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재만현 큰스님 법문 글/..법문 글 2007년

2006년 06월 08일 자재만현큰스님 부산현지사 정기법회

불제자 2009. 8. 24. 22:10

 

 

 

 

 

2006 6 8 부산현지사 정기법회

 

 

 

사랑하는 우리 현지사 부산 분원의 신도 여러분들 그동안 건강하시고 공부 잘하시고 또 스님이 항상 말씀하시는 선근공덕 좋은 일 많이 하시고 그렇습니까? 대답하시네. 꼭 그래야지요. 정말 그래야 됩니다. 우리 나머지 생을 우린 큰스님 지도 밑에서 공부 잘하고 좋은 일 많이 해서 절대로 삼악도에 떨어지면 안되고 우리는 하늘 저 높은 하늘 가능한 윤회를 벗어나는 그러한 축복을 받아야 됩니다 여러분. 대단히 그 작업은 그 공부는 어렵습니다. 어렵습니다. 여러분들이 뿌리가 단단히 뿌리를 내려야 됩니다 정법에. 안 그러고 이리 흔들 저리 흔들 하면 안됩니다.

 

수지교본을 가지고 전번에 첫번째 시간은 부처님에 대한 말씀을 해드렸고 이 부처님에 대한 이 법문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 중에서 불신관에 대한 법문은 역사 이후로 그 누구도 한 바도 없고 그래서 너무 너무도 중요하고 두번째 춘천현지사에서 삼법인설에 대해서 말씀을 하다가 중간에 끊어졌을 겁니다. 삼법인설. 삼법인설 중에서 제법무아인. 이 무아에 대한 이야기는 불교 교리에서 보면 대단히 깊은 교리입니다. 무아. 무아를 이해를 한다면 불교를 거의 이해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무아를 오늘 쉽게 쉽게 풀어서 말씀을 해 드리겠습니다. 무아.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이제 연기 연기설 중도설 불교의 연기설 요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로 지역장 팀장을 위해서 불교의 기초교리를 말해드리는 시간으로 하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팀장인 걸로 알고 또 팀장 아닌 분들은 예비 팀장으로 알고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가 이 고통을 받고 사는 것은 여러 형태의 고통을 받고 사는 것은 무지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무지하기 때문에요. 불교적인 용어로 말하면 무명을 듭니다. 무명. 우리가 자기의 본성을 모르고 깨닫지 못하고 그래서 이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 이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은 연기인데 연기법인데 그걸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각자 자기에 빠져서 가짜 자기에 사로잡혀서 탐욕과 집착을 일삼습니다. 그래서 온갖 업을 짖습니다. 그래해서 우리는 그 업의 과보를 받습니다. 고통이라는. 윤회라는. 이 세상 모든 법은 현상세계의 모든 법은 다 인연으로 말미암아서 모였다가 인연이 다하면 흩어집니다. 거기에 그 무슨 나라고 할 만한 내세울만한 실제가 없다고 하는 것이 불교의 사상이랍니다. 우리는 우리는 부모의 인연을 빌어서 뼈 피 그리고 따뜻한 기운 그리고 호흡과 같은 여러 원소가 어울려가지고 이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무엇을 나라고 할 것인가 합니다 불교에서는요. 무아를 지금 이야기 할려고 하는 거요. 무아. 조금 설명이 조금 쉽게 한다 하더라도 하지만 어려울 겁니다 여러분. 아무래도 무아라고 하는 것은 지금 많은 대승불교학자들이 내가 볼 때는 잘못 알고 있다 싶어서 오늘 쉽게 그걸 지적해 드리겠습니다. 무아를 제대로 알면은 불교를 안다 그럴 정도입니다. 무아.

 

지난 시간에는 제행무상 제행무상인 제행무상을 이야기 했습니다. 모든 것은 변한다 그거요.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는 거에요. 그러니 모든 것 자 여러분 여러분을 대상으로 해서 있는 저 대상 세계 그 모든 것 하나 하나 전부 항상 변화한다 그거요. 여러분 그거 알으셔요. 그러니 나도 변해 보는 나도 변화해 시시각각으로 그래서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모든 것을 그러한 시각에서 봐라. 그런 인식을 가져라. 그렇게 생각을 해라 그거요. 근데 세상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않습니다. 이렇게 불교의 교리를 말씀해 드릴 때는 들을 때는 아 그런가 싶다가도 그냥 내 마음속에 내 마음 속에 자리한 탐욕과 집착 요런 것 때문에 그렇게 생각 안해요 이제 집에 가서는 집에 가서는. 여기서 나갈 때부터 그렇게 생각 안해요. 야 저 남자 정말 예쁘다 야 저 여자 정말 예쁘네. 그래가지고 마음이 가요. 마음이 가면 어떻게 됩니까. 정이 흐릅니다 정이 흐르면 집착이라는 것이 생겨. 또 보고 싶고 요것은 다 망령된 것이다 하는 것이 제행무상이다 그거요. 망령된 것이 하나도 하나도 항상 영원한 것은 없어. 항상한 것은 없어.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어. 이게 제행무상입니다. 그래서 부디부디 내 자신부터 ing로 항상 무상관을 세워서 대상을 보라 그거요. 항상 현재 진행형. 전부 전부 태어난 것은 늙고 병들고 죽어가. 이 세상에 난 것은 전부 어느 일정기간 있었다가 파괴되어서 없어져버려. 또 새로운 것이 또 생겨나. 항상 진행형입니다. 나면 죽습니다 그렇게. 제행무상은 그렇고.

