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재만현 큰스님 법문 글/법문 글 2014년

(2014.1.19.일) 큰스님 부산 법문

불제자 2022. 3. 9. 17:59

대망어/ 부처님 믿음/

신불기 16년

불기 2557년 계사년 음력 12.19.

(2014.1.19.일) 큰스님 부산 법문

 

VI-15, 230회

 

오늘 법회에 처음 오신 분 손을 들어주세요. 박수로 환영해 주십시오.(박수~) 우리가 정법이 아닌 사이비나 외도, 그리고 사마도(邪魔道)에 몸담고 있다면 그 사람의 앞날은 없습니다. 정법문중으로 귀의해야 합니다. 그래야 남은 생도 다음 생도 잘 살고, 그리고 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 희망도 있습니다. 염불이 정법이랍니다. 염불이 정법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한국을 위시해서 세계불교는 염불을 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이 계시는데도 부처님이 없다고 합니다. 마음이 부처라고 하지요. 이것을 심즉시불(心卽是佛)이라고 합니다. 우리 현지사에서 이야기하는 있다 없다를 초월한 무아 속 절대계에 32상 80종호의 빛의 모습으로 여여히 계시는 부처님을 없다고 합니다. 마음이 부처라고 합니다.

 

이 법상에 나와서 라디오, TV나 책을 통해서 그런 말을 한 사람은 보현보살님께서 그 과보를 확실히 말씀하셨습니다. 그 과보는 무섭습니다. ‘극무간지옥에 간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문제, 거짓 몸뚱이를 한 사람 죽이고 두 사람 죽인 그 죄도 무섭지요.

 

그런데 마음이 부처라고 하면 대망어인데, 공부를 많이 하고 학문을 많이 한 학자들이나 스님들이 이 법상에 올라와서 라디오나 TV앞에서 그런 말을 하거든요. 그것은 많은 사람의 참 생명에 독약을 준 것과 같습니다. 많은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그 죄는 오히려 오역죄보다도 더 무섭게 과보가 옵니다. 무서운 과보가 옵니다. 부처님도 가끔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

 

TV를 가끔 켜보면 선지식이라는 분들을 초빙해서 법문을 하거든요. 들어보면 참 좋은 말을 많이 하지만, 잘나가다가 ‘부처님은 없다.’라고 한다고요. 나아가서 지옥도 없고 극락도 없고 윤회도 부인합니다. 그런 말을 합니다. 《지장보살본원경》《법화경》이나 《화엄경》을 방편설로 이야기합니다. ‘이게 무슨 경이냐?’ 이런 식으로 이야기합니다. 큰 과보를 받습니다. 그런 망어를 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한국 조계종의 큰스님들, 그런 말을 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중생은 업을 한번 지으면 정업불면(定業不免)입니다. 업이 정해져버리면 절대 면할 수 없습니다. 과보를 받습니다. 왜 그런 말을 합니까? 자기가 끝까지 공부를 해서 불과까지 증하고서 법문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기 전에는 생활법문을 해야 합니다. 인과법문으로 끝나야 되는 거예요.

 

불ㆍ보살님이 없다하고, 극락ㆍ지옥이 없다하고, 윤회전생을 부인한다면 불교가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사후세계가 없다면 우리 스님들이 이렇게 고되게 수행할 필요가 있습니까? 이건 무서운 대망어입니다. 현지사가 생긴 이래 역사상 처음, 이러한 말이 진짜 대망어라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사실 대망어는 율장을 보면 견성을 못하고 신도들의 이양(利養)을 받으려고 견성한 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대망어는 그것보다도 방금 이야기한 것처럼 지옥도 분명히 있고, 하늘세계도 분명히 있고, 윤회세계를 벗어난 아라한 무루대아라한이 가는 세계도 분명히 있고, 삼계를 벗어난 저 정토세계도 분명히 있고, 약사정토도 분명히 있고, 불과를 이룬 대성자가 가는 상적광세계도 분명히 있는데 없다고 한단 말이에요.

 

없다고 하면 신도들은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신도분들은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아! 저세상이 없으니 기분 내키는 대로 사는 거예요. 한번뿐이니까 인생을 멋지게 한번 사는 거예요. 이렇듯 중생을 크게 오도합니다. 나는 이 자리를 빌려 거듭 간곡히 청합니다. 그런 말하지 말라고요. 그런 말하지 말라고요.

 

그런 법문하면 큰일 난다고요. 지옥이 분명히 있습니다. 중지옥부터 그 벌이 몸서리쳐지고 간담(肝膽)이 떨려 볼 수 없는 그 지옥이 있고, 그보다도 더 무서운 무간지옥이 있고, 극무간지옥이 분명히 있는데 없다고 하면 안 되지요.

없다고 하면 큰일 나지요.

 

저번에도 말했을 거예요. 조계종의 어떤 보물과 같은 학자요 대법사인데 죽어서 어디에 갔나 하고 추적을 해보니까 정말 무서운 곳으로 가있어요. 그 이유는 법문을 잘못 했어요. 이런 법문을 가끔 했어요. 여러분! 법사는 진짜 부처님의 말씀을 전해야 됩니다. 진짜 말만 해야 합니다. 법 아닌 말, 부처님 말씀이 아닌 말을 하면 안 됩니다.

 

여기 현지사는 나이로 보면 일곱 살밖에 되지 않았어요. 그러나 내가 법문한지는 한 10년 될 거예요. 맨 처음 법상에 올라서 신불교 영산불교 현지사는 부처님의 정법문중이고 부처님의 교단이고 우주적인 진리를 담은 메타종교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우리 부산분원 15층 벽에 써 붙여 있을 거예요.

