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사의 불서/.....법문집 1권

'산중대담' 선지식을 찾아서

불제자 2009. 6. 26. 22:15

 

 

 

 

 

 

 

2005.6.9.목(음5.3)큰스님 불교TV 법문

 

'산중대담' 선지식을 찾아서 /제14회

 

 

'이 청' 이라는 소설가가 성불의 길, 불국토의 길을

만나기 위하여 춘천 현지사의 만현 큰스님을 찾았다.

 

 

소설가 이 청

 

안녕하십니까?

이 청입니다.  부처님께서는 52년동안 제자들을 가르

치면서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말씀을

그대로 맹목적으로 추총하여 따르라고 가르치지는 않았

습니다.  오히려 제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노력해서 부처

님과 같은 경지에 이르도록 길을 제시 하시고 이끌어

주셨습니다.  조사스님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누구

나 부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 이르는 길은 모

두가 다른 법, 그래서 오늘도 수행 공덕이 크신 큰스님

을 찾아 산사에 발길이 멎었습니다. 강원도 춘천 북쪽

의 북한강변에 있는 현지사, 여기에 주석하고 계시는

만현 스님을 통하여 성불의 길, 불국토의 길을 함께 걸

어가 보기로 하겠습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스님 안녕하십니까?  만나 뵈어서 반갑습니다.  귀한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지사 도량이 앉은 자리

가 참 특이한데요.  한쪽은 북한강을 끼고, 한쪽은 속세

인 마을을 끼고 있습니다.  이런 곳에 도량을 자리한 까

닭이 있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한 4년 전에 안착을 해서 공부를 할 때를 물색했습니

다.  그 동안은 깊은 산에서도 시가지에서도 수행을 하다

가 일정한 곳이 있었으면 생각을 해서 잡은 곳이 이곳

입니다.  여기가 좋다고 봤습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도량의 역사는 짧고 규모도 크진 않습니다만, 정진

하시는 스님들의 열기는 어는 도량보다 뜨겁다고 들었

습니다.  몇 분의 스님이 계십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지금 스님들이 아홉 분에서 열분 정도 됩니다.  다만

공부만 하는 것이 여기 모토입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그러면 간화선의 한계를 느끼시고 염불선으로 방향을

전환하시면서 그 동안 혼자 수행을 하신 셈이십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네, 주로 산으로 가고 토굴로 가서 혼자 수행했습니

다.  70년대 초만 해도 간화선 이외에는 발붙일 곳이 없

었습니다.  그래서 말도 못하고 남모르게 열심히 한편입

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그러면 다시 30년 후에 대중들에게 모습을 보이시고

이렇게 설법을 하시게된 인연은 어떻게 됩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번에 제가 책을 한 권을 썼습니다.  <21세기 붓다

의 메시지>라는 책인데요.  여기에 자세히 나옵니다.

30년 동안 은거하다가 여러 사부대중 앞에 서게 된 계

기가 있습니다.  작년 3월경 도올 김용옥씨가 MBC TV

매체를 통해 불교를 형편없이 폄훼하는 방송강의를 하

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에게 꼭 한마

디 충고, 고언을 해야겠다 싶어서 원고를 써서, 부산에

있는 대한불교 신문사로 보냈더니, 특별 기고형식으로

게재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도량을 세우고 설법을 시작한 것은 그 이전이죠?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저는 거의 법회를 사양했습니다.  꼭 필요할 때 TV 한

두 번, 라디오 한 세 번 정도 그리고 내가 충분히 공부

를 해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때 아니면 말을 않으

리 하고 거의 묵언으로 말을 삼가고 공부만을 한 편입

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도량은 언제 세우셨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만 4년 정도(2001년) 되었습니다.  그때 별로 돈도 없

고 그랬지만, 그저 신념 하나로 1800평 구입해서, 또

나를 아껴주고 밀어준 스님이 있었는데 그분이 크게 도

와주었습니다.  그래서 도량을 세우게 되었는데, 이곳은

대단히 황량한(아주 황량한) 벌판이었습니다.  흙을 돋

우고 집을 짓고 도량정비를 했습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그 발원의 이면에는 간화선의 한계를 극복하고 한국

의 선을 제자리에 놓으시겠다는 이런 큰 원이 있었던

것입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물론이죠.  이 책에는 몇 가지 큰 테마가 있습니다.  그

