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에서 삼매까지/현지궁 현지사

현지사에서 밝히는 바른 천수경과 관세음보살님

불제자 2011. 6. 1. 18:47

 

 

 

 

 

현지사에서 밝히는 바른 천수경과  관세음보살님

 

 

 

 

《천수경》을 조금 이야기해야 되겠어요. 우리 영산불교에서 모든 경전을 보니까, 이거 다 정리해야 되겠어. 다 손질을 해야 되겠어. 그러나 감히 손질을 하기는 그렇고, 그럴 시간도 없고, 또 부처님께서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허락을 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만《천수경》에 대해서 손질하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읽고 있는《천수경》, 그 연원을 따지면 1300년 전입니다. 7세기 인도의 '지통'이라는 분이 처음으로 번역을 했습니다. 이 산스크리트어 본을 가지고 한역(漢譯)하였습니다. 그 후로 이제 널리 유통된 한역본(漢譯本)이 두 가지가 있는데, '가범달마'라는 분하고 '불공(不空)'이라는 분이 그 후에 번역한 것이 지금 널리 유통되고 있는《천수경》의 저본이 되겠습니다.

 

그래서《천수경》이라는 것은 '가범달마'씨가〈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대다라니경〉이라고 했기 때문에 앞의 두 글자하고, 끝 글자를 따서《천수경》이라고 한 거예요. 그런데 그 두《천수경》은 계청(啓請)부분과 대비주(大悲呪)만 문자화 되어 있습니다. 계청 부분 알지요? 계청(啓請)부분과 대비주(大悲呪, 신묘장구대다라니)부분, 그 부분만 문자화 된 것인데, 나머지는 이 다라니를 독송하기 위해서 여러 독송 규범들을 적어 놓은 거예요. ‘다라니를 독송하기 전에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많이 염송해라. 참회하고 발원해라’ 하는 지시가 있어요. 그런 규범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신라 때 '의상(義湘)'이라든지, 고려 때 '균여'라든지 하는 화엄학승에 의해서 이《천수경》을 많이 원용했습니다. '의상'이라는 분은 대단한 관음 신행자입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서너 가지의 책이 있습니다.〈염불보권문〉(1704년),〈삼문직지〉(1769년),〈불가일용작법〉(1869년)이라는 책이 나오는데,《천수경》이 편입됩니다. 그래서 살이 붙습니다.

지금부터 200년도 못되지요. 150년 전에〈고왕관세음천수다라니경〉(1881년)이라는 것이 선을 보이게 되었는데, 이것이 현행《천수경》과 가장 유사합니다.

그러다가 지금부터 80여 년 전에 권상노의〈조석지송(朝夕持誦,1932)〉, 안진호의〈석문의범(釋門儀範,1935)〉이 나옵니다.

그러다가 지금부터 40년 전에 통도사 전문 강원에서 발행한〈행자수지(行者受持,1969)〉가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 현재 일반화 되어 있습니다.《천수경》의 역사는 이러합니다.


그런데《천수경》이 문제가 있는데, 이건 아니어요. 아니어. 이걸 읽으면 안 돼. 왜냐? 중대한 이유가 있습니다.《천수경》은 신묘장구대다라니를 핵심으로 합니다. 대비주(大悲呪)라고도 하고, 천수주(千手呪)라고도 하지요. 이것이 아닙니다. 핵심이(핵이) 외도입니다. 이것을 10년 전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거예요. 그래서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10년 전에《천수경》의 핵심인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삭제해 버린 거예요.

 

이 정도의 위신력을 불러 올 수 있는 관세음보살 다라니가 많습니다. '불정심관세음보살모다라니'를 대입했습니다. 우리가 그랬지요.

