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에서 삼매까지/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 왜 탄생했나?

불제자 2010. 12. 3. 23:58

 

 

 

 

 

 

 

 1.  가섭 아난 영산불교 정법시대를 열다

   - 부처님 없는 불교에서 부처님 실존중심 불교로

 

 

 

 

1.  영산불교 왜 탄생했나?

 

'부처님 없는 불교'에서 '부처님 실존중심 불교'로 교리

 수행체계 혁신적 재정립해야

 

 

지금의 세계 불교가 과연 2600여 년 전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어왔을

까?  진리를 통달한 어느 대수행자가 이 질문에 '아니로'라고 대답하는데 1초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면 너무나 슬픈 일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대답은

사실이다.  부처님 이후 '제2의 부처'라고까지 일컬어지던 용수를 비롯하여 수많

은 선지식, 큰스님들이 거쳐 갔는데 도대체 무엇이 잘 못 되었을까?

 

  아직 생존해 계신 분 중에서도 소위 2대 생불이라고까지 추앙받는 티베트 불

교의 달라이라마도 있고, 플럼 빌리지(Plum village)를 설립한 베트남 출신의 틱

낫한 스님도 있는데 현재의 세계 불교가 무슨 문제가 있단 말인가?  지금 세계

불교계만 해도 수많은 종단과 종파들이 있는데 거기에 또 왜 영산불교라는 새

로운 종단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이유는 분명하다.  '불교의 교주이신 부처님이 빠져버려 부처님의 우주적 구원

력을 잃어버린 불교, 인간의 실체인 영혼체가 빠져버린 실체없는 생사관으로 인

생 문제에 해답을 주지 못하는 불교, 자력중심 명상수행에 매달려 완전한 생사

해탈을 이루는 수행법이 없는 불교'를 이대로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첫째,  지금의 세계 불교는 부처님 없는 껍데기 불교가 되어버렸다.

 

  부처님께서는 무아속 절대계에 빛의 인격체로 여여히 계신다.  모든 붓다님들

도 다 계신다.  그러나 현재의 불교계는 이 사실을 모른 채, 2550여 년 전 대열

반에 드신 육신부처님만을 믿고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부처님을 믿고

있는 것이다.  영원히 멸도하지 않으시고 눈 뜨고 생생히 살아계신 진짜 부처님

(보신)을 두고 말이다.  핵심 주인공이 빠져버린 불교다.

 

또한 '견성 - 아라한 - 보살 - 붓다'의 법위에 대한 무지로 견성 또는 아라한을

붓다와 동등하게 보아 불교를 왜소화 시키고 부처님을 격하시켜 버렸다.

 

 

둘째,  현재 불교는 영혼체가 빠져버린 실체없는 생사관으로 인생 문제를 풀어줄

         실천적 생사관 하나 제대로 내놓지 못하는 반쪽자리 불교가 되어버렸다.

 

  현재의 불교계는 인간의 실체인 영혼체를 정확히 모를 뿐만 아니라 그 존재조

차 부정하기까지 한다.  지옥세계 극락세계 등 사후세계의 존재와 실상에 대한

확신도 없다.  불교의 목표는 생사해탈인데 생사해탈의 주인공인 영혼체를 모르

고 부청하면서 도대체 누구를 생사해탈 시키겠다는 것인가?  인생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갖고 중생들의 등불 역할을 해야 할 불교가 인생 문제를 풀어줄 생사관

하나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런 실정이니 어떻게 똑바로 중생을 교화하고 수행을 지도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중생에 대한 불교의 직무유기다.

 

 

셋째,  지금의 자력중심 좌선명상 관법 위주의 수행으로는 완전한 생사해탈을 이루

        는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는 큰 수행 성과를 낼 수 없다.

 

  언제부처인가 불교는 자력에만 의존하여 수행한다는 잘못된 개념이 사실인양

받아들여지고 있다.  자력수행은 불교 수행의 토대가 되지만, 완전한 생사해탈을

이루는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가피를 불러오는 타력수행

문으로 들어와야 한다.

 

  이제 불교의 수행 패러다임도 염불중심으로 혁신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삼천

대천세계 모든 붓다님들, 보살님들도 모두 염불로 붓다 되고 보살이 되었다.