래서 나는 부처님이 가신 지 2500년이 되다 보니까,

정법이 많이 묻혀있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정법을 온전히 그 불교의 몸통을 드러낸다

면, 지금 이 불교로서도 세계적인 대단히 위대한 종교

라고 평가를 받지만, 이 불법이 정말 정법이 온전한 불

법이 드러난다면 대단히 위대한 종교라는 것을 여러 많

은 이교도들도 아마 긍정 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이 책의 부제가 염불 삼매 속에서 나는 이와 같이 보

고 들었다.  이렇게 부제를 달 정도로 염불선에 대한 많

이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저 개인적인 인연을 여기서

말씀드리자면 1959년인가에 중학생 때 부산 대각사에

서 청담스님의 설법을 우연히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청담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미타불을 지성으로 평

생에 걸쳐 10번만 외우면 극락왕생할 수 있다고 했습

니다.  그래서 그 말씀이 지금까지 거의 50년 가까이 풀

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아있습니다.  오늘 청담스님과 인

연이 있으신 스님께서 좀 말씀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번만, 십념이죠.  십념왕생원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게 그렇게 안 됩니다.  그건 말이

안 됩니다.  그건 말이 안 되고요.  정토는 극락세계를

위시한 정토가 이 시방에는 많습니다.  대표적인 정토가

서방극락세계, 동방약사부처님께서 계시는 정유리정토

가 있습니다.  하지만 서방정토극락을 가려면

10번 염불이 아니라 아미타경에 있는 그 부처님 말씀

이 있습니다.  1일에서 7일정도로 한결같이 생각이 끊어

지지 않고, 다른 생각이 들어오지도 않고 일념으로 염

불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극락

을 갈 수 있는데, 하지만 하루에서 일주일간을 일념으

로 나간다는 것은 아마 참선하는 스님들도 그건 불가능

할 거라 생각 할 것입니다.  우리도 참선을 해봤지만은,

1분도 아니고 10초도 못 갈 겁니다.  생각이 그저 일어

났다 없어졌다 일어났다 없어졌다 하기를 상상할 수 없

을 정도로 망상이 그렇습니다.  망상이 그렇게 따라붙기

때문에 일념이라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하루에서

일 주일이라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내가 보니까 극

락세계에 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가능은

합니다.  아까 경에서 말씀했듯이 1일에서 7일 정도 일

념이 된다면 그런수행자라면 갈 수 있으나, 그렇지 않

고는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자, 거사님 지구에서 로

케트를 쏘아 올릴 때 지구의 중력권을 벗어난다는 것은

대단한 추진력이 필요합니다.  지금 내가 눈을 떠보니

인간세계 위 하늘이 있습니다.  하늘세계가 부처님께서

는 54등급으로 해서 말씀하십니다.  지금 우리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18하늘을 말합니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54하늘이 있는데 9등급을 묶어서 한 하늘로

묶어서 부처님은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서 아래하늘을

6하늘 그 위에 5하늘, 4하늘, 3하늘, 2하늘, 1하늘 이

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 이 인간 몸을 버리고 6하늘

정도에 태어나는 것도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 정도에

나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54등급을 넘어서 그 넘

은 곳이 윤회를 벗어난 하늘입니다.  그러니까 화두타파

해서 혹은 위빠사나를 해서 도를 깨쳐서 보림을 잘 해

서 증득하면 거기가 아라한입니다.  아라한은 죽으면 윤

회를 벗어난 세계에 난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그 하

늘을 성중하늘이라고 합니다.  성중하늘에만 난다면, 아

라한인데 정말로 어려운 작업닙니다.  그런데 거기 위가

도솔정토입니다.  미륵부처님께서 계신 도솔정토이고,

그 위가 또 꽃 비를 내리게 하는 천녀하늘이 있고 그

위가 극락입니다.  그러니까 극락을 간다는 것은 십념으

로는 힘들고, 그건 인도하기 위해 방편으로 말씀하신

것이고, 진실한 말씀은 1일에서 7일간 간단없이 일념

정진한다면 갈수 있고, 구체적으로 말하면 54하늘을 넘

어 성중하늘을 뛰어넘어 도솔정토를 뛰어넘어 천녀정토

를 뛰어 넘어 극락세계가 있는 데 그곳에 간다는 것은

보살 8지(부동지)라야 가능하다는 것이 내가 뵙는 모든

부처님의 똑같은 말씀이고 부처님 세계에서는 하나의

상식이 되었습니다.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그곳에 간 분들이 있습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그러면 우리 불교가 위대한 면이기도 하고 단점이기