 

우주적인 메타종교라고 한 거예요. 지난번에도 우주적인 메타종교가 되기 위해서는 세계종교를 뛰어넘어서 인간과 우주의 탄생ㆍ생성ㆍ인간본체의 그 지고한 비밀을 꿰뚫어버린 그런 큰스님, 부처님이 계셔야 합니다. 그 교단이 정법문중이고 우주적인 진리를 담은 교단인 거예요. 여기에 와서 법문을 들어야 해요.

 

우리 부처님에 대해서 조금 말씀해 드립니다. 오늘 처음 이야기합니다. 《법화경》에 보면 우리 부처님께서는 나유타겁하고도 아승지겁 전에 불과를 이루셨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렇잖습니까? 그때 부처님과 쌍벽을 이룬 수행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부처님만이 불과를 이루셨습니다.

 

부처님만이 불과를 이루셨어요. 그분은 끝끝내 불과를 이루지 못했어요. 그분이 누구라는 것을 여기서 밝히지 않습니다. 그분은 새로운 종교를 창교해서 지금은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어요. 자기들은 우주적인 종교라고 자처해요. 그러면서도 그 종교에서는 부처님의 위대하고 희유하신 법의 깊이를 인정합니다.

 

결국 그 사람은 불신(佛身)을 얻지 못했어요. 그분은 부처가 되지 못했어요. 그분은 대단히 위대한 분입니다. 여기서 말씀드리기 좀 곤란합니다. 그분은 예수나 공자나 마호메트나 상제 등이 따라갈 수가 없어요. 그만큼 위대한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불신을 얻지 못했어요.

 

그 후로 우리 부처님께서 많은 제자들을 두고 삼매로 이끄시고 공부를 시켜서 많은 불ㆍ보살님을 냈어요. 이게 우리 정법문중 불교이어요. 붓다나 보살은 정법문중에서만 나와요. 외도ㆍ사이비 혹은 사마외도에서는 나올 수가 없어요. 거기에서 인간과 천상에 태어날 수는 있어요. 그 종교에 들어가서 좋은 일 많이 하고 착하게 살면 그 외도하늘은 가요. 또 인간으로도 올 수 있어요. 그러나 먼 미래로 볼 때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것을 아십시오.

 

사이비 혹은 외도ㆍ사마외도에 빠지면 안 됩니다. 거기에 몸담으면 안 되어요. 안 되는 이유는 스님이 가끔 이야기했을 거예요. 소위 그쪽의 교주ㆍ신들이 자기한테 귀의한 쓸 만한 인물을 완전히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혼이라고 할까, 혼 중에서도 핵심이 되는 믿음의 혼을 빼가버려요. 그것을 우리 부처님세계에서는 ‘선여의주’라고 해요. 그 선여의주를 빼가버리면 그 사람은 아무리 말해도 교화할 수 없어요. 세뇌되어서 절대로 교화할 수가 없어요. 그 외도의 바운다리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갓 태어난 현지사, 부처님 교단 정법문중으로 정말로 귀의했으면 좋겠어요. 귀의해야 합니다. 그 길이 사는 길입니다. 여러분! 한 달에 두 번, 이 정법문중에서 법회를 하잖아요. 내 책에 써놨지요. 법회 때 많은 부처님들이 오셔요. 그래서 업장을 씻어 주십니다. 업장을 씻어주시고 소멸해주는 곳은 여기 현지사밖에 없어요.

 

업장이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마음으로 입으로 몸으로 지은 죄예요. 죄악이어요. 이 흔적이 자기 영혼체에 쌓인 거예요. 자기가 지은 업은 영혼체에 쌓여요. 부처님이 해주시는 업장소멸은 영혼체에 쌓인 죄업을 닦아주는 거예요. 닦아주는데, 지중한 업을 지으면 여러분의 영혼의 몸, 영혼체가 보통 직경 2~3cm 정도 굵기의 쇠사슬로 동여매어 있거나 두꺼운 철판으로 씌워져 있어요.

 

이런 사람은 그 업을 소멸하기가 어려워요. 부처님도 어려워요. 큰 공덕을 지은 경우에 한해 무량광 빛으로 쏴서 그것을 산산이 부수어 화광삼매화에 던져 재로 만들어 줘요. 이것이 완전한 업장소멸입니다. 여기 정법문중에서는 부처님께서 그 사람이 공덕을 지으면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지은 죄업장을 그렇게 씻어 주시고 소멸해주셔요. 그렇게 해야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그런 곳은 여기뿐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현대불교신문(2014.1.1.발간)에 실린 우리 사상을 조금 읽고 보충했지요. 보충을 해서 소책자로 나올 것입니다. 소책자로 나오는데 지금까지 어떠한 세계적인 종교도 도저히 알 수 없는 부분, 가령 우주의 생성 내지 유지ㆍ상속ㆍ소멸ㆍ반복, 인간의 탄생에 대해서는 정말 몰라요.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불과를 증해야 압니다. 그러니 앞에서 말한 우리 부처님하고 쌍벽을 이루었던 그 위대한 수행자도 결국 불과를 이루지 못했잖아요. 그래서 그것을 모릅니다. 몰라요. 그리고 생사관도 모릅니다. 어떤 종교도 생사관을 밝게 뚫은 종교가 없어요. 기존의 불교도 문제예요. 우리 부처님의 말씀을 잘못 적어 놓았습니다. 여기 현지사 영산불교밖에 뚫은 데가 없어요.

 

현대를 사는 우리 이웃들은 참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돈이 최고라고 하잖아요. ‘돈이 최고다.’라고 하는 자본주의 사상,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달되어서 사람들이 물질만능의 생각에 딱 젖어있어요. 돈이면 최고예요. 물질만능이어요. 그러다보니까 아버지도 모르고 스승도 몰라요. 자기와 자기 배우자, 자식밖에 몰라요. 필요하면 부모도 죽여요.