그러면 왜 그 핵심인 대비주(신묘장구대다라니)가 외도냐? 외도적인 것이냐? 요즘 다라니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이 나와서 연구를 했어요.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보면 '니라간타'하고 '바라하 모카 싱하 모카야 사바하'가 중심입니다. '니라간타'라고 하는 것은‘푸른 목을 가진 시바신’을 상징합니다. '바라하 모카 싱하 모카야 사바하'는 ‘멧돼지의 용모를 지니고 사자의 용모를 지니는 자’를 찬탄하는 구절입니다.

 

이것은 베다가 많이 연구가 되고 해서, 그 후 인도 힌두교에 큰 성전이 나오는데,〈마하바라타〉라고 하는 고전에 등장하는 '비쉬누'신의 화신을 말합니다. '비쉬누'신의 화신. '시바'하고 '비쉬누'는 힌두교의 신입니다. 브라만, 비쉬누, 시바 그러지요. 이 신묘장구대다라니는 '시바'하고 '비쉬누'를 찬탄하는 게송이올시다. 이것이 지금 여러 불교학자들에 의해서 연구된 결론입니다. 10년 전에 우리가 ‘이것은 외도다’하고 ×표 놓아버린 것을 지금의 학자들이 옳다고 하는 거예요.


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하루에도 몇 만 독(萬讀)씩 한 분이 나한테 몇 사람 찾아 온 적이 있어요. 머리가 돌아 있어. 머리가 돌았어. 정법의 다라니라면 머리가 왜 돌겠습니까? 외도의 다라니이기 때문에 머리가 돌 수 있는 거예요. 외도의 다라니이기 때문에 머리가 돌 수 있지마는, 외도의 다라니이기 때문에 신통도 할 수 있는 거예요. 대원군, 또 그 후 어떤 분들, 신통을 한 분들이 있지요. 바다를 건너간 사람, 어느 스님도 있어요. 그러나 이것은 외도의 기(氣)에 의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70%는 외도의 기(氣)가 온다고 말씀하셨어요. 벌써 하루에 몇 만 독씩 하면 완전히 그 외도의 권속(眷屬)이 되어버립니다. 이건 슬픈 일입니다. 외도는 미래제가 다하도록 희망이 없습니다.

 

여러분, 정법(正法), 정법(正法), 오직 한군데 정법(正法)이라고 했어요. 영산불교 염불정법입니다. 우리는 정법에서 죽어야 돼. 정법에서 죽어야 되는 거예요. 이건 희망이 있어. 다음생도 희망이 있어. 스님이 하라는 대로 신행을 하게 되면 여러분은 지옥 아귀 축생에 안 갑니다. 우리 현지사 신도 분들은 아마 70~80%, 80~90%는 지금 죽어도 하늘에 간다고 스님이 그랬어. 그 이유가 있어요. 그 이유가 있다고 했지요. 다른 큰스님,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고 하는 지금 세계적인 어떤 분, 그분의 법문? 불보살님이 오셔서 업장 안 씻어 줘.《열반경》을 보면 “불보살님의 빛을 받으면 그 공덕으로 다음 생 언젠가 불도를 이룬다”고 했어요. 여러분, 얼마나 많이 받습니까?


암행어사가 암행어사의 징표를 가지고 다니는 거예요. 그 징표(마패)가 없으면 암행어사가 아니어. 붓다의 징표는 무량광인 거예요. 무량광. 무량광을 쏘아서 죄보(죄업)중생의 업장을 씻어 줘야 돼. 그런 힘이 있어야 돼. 그리고 세상을 태평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어야 돼. 그러니까 붓다의 몸뚱이는 네(4)개의 영혼체가 완전히 무량광 빛으로 되어 있잖아요. 당신의 보신(報身)은 절대계에 정말 아름다운 32상80종호의 거룩한 모습으로, 빛의 몸으로(무량광 몸뚱이로) 되어 있어요. 지복의 몸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 그 보신의 뿌리가 되는 법신불이 청정법신 안에 있는데, 이건 우주의 이법(理法)과 완전히 하나로 계합 되어 버린 거예요. 우주의 이법과, 진리와, 인과법(因果法)과, 연기법(緣起法)과 완전히 하나로 되어버린 거예요. 이 지체(智體)는 생각도 없고, 판단도 없고, 행을 못하지만, 당신의 보신이 언제라도 이 법신불하고 하나로 계합이 되고(당신의 보신은 법신불을 젖줄로 한 당신의 몸뚱이기 때문에), 이 몸뚱이가 죽어서 영체가 들어가게 되면 이 붓다는 우주적인 힘을(파워를, 위신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거예요.