 

제법무아. 제법무아. 거기다 인을 붙여줘 버린 것은 이것은 움직일 수 없는 진리다 그 말이요. 제법무아 모든 것은 모든 것은 나라는 것이 없다. 아까도 말씀을 드렸지만 모든 것은 인연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모든 것은 인연소생이라고 그래요 인연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영원한 종자 실체라는 것은 없다. 좀 어려운 말이지요.

 

조금 어려운 이 교리 책자를 보면은 고정된 불변하는 실체는 없다 그럽니다. 이 무아를요. 고정된 탁 정해져 버린 고정된 불변 변화하지 않는 알맹이 실체는 없다 하는 것이 무아의 제법무아의 해석입니다. , 가난뱅이가 있지요. 가난한 사람은요 영원히 가난하다는 말 가난하다는 것이 아니어요 가난할 수가 없는 거요. 또 부자도 영원한 부자가 없는 거요. 부자라고 하는 종자가 있는 것이 아니요. 항상 변화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은 부자가 될 수 있고 부자는 또 가난해질 수가 있어요. 그래서 이것을 재불삼대라고 하지요 재불삼대 재산은 삼대를 못 내려간다 그거요. 또 권력도 그래요 명예도 그래요 그래서 권불십년 권불십년이라고 있어. 권세는 십년을 못 간다. 권불십년. 또 꽃도 그래요 꽃도 화무십일홍이라고 그래요 꽃도 영원히 피어있으면 오직 좋아 근데 안그래 열흘을 갈 수 없어 모든 것은 그래. 또 여러분 남자는요 항상 남자인가? 삼세를 두고 볼 때 안 그래요. 전생에 여자가 남자로도 오고 금생에 남자가 다음생에 여자로도 가고 얼마든지 그럽니다. 여러분 자기가 지은 업에 따라서 자기가 지은 연에 따라서 달라요. 그래서 항상 변하지 않는 고정된 실체가 없다 하는 것이 제법무아의 설명입니다. 그래서 이 경전에는 참 유명한 경전이 있지요 사십이장경이라고 사십이장경의 한 귀절에 있습니다 이 말이요. “도를 닦는 자는 항상 자기 몸을 연구해 보아라. 자기 몸뚱이를 연구해 보아라. 육신은 흙과 물과 불과 바람의 기운 이 네가지의 합한 것이다. 이 네 가지가 미구에 흩어질 날이 있으리니 실상은 나라는 것이 없고 이 몸뚱이는 실로 물 위에 거품과 같은 것이니라그랬어.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제법무아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 그런데요. 이 제법무아인 무아라는 말이 대단히 깊은 의미 있어가지고 이 소위 불교학자들이요 대승불교학자들이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하는 학자들이요 무아를 잘못 해석하고 있더라고요 내가 볼 때요. 그래서 이게 문제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 유식계 학자들은 안 그러는데 중간계통의 학자들이 있습니다. 중간 유식이 나오는데 이걸 여러분들한테 설명해 줄 순 없고 대충 자 중간계의 대승불교학자들은 다분히 무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은 우리 모든 중생에게는 불성이 있다고 하지요. 그 말 많이 들었을 겁니다. 불성이 있다. 그런데 고 있다 까지도 꼬투리 잡아요. 있다 까지도. 이것은 있다라고 하는 것은 어떤 실체가 있다고 하는 것은 이것은 불교의 명제인 무아설에 배치된다 그거요. 그래서 저기 바라문교의 아뚜만 사상과 같지 다를 게 뭐냐 하고 요렇게 꼬집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상이 여래장사상이라고 하는 사상이 있는데 여래장사상은 불교 아니라고 합니다. 그 사람들은요. 그래서 내가 그 사람들한테 질문을 던집니다.

