 저 사람들, 또 다른 절의 신도들, 지금 교화를 못합니다. 못하고 있습니다. 교화의 자격은 요, 상대를 교화하려면 그 스님의 법위가 상당히 높아야 됩니다. 적어도 지옥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돼요. 윤회를 한다는 확신이 있어야 되고요. 그런데 지금의 승려들이, 포교사들이, 윤회를 한다는 확신이 없습니다.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불교의 대학자라는 분도 그것을 안 믿어요. 스님이 옛날에 총무원의 국장으로 있으면서 4월 초파일을 앞두고 세미나를 갖게 되었는데, 그런 사람을 동원해가지고 업에 대한 것을 주제로 해서 세미나를 하려는 것을 스님은 안 해버렸어요. 하면 큰일 나겠어요. 하면 큰일 나. 저 세상이 없다는 거예요. 지옥이 있다는 것을 믿지도 않아요. 한국에서 내라하는 불교학자가 이럽니다.

 

이거 어찌 됩니까? 그 사람들이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생들을 가르칩니다. 망치거든요. 큰스님이라는 분도, 화두타파를 했다는 분들도, 마음만 이야기할 뿐이지 지옥 극락에 대한 말이 없어요. 말하면 오히려 망상 피운다고 해. 그리고 마음속에 번뇌의 자리가 지옥이고, 마음의 번뇌가 사라지면 극락이라고 하는 등 이런 식으로 극락과 지옥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스님들과 그런 포교사 밑에서 우리 신도 분들이 무엇을 배웁니까? 정말로 경각심을 넣어 줘야 되거든요.

 

우리가 10년 넘게 천도재를 하고 있는데, 천도재의 영가 100여명을 놓고 보면 하늘간 사람들이 거의 없어요. 어쩌다가 하나정도 있긴 하지만 그것도 6하늘입니다. 그거 맞습니다. 경에도 그렇게 되어 있어요. 10명중에 9명은 지옥에 간다고 되어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말세이어서 그런가 봐요. 우리 현지사에서는 그것을 뒤집고 싶다 그거요. 그것을 뒤집는다 그거요. 뒤집는다는 말을 알겠습니까? 우리는 대부분이 지옥․아귀․축생에는 떨어지지 않도록 교화하고 교화해야 되겠다 그거요.


저기 밀교라는 것이 한 때는 큰 힘을(교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티베트 밀교, 인도 밀교 말입니다. 밀교에서는 보신을 어떻게 해석 하느냐? 앞에서 붓다의 몸은 반드시 절대계 청정법신에 생겨야 된다(생긴다)고 했는데, 밀교에서는 그렇게 안 보고 있습니다. 즉신성불(卽身成佛)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즉신성불, 곧 금생에 수행을 해가지고 붓다가 된다 그거예요. 참! 어림없는 말이지요. 그건 어림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보신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절대계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걸 딱 보면 이건 아니다 그거요. 아니라는 것이 나옵니다. 밀교에서는 보신을 중간계(바르도, 중음계)에 자기 의생신(意生身)을 만들어서 최초(원초)의 빛과 화합한 것을 보신이라고 해요. 그것이 아닙니다. 밀교는 보신을 아주 잘못 본 것입니다. 보신은 그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보신을 정확히 본 분은, 정확히 이야기 한 곳은 우리 부처님 이후로 영산불교입니다. 중간계(중음계)에다가 자기 의생신(意生身)을 정광명과 합일 시키는 그 작업이 성공된 그 몸뚱이를 보신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아니어. 보신의 주소는 바르도(중음계)가 아니어요. 절대계입니다. 그걸 아십시오. 절대계의 청정법신 속이 주소입니다.

 

둘째, 보신이라고 하는 불신(佛身)을 만드는 것은 내가 밀장이어서 말씀을 못 드리나, 그 불신은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생깁니다. 그러하지 일개 행자가 의생신(意生身)을 해가지고 거기서 원초의 빛을 보도록 해서 만들어진(이루어진) 저 의생신(意生身)은 보신이 아니어. 그런 의생신(意生身)은 언젠가 퇴전하고, 언젠가 악도로 갈 수 있어요. 왜냐? 청정도가 100%인 무량억종광이 100%라야 돼. 그래야 영원히 사멸(死滅)할 수가 없어요. 붓다는 무량억종광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영원히 사멸할 수가 없습니다.