 

그런 세상이 되어버렸어요. 지금 윤리 도덕이 땅에 떨어져버렸어요. 그렇잖습니까? 그래서 지식인이나 학자들, 사람들은 말하지요. ‘자기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자기상실이라고 해요. 자기주체ㆍ주인공을 모르고, 다 잊어버리고 잃어버리고 산단 말입니다. 그런 사회,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어요. 이것을 치유하려면 21세기 어떤 큰 가르침이 등장해야 해요. 생사관을 확립하고 뚫어버린 종교가 앞으로 인류를 향도해야 합니다. 현지사예요.

 

생사관, 생에 대해서 태어난 것에 대해서 완벽히 알아야 해요. 사(死), 죽음에 대해서도 완벽히 알아야 되는 거예요. 죽음 이후에 대해서 완벽히 알아야 해요. ‘어떻게 해서 태어났는가?’에 대해서 완벽히 알아야 해요.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인생을 살아보면 어떻습니까? 고해(苦海)지요.

 

그런데 이 생사(生死), 생사의 바다에서 우리가 뛰쳐나와야 되는데, 이 흐름에서 뛰쳐나와야 하는데, 말하자면 윤회를 벗어나야 하는데 해탈을 이루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어떻게 살아야 한다.’ 하는 것을 가르쳐 줘야 합니다. 우리 정법문중 현지사에서는 아라한이 되려면 이 정도로 수행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어요.

 

자, 지금 선불교에서는 화두타파하면 다 된 줄 알아요. 부처가 된 것으로 알아요. 아니어요. 그것은 깨달음이어요. 깨달음이라고 그래요. 깨달았다고 해서 부처가 된 것이 아니어요. 마음을 봤다고 해서 다 된 것 아니어요. 이 현상계의 본체인 공(空)을 봤다고 해서 다 된 것 아니어요. 이제부터 영혼체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여러 생을 살아오면서 지은 업장을 다 불식(拂拭)시키고 다 닦아야 됩니다. 씻어야 해요.

 

그 영혼체에 속속들이 구석구석 끼어있는 때를 다 씻어내야 합니다. 영혼체에 철판이 씌워졌다면 그것을 다 소멸시켜야 해요. 그리고 다시는 업을 짓지 않도록 탐진치 번뇌를 제거해야 되요. 탐진치 등 여러 번뇌를 뿌리  뽑아버려야 됩니다. 여기가 아라한이어요 여러분. 여기서 붓다가 되려면 보살행을 해야 해요. 지혜와 보살행, 지혜와 방편, 지혜와 복덕을 같이 닦아 나가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의 가피에 의해서 보살이 되는 거예요.

 

우리 중생들은 혼자 수행해서 보살이 될 수가 없어요. 한계가 있더라고요. 도저히 안 되어요. 혼자 정토보살이 된다? 몇 백 년 만에 하나 나올까 말까해요. 안 되어요. 안 되는 이유가 있어요. 알지요? 다섯 가지~열 가지 이유가 있잖아요. 그렇게 해야 정토보살이 되는 거예요. 정토보살이 되면 완전히 윤회를 벗어나버린 거예요.

 

완전히 벗어나버리거든요. 그런데 자기가 원하면 원력수생(願力受生)할 수 있어요. 이 땅에, 이 사바세계에 가끔 올 수 있어요. 자기의 원(願)에 따라서 와요. 그것은 자신과 가까운 인연을 구하려고 와요. 인연을 구제하려고 오는 거예요. 원력수생을 하는 거예요.  그 외에는 안 와요.

 

그리고 보살이 되면 영원히 지옥ㆍ아귀ㆍ축생은 안 가요. 그래서 우리는 정토보살이 꼭 되어야 하는 거예요. 정토보살에서 붓다가 되려면 정말로 무량겁을 수행해야 합니다. 지혜와 복덕을 닦아야 합니다. 그래서 지혜와 복덕의 주머니가 정말로 커야 해요. 태산보다도 더 커야 해요. 우주만 해야 해요.

 

그래야 불과를 이룰 수 있어요. 그것도 혼자는 안 되어요. 우리 부처님의 절대하신 가피가 있어야 되어요. 그것을 알았습니다. 우리 부처님의 절대하신 가피가 있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안 되어요. 그렇게 수행을 해도 안 되어요. 자기 개인의 혼자 힘으로는 안 되는 거예요.  불신이 생기는  이유가 있는 거예요.

 

불신, 저기 10차원 상적광세계에 자기 불신이 생기는 이유가 있어요. 그것은 우리 부처님만이 하셔요. 그러니까 우리 부처님은 붓다 중에 붓다인 거예요. 앞에서 부처님과 쌍벽을 이룬 수행자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어요. 우리 부처님께서는 자기 불신도 있고 청정법신비로자나 불신까지 얻어놨잖아요.

 

청정법신비로자나 부처님이어요. 우리 부처님은 붓다의 붓다이셔요. 이건 청정법신비로자나불만 봐도 그래요. 모든 붓다들은 필요하면 청정법신비로자나불로 들어가요. 흡수되어버려요. 그러니까 이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의 능력은

우주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어요. 과연 우주의 주(主)예요.

 

여러분! 우주라고하면 전번에도 이야기했지요. 이 우주 안에는 이 지구만한 천체, 별이 얼마나 많은 줄 압니까? 얼마나 많은 줄 압니까? 항하사(恒河沙)수와 같이 많아요. 《금강경》을 보면 정말 입이 벌어져요. 항하사수와 같이 많은 국토, 이 우주 안에는 항하와 같은 큰 강의 모래 수만큼 많은 국토가 있는 거요. 그러니 얼마나 많습니까?

 

이 별, 지구만 해도 엄청난데 이 많은 천체가 그렇게 많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이 문제가 아니어요. 54품 하늘이 있잖아요. 또 아수라세계가 있잖아요. 그리고 인간과 같은 기체인간이 사는 데가 있잖아요. 또 아귀의 세계가 있잖아요. 축생세계가 있잖아요. 지옥세계가 있잖아요. 이 중생들이 사는 세계를 합하고, 허공의 그 세계까지 합하면 윤회 안의 이 우주는 헤아릴 수가 없이 많아요.

