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사의 불서/붓다의메시지존평

선 불교의 한계

불제자 2009. 8. 16. 17:33

 

 

 

 

 

 

선 불교의 한계

 

 

 

선 불교에서는 인연을 멸하여 생각의 생멸까지 쉬게 하

는 것을 수행의 요체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의

생멸을 그치게 하는 것은 큰스님께서 말씀하신 바 아라한위나

잘해야 보살위에 지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더욱 아쉬운 사실

은 오늘날의 간화선 수행법으로는 아라한 이상으로 높이 올라

갈 수 없는 것이 현실적인 수행자들의 실정임을 여실지견으로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화두선은 자력으로 자신을 구원해 나가는 수행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화두선 또는 간화선을 통해

서 많은 부작용이 발생해서 정신병, 주화입마, 상기병 등에 걸

린 수행자들이 적지 않다고 수행자들 간에 은밀히 회자되고 있

다고 합니다.

 

선 불교의 폐단은 너무 편협하고 독선적인 아성을 구축

하고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또 넌센스식의 화두를 제시하여

수행자들의 마음을 너무 많은 시간 동안 미로 속에서 헤메게

만드는 폐단을 지니고 있습니다.  결국 얻는 것은 흔히 말하는

대오각성, 즉 견성의 완성을 통해 얻은 아라한위까지입니다.  무

엇보다도 오늘날의 선사들의 가르침에는 원시불교를 아름답게

수놓은 석가모니부처님의 자비심을 찾아보기가 참으로 어렵다

는 것입니다. 

 

반면 염불은 실제로 부처님의 칭호를 염송하는 것으로서 직

접 부처님의 위신력과 가피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칭호를 염송하는 염불 수행이 선 수행법 도다 못하다면 부처님

의 위신력에 우리는 회을 가져야할 것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것이 사실이며 실재로 과거에도 수행승들께서 아미타부터

님을 30년 간 지극 정성으로 염불하여 절 천장을 뚫고 날아서

극락 왕생했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오고 있습니다.

 

지금도 아미타불을 찾는 염불선이 많은 영험이 있다고 네티

즌 수행자들 간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염불선의 위신력

이 선 수행보다 우월함은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염불선도 큰

스님의 지도에 따라 제대로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염불

선도 외도 기운의 영향을 받아 잘못된 길을 걸을 수 있기 때문

닙니다.

 

2500년 전 부처님이 이 세상에 몸을 입고 오셔서 전해주

신 위빠사나 수행이나 아나파니사띠 수행법도 좋은 효험이 있

음을 인정합니다.  다만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 설파한

대로 부처님의 칭호를 염송하는 칭명염불이 무엇보다도 중요함

을 강조하는 바입니다.  앞으로 큰스님께서 주창하신 칭명염불선

은 새로운 불교 수행의 중흥을 이루고 새로운 불교 문화를 꽃

피우고 창당하는데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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