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4.18.일(음3.5) 큰스님 대전 법문
무아설(無我說)①
오늘 무아설(無我說)에 대해서 특강을 하고 싶어서 이렇게 왔습니다. 전번 첫 번째 시간은 서언(序言,머리말)정도로 대충 이야기했고, 이것은 한 3시간 정도 해야 됩니다. 불교가 무아설(無我說)을, 진정한 무아(無我)의 말씀을(가르침을) 잘못 이해하고, 또 잘못 전해서 대단히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아(無我)라는 것은 없을 무(無)자, 나 아(我)자, 나(我)가 없다 그 말이어요. 내(我)가 없다. 불교의 특색입니다. 모든 종교와 다른 점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불교의 세 가지 특색(특성)이라고 하면, 제행무상(諸行無常) ․ 제법무아(諸法無我) ․ 열반적정(涅槃寂靜)이라고 말씀드렸지요. 네 가지를 들라고 하면 일체개고(一切皆苦) 그럽니다. 보통 삼법인(三法印)하면 제행무상(諸行無常) ․ 제법무아(諸法無我) ․ 열반적정(涅槃寂靜) 이렇게 듭니다. 이 중에서 제법무아(諸法無我)의 무아설(無我說), 이것이 문제가 됩니다. 전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이 무아설(無我說)을 잘못 전한 관계로 불교가, 그 위대한 부처님의 말씀이 왜곡되어 인도에서 우리 불교가 설자리를 잃고 인도를 떠난 것입니다.
부처님 가신지 200년쯤 되어서 어느 붓다의 후신인 '아쇼카 대왕'이 처음으로 전 인도를 통일했습니다. 또 여세를 몰아 페르시아(지금의 이란, 이라크 쪽), 더 넘어가서 그리스까지 불교를 전파했습니다. 우리 '아쇼카 대왕'은 앞에서 어떤 붓다의 후신이라고 했지요. 지금까지 불과(佛果)를 이루신, 이미 이루신 어른으로서 어떤 붓다의 후신이 이 세상에 열 분 정도 오셨습니다.
①인도의 '유마거사'가 있지요. 그 분이 붓다의 후신이구요.
②그 다음에 우리 '아쇼카 대왕'입니다. 그러니까 BC3세기경, 부처님 대열반 후 200년쯤 되어서 이 땅에 왕의 신분으로 오셨습니다.
③그 다음 '칸슈카 왕'이 있습니다. 대단히 불법을 숭상하고,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에 온 몸을 던져서 불교이념으로 인도를 통치한 '칸슈카 왕'이 불격을 이루신 최상수보살이었습니다.
④그리고 부처님 가신지 약900년경, '무착․세친'대 쯤 와서 '미륵보살'이 또 오셨습니다. 미륵보살 아시죠? 그분이 또 잠깐 왔다가 가셨습니다.
⑤그 다음 삼장법사 '구마라즙'이 있지요. 그분이 붓다의 화신입니다.
⑥그리고 우리나라 신라시대의 '이차돈', 그분이 붓다의 후신입니다.
⑦일본의 '성덕태자'가 붓다의 후신이구요. 지금 내가 밝히지 못하는 부분이 두세 분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약 열 분이 왔다 가셨습니다. 그걸 아십시오.
무아설(無我說), 이 무아설(無我說)을 잘못 해석했기 때문에 불교가 힌두교로부터 질타를 당하면서 설자리를 잃어버립니다. 그 힌두교(학문적으로는 힌두이즘이라 하고, 부처님이 계실 때에는 브라마니즘, 브라만교라고 부름)의 학파가 여섯 가지 정도 있습니다. 대단한 세력을 띠고 힌두교를 선양하는 여섯 개의 학파가 있는데, 그 여섯 개의 학파 대부분이 불교사상에 대하여 지적하고 문제를 제기 하는 부분이 바로 무아(無我)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무아(無我)를 집중적으로 무섭게 공격해옵니다. 그래서 부처님 가신지 100년쯤 되어서 우리 교단이 둘로 나눠지지요.