도 한 것이 해석이 가지가지이고 많은 해석을 할 수 있

다 보니 극락이라고 방금 말씀하셨지만, 극락도 내 마

음 속에 있고 실재하는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이 있는 일

종의 허무주의 같은 견해가 있는데요.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대단히 중요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런 견해는 윤

회를 벗어난 세계, 극락세계를 보지 못한, 수행을 깊이

깊이 들어가서 그러한 성과를 얻지 못한 사람으로서는

경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십념이면 왕생한다고도 하고

달리 말하기도 하고.  또 죄송합니다만 선불교를 이야기

를 해서, 극락이나 지옥을 마음의 산물이라고 합니다.

가령 번민으로 차있는 그 자리가 지옥이고 만족, 행복

으로 가득 차 있는 그 자리가 극락이라고 합니다.  그리

고 그 성품을 아미타라고 합니다.  굉장히 중요한 이야

기입니다.  그래서 경봉스님에게 내가 그랬죠.  문하에

있을 때, 경봉스님은 매우 자비하고 참 공부를 많이 한

학자이시고, 나를 예뻐하고 그러셨습니다.  그래서 스

님!  정말 진짜로 대답 좀 해주시오.  지옥이나 극락이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  부처가 있는 거요?  없는 거

요?  나는 가까우니까.  그러니 머리를 딱 때리시더니 망

상 피우지마.  없어.  몇 번 물어봐도 항상 그 대답이니

까.  내가 나중에 뛰쳐나와서 토굴로 들어가서 득력을

해봐도 안보이더라고요.  지옥이나 극락이.  나는 지금

이 입장에서 분명히 이야기 합니다.  실제로 지옥이나

극락은 있습니다.  차별세계에서는 있습니다.  그건 공

세계에서 보면 없습니다.  공에서 보면 (진리입장에서 보

면)  모든 것이 환화입니다.  거기서 한걸음 나와 차별세

계에서 볼 때는 인간계 축생계도 있죠?  분명히 지옥세

계도 있고 하늘세계도 있고 하늘세계를 벗어난 윤회를

벗어난 해탈 초월의 세계 극락세계가 있습니다.  극락세

계를 볼 정도는 붓다의 경계에 들어갈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불교의 역사에서 볼 때 보살 정도도 안

보입니다.  더구나 아라한의 경지에서는 전혀 안보입니

다.  지옥이나 하늘세계가 안보입니다.  극락세계는 더더

구나 안보입니다.  그래서 칸트라는 학자가 인식의 한계

가 있다고 한 말은 정말 맞는 말입니다.  '스태론버

그' 가 쓴 기독교 서적 '지옥과 천당' 이라는 책이 있

잖아요.  내가 아마 20세때 읽었을 거요.  그걸 칸트는

부인한거요.  그건 맞는 거요.  부처님의 큰 위신력

을 입지 않고는, 인간의 한계로서는 절대 형이상

을 볼 수 없습니다.  그걸 나는 확실히 알았습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칸트의 인간인식의 한계를 설정하는 것은 허무주의자

에게도 이용될 수 있고, 이상주의자에게도 이용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선에서는 마음이 부처고 마음속에 지옥과 극락이 있

는 것이지 마음밖에 라는 말은 용인하지 않습니다.  그

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입니다. 

 

 

 

지난 1960년 입산 이후 경봉선사에게서 공부를 익히

고 조계종 종단행정에 두루 참여 해 온 만현스님, 그러

나 수행자로서 진정 가야 할 곳을 다시금 보았던 것일

까?  문득 모든 자리를 여의고 다만 첨선 수좌로서 정

진하길 30년 세월이다.  예부터 가야 할 곳을 바로 보았

다면 그 길이 멀고 험한 것을 논하지 말라 했다.

만현스님은 그렇게 숭가에 몸을 담고 가깝고 멀고를

헤아리지 않고 다만 정진 또 정진해 왔음이다.  지성심

심심   회향발원심,   부처님을 생각

하고 염불하던 그 모든 마음을 다해 이제 스님은 당신

의 수행을 회향 발원한다.  사생결단으로 정진하라.  머

뭇거리지 말라.  그리하여 당신의 환희심이 대중에게 회

향되길 간절히 발원하는 것이다.