이《천수경》은 좀 더 들여다봐야 되요. 이 대비주가 과연 관세음보살님의 대비주냐?


무량겁 전에(아득한 옛날에) 천광왕정주여래가 계셨는데, 이 광대원만무애대비심대다라니를 말씀하시고, 금빛 손으로 관세음보살의 이마를 어루만지시며 ‘네가 이 대비심 주문을 지니고 이다음 세상에 업장이 두터운 말세중생들을 크게 구제하라’하셨다고 합니다. 이게 연원이어요. 그때 관세음보살은 초지보살로 있었는데, 대비주를 한 번 듣고 곧 8지보살의 위(位)에 뛰어 오르게 되었다. 관세음보살은 발원하기를 ‘일체 중생을 널리 구제하기 위하여 일천의 눈과 일천의 손을 갖추어지이다’ 하고 발원을 했더니, 즉시에 시방세계가 육종으로 진동하고, 일천의 눈과 일천의 손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것을 산스크리트어로 해서 조작해 넣어버렸어. 어떤 사람이 만들어 버렸어. 이건 조작이어요. 붓다의 경계에서 보면(붓다의 안목으로 보면), 이건 확실히 조작이어. 왜? 어디가 조작이야?

▸관세음보살이 초지보살로 있었는데, 이 대비주를 듣고 8지보살로 뛰었다? 이건 말도 안 돼. 안 그렇습니까?

▸둘째, 8지보살로 되었는데 일천의 눈과 일천의 손을 갖추어지이다 했더니, 육종진동이 되면서 다 갖추어져버렸다? 말도 안 돼. 천수천안이라는 것은 일천의 눈과 일천의 손이 있는 것이 아니어. 천수천안이라는 것은 관세음보살, 붓다의 위신력과 자비력, 자비와 지혜와 위신력을 상징하는 것이어. 눈이 천개이고, 손이 천개이면 그건 기형아여. 기형아. 절대계의 보신부처님은 자기의 몸뚱이를 1,000명이 문제가 아니라, 만 명 억 명을 삼천대천세계에 뿌릴 수 있는 거예요.

 

이건 어디까지나 불과(佛果)를 증한 분의 이야기예요. 불과(佛果)를 증해야 되는 거예요. 초지보살이 어떻게 대비주를 듣고 8지로 뛰어버립니까. 그러더니만 또 발원을 하니까 천개의 눈과 손이 갖추어져? 이건 아니어. 이것은 너무도 과대해서 만들어 놓은 거예요. 볼 줄 알아야 돼. 그래서 이번에 우리가《새 천수경》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그리고 이《천수경》은 관세음보살에 대한 신앙을 의례화한 것이거든요. 우리가 수행하는 소위 실천적 성격이 짙은 경전인데, 지금까지 관세음보살이 어떤 분인가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오해와 왜곡이 있었는데, 이번에 영산불교에서는 이를 바로잡았습니다.