 

, 무아라 하자. 그러면 부처님이 대반열반하시면 부처님 죽음은 대반열반이라고 합니다 대반열반. 대반열반하면 부처님의 몸뚱이도 부처님의 응신도 다 부처님 진짜가 아니고 가짜요. 그러면 요것이 다 공이니까 공이고 또 근원자리로 되돌아간다고 하면 부처님이 대반열반하면 본래의 자리 혹은 적멸 그것과 하나로 계합한다고 하거든요. 자 계합한다고 합시다. 그럼 다시 몸 받아 올 때 부처님이 다시 몸 받아올 때에 그 무엇이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느냐 그것이요 그 무엇. 그 사람들은 설명 못해버려요 인자. 요렇게 질문하면. 부처님이 불과를 이루어서 우주가 하나가 되가지고 대반열반에 들 때는 그 공과 그 적멸과 하나가 되어버린다고 하면 다음 세상 중생을 제도할 때 오시기도 하거든요. 부처님들이 오십니다. 오실 때는 업이 없으니까 업이 없으니까 그 태어날 국토와 시대와 부모와 모든 것을 모든 것을 정해가지고 내려오시거든요. 업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한 왕궁으로 오신다고요. 왕족으로요 왕족으로. 그렇게 몸 받아 오신다고요. 그렇게 오시는데 자 중간계의 대승불교학자들이 또 선불교 너희들이 무아를 이야기 할 때에 실체가 나라고 하는 실체가 없다고 해버리면 나가 없다고 말하면 부처님은 불과를 이루셔가지고 적멸로 적멸로 돌아가서 계합이 되어버렸으니 다음에 중생제도 하러 오실 적에는 그 무엇이 생각하고 결정하고 판단하고 뜻을 일으켜서 오시냐 그거요. 그 무엇은 뭐냐 그거요 그 무엇은. 너희들이 말할 때 너희들의 말대로 한다면 올 수가 없지 공이 되어버렸으니까 완전 공이 되어버렸으니까 근데 오시거든요.

 

그 다음 너희들은 도대체 육도윤회를 인정하는 것이냐. 인정 못하는 것이냐. 육도윤회를 인정한다면 윤회의 주체를 생각해야 되요. 윤회의 주체가 있어야 육도 윤회를 해. 윤회의 주체가. 근데 주체를 부정해버리는 너희들 그러면 무엇이 윤회를 하느냐 그거요. 윤회의 주체를 인정 못한다면 무엇이 있어서 윤회를 하느냐 그것이요. 그 개체 기본이 되는 몸뚱이 개체가 뭐냐 그거요. 개체까지도 너희들은 부정하는데 그러면 어떻게 중생이 윤회를 하느냐 그것이요. 대단히 대단한 문제입니다 이것은요. 또 그들은 지옥 극락 귀신 영혼까지도 부인을 하는데 그렇다면 그렇다면은 무엇 때문에 승려가 되고 불공은 부처라고 하는 실체가 없으니 없는데 너희들 말 따르자면 불공은 뭣 때문에 드리고 천도재는 뭣 때문에 너희들은 하고 이건 완전 허무주의 아니냐. 이렇게 묻습니다. 그런 그들도 가끔 부처님 이야기를 하고 그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 그들의 코드에 맞지 않는 법문을 하면 저 사람은 불교도가 아니다 천마에 섭했다 마경에 빠졌다고 하는데 그러면 마 천마 요것은 실체가 아닌가? 엄연한 실체지요. 도대체 실체가 없다고 부정하는 너희들 천마는 또 무슨 말이냐. 다시 묻지만 부처님은 물론 깨달아서 증한 성자들 큰 스님들 참 드물지만 그분들이 반열반에 들 때 인자 그분들이 죽으면 반열반이라고 합니다. 그분들도 신문을 탁 보면 적멸과 비로소 이제 계합을 하셨다 요렇게 하거든요 적멸과. 과연 적멸과 계합했다고 보느냐. 아무리 큰스님이고 확철대오했다 하더라도 내가 보기에는 억겁의 업장이 완전히 소멸된 것도 아니고 또 탐진치 백팔번뇌가 완전히 없어져버린 것도 아니고 완전히 소멸되고 완전 없어지고 다생의 습도 기도 완전히 없어져버려야 소멸되어야 거기가 붓다인데 붓다인데 그 사람들은 붓다도 아니거든. 그러한 큰스님들 그러한 큰스님들이 죽으면 어디로 가느냐 그것이요. 그 사람들은 또 어디로 가느냐 그것이요.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대답을 못합니다. 내가 없다면 무아라는 것은요 없을 무자 나 아자 거든요. 내가 없다 그 말이에요. 나라고하는 실체가 없다 그거요. 자 나라고 하는 실체가 없다 철저히 무아 입장에서 보는 그 학자들 내지 스님들 들어봐라 하고 대답해봐라하고 물었는데 내가 없다면 여러분 내가 없다면 어찌되겠습니까 내가 없다면. 이것은요 종교도 아니고 이것은 아무 가치가 없는 거에요. 우리는 따를 필요가 없어요 이것은. 내가 없다고 완전히 나가 없다고 나를 부정해버린다고 하면은 이건 아니요. 우리는 희망도 없고 노력할 필요도 없는 것이요. 또 승려가 될 필요도 없는 것이요. 모두가 무고 허무인데 뭣 때문에 승려가 됩니까. 나라고 하는 실체가 완전히 실체가 완전히 깡그리 부정해 버린다면 그건 모순이다 그거요. 지금. 이 세상 정의 도덕 용기라고 하는 미덕 사랑 자비 뭐 지혜 강조할 이유가 없어. 내가 없다면. 보람도 가치도 주장할 근거가 없어. 효도도 염불도 모두가 필요 없어. 무엇을 위한 삶이기에 필요가 없어. 안 그럽니까?