 

 

 

다시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조계종 자체에서도 한국 불교 자체에서도 간화선에

대한 반성이 일고 있고, 젊은 스님을 중심으로 해서 위

빠사나라든지 다른 선에 대한 도입, 영역을 확대해 나

가는 시점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스님께서 굳이 말씀

안 하실 필요도 없으시고, 간화선에 대해 어떤 한계를

느끼셨다면 지금 거기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간화선, 그 선 수행은 깨달음을 대단히 소중히 합니

다.  깨달음을 다 된 것으로 봅니다.  심지어 불교는 께

달음이 있어서 위대한 종교라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깨달음은 붓다 이루어가는 기나긴 여정의 출발점이라고

봅니다.  절대 그렇습니다.  모든 부처님들의 한결같은

말씀입니다.  이건 크나큰 선언 입니다.  깨달은 후에 보

림을 잘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아라한이 됩니다.  께

달았다 해서 공을 체험했다 해서 상당한(모든) 경전과

뜻이 계합한다 해서 막행막식하고 있는데, 대단히 위험

한 발상입니다.  깨달으면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깨달음이 무엇이냐 정의에 따라 달라 질 수 있지 않

겠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깨달음의 정의는 그렇습니다. 깨달음은 본성이라고

하고 자성이라고 하며 일체우주 만물의 근원자리 법성

이라 하는 그 자리를 보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내 경험상 그리고 많은 화두타파한 분들의 이야

기로 볼때 부처님의 말씀으로 볼 때 그 깨달음의 경계

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면 됩니다.  하지만 그 청정무

구한 단계가 그 경계가 드러나게 되는 데, 그 경계가

드러나는 것이 결코 오래가지 않습니다.  한식경을 넘어

가지 않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유

는 우리가 억겁을 통해 살아오면서 많은 업을 짓고, 따

라서 습이 붙고 기가 생기고 그럽니다.  그것이 완전히

소멸되어야 계합이 되는 겁니다.  원래 생각이전자리와

나가 꿇기는 꿇었지만,  뚫은 것이 깨달음인데, 그 청정

무구한 본성과 나라고 하는 것이 계합이 되어야 하는데

계합이 되려면 이 사람의 속에 잠재되어있는 삼독심 모

든 번뇌가 다 뿌리채 뽑혀져야 합니다.  순수가 되어야

합니다.  또 습이나 기라든지, 나쁜 인연까지도 찌꺼기

까지도 완전히 소멸이 되어야 하는데 이건 불가능합니

다.  그러기 대문에 깨달음이 종착점이 아닙니다.  시작

입니다.  이제 깨달아서나를, 생각을 죽이는 공부를 시

작해야 합니다.  그걸 두타행이라고 합니다.  가장 좋은

공부는 두타행입니다.  두타 행으로 나가야 합니다.  부

처님게서 제자들에게 가장 권하는 것이 바로 두타행입

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깨달음이 무엇인지 다시 질문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깨닫고 나서도 유지가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면 진정한

깨달음은 아니지 않겠느냐 해서 입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요.  깨달음 이후에 보림을 하는 것이 바로 그

경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본성과 계

합하기 위해서 삼독을 녹이고 습을 녹이고 기를 녹이려

고 보림을 합니다.  그러나 보림을 한다 하더라도 결코

정화는 일부 될 수 있을지언정 소멸은 안 된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러니까 완전한 깨달음은 그런 찌꺼기가

완전 불식이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집착이나 상이 뚝

떨어져버려야 됩니다.  그런데 인간은 수행을 잘하다

보면 그 자리까지(아라한자리 까지)갑니다.  그러나

보살이나 붓다는 결코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드립니

다.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스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확인하겠습니다.  화두참구

를 통한 깨달음은 그 자체가 완전하지 않다.  그러므로

계속 보림과 수행을 통해서 향상시켜 나가야 한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향상시켜야 하는데 반드시 염불로 가야 합니다.  이유