 

  불보(佛寶)의 자리에 부처님이 안 보이고, 법보(法寶)는 무지와 왜곡에 가려져

있고, 승보(僧寶)는 중생의 등불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

불교의 실상이다.  주인공과 핵심 알맹이가 모두 빠진 이름만 남은 지금의 불교,

반쪽자리도 못되는 지금의 불교를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다.  그래서 영산 당시

가섭존자와 아난존자가 이 땅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붓다 이루고 부처님의 가르

침을 복원하고자 새로운 영산불교 정법교단을 창단하게 된 것이다.

 

  지금 현지사 두 분 큰스님 외에 살아계신 세계의 어느 큰스님도 불과를 이룬

분이 없음을 선언한다.  돌아가신 분 중에는 사리불존자와 수보리존자 외엔 어느

누구도 붓다 되신 분이 없음을 아울러 밝힌다.  붓다의 화신으로 왔다 가신 분은

인도의 유마힐 거사 아쇼카왕, 중국의 구마라즙 삼장, 한국의 이차돈 성사, 일

본의 성덕태자가 있다.  이는 살아 있는 붓다의 신분으로 하는 선언이며, 이 선

언에 대하여는 분명한 책임을 진다.

 

  영산불교는 이제 부처님을 중심에 두고 불교의 모든 교리와 수행체계의 큰 틀

을 다시 정림해 나가고자 한다.

 

  불교의 우주적 위대성을 상징하는 불신관은 종래의 이론적  추상적 삼신불신

관에서 경험적 실존적 삼신불신관으로 재정립 되어야 한다.

 

  불교의 뿌리가 되는 믿음관은 열반하신 육신부처님에 대한 믿음에서 살아계신

빛의 인격체인 보신부처님의 존재와 위신력에 대한 믿음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불교의 존재 이유가 되는 생사관은 현재의 인간 실체가 빠져버린 주체없는 생

사관에서 영혼체 중심의 실천적 윤회해탈생사관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불교의 실천행의 근간이 되는 수행관은 기존의 자력중심의 좌선명상 관법수

행에서 자력기반 타력중심의 칭명염불수행으로 과감히 전환되어야 한다.

 

  불자들이 희구하는 구원관은 세속적 기복중심의 구원관에서 생사해탈이라는

수행목표중심의 실질적인 생전 사후구원관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러한 토대 위에 영산불교에서는 부처님 이후 26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실

천적 관점에서 지구촌 인류의 본질적 문제인 생사관의 문제를 다루었다.  우주

진리를 통달한 붓다의 혜안과 통찰력으로, 생생한 경험으로 인간의 실체와 사후

세계의 실상을 명확히 밝혀놓았다.  이를 토대로 인생의진정한 목표는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진리의 생사관을 정립하고 실천 방법도 분명하게

제시하였다.  지금까지 어는 누구도 인간의 실체와 사람이 죽어서 가는 사후세계

의 실상을 정확히 몰랐다.  그래서 우리 인류가 죽어서 가게 되는 엄청난 고통의

세계에 대하여는 아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이 죽으면 대부분 혼절

할 정도의 가혹한 형벌이 가해지는 중지옥에 떨어져 겁 단위의 무량 세월을 고

통으로 보내야 하고, 다시 수십 수백 생 동안 돼지에서 시작하여 개에 이르기까

지 열두 띠를 돌며 축생의 몸으로 살아가야 하는 참담한 실상을 모르고 있다.

 

이미 돌아가신 부모 조상님과 가까운 친지들이 영혼체의 몸으로 받고 있을 가

혹한 고통의 실상에 대해서도 당연히 아무도 모른다.  물론 이 부분은 종교의 몫

이다.  그러나 지금 세계의 어는 종교도 이 문제에 대하여 정확한 실상을 알고

있지 못하며, 당연히 해결책은 꿈도 못 꾸는 실정이다.  불교조차 부처님의 정법

을 이어오지 못해 당연히 해야 할 이 역할을 못하고 있다.  그래서 부처님의 법

맥을 이어받은 영산불교가 우주 진리를 통달한 살아있는 붓다의 이름으로 이

인류적 차원의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고 아울러 처방도 제시하는 것이다.  오

로지 오로지 진리의 이름으로 말이다.

 

  

 

출처/우주적 진리의 신불교

        영산불교의 법세계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1권,2권 축약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