 

그건 뭐냐? 우주, 대우주의 지혜․자비․공덕․능력 등 모든 것을 이 무량억종광이 총합(總合)합니다. 그래서 저 원만보신은 우주가 행사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힘이 있어요. 여기 의생신(意生身)은 그렇게 하지 못해. 용신과 같이 능력이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의생신(意生身)을 이루고 있는 빛은 잘하면 정광명이 50%나 될까마는 50%도 안 돼. 이게 어떻게 영원히 살겠습니까? 이건 한계가 있는 거요. 이건 보신이 아니어요. 그리고 보신은 32상 80종호를 갖추고 있습니다. 보신은 그렇게 아름다운 거요. 의생신(意生身)은 그렇지 않습니다.

 

보신은 모든 착(着)이 떨어져 버렸고, 그러면서 지혜․자비․공덕 등 모든 것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일 거수 일 투족이 삼천위의 와 팔만세행(三千威儀 八萬細行)의 법도에 맞는 거예요. 우리 부처님은 그렇습니다. 삼천 가지가, 팔만 가지가 하나도 흠집이 없다 그거요. 그것을 삼천위의 팔만세행(三千威儀 八萬細行)이라고 그래요. 그 보신은 그런 거예요. 그런데 여기 밀교는 그렇지 않아요. 밀교에 대해서 쓴 소리를 하자면 이런 것을 지적하고 싶은데 지금까지 지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그것을 알아두어야 돼. 지금 밀교를 공부하려고 라마승한테 가서 귀의해가지고 공부한 한국 유학생들이 있어요.


그 다음에 도가에서 최고 수행법으로 알고 있는, 정말로 자랑하는 최고 수행법, 우리 불교의 보신에 해당한다고 해가지고 내놓은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체외신'이라고 있어요. 허공신, 양신 등은 똑같은 말인데, 이것을 이야기 하거든요. 그런데 이것도 아니어요. 이것은 수행자가 그 '체외신'을 만드는 과정이 있어요. 자기 뱃속에다가 10달 동안 기(氣)를 쏟아 부어서 만들어요. 그래가지고 10달 만에 애기 낳듯이 '체외신'을 내놓거든요. 그런데 그 '체외신'과 내가 어떻게 계합을 합니까? 계합하려면 내 영혼체가 그 '체외신'으로 들어가야 되는 거요. 거기에 그런 문제점도 있고, '체외신'이 아무리 청정하다고 해도 아라한의 청정도 아니어요. 아라한을 못간 분들의 수행자 기(氣)이어요. 그리해서 성을 낸다거나, 사음(邪淫)을 한다거나, 무엇을 죽인다거나 할 때에는 '체외신' 이라는, 소위 애기로 나와서 자라는 꼬마가 검정색으로 변해서 죽어버려요. 죽는 거예요. 도가에서도 앞에서 언급했듯이 사음(邪淫)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 '체외신'은 보신이 아니어요. 이걸 보신이라고 하면 큰일 납니다.


우리 영산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삼신은 확실합니다. 여러분, 이건 역사에 처음 있는 이야기입니다. 도가에서 이야기하는 양신, 그것은 아닙니다. 밀교의 의생신이나, 도가의 양신이나 똑같습니다. 그것은 별것 아닙니다. 여긴 퇴전할 수도 있고, 악도로도 갈 수 있습니다. 이건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기 뱃속으로 불러들이기도 하고, 밖에 내놓기도 하면서 관리를 하고 있는데 그거 아니어. 우리의 보신은 삼천대천세계의 부처님이 관리하시고, 삼천대천세계 부처님의 지혜로 만드시고, 시공을 초월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유․무를 초월한 '무아속 절대계'에서 자란 것입니다. 주소가 다릅니다. 몸 밖의 여기하고 틀립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자기들은 최고의 수행법이라고 하지만 다 그렇고 그래요. 앞에서 카발라 이야기도 했지만, 여기 우리 불교는 이렇게 위대한 거예요. 21세기 우주적 메타종교 신불교는 그렇습니다. 이것을 많은 사람들이 이해를 하고, 우리 영산불교의 사상을 배워 가면 좋겠어요.

 

그러나 선근이 적은지 신도도 지금...(적은 편입니다) 하기야 우리가 몇 십만이든지, 백 만이든지, 신도를 만들려면 사실 얼마 안가서 만들 수도 있어요. 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질적으로 봅니다. 질적인 것이 문제이지 양적인 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벌써 우리 교단에서 보살이 많이 나왔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나옵니다. 우리 스님들은 무루대아라한도 많아요. 지금 아라한도 많아요. 보살이 될 후보자도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에서도 지금 현재 무루대아라한이 나왔어요.