는 뭐냐?  삼독과 습과 기를 완전히 진멸해야 하는

데 그래야 우주와 계합이 되는데 그걸 소멸할 길이 없

습니다.  수행과 참회로는 소멸이 안 됩니다.  일부 정화

는 됩니다.  절대 소멸은 안 됩니다.  그래서 붓다를 찾

아야 합니다.  염불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실상염불

도 있고 관상염불도 있고 칭명염불 등이 있는데, 나는

칭명염불을 아주 강조하면서 권해주는 편입니다.  왜냐

하면 거사님, 가령 우리 몸속에 들어있는 내가 있습니

다.  요건 거짓 '나' 구요. 매미가 허물을 벗고 나가는

데 나가는 놈이 진짜고 허물은 가짜입니다.  그와 같이

이 몸뚱이가 집입니다.  이 몸은 거짓 옷 입니다.  빠져

나가는 놈이 있습니다.  명이 다해서 혹은 비명에 죽더

라도나가는 놈이 있습니다.  그걸 나는 영체라고, 영혼

체 근데 그 영혼체에 대한 통찰이 있어야 되는데 힌두

교 베다 쪽에 상당히 언급했습니다.  영체는 4개로 겹쳐

져 있습니다.  이것은 천고의 비밀인데 생의 비밀인데

이걸 모르면 여러 가지로 풀리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가 풀리지 않습니다.  가령불교에서 무아설과 윤회

의 주체사이의 관계, 이건 아마 영원히 수수께끼이고

풀리지 않을 겁니다.  이 영체설을 알아야 합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그러면 그것이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부정적인 견해

들도 많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말씀 나오신 김에 이 책

의 주요 내용과 의미에 대해 간단하게 짚어주십시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많은 시간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이

것은 큰 테마를 지니고 있습니다.  경전에도 없고 역사

적으로 밝히지 못한 영체에 관한 법설이 있고요.  불교

에서는 완벽한 생사관이 없습니다.  다만 힌두교나 자이

나교에서 불교에서 육도 윤회까지는 이야기합니다.  그

러면 육도에서 벗어나버린 아라한 이라든지 보살이나

불과를 이루는 분은 죽어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일체

언급이 없습니다.  그것까지 파헤친 것이 이 책입니다.

 

방금 말씀드린 영체이론설 이라든지.  그리고 부처님이

란 어떤 분이냐에 대해 깊이 파헤쳤습니다.  부처님이란

소승, 대승 가에서 부처님은 보살이 지니지 못한 위대

한 18가지 불공법, 신체상 정신상의 위대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 삼신에 대한 구체적인 이것

이 가장 핵인데, 부처님은 아! 그래서 그렇게 위대하시

고 거룩하시구나 하는 것을 삼신설을 들어보면 수긍이

됩니다.  그 삼신설에 대해서 깊이 파헤친 것이 이것입

니다.  그리고 수행자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덕목이

바로 계율인데, 왜 계율이 중요하느냐 하는 것을 담아

놓았구요.  염불선의 중요성 등에 대해, 여러 가지 테마

에 대해 담아 놓은 책입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스님의 말씀은 너무 방대하셔서 제가 잘 받아들이지

못한 점도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도 궁금한 것은 께치

고 나서 그리고화두를 평생 가지고 있으면서 오매일여

삼매에 들어서 계속해서 깨침의 세계릉 이어

가는 그런 공부가 있고, 지금 스님께서는 깨친 후에 염

불로서(칭명염불로서) 완성해야 된다.  이 두 가지는 전

혀 다른 것인지요?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께쳐서 죽도록 오매일여 상태로 계속 보림을 해도 끝

이 아라한입니다.  끝이 아라한이라고 부처님께서는 말

씀하십니다.  거기서 보살과를 증하려면, 성중하늘로 갔

다가 사람 몸을 받아와서 보살과를 증 하는데, 보살 붓

다는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는 데는 붓다(부처님)의 크신 위신력을

입어야 가능합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지난 30년동안 스님께선 쭉 이렇게 칭명염불선으로

수행 하셨는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득력한 이후로 방향을 바꾸어 칭명염불로 하였습니

다.  잘한 겁니다.  잘한 겁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그래서 지금 지금의 경지는 스스로 어떠하다고생각

합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내가 말할 수 없고 책에 나와 있습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스님의 은사 스님께서는 바로 율사스님이신데, 율사

스님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아직도 크게 남아 있습니

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율사스님 이전에 계율을 굉장히 존중시 하였

고, 부처님께서는 첫째도 계율, 둘째도 계율, 셋째도 계

율하셨습니다.  그런 줄 아십시오.  율사스님의 영향도

받았습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지계, 계를 지킨다는 것이 보살행의 중요한 부분이긴

한데, 전에 어떤 사람의 그런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계를 받지 않으면 파계도 없다 상당히 허무주의적인 표