 

나는 그렇게 보거든요. 나가 없는 거 아닙니다. 무아라고 해서 나가 없는 거 아닙니다. 유식학파에서는 유식정 법상전이라고 하지요. 유식학파에서는 아라야식(阿羅耶識)을 인정합니다. 잘 본겁니다. 나가 없는거 아니요. 불교이전에 바라문교 힌두교 지금. 힌두교에서는 윤회의 주체를 인정합니다. 아뚜만이라고 합니다. 아뚜만. 자아. 그리고 그 당시 불교와 자이나교 불교와 힌두교 바라문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자이나교가 있습니다. 자이나교. 사상적으로 대단히 깊습니다. 완전 무소유를 주장하고 또 거리를 활보할 때도 완전히 나체로 다니는 고도승이 있습니다. 거 자이나교입니다. 이 자이나교에서도 윤회의 주체를 인정을 했습니다. 영혼의 업이 부착된 일종의 신체 곧 업신 업신이 있어서 새로운 삶을 이렇게 자꾸 이어간다고 했습니다. 요게요 일리 있는 말인 거요. 근데 대승불교학자들은 그걸 외도설이라고 합니다. 그걸 외도설이라고 하거든. 아니어요. 여기에 일리가 있어요. 요말은 맞는 거요. 맞는데 맞는데 내가 볼 때는 여기다가 조금 더 추가하면 좋겠다 그거요. 추가돼야 쓰겠다. 한걸음 더 나갔으면 쓰겠다 하는 거요. 지금 힌두교 신자들이 십억이 됩니다. 대단합니다. 그 철학은 대단히 오묘합니다. 그 힌두교처럼 포용력이 있는 종교는 없습니다. 그걸 함부로 그걸 깡그리 폄하한다는 것은 너무한거요. 자기들 눈도 못 떠놓고 눈떠보니까 이건 일리가 있어. 요말은 맞어요. 그러나 불교의 무아. 더 깊은 의미가 있지요. , 내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조금 어려운 말입니다. 비 본질적인 것 비본질적인 것 그 뭐냐하면은 업장 탐욕 습 기 요런 것들이 더덕더덕 나한테 붙어있어. 나한테 붙어있어. 그 나를 부정한거요. 그 존재를 부정한건 아니요. 그 나는 윤회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찌거기를 빼버리라 그거요. 찌거기를 빼버려요. 찌거기를 다 빼버리고 남는 것이 있다 그거요. 요것은 요것은 스님이 이야기하는 아라한이요 보살이요 붓다입니다. 부처님은 부처님은 완전히 그 찌거기가 다 빠져버린 거에요. 찌거기가. 전번에도 스님이 이야기 했나요. 아라한에서 붓다가 되는 데는 얼마만한 많은 찌꺼기가 씻어져 내려가야 된다고 스님이 아마 드럼어통 이야기를 했을거요. 열드럼어도 더 된다고 찌거지가. 검은물 먹물 수행하면 그것이 빠져나간다고요. 그래서 그것이 다 빠져나고 다 빠져나가고 다 빠져나가고 해서 하면은 청정한 나 자신을 얻습니다. 청정한 나 자신. 청정한 그 경계로 들어가면은 어떠한 경계를 맞이해도 흔들림이 없어. 아무리 절세미인이 아무리 유혹해도 흔들림이 없는 거요. 자유로운거요.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운거요 내가. 또 아무리 화가 날 그런 경계를 당해도 화가 안 나는 거요. 이 정도로 이 정도로 청정해져 가야 거기가 아라한이라고 합니다. 아라한. 근데 아라한이 더 인제 생을 바꾸어서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기 위해서 다시 인신을 받아 온다고 했잖아요. 그릇을 키워옵니다 그때에는. 그래서 두타행을 하고 보살행을 하고 잘 수행하면은 그 찌꺼기가 더 빠진다고요 더 빠져. 빠지고 빠지고 씻어지고 씻어지고 정화되고 정화되고 하면은 보살정도 가면은 몸에서 광휘가 난다고요. 이 몸뚱이가 아닙니다. 이 몸뚱이도요 이 진아 명상을 많이 한 사람들은 큰스님에게서 나가는 것을 좀 볼 겁니다. 보살정도 되면은 그 영체가 영혼체가 빛을 띄고 있습니다. 아주 현란한 빛을 띄고 있구요. 그 정도로 청정해지면 또 더 찌꺼기가 더 억겁의 억억겁의 나유타겁동안의 모든 업과 번뇌와 습과 기 등등이 전부 씻어져 내려가버리면 빛을 발하는 것이요 빛을 발해. 청정한 몸이 아니라 인제 빛을 발하는 거요. 어떻게 청정하든지. 더 나가면 빛덩어리가 된다고 했잖아요 스님이. 그 정도 돼가면은 완전히 생사해탈이 되고 자재해 버립니다. 붓다가 되면은 대자유를 얻는다는 것 대열반을 얻는다는 것. 완전히 생사에서 자재한다는 것. 억 미래제가 다하도록 자기 원을 따라서 언제라도 나고 죽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부처의 경계만이 가능하다는 것. 왜그러냐 하면은 삼신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그런다는 것. 불과를 이루면 이걸 화신이라고 합니다 화신. 저기 절대세계 보신이라고 했거든요 빛으로 이루어진 빛의 존재 보신. 원만보신. 불신을 둔다고 했지요. 무량광으로 이루어진 불신을 둔다 그랬습니다. 스님이 이건 아까도 모두에 말씀을 드렸지만 이건 정말로 깊은 이야기입니다. 그 보신은 대단히 능력이 무량합니다. 무한합니다. 우주자체인 빛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우주적인 능력을 행사한다고요. 우주적인 능력을. 그래서 이 몸뚱이도 여러분 둘로도 나투지 못하잖아요. 그렇지만은 저 불신은 백천만억으로도 나툴 수 있습니다 동시에. 그리고 신통도 항하사수 신통을 할 수 있는거요. 일체 자재할 수 있는거요 저 붓다는요. 그 붓다로 존재까지 부인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