 

그 크나큰 우주를 우리 부처님이 움직여요.

여러분! 불교에 들어오니까 이렇게 시공이 어마어마한 것을 알지, 어디 다른 종교 보세요. 이 세상만 이야기해요. 이 지구만 이야기하는 거요. 그래도 힌두교는 상당히 발전된 것이지요. 대단한 것이지요. 그런 부처님을 여러분이 믿고 따라야 해요. 스님은 그것을 강조합니다. 여러분이 사는 길이어요.

 

우리 중생들은 다겁생을 내려오면서 자기만 알고 살았어요. 탐욕에 눈이 어두워서 그저 자기 이양(利養), 이익을 쫓고 살았어요.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필요할 때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도둑질도 하고, 온갖 못된 짓을 하고 살았거든요. 우리가 수많은 생을 살아오며 큰 복을 짓지 못했다고요. 여러분 이제 복을 지어야 해요. 정말로 큰 복은 우리 부처님을 확실히 믿는 거예요.

 

그리고 따르는 거예요. 이게 엄청난 복입니다 여러분.

《법화경》에 있는 성구(聖句)를 읽어드릴게요.

 

“중생이 석가모니불을 따르는 마음을 내면 400만억 아승지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일체 천신ㆍ인간ㆍ아수라ㆍ축생ㆍ아귀ㆍ지옥 등 육도 중생들 하나하나에게 가장 승묘한 의복 음식 침구 의약 궁전 진보 등의 생활용구를 80년 동안 계속해서 공급해 주고 또다시 이들을 다시 교화해서 모두 아라한이 되게 한 복보다 무량 무수 백천만억 배의 산수 비유로도 견줄 수 없는 불가칭량의  복덕을 얻는다.”

 

그래서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팔정도 칭명염불을 권합니다.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하잖아요. 팔정도 칭명염불을 권하는 거예요. 확실해요. 그러나 얼마만큼 우리 부처님을 믿고 따르느냐가 문제예요 여러분. 조금 믿는 것은 안 되고 절반 믿는 것도 안 되고, 그저 정말 믿고 따라야 됩니다. 정말 믿고 따라야 해요.

 

부처님을 위하는 일이라면 내 몸과 마음을 다 줄 수 있어야 해요. 그 교단에 바쳐버릴 용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아마 얼마나 될까요? 그런 사람이 되도록 여러분들이 신심을 길러야 해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 스님이 여러분들한테 부처님 이야기도 하고, 우리 정법 교단의 사상을 자꾸 이야기해 주는 거예요.

 

앞에서 생사관이 나왔지요. 우리 중생은 윤회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상 영원히 나고 죽고 나고 죽고를 반복해요. 영원히 나고 죽고 나고 죽고 한다고요. 그 윤회의 본체인 영혼체는 죽지 않습니다. 이것은 영원히 안 죽어요. 이것은 영원히 죽지 않고 어느 시점에 태어난 적도 없어요. 이 영혼체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이어요. 이것을 모릅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인들이 이것을 몰라요.

 

철학에서도 영혼을 이야기한 사람은 많습니다. 영혼을 이야기한 사람은 많지만, 영혼의 몸뚱이인 영혼체를 이야기한 것은 우리 현지사가 처음일 거예요.

 

나는 학문이 출중해서 세계적인 석학이 되고 강의를 잘하고 얼굴이 기가 막히게 미남이고 건강하고 가진 것이 많더라도 그 사람을 존경하지 않아요.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이 라디오ㆍTV에 나와서 하는 말을 들어보면 정말로 대단하거든요. 대단한데 그분의 내면을 살피고 그분이 어떻게 살아왔는가 행을 살펴보면 아니어요.

 

윤회에 떨어질 사람이어요. 삼악도에 갈 사람이라고요. 그런 사람이 많더라고요. 대부분이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평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그만큼 배우지 못 했고 또 그만큼 갖고 있지 못하고 또 얼굴이 그렇다 하더라도 부처님을 믿는 마음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려고 하는 그 마음이 철기둥 같으면 여러분의 미래는 밝아요.

 

불과를 이룬 대성자는 상적광세계에 항상 머물러 있습니다. 미래겁이 다하더라도 영원불멸입니다. 붓다는 멸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비심 때문에 시방세계에 많은 자기의 화신불을 내어 나가서 자비로 교화를 하는 거예요. 이게 붓다의 모습이어요.

 

우리 부처님은 5,000만억 나유타 항하사수의 분신(分身)을 내신다고 그랬어요. 여러분, 이거 조금 과장한다고 하더라도 사실 얼마든지 화신불을 내시거든요. 5,000만억 나유타, 그 많은 항하의 모래 수만큼 많은 수의 분신불을 내어서 시방의 중생들을 교화하십니다.

 

앞에서 이 우주가 넓다고 했지요. 육도 중생까지 따지면 한이 없다고 했지요. 그 사람들을 배려해서 항상 생각해서 분신불과 화신불의 몸을 나투어 가시는 거예요. 그래서 1년도 10년도 혹은 몇 년도 교화하시려고 중생 곁에 계셔요. 화신불은 그렇게 합니다. 제도하려고 그 사람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요.