현이긴 합니다만, 곧 계라는 것은 형식에 불과하다.  뒤

집어 보면 이런 뜻으로도 됩니다.  하나의 방편인가?  그

자체가 우리 그 불성을 지키고 완성해나가는 길인가?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아 그렇죠.  그렇습니다.  도를 구하는 수행승은 그걸

반드시 정말로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음계를 파하게

되면 삼매에 들 수 없고, 결코 삼매에 들 수 없음을 거

듭 강조합니다.  삼매에 들어가지 못하면 해탈 할 수 없

습니다.  해탈은 삼매에서 옵니다.  생사를 자재하는 문

제도 역시 삼매에서 나옵니다.  삼매를 지금 경시하고

모르고 있는데 삼매는 대단히 소중합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책을 보니까 스님께서는 경전공부를 열심히 해라.  그

리고 염불을 열심히 하고, 계를 잘 지켜라.  이 세 가지

에 큰 역점을 두시고 말씀하신 것을 본 일이 있는데요.

우리 중생들은 이 세 가지를 잘 지키면 극락에 이르겠

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중에서 효가 빠졌네요.  효가 있습니다.  틈틈이 연

지대사의 말씀처럼 돌아가신 부모에 대해서 1년 아니라

죽을 때가지 정성을 다해서 천도를 하여야 될 겁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시뢰었다.

 

아까 스님께서 불성에 대해서 불지에 대해서 말씀하

실 때 워낙 아득해서 제가 감을 잡기 어려웄는데, 그렇

다면 우리 불도들이 이루고자 하는 것이 성불일진데(스

님: 궁극에 가서는 그렇게 목표를 두어야지요), 궁극에

이르는 길이 지금 말씀하시는 염불삼매와 (염불선과)

효,  계,  경전을 공부하고(스님: 경전도 나는 두루두루

깊게 보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공부를 통해서 저희

가 궁극에 이르겠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를 수 있지요.  그러니까 목표를 거기에 두되, 우선

아라한에 목표를 두어야 됩니다.  윤회를 벗어나야지요.

아라한과를 이룬 다음에 보살과를 이루거든요.  그러니

까 아라한에 두어야지요.  아라한 성과만 얻어도 대단합

니다.  그래서 선불교를 나는 대단히 칭찬합니다.  그 께

달음, 보림만 잘하면 아라한 자리로 갑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스님 말씀은 선불교의 깨달음 버리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시작일 뿐이고, 그곳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야한

다.  그 방법을 여러 가지로 제시하고 계신 것이지요.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칭명염불을 하면 보살지까지 갑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지름 우리 불교도 급변하는 세계처럼 상당히 변화하

고 있고, 그 문화적인 바탕위에서 여러 가지 흐름이 달

라 질 것 같습니다.  그 속에서 간화선의 한계를 말씀하

시고 극복하는 방법을 스님께서 말씀해 주시고 계신데

그 간화선의 한계 자체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여기서

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으니까 그 실천 방법으로서 극복

하는 길을 제시하셨다.  이렇게 저희는 알아듣겠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염불, 칭명염불을 권합니다.

음계, 계율을 지켜라.

효를 다하고

경전도 멀리하지 말고 <금강경> <법화경>  <화엄

경>  <부모은중경>은  정말로 우리가 봐야 됩니다.  특

히  <금강경>  정도는 하루에 한 번씩 독송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소설가가 스님께 사뢰었다.

 

스님, 오늘 말씀 정말로 감사합니다.

 

만현 스님은 자적의 기쁨을 모르는 수행자다.  조그만

열반에도 만족하지 않고 견성조차 수행의 끝이 아니라

이제 공부의 시작일 뿐이라 말한다.  자나 깨나 오매일

여,  한 생각 또렷해도 그 자리에서 다시 목숨

을 내놓는 이, 그가 바로 진정 수행자라 여기는 까닭이

다.  지난 30년 만현 스님은 그렇게 무소의 뿔처럼 걸어

왔다.   그 침묵의 수행을 두고 세인들은 칩거니 은거니

즐겨 말하나, 스님에겐 다만 성성적적한 하루였을 뿐,

그리고 긴 세월 돌아 대중 앞에 법석을 펴고 노사老師

는 말한다.  귀의불   귀의법하라.   세납 70세,

처음처럼 두 손을 모아 부처님께 온전히 귀의하는

스승의 그 모습,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진정 참구해야

할 불제자의 참다운 표상이 아닐까?

 

 

출처/법문집 1권 6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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