 

제법무아 에 대해서 더 이해를 돕기 위해서 스님이 그 동안에 천도제도 많이 하고 직접 주관도 하고 했기 때문에 그 사람들한테 요런 말을 던집니다. 그 사람들은요 그 명부 들어간다는 말을 이해 못합니다. 경전에 없어요. 중유라고만 있어요. 중유. 가운데중 이슬유 중유. 오백년 천년 정도 죽은지 죽은지 오백년 천년도 명부에 못 들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번 죽어버리면요. 노비로 살다 자살한 총각을 한 칠팔백년전 노비로 살다가 죽은 총각. 여전히 그 중유 시간은 중음시간은 정지가 됩니다. 정지가 돼. 그러니까 죽을 때 그 모습 그 얼굴 그 생각입니다. 그래서 대화도 가능합니다. 그 불러가지고 대화도 가능해. 너는 어떻게 살다가 죽은 사람이냐 나는 저는 평생 노비로 살았습니다 해서 알지요. 노비로 살다 죽은 총각하고 자살해 죽은 총각하고 스님이 그 영가들을 이렇게 쭉 불러갈 때 여러분 아마 여러분 집안 천도하신 분들은 여러분 윗대 집안에 무주고혼으로 아직도 명부에 못 들어간 분들 스님이 불러주었을 걸요. 요것은 부처님께서 그 장면을 보여주십니다. 여러분 아버지 쪽 가령 요정도는 천도해 주어라. 요 일곱명 열명 다섯명 정도는 천도해 주어라 해가지고 딱 보여주는데 노비로 자살한 총각을 보여준다고요. 그 자살한 장면을요. 부처님의 능력이 무한하다니까요. 여러분 상상도 할 수 없다니깐. 근데 부처 이야기하면은 외도라고 하고 사이비라고 합니다. 무아인데. 그래서 지금 말하는 거요. 둘째 산에서 나무해 지고 오다 나뭇짐지고 오다가 쭉 미끌어져 가지고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은 아저씨가 있더라고요. 한 오백년전에. 그대로 그 장면을 부처님이 보여주신다 말이요. 통천해서. 그러면 받아 쓰는거요 인자. 아 받아 쓰는거요. 요건 구체적으로 알 수가 있어. 몇 대조인지도 알 수 있고 이 총각 이 아저씨보다 당신 몇 살 때 죽었소 하면 나는 32살 때 죽었습니다. 다 말을 한단 말이에요. 태풍으로 집이 무너져 압사한 일가족 5명 부모 그리고 애들 나온다 말이야. 한 몇 백 년 전에 죽어가지고 지금도 그 죽음 명부 들지 못하고 배가 고프고 춥기 때문에 그들의 관심은 배가 고프고 춥고 요것 해결하는 것 밖에 없어요. 그들 관심은요. 그러니까 그 이후 상상해보세요 인제. 태풍으로 집이 무너져 압사한 일가족 5명 남편이 매질에 남편의 매질에 못 이겨 약 먹고 자살한 여자 그대로 자살한 장면을 보여준단 말이야. 소 발길에 치여서 죽은 농부. 낚시질하다 실수로 물에 빠져 죽은 50대 남자. 치매로 집 나가 웅덩이에 빠져 죽은 여자. 자 영혼이 없다는데 영혼이 없다고 하는데 경전만 연구해 가지고 학자네 하고 이거 알 턱이 없지요. 알 수가 없지요. 벼락맞아 죽은 할아버지. 짚불에 타 죽은 부자 아부지 아들. 심장마비로 죽은 남자. 무당으로 살다 죽은 50대 여자. 신주단지 모셔놓고 빌며 살다 죽은 할머니. 아기 낳다 난산으로 죽은 25세 여인과 갓 태어난 애. 약 먹고 자살한 아저씨. 정신이상이 되어 자살한 20대 여자. 군에 가서 생매장 당해죽은 총각 50년 전에. 가설무대에서 노래 부르다 병들어 객사한 남자. 집 나가 떠돌다 목매 자살한 남자 개가된 남자. 자 축생으로도 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축생을 먼저 가는 사람도 있어요. 심장마비로 물속에서 죽은 남자. 간질병으로 결혼 못하고 죽은 여자. 중풍으로 살다 자살한 아주머니. 열병으로 죽은 5살 먹은 동자. 강간당하고 목 졸려 죽은 여자. 길에서 피살 당한 남자. 간경화로 죽은 남자. 교통사고로 죽은 아주머니.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자살한 남자. 백혈병 앓다 죽은 남자. 문둥병으로 살다 죽은 여자. 많은 무주고혼들을 접합니다. 접하면 그 사람들이 한결같이 자기들은 저 세상이 없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여전히 있다는 거에요. 그런데 그 무주고혼들은 살았을 때 모습 그대로입니다. 4번 영체니까. 스님이 이야기하는 영체 이 법문 영체에 대한 법문 아직 안 했습니다. 1,2,3,4번이 있다 했습니다. 요것은 바라문교에서 이야기는 아뚜만이나 또 자이나교에서 이야기하는 그 업신이나 같은 개념으로 봐도 좋습니다. 나는 그 사람들의 업신 아뚜만 사상을 인정해 줍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가야 됩니다. 그런데 이걸 깡그리 부인해버리고 무아 무아가 불교인양 부처님의 가르침인양 무아를 잘못 해석하면 중 될 필요도 없다니까요. 여러분 불교 믿을 필요도 없어. 뭣 때문에 불교 믿고 착하게 살고 뭐해. 적당히 살아야지요. 아무것도 없다고 하면은. 여러분 아무것도 없다고 하면 그것이 말이 됩니까. 이건 말이 안 되는 것이요.