이제 품계를 인가하는 문제, 우리 부처님께서 그 행자의 품계를 인가하실 때에는 불안(佛眼,부처의 안목)으로 보셔서 합니다. 부처의 안목을 능가할 만한 지혜는 없어요. 아라한 수 천만 명을 합쳐도 부처님의 지혜를 당해내지 못합니다.《법화경》에 있지요. 관세음보살님 한 분의 가치가 62억 항하사 보살이어요. 62억 항하사 보살들에게 내가 죽을 때까지 음식․와구(침구.이불)․의복․의약을 보시한(시주한) 공덕하고, 한 때라도 관세음보살님의 성호(聖號,이름)를 부르고(외우고) 공양을 한 끼라도 해드린 것하고 똑같다고 했어요. (음식, 와구, 의복, 의약을   '사사'라고 합니다.) 관세음보살님은 무량겁 전에 불과를 이루셔가지고 보살도를 하시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부처님을 관세음보살님 하고 비교하면 또 어떻게 됩니까? 말로 할 수가 없어요. 그 부처님께서 우리 제자들 한 사람 한사람을 딱 관해가지고, 가령 ‘성중 27품이다’고 하면, 이건 완벽한 거예요. 전번에 우리 김인환 불자를 보고 ‘무루대아라한이다’라고 말씀하셨지요. 이건 완벽한 거예요.

 

그런데 현지사 밖의 지금의 승려들은 인가를 어떻게 하느냐? 인가를 하지요. 인가를 합니다. 내가 견성했다고 생각하면 스승한테 가거든. 공부 많이 한 큰 스승한테 갑니다. 이미 견성하고 보림도 다 끝났다는 스승한테 가서, 이제 격외로 문답을 합니다. 거기는 왜 격외라고 하느냐? 시공(時空)을 초월해 버렸기 때문에 거기는 분별이 없어요. 그러니까 격외로 할 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몇 번 딱 해가지고, ‘아! 저놈이 확실히 공부를 했네. 오! 공(空, I AM)을 확실히 체험을 했네.’ 그러면 인가해 주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도 불완전합니다. 전번에 내가 이야기 했듯이 그것은 불완전 한 거요.

 

그리고 공(空)체험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가 문제예요. 이후가 문제입니다. 스님이 강조하는데, 그 이후 자만해져가지고 여자를 범했다든지 하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과거 그 선사들의 행적이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쓴 소리를 한 거예요. ‘이뭣고’를 들어서 화두타파를 했거든 그 이후가 더 중요하다. 진짜 수행을 해야 된다. 이것을 충고해 주는 거예요. 이걸 충고해준 사람을 욕하면 안 되지요. 그러면 보림을 마칠 수 있고, 아라한이 될 수 있어요. 거기가 아라한인거예요. 보살은 아닌 거요. 절대로 보살은 아닌 거요. 앞에서 이야기 했지요. 보살은 아닌 거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로봇이 인간을 대신해서 수술도 하고 그러지요. 로봇이 수술을 잘 한답니다. 앞으로는 로봇이 전쟁도 대신해서 할 것이고, 대신해서 농사도 지을 것입니다. 그런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이렇듯 물질문명이 고도로 발달되고, 첨단으로 치닫고 있어요. 그런데 정신적으로는 어떠하냐? 아주 황폐화 되고 있어요. 썩어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돈을 최고로만 알고, 그 가치를 거기다가만 둡니다. 내면의 그 청정하고 적정(寂靜)한, 그 깊고 평화스러운 내면으로 내면으로 수행해서 들어가려 하지는 않고, 행복을 물질에서 구하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인간성이 말살 되었다’고 그럽니다. 이런 21세기를  어떤 사상이 구할 것이냐? 많은 학자들이 ‘불교사상이다’라고 그래요. 그건 맞습니다. 사실은 불교사상 뿐이어요. 다른 종교를 이야기해 줘야 되지만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불교사상 중에서도 학자에 따라서는 ‘화엄사상이다. 선사상(禪思想)이다. 무슨 연기사상(緣起思想)이다. 삼세업보 윤회사상이다.’고 하지만, 그건 모두 자력이어요. 그래서 ‘타력으로 오라’ 그거요. 타력, 거기에다가 염불(念佛)을 해야 돼. 염불도  '석가모니불'을 해야 돼. 최초 불(佛)이시고, 붓다의 붓다이시고, 붓다들의 스승이신 '석가모니불'을 염불해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 현지사에서 이야기 하는 현지사 사상 있잖아요. 효(孝), 지금 효를 몰라. 효를 할 줄 몰라요. 현지사에서는 효를 강조하잖아요. 나라를 사랑하고, 스승을 공경하고, 그리고 스님들 같으면 계율을 서릿발처럼 지키고, 여러분 같으면 인륜 도덕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스님들은 계율이 엄정해야 돼. 계율이 엄정하면 선정에 들어가는 거예요. 계율이 엄정하고 선정에 들어가는 스님이 하나 둘 셋도 안 돼. 이거 어쩔 일입니까? 그래서 이 세상도 구하고, 그 사람 사람의 영혼도 우리가 구제하고 하는 데는 ‘영산불교 현지사 사상이다’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해야 할 이야기는 많습니다. 정진이라고 하는, 육바라밀 중 '정진바라밀'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여러분! 오늘 처음 오신 분, 스님 말씀을 깊이깊이 음미해 보십시오. 스님 말씀이 틀리면 오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절대로 지옥․아귀․축생이 되면 안 됩니다. 이 좋은 몸 버리고 지옥을 간다? 짐승 몸이 된다? 앞에서 스님이 말씀을 드렸지요. 스님은 신심이 물러날 즈음 되면 그런 생각을 한다고요. 그런 생각을 떠올린다고요. 그러면서 발심을 하고 발심을 하고 그랬습니다.