 

이《천수경》을 보면 준제보살님과 관세음보살님을 동일인으로 봤습니다. 그건 아닙니다. 여러분 아시죠? 이건 말도 아닙니다. 이것은 준제보살님을 모독한 말이어요. 당초 이것을 편집한 그 어떤 스님이 산스크리트어로 만들 때 '시바'신과 '비쉬누'신을 넣어 가지고 다라니를 만든 거예요. 그리고 이 다라니가 대단한 위신력이 있는 것처럼 해가지고 써놨는데 결국은 그것이 아닙니다. 천광왕정주여래가 관세음보살님의 이마를 만진다고 하는데, 초지보살 8지보살은 또 붓다를 못 봅니다. 이건 완전히 조작입니다. 조작이어요. 이것을 우리가 1300년 토록 모르고 조작된《천수경》만 한 거예요. 신묘장구대다라니만 하면 좋다고 해가지고 다 외도의 권속으로 만들어 버린 거예요. 이거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이것을 바로 잡아줘야지. 이걸 바로 잡아야 돼.


그 다음, 계청(啓請)에 나오는 10대 이명(異名)이 있습니다. 계청(啓請)에 열 분의 보살이 나오지요? 군다리보살, 십일면보살...다 관세음보살로 해놨는데 그것은 아니어. 아니고, 그분들은 정토의 상품보살인데 관세음보살님의 교화활동을 도와주는 보살님들이어요.

 

그 다음(셋째), 관세음보살은 문수 보현 지장과 마찬가지로 일생보처보살이 아니어. 무량겁 전에 불과(佛果)를 이루신 정법명왕불입니다. 그러면서 사바세계의 중생들을 너무도 불쌍히 보셔서 대자비심으로 건져주시고자 하는 그런 어머니와 같은 너무너무도 자비하신 분이어요. 그런다고 해서 여자도 아니어. 백의관음은 여자의 모습으로 나오는데, 그건 변화신입니다. 본불은 남자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 다음, 좌우보처가 해상용왕, 남순동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아니어. 이 관세음보살같이 큰 어른이 좌우보처에 남순동자나 해상용왕이겠습니까? 여기는 아라한도 아닌데. 아라한이라고 보면 되는데요. 관세음보살님의 좌우보처는 해수관음과 육관음인데, 불격을 갖춘 최상수보살들입니다. 어마어마한 분들입니다.

 

그 다음, 천수천안은 다시 말씀드리는데, 천 명의 화신을 나투시는 것을 상징한 거예요. 관세음보살님의 자비와 위신력을 상징한 것이어. 그런 것이지 눈이 천개이고, 손이 천개가 아닙니다. 그걸 모르고, 미술전람회에 가면 천의 눈과 천개의 손을 만들어 놨어. 또 그것이 잘되었다고 특별상도 줘. 지금 이런 세상이 되어버렸어요.

 

그 다음, 육관음은 지금까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이 육도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여섯 변화신을 나툰다고 하는 것이 아니어. 육관음은 우보처입니다. 인도의 남자상을 하고 있어요. 머리에 수건을 두른 인도의 남자상입니다. 그분이 꼭 큰일이 있으면 여섯 변화신을 나투어요.

관세음보살님은 인연 있는 중생을 교화해서 서방극락세계로 인도하고자 하는 분이어요. 간절한 염원이 뚜렷한 분입니다. 생사윤회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 불보살님들의 우선 목표예요. 관세음보살님도 그래요. 지장보살님은 지옥중생을 건져서 하늘세계로, 그리고 저 극락세계로 인도하고자 하는 원이 강한 분이십니다. 지금 관세음보살님에 대한 그릇된 신행을 바로잡고, 무한한 관세음보살님의 가피에 의해서 윤회를 벗어나고, 나아가 정토에 왕생, 정토보살이 되는(되려고 하는) 보다 성숙하고 원대한 신행활동을 해야 됩니다 하고 우리《새 천수경》에서는 주장하면서 바로잡고 있습니다.

 

그러면 또 많은 말이 있는데, 선(禪)에서 이야기하는 사홍서원(자성무변, 자성중생서원도..)의 네 가지는 삭제했습니다. 이것은 말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본래의 사홍서원으로 돌려주는 것입니다. 기타 많습니다. 많은데, 오늘 시간이 너무도 없기 때문에 대충 말씀을 드렸습니다. 


출처/2011년1월12일 자재만현 큰스님 부산벖회 중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