 

그래서 스님이 이 무아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 했습니다. 그 다음 그래서 스님은 사람들은 나의 것이라고 나라고 집착하는 요 병 때문에 탐욕 집착 때문에 근심하고 고통하는 것이니 집착 탐욕 요런 것을 털어버려야 하는 의미에서 무아를 말씀하신 것이요. 실천 수행하는 하나의 하라고 하는 권하는 그러한 방편으로 무아를 말씀한 것이요. 자기의 더러움을 털어 버려라는 의미에서. 나라는 나라고 하는 주체까지도 부정해버리라는 무아가 아니다 그거요. 이기적이고 수화적인 이기적이고 수화적인 것을 털어버려라 하는 의미에서 무아를 말씀하신거요. 그래서 무아가 아니고 비아가 맞는거요. 아닐비자 있어 아닐비 나아. 비아가 맞어. 그것은 욕심과 나와 피와살이 되어버렸어. 고러한 고것을 부정한거요. 고로면 안돼. 고 윤회하니까 그렇게 됩니다. 거기서 모든 탐진치 삼독 요 교만 또 의심 백팔번뇌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업을 지은 그 업장 또 습 기 요런 것을 전부 닦아서 닦아서 씻어내 버리라는 의미에요. 그러니까 고 붙어있는 고것은 비아라고해요 비아. 요것은 참 나가 아니지. 비아다 그거요. 비아다. 근데 그냥 송두리째 무아 해버리면 안 된다 그거지.

 

그 다음에 이 현상세계의 진리로는요 세번째는요 일체개고라고 합니다. 일체개고인 그럽니다. 일체개고인. 요것은 여러분들이 나보다 더 잘 압니다. 모든 것은 괴롭다 그거요. 전부 고통 괴로움 여러분 세상 살만 합디까? 대부분 아이쿠 지겹습니다 그럽니다. 그건 고통스럽다 그거요. 그걸 일체개고인 그럽니다. 무상하기 때문에 그런 거요. 무상하기 때문에 고통이 오는 거요. 왜 무상을 무상으로 봐야 되는데 집착 탐욕이 있어 보거든. 우리 남편은 저 아름다운 얼굴을 백년 천년 간직할 줄 알아. 천년 만년 살 줄 알아. 무상을 무상으로 봐야지 그렇게 보면 안되지. 그래서 고통이 오는 거요. 죽는 것도 고통이고 또 이별도 고통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또 그런데 그 원수진 원수진 사람하고 외나무 다리에서 만날 때도 있데요. 거 고통스러운 거에요 이거. 고통스러운 거요. 좋은 이야기도 많은데 어찌 또 오늘 교리시간이니까.