 

그래서 부처님의 그 고마움과 자비함은 우리가 말로 다할 수 없어요. 우리 부처님은 우리가 완전히 의지하고 귀의하고 내 목숨을 바칠만한 충분한가치가 있는 대성자이십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요. 여러분 오늘 스님의 말씀을 뼛속 깊이 받아들여서 오늘부터 욕심을 내려놓고 ‘저 사람은 양심이 없는 것 같아.’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인륜도덕을 아는 사람이 되고, 착한 사람이 되어 여러 과거 생에 지은 자기 업을 참회하고 업을 씻고 소멸하는데 관심을 가지십시오. 업을 씻어야 합니다. 업장을 씻어야 해요. 업장을 씻지 않으면 인과법에 따라 과보를 받으니까 큰일 납니다. 그리고 윤회생사에서 벗어나도록 발원하면서 염불해야 합니다. 그래야 합니다. (신도 : 예~)

 

오늘 처음 오신 분들, 스님 법문은 어디 가서도 전혀 듣지 못한 법문이어요. 나는 조계종에서 10년~20년 법문하고 다녔어요. 그때는 선법문(禪法門)만 했지요. 조계종에서 몸담은 지 50년 되니까 선(禪)이 최고인 줄 알고요. 그리고 조계종을 대표할만한 상임포교사 두 사람 중 한 사람으로 발탁되어서 많이 법문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몹쓸 법문도 많이 했거든요. 몹쓸 법문도 많이 했어요. ‘마음이 부처다’고 외치기도 했고 ‘극락은 마음 속에 있다.’고도 했고 ‘지옥도 윤회도 다 마음의 상태이다.’라고 이야기했었습니다.

 

그런 법문을 많이 했다고요. 그러다 17년 전 어느 날 우리 태사부님을 만나서 참회하면서 정법문중에 귀의해서 지금 중요한 소임을 맡고, 우리 부처님의 넘치는 자비로 법왕자의 인가를 받아서 미래제가 다하도록 나는 이 우주의 곳곳을 다니면서 정법을 전도할 것입니다.

 

전번에 우주의 생성과 인간탄생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아주 중요한 법문인데 조금 이야기했어요. 여러분이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해야 되겠다 싶어서 이런 점을 고려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화엄경》의 내용을 집약시킨 그 법성게(法性偈)에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이라는 말이 있어요. 한 10년 동안 법문을 들은 우리 신도 분들은 조금씩 와 닿을 텐데, 이것은 굉장히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일즉다(一卽多), 하나가 곧 전체’라는 말입니다.

-‘다즉일(多卽一), 전체가 곧 하나’라고 하는 불교의 우주관입니다.

화엄(華嚴)의 우주관에 대해서 여러분이 좀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연기(緣起)를 알아요. 인드라망을 들어서 비유로 이야기합니다.

 

인드라망, 제석천왕이 계신 곳에 그물이 있습니다. 아주 큰그물이 쳐져있는데 그물코, 눈, 매듭마다 유리알처럼 투명한 진주구슬이 달려 있답니다. 그러면 그 광경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상상해 보십시오. 한 매듭 코의 구슬이 옆 매듭, 다음 매듭, 다음 매듭으로 다 비추잖아요. 또 한 매듭이 그렇고 또 한 매듭이 또 그렇지요. 이 그물의 매듭을 샹들리에처럼

매달아 둘러놓으면 전부 비쳐요.

 

그런데 여러분이 이해를 좀 더 쉽게 하기 위해 말씀드리자면, 그 유리구슬에다가 어떤 동물, 또는 서로 다른 동물을 넣을 수도 있고, 동물 수도 많지만 구슬이 셀 수 없이 많으니까 모자란다면 어느 꽃을 새겨 넣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 구슬 안에 다른 구슬에 새겨진 짐승도 들어오고 꽃도 들어오고 해서 구슬이 백만 개 천만 개라고 하면 그 광경이 한 구슬에 다 들어온단 말이에요. 그렇지요? 그래서 이 구슬 하나만 보면 천만 개를 대신할만한 것이 되잖아요. 그것이 ‘즉(卽)’이어요. 곧 ‘즉(卽)’자예요. ‘일즉다-하나가 곧 전체’요. 하나가 곧 전체라는 말을 알았지요?

 

구슬하나에 전부 들어오니까요. 또 그것을 상즉(相卽)이라고 합니다. 상입‘(相入)-들어간다.’ 그거예요. 빛이 구슬 속으로 새겨놓은 그 모습이 들어가잖아요. 그래서 반사한단 말이에요. 이것이 비치고 비치고 반사하고 반사하고 이렇게 되어서 그 장엄한 경계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장엄한 경계를 생각해보세요.

 

우리 화진포 법당이 그렇습니다. 화진포 법당이 문 쪽에 각(角)이져있어요. 스님이 문 쪽에 서있으면 각진 것이 한 10개도 더 될 거예요. 문 쪽에 나의 모습이 서로 비춰져서 열 명의 나의 모습이 나타나지요.

 

그렇지요? 그것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인드라망이 그렇다 그거라. 하나의 구슬 안에 모두가 다 들어있다 그거라. 또 이 하나의 구슬의 모습이 나머지 다른 구슬에 전부 들어가 있단 말이에요. 새겨놓은 그 모습이요. 이 비유를 잊어버리지 마세요.

 

인간을 포함해서 이 세계와 우주만물은 하나님이 있어서 만든 것이 아니고 연기(緣起)의 원리ㆍ상즉상입(相卽相入)하는 원리에 의해서 일어나고 생기고 유지되고 상속되고 소멸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연기법이어요.

이것을 연기라고 합니다.

 

짚단 하나를 세울 수 있습니까? 못 세우거든요. 두 짚단을 서로 맞대어 놓으면 서잖아요. 한쪽은 다른 짚단이 필요합니다. 한쪽 짚단이 서는 데는 다른 짚단이 필요하다고요. 그렇잖습니까? 우리 인간도 그렇고 또 모든 사물이 전부 그래요. 혼자 하늘에서 떨어져 땅에 태어난 놈은 없어요. 다 그렇습니다.