 

우리 현지사를 사랑해 주시고, 한 달에 두 번 있는 법문은 꼭 참석해주시고, 현지사에서 기도를 붙인다 하면 기도도 하시고 그러십시오. 다른데 하고 틀립니다. 여러분, 천도재도 밥 한 끼 공양드리는 그러한 천도재를 왜 합니까? 부처님의 회상은 부처님이 주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가를 수배할 수 있는 거예요. 지옥 중생을 잡아오는 거요. 그 영악스러운 무주고혼도 잡아 오는 거요. 그것은 부처님의 가피 아니면 안 되는 거예요. 천도라는 건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 현지사의 천도재는 정말로 완벽하다.’는 것입니다.

 

거리를 다니다가 보면 손발이 다 끊어져서 앉은뱅이가 되어가지고 구걸하는 사람들을 보잖습니까? 여러분! 그런 운명, 그런 사람으로 다음 다음생의 미래세에 그런 처지로 이 세상에 안 나온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을 찾아야 됩니다. 간절하게 찾아야 돼. 업장소멸 해달라고 아주 간절히 발원을 해야 돼. 그러면서 신․구․의 삼업을 청정히 해야 돼. 깨끗이 살아야 됩니다. 그래야 부처님께서 정이 가서 살려 주려고 합니다. 못된 짓거리 하면 안 돼. 그래서 우리는 절대로 지옥․짐승이 되면 안 됩니다. 거기는 수명도 깁니다. 개로 한 생만 사는 것이 아니어요.

 

그리고 복(福)도 지어야 돼. 복을 지어야 돼. 복을 지어 놓으면 개로 태어나도 애완견으로 나옵니다. 애완견으로 나오는 거예요. 죄를 지어서 개로 나오지만, 복을 지어 놨기 때문에 애완견으로 오는 거예요. 그런데 그러지도 마. 그러지도 말고, 지옥․축생이 되면 절대로 안 돼. 그런데 이 세상 사람들 거의 다가 그리로 가더라고요. 거의다가 그곳으로 가니까, 큰스님은 이거 어떻게 됩니까? 이거 안타깝고 안됐어. 이거 큰일이어요. 그래서 법문을 해주고 법문을 해주고... 하지만 또 전생에 선근이 없으면 욕을 해. 그거 또 귀에 안 들어가. 그러니 어쩔 거요. 여러분! 오늘 많이 오셨지요? 고맙습니다.

 

스님 따라서 우리 석가모니부처님 존호를 칭명하겠습니다. 몸을 반듯이 하시고, 가능하면 자주 목욕 하시고, 몸도 청정히 ․ 주변도 깨끗이 청소하시고, 그리고 공부로 들어갑니다. 꼭 그렇게 해야 됩니다. 우리 석가모니불을 구창할 때에는 간절히 해야 됩니다. 간절히 해야 돼. 하루에 30분만해도 좋아. 그러나 시간이 있으면 석가모니불을 하시라고. 일할 때에도, 친구하고 이야기할 때에도, 마음속에서는 간절히 석가모니불을 청하면서(부르면서) ‘업장을 씻어주시고 소멸해 주옵소서.’라고 발원을 하시라고요. 업장을 씻어주시고 소멸해 줄 수 있는 분은 부처님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부처님께 모든 것을 다해서 귀의․귀명해야 됩니다.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고아일심귀명정례

 

 

 

작성자/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