 

그 다음에 열반적정인이 있습니다 네번째로. 열반적정인. 그래서 이 일체개고인을 빼서 열반적정인을 넣어서 삼법인라고도 하고 일체개고인까지 넣어서 사법인이라고도 합니다. 스님이 지금 이야기 하는 것은 이 현상 세계의 진리를 크게 이렇게 묶어가지고 진리를 이야기 한 겁니다. 열반적정인 요말은 도대체 무슨 말이오. 요걸 교리책을 보면 참 뭐가 뭔지 모르게 써놨거든. 이거는 뭐 참 어려운 용어로 해놨는데 그걸 아무리 읽어봐도 안 닿을 거에요. 스님이 아주 쉽게 말씀해줄께요. 수행을 합니다 우리가 수행을 해. 자 우리 현지사는 부처님에 대한 이 믿음을 강조하면서 그리고 수행법도 역사에 없는 칭명염불 수행법인데, 역사도 있지요 칭명염불 수행법이 있습니다만 그 수행법하고 완전히 상당히 다릅니다. 경전 읽고 또 다라니 하고 그리고 염불을 칭명염불하되 하되 오늘 좀 조금 이야기 해야되겠어 요부분에 대해서.

 

요렇게 해야됩니다. , 반가부좌한 것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여러분 반가부좌 한번 해보세요. 반가부좌 아시죠. 왼쪽 발을 오른쪽 무릎 위에 얹어놔. 왼쪽 발을 오른쪽 무릎 위에 얹어놔. 그리고 똑바로 이렇게 앉는 거요. 이걸 반가부좌입니다. 반가부좌법입니다. 허리가 허리뼈가 다 반듯해야 돼. 선을 참선을 많이 한 사람은 반듯해 집니다. 우린 요렇게 죽어도 못하는데 우리 여자분들 참 어떻게 앉드만. 반듯하게 반듯하게 앉아야 마음이 정직합니다. 요 그릇이니까. 아셨죠. 아랫배에다가 약간 힘을 실어주십시오. 요게 중요합니다. 아랫배에 다가 약간 힘을 실어주십시오. 왜그러냐 하면은 염불할 때에 자꾸 염불하기 때문에 열이 상기가 됩니다. 기가 상기가 됩니다. 그럼 머리가 아퍼. 두통이 와. 그러니까 고걸 막아 줄려고 그래요. 아랫배에다 힘을 넌지시 주면 주면 이렇게 됩니다. 물기운이 올라갑니다. 불의 기운이 내려가고요. 그래서 아랫배에 힘을 넌지시 주라는 거에요. 그런데 여러분 불은 어쩌지요 불은 불은 밑에서 위로 올라가지요 불꽃이 근데 여기다 단전에다가 아랫배 단전에다가 힘을 넌지시 주면 반대가 되어요. 불이 불의 기운이 이렇게 올라가버리면 큰일나지 인제. 안그럽니까. 여러분 평상 그렇게 올라고 있어요 불의 기운이. 앉아서 이렇게 단전에 다가 힘을 실어주면 반대가 됩니다. 수승화강이라고 그래요 요말을. 물의 기운은 물의 기운은 올라가. 물은 어쩝니까 위에서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 이치지요. 근데 반대가 된다니깐요. 그래서 물의 기운이 위로 올라가지요. 불의 기운은 밑으로 내려가지요. 반대가 되지요. 그러면 건강에 좋은 거요. 그대로 그대로 우리가 평상시처럼 살면은요 불의 기운이 항상 위로 위로 올라갑니다. 그러면 모든 중요한 장기가 다 요쪽 위에 쪽에 있는데요 다 장기를 태운다고요. 장기를. 그러겄죠. 그래서 물의 기운이 위로 올라가서 씻어주어야 돼. 식혀주어야 돼. 또 불의 기운은 밑으로 그냥 내려줘 버려야 돼. 올려주면 다 망가뜨리니까. 알았습니까. 그래서 수승화강을 시켜주어야 돼. 그러니까 그러려면은 단전에다가 힘을 실어주어야 돼. 그래서 여기다가 넌지시 힘을 실어줄 것. 둘째 그 단전에다가 정신을 모으라고 하는데 이것은 아니라는 것. 전번에 어느 스님을 여그다 놔뒀더니 거 엉터리로 가르쳐 주었다고 자기가 도인인척. 요 큰일 날일이지요. 거기다가 정신을 모아주면 큰일나는 것이요. , 정신을 어떻게 해라고 했지. 두 눈을 한 점에다 고정해서 고정. 공부를 여러분 잘했다고 대답했는데 그랬는지 모르겠어. 눈높이에 다가 점을 하나 딱 찍어가지고 고정시키라고 했지요. 얼마만큼 잘 고정을 했느냐 이게 요체입니다. 여러분 고정을 했으면 깜빡거리지도 않는다 그말이에요. 그렇게 해보니까 어떻게 되지요? 눈물 콧물이 막 나오지요. 절대 닦지마라 그거요 거기다도 정신을 팔리지 마라 그거요. 거기를 두 눈을 고정하고 정신을 여기다 단전에다 놔 둘 여지가 없는거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요. 