 

서로 의지하고, 나도 의지하고 또 의지해줘서 생겨나고 유지되고 발전 진화합니다. 이것을 연기(緣起)라고 해요. 그래서 연기, 인연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온 우주는 상즉상입합니다. 이것을 중중무진(重重無盡)이라고 하는데, ‘우주만물은 중중무진한 연기에 의해서 성립되어있다.’ 이게 맞습니다. 이것은 아주 깊은 붓다의 경지에서 불안(佛眼)으로 본 것입니다. 이게 《화엄경》이어요. 그러니까

 

“이 세상의 개개물물(個個物物)은 고립적으로 홀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더라. 개개물물이 상호연관 관계의 인연으로 성립되어있더라. 자기의 고유한 특성을 잃지 않으면서 상호연관 관계의 인연으로 성립되어 있더라.”

이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화엄경》의 성기론(性起論)은 연기의 주체가 빠져있기 때문에 우리 현지사는 여기에다가 연기의 주체를 넣어주어 이름을 ‘유아성기론(唯我性起論)’이라고 했습니다. 연기의 주체, 즉 나는 내 얼굴과 내 인격과 내 건강과 내 몸뚱이와 내 부모와 내 형제와 내 환경을 과거 생에 내가 지어놓은 거예요. 그 업력으로 이렇게 태어난 것이거든요.

 

우리 인류는, 또 이 우주 안의 유정들은 낱낱 자기의 모두를 창조한 창조주예요. 그러면서 이 기세간(器世間)ㆍ의보(依報)라고 하지요. 업이 이 세상을 창조한 거예요. 이것을 알아두어야 합니다.

 

자, 우리 인간은 《아함경》에 나와 있지요. 십이인연법이 나옵니다. 이렇게 시간적으로 유지 생성 발전해 가는 것을 십이연기로 설명하고 있잖아요. 이 인연법, 연기법 안에 애(愛)ㆍ취(取)ㆍ유(有) 그러지요. 애ㆍ취ㆍ유가 원인이 됩니다. 유라는 것은 업을 짓는 것이거든요. 금생에 업을 지으면 다음 생에 받는데, 생(生)이라고 하잖아요. 노사(老死)가 되고.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인연법 안에 들여다보면 업의 법칙이 나와요.

 

그래서 우리 인간은 인연의 도리와 업의 법칙으로 태어나서 아주 잘 살거나 재앙을 만나거나 힘든 운명으로 산다는 것은 자기가 결정하는 거예요. 이 인연의 도리와 업의 법칙이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 거예요. 앞에서 말한 인드라망의 비유처럼 이 우주만물은 서로서로 상관관계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그럽니다.

 

그런데 하나의 종자가 있어서 결국 그 종자가 드러나기 때문에, 종자 안에는 그 물체가 완성될 수 있는 DNA가 있잖아요. 그 안에는 DNA가 있잖습니까. 그렇게 형성이 됩니다. 우주 안에 모든 것이 다 널려져 있는데 필요한 것만 나의 인연 따라서 잡아 온다고요.

 

그래서 풀 한포기를 봐도 완벽하다고요. 잎사귀 하나만 봐도 아주 정교하고 대칭이 딱 맞아요. 이거 신비롭게 만들어지잖아요. 기가 막힌 거예요. 이렇게 된다고요.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생겨서 자라고 결국은 없어지고 하잖아요. 말하자면 전부 연기법에 의해서 그렇게 되는 거예요. 연기법에 의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창조가 아니어요. 절대자가 있어서 창조한 것은 아니어요. 태초에 유일신이 있어서 창조한 것이 절대 아닙니다.

 

힌두교는 그보다도 훨씬 낫지요. 범(梵, 브라만)이 전변(轉變)해서 만물을 만든다고 하잖아요. 전변해서 만물을 만들어 나중에 자기를 분화하여 그 개개만물에 하나씩 들어가 버린다고 하지요. 참 묘한 이야기를 해놓았는데요.

 

그것도 일종의 창조설입니다. 그렇게 되면 과거가 없어야 합니다. 만든 이전은 없어야 해요. 그러니까 그것은 아니어요. 아니고, 앞에서 쌍벽을 이루었던 수행자, 그 사람들이 그렇게 만든 거예요. 몇 천 년, 몇 겁 전에 그런 철학과 사상을 잉태한 거예요.

 

우주만물과 인간, 인간의 탄생에 대해서는 또 다른 이야기를 해드려야 하는데, 다시 이야기해야 하는데요. 어쨌든 우주만물이 그렇게 생긴다고요. 창조도 아니고 전변도 아니고, 연기법에 의해서 인연에 의해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하는 거예요. 이것을 여러분이 아셔야 됩니다.

 

자, 내가 이 세상에서 이렇게 건재하게 법상에 앉아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나의 부모가 있어서 그렇잖아요. 부모가 없으면 태어날 수 없거든요. 부모가 없으면 나는 있을 수 없어요. 부모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또 어쩝니까?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어서 온 거예요. 어머니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있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거예요. 그렇지요? 이렇게 주~욱 나가서 깊이 들어가 32대쯤 소급하면 85억명 하고 관계가 있어요. 지금 지구상의 인류가 70억이라고 합니다. 32대라고 하면 1000년밖에 안 되어요. 40대쯤 가버리면 2조(兆), 50대쯤 가면 200조예요. 50대라고 해야 1500년밖에 안 되어요.

 

2조라고 하면 아마 인간을 포함해서 축생계까지 따질까? 그런데 우리가 다겁생으로 살아 왔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 우주 안의 유정들하고 다 관계가 있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있어서 내가 존재한 거예요. 그것은 현재 태어난 중생만 이야기한 것이고, 가령 스승한테 배우고 또 은혜를 베푼 은인들 등은 여기서 배제한 것입니다. 나라는 이 몸뚱이를 낳게한 수만 계산한 거예요. 또 우리는 밥 먹고 옷 입고 잠자야 살잖아요.

 

그것도 생각해 봐요. 밥 먹을 때 어떻게 먹습니까? 쌀 콩 보리 등 곡식은 익히고, 간장 나물 등의 반찬이 있어야 먹잖아요. 이거 하나하나를 또 따져보세요. 이 쌀이 혼자 못 큽니다. 그렇지요? 여러 가지 나물 초목들이 지니고 있는 기(氣)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잖습니까? 그렇게 해서 따지면 여러분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 

 

‘국화 옆에서’라는 제목의 시를 쓴 서정주 시인이 있습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 시인이 어떻게 《화엄경》을 공부했는지 우리 불교의 깊은 인연법이 담긴 시를 썼더라고요. 여러분! 우리는 다 인연이 있어요. 우리가 얽혀 있는 거예요. 상대가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상대를 사랑과 자비로 친절하게 대해줘야 해요 여러분.

 

‘저 사람은 어찌 준 것 없이 미워!’ 그러지요. 그건 과거생에 업연이 그렇게 되어서 그렇습니다. 업연이 얽혀서 그런다고요. 그것을 풀려면 반대로 나가야 해요. 저 사람이 나한테 욕을 하고 나를 보기만 하면 그냥 눈길질하고 시비를 걸면, 과거생에 나하고 인연이 좋지 않거든요. 이것을 풀어야 해요.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사랑으로 나가야 해요. 똑같이 나가면 악순환이 계속 됩니다. 그것을 풀려면 사랑으로 나가야 해요. 그래야 해요. 여기서 많은 철학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우리가 홀로 나온 것도 아니고, 홀로 살 수도 없습니다. 상대가 다 필요하다고요. 그래서 우리 부처님은 불과를 딱 이루어 놓고 상적광세계에서 완전한 즐거움을 누리고 미래제가 다하도록 살 수 있지만 그 인연을 생각해서 제도하기 위해서 오시잖아요. 불과를 이룬 사람들은 이제 진짜 보살행을 하는 거예요.

 

보살행을 하잖아요. 여러분, 그 인드라망의 비유를 들어서《화엄경》에서는 모두 다 인연으로 이루어진다 그거예요. 인연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속을 보면 실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거기가 공(空)이어요.

 

그러나 우주의 주인인 인간은 업을 짓잖아요. 업을 짓는데 중생들은 그저 기분 내키는 대로 업을 짓지만 지혜가 있는 사람은 가려서 업을 짓잖아요. 착한 업인 선업을 짓잖아요. 선업을 지으면 하늘에 태어나거든요. 그리고 또 집중력을 길러서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공부를 하게 되면 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 삼매의 힘을 얻는다고요. 그래서 우리 부처님께서 이렇게 수행하다 보니까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된 거예요.

 

그래서 이 영혼체가 주인이어요. 이것은 나의 주인도 되고, 우주의 주인도 된다고요. 그래서 이 영혼체가 불과를 이루어버리면 우주의 주(主)가 되어버린다고요. 우주의 법칙ㆍ연기의 법칙과 하나가 되어버려요.

 

현상계의 본체ㆍ우주의 본체인 공(空)이 지니고 있는 힘과 하나가 되어버린다고요. 내 것이 되어버린다고요. 또 무량광이라고 하는 희유하고도 불가사의한 빛을 얻어요. 그것이 희유한 그 빛이어요. 무량광이라고 하는 빛이 부처님의 힘과 지혜의 원천입니다. 그것이 정체요, 원천이라고요.

 

자, 앞에서 그 수행자의 이야기를 했는데, 그 종교의 성서라고 하고, 인류의 영원한 복음서라고 이야기하는 〈바가바드기타〉의 한 구절을 들고 이야기합니다.

 

○7장 4절을 보면

“흙과 물과 불과 바람과 공간과 마음과 지성과 에고(ego)의 이 여덟 가지는 모두 나의 에너지로부터 비롯되었다.”

이렇게 말해요. 여러분 이것을 뜯어볼 줄 알아야 해요. 정법문중의 우리 학자님들은 이것을 딱딱 뜯어볼 줄 알아야 한다고요. 내가 〈바가바드기타〉보다 우리의 《21세기 붓다의 메시지》가 훨씬 더 깊다고 했잖아요. 이것을 딱 보면 전변설이니까 이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불법의 연기법으로 봅시다. 흙과 물과 불과 바람과 공간과 마음과 지성과 에고는 전부 연생(緣生)이어요. 인연ㆍ연생입니다. 그런데 여기는 그렇지 않고 실체같이 이야기해 놓았습니다.

 

○7장 5절을 보면

“위의 여덟 가지는 나의 낮은 에너지, 즉 외적인 물질적인 에너지이다. 그러나 여기 더 높은 나의 에너지 즉 내적인 정신적인 에너지가 있으니 그것은 생명의 힘으로서 이 우주를 지탱해주고 있다.”

 

라고 하거든요. ‘…지탱해주고 있다.’ 그러는데, 이 우주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우주의 본체인 공의 힘, 힘이 진화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물리학에서 전번에 이야기한 네 가지 힘(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이 나오잖아요. 그런 것에 의해서 지탱이 되는 거예요. 여기 〈바가바드기타〉에서는 이 범(梵)에서 이런 힘이 나온다고 했지요. 그런데 그것이 아니고 모두 다 연생들이어요. 인연생이어요. 우리 불교에서는 고정불변한 실체가 없다는 거예요.

 

그러나 인간은 윤회의 주체가 있어요. 연기의 주체가 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불교의 여러 연기설을 보면 연기의 주체가 빠져버렸어요. 그래서 무아연기가 되어버렸잖아요. 업감연기(業感緣起)라든지 아뢰야식 연기(阿賴耶識緣起)라든지 진여연기(眞如緣起)라든지 《화엄경》의 법계연기(法界緣起) 등 육대연기(六大緣起) 모두 연기의 주체가 빠져버렸잖아요. 그래서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유아성기론(唯我性起論)이라고 하면 좋겠다 그거예요. 유아성기론. 나 영혼체는 불생불멸이거든요. 그것이 핵이거든요. 핵입니다.