오직 그 점에다가 고정해서 뚫어보고 그러나 망상 피우는 요놈이 있어 또. 요놈이 요 하나로 묶어지면 좋은데 여러분 공부해 보면 공부해보면은 일분 이분 오분가면 어떻습디까 망상을 피우는 놈이 있어. 망상. 그걸 마실다니는 놈 그래. 마실 마을을 마실 마실다니는 놈 그래. 그 망상피우는 놈 고놈으로 하여금 공부감을 주어야되는 것이오. 왜그러느냐. 중생은 마음을 이 생각을 하나로 모아야 되는데 공부가 잘되는 사람은요 집중이 잘됩니다. 집중이 여러분 잘 됩디까? 안돼. 이거 안돼. 참선해본 사람 잘 알아. 어머니 옛날로 가가지고 젖 먹을 때까지도 생각해 별생각 다해요. 요것이 돌아다니면서. 하나로 안 모아져. 하나로 모아지면 다 도통했게. 안그라우. 그래서 차라리 둘로 쪼개져 버린 거요. 알았소. 그래서 요놈한테 공부감을 주어버린 거요. 공부감을 인제 주면 요놈은 돌아다니길 좋아하는데 공부시킴 잘 안 듣는다고요 참 말 안 듣소. 그러나 공부감을 주어서 공부하도록 하시오. 자 부처님공부는 석가모니불을 칭명을 하되 금강반야바라밀을 꼭 부르도록 했습니다. 요 마실다니는 놈한테. 그것도 똑같이 해야지 석가모니불 하고 쉴 때 금강반야바라밀 요런 분들도 있어요. 요런 분들도 있는데 고건 아니라는 것. 동시에 하라는 것. 그래서 이 염불수행이 하근기가 하는 것이 아니고 정말 상근기가 하는 공부가 여기 현지사 염불 수행법입니다. 그래서 금강반야바라밀을 요놈이 잘 돌리면은요. 염불을 하고 여기서는 금강반야바라밀을 잘 돌리면 여러 가지 이익이 있습니다 여러분한테. 그래서 시켜 준거요. 여러분한테 여러 가지 이익이 있다는 것을 이제 스님이 말도 했을 텐데 시간이 다가가버렸네. 그렇게 하는데 요 이 마실다니는 놈이 인제 금강반야바라밀을 잘 하게 되면 또 한단계 또 가르쳐 줄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자 그 후에 딱 모아가지고 쭉 밀고 들어가는 거에요. 비로소 모아져요. 밀고 들어간다고 그러면 옅은 삼매로부터 들어가게 됩니다. 옅은 삼매로만 여러분이 들어가도 내가 볼 때는 수다원과 이상으로 보니까 수다원과만 여러분이 증해도 성중하늘 하품으로 가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제 진절머리나는 인간세상 안 올 수가 있다고요. 열반적정인은 이 다음시간에 합시다.

 

 

* 제법무아

모든 것은 모든 것은 나라는 것이 없다. 모든 것은 인연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모든 것은 인연소생이라고 그래요 인연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영원한 종자 실체라는 것은 없다.

“도를 닦는 자는 항상 자기 몸을 연구해 보아라. 자기 몸뚱이를 연구해 보아라. 육신은 흙과 물과 불과 바람의 기운 이 네가지의 합한 것이다. 이 네 가지가 미구에 흩어질 날이 있으리니 실상은 나라는 것이 없고 이 몸뚱이는 실로 물 위에 거품과 같은 것이니라”  -사십이장경-

무아

내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조금 어려운 말입니다. 비 본질적인 것 비본질적인 것 그 뭐냐하면은 업장 탐욕 습 기 요런 것들이 더덕더덕 나한테 붙어있어. 나한테 붙어있어. 그 나를 부정한거요. 그 존재를 부정한건 아니요. 사람들은 나의 것이라고 나라고 집착하는 요 병 때문에 탐욕 집착 때문에 근심하고 고통하는 것이니 집착 탐욕 요런 것을 털어버려야 하는 의미에서 무아를 말씀하신 것이요. 실천 수행하는 하나의 하라고 하는 권하는 그러한 방편으로 무아를 말씀한 것이요. 자기의 더러움을 털어 버려라는 의미에서.

 

* 일체개고인

모든 것은 괴롭다.

 

  

 

출처 : 현사모 네이버 카페

작성 : 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