 

이 인간이나 우주만물은 어떻게 해서 생겼나? 어떻게 해서 유지 존속되고 소멸되고 반복이 되나? 이것은 연기법에 의해서 그렇다. 더 들어가서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본체인 힘과 연기법에 의해서 그렇다. 여기〈바가바드기타〉에서는 브라만 하나만 이야기하고 있어요. 공하나만 이야기하고 있지, 연기법도 빠져버렸다고요.

 

그런데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 외에 유정(有情)의 업력이 들어가야 되요. 유정의 업력이 없으면 창조가 안 되어요. 그래서 우리 현지사에서는 공과 연기법과 유정의 업력이 창조의 근본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화엄경》으로 들어가면 그것에다가 또 불ㆍ보살의 원력과 위신력이 보태어 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놔두고. 우리가 앞으로 소책자를 낼 때에는 이렇게 보강을 해서 낼 겁니다.

〈우파니샤드〉라는 힌두교의 성서가 있습니다. 그것도 철학서인데

 

○제2장 3절을 보면

“그 불멸의 브라흐만에서 숨이 생겨났으며 또한 마음과 모든 감각기관 하늘 공기 불 물 그리고 모든 세상을 지탱하는 땅이 생겨났도다.”

그러니까 〈우파니샤드〉는 〈바가바드기타〉하고 형제거든요. 여기도 또 그렇게 해놨지만 모든 감각기관이나 하늘이나 공기나 물 불 등 그것도 다 연생이어요. 그래서 이 모든 것들은 다 공의 힘ㆍ연기법, 그리고 유정의 업력에 의해서 생기는 거예요.

 

지난 시간에 조금 미흡했던 것을 보충 설명했습니다. 너무 전문적인데 우리 수준 있는 불자님들을 위해서 말씀한 것입니다. 이제 막 오신 분들한테는 죄송합니다. 죄송한데 어쨌든 앞으로 현지사에 꼭 많이 나오시고 염불도 많이 하십시오.

그리고 현지사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기본계율이 있습니다. 그 계율을 지킬 줄 알아야 됩니다.

 

그래야 합니다. 다음 세상이 있으니까요. 다음 세상이 있어요 여러분. 지옥가면 큰일이거든요. 그러면 또 축생으로 가요. 우리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 많이 알려진 세계적인 종교에 귀의한 많은 신도들이 있잖아요. 그 성직자들을 포함해서 거의 대부분 악도로 가더라고요. 정법문중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법문중에 귀의하면 안 그래요. 살아요. 언젠가 윤회를 벗어날 수가 있어요. 그 길이 있습니다.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고아일심귀명정례

 

지난시간에 스님이 ‘인간을 포함해서 우주 만물은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 아니다.’ 한 것이 세 가지의 내용으로 뭉뚱그려 신문에 게재되었지만, 덧붙여서 이야기를 하다가 좀 빠져버린 것이 있어요. 설명이 빠져버렸어요. 뭐냐하면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들었다면 창조했다면, 범(梵)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면 생각이 있어야 할 것 아니냐 그거예요.

 

생각도 대단히 깊고 출중한 생각이 있어야 할 것 아니냐 그거요. 생각하고서 하나의 어떤 시나리오, 각본이 있을 것 아니냐 그거예요. 그렇잖습니까? 그렇지 않고 어떻게 창조합니까? 자, 생각이 있고 행위할 수가 있어야 된다 그거예요.

 

그러려면 머리가 있어야 하고 몸뚱이가 있어야 한다 그 말이어요. 거기서부터 빠져버렸어요. 머리가 있어야 하고 몸뚱이가 있어야 해요. 눈이 있어야 하고 귀가 있어야 하고 코가 있어야 하고 입이 있어야 해요.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했다면 하나님이 그래야 된다 그거예요.

 

그러면 그렇게 모습을 갖추고 있다면 본 사람이 누가 있느냐 그거예요. 예수를 따르는 목사 신부 신도들 중에 본 사람이 누가 있느냐 그거요. 몸뚱이가 있다면 아버지가 있어야 되고 어머니가 있어야 된다 그거예요. 아버지가 있고 어머니가 있어야 한다면 할아버지도 있어야 하고 할머니도 있어야 하고 외조부도 있어야 하고 외조모도 있어야 한다 그거요.

 

우리 부처님은 그렇잖습니까?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 없이 만들었나? 생각 없이 어떻게 만드나? 그 생각도 지혜가 문제가 아니라 이 우주를 엿새 만에 만들었다고 하면 그 지혜는 상상할 수가 없어요. 그것은 아예 말도 안 되지만, 어쨌든 생각이 있어야 될 것 아니냐? 생각이 있으려면 머리와 몸뚱이가 있어야 할 것 아니냐?

 

그런데 없거든요. 몸뚱이도 없고 머리가 없거든요. 머리가 없고 몸뚱이가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은 안 되어요. 공(空)이어요. 공이 어떻게 이 세상을 만듭니까? 법문하다가 보면 빠져버리기도 해요. 이렇게 얼굴 보다가 넘어가버린다고요. 이런 점도 있습니다.

 

자, 오늘 처음 오신 분! 앞으로 계속 나오세요. 계속 나오세요.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악도로 갑니다. 그렇게 살지 마세요. 꼭 나오셔서 법문을 들어주세요. 한 달에 두 번입니다. 큰스님 법문 들으시고 우리 스님들 지도를 받으시고, 여기서 시키는 대로 그렇게 행하고 사십시오. 그래야 합니다. 반드시 그래야 삽니다. (신도: 예~~)

오늘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