상좌부와 대중부로 나누어지는데, 그 후 약100년, 200년쯤 되니까 우리 부처님 교단이 20개 부파로 분열됩니다. 여러분, 그걸 아시는지 모르겠네요. 20개부파로 분열이 돼. 그 20개 부파에 학파들이 있어요. 경량부(經量部,sartrantika),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sarvastiv da), 독자부(犢子部), 대중부(大衆部), 상좌부(上座剖)라든지에는 대단한 학자(학승)들이 있었습니다. 힌두교 쪽에서 무아설(無我說)을 공격해오니까 그 학승들이 응전을 해야지요. 그래서 이 무아설(無我說)에 대해서 깊은 연구를 했습니다.
그 연구를 해가지고 대응한 것이 있어요 경량부라고 하는 부파불교에서는 '심상속 이론'으로 대항을 했습니다. 심상속 이론,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의 생각이 찰나생하고 찰나 어쩌죠? 멸해요. 우리의 생각은 그러지요. '찰나생 찰나멸'그러지요. 이 생각이 계속 일어났다가 없어졌다가 일어났다가 없어졌다가 하기 때문에, 정말로 찰나에 일어났다 없어졌다 하기 때문에 하나의 흐름으로 보고, 이 생각의 흐름을 주체로 내민 거예요. 그것을 '심상속 이론'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주체가 없으면 윤회를 못하거든요. 여러분, 주체가 없으면 윤회를 못합니다.
무아(無我)면 윤회설을 주장할 수가 없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무아(無我)를 말씀하시고, 또 윤회를 말씀하셨거든. 그러니까 유아(有我)라야(내가 있어야) 죽어서 가는 놈도 있고 윤회하는 놈도 있다는 논리가 맞습니다. 힌두교 쪽은 그것입니다. 힌두교에서는 아트만(atman)이라고 합니다. 힌두교에서는 영원불변하는 나(我)가 있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아트만(atman)이 있어서, 업을 지어서 아트만(atman)하고 뭉쳐진 그놈이 윤회한다 그거예요. 힌두교에서는 주체를 인정한단 말이에요. 그런데 불교에서는 이 무아(無我)를 잘못 해석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무아(無我)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하셨는데, 원래는 비아(非我)를 말씀하셨어요. “내(我)가 아니다. 이 몸뚱이는 내(我)가 아니다. 이 생각도 내(我)가 아니다”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무아(無我)라는 말씀도 하실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학승들은 이 무아(無我)를 곧이곧대로(액면그대로) 순진하게 받아들였어. 그래가지고 이 무아설(無我說)은 움직일 수 없는 하나의 성역이 되어버립니다. 이 무아설(無我說)에 대해서 다른 말이 나오면 그건 용서가 안 돼. 그렇게 되어 있어. 그러니까 무아(無我)를 주장하면서 어떻게 윤회를 한다고 할까?
이걸 학승들이(불교학자들이) 연구를 한 거예요. 그래서 '심상속 이론'이 나오고, 나중에 '무착․세친'대 이후(900년 이후)로 유식학파가(유식학이)생깁니다. 그 유식학파에서는 심상속(心相續, citta-dhāra, citta-srota, 금강경: 心流注)이론을 더욱 발전시켜가지고 제8아뢰야식을 내놓았어요. 아뢰야식이 윤회의 주체가 된다 그거예요. 아뢰야식이라고 하는 놈이 윤회의 주체가 된다 그거요. 그런데 식(識)으로는 윤회가 안 됩니다. 식(識)으로는 윤회의 주체가 안 됩니다.
오늘 내가 첫 번째로 말씀드리는 것인데 ‘식(識)으로는 윤회의 주체가 될 수 없다’하는 것이 영산불교 현지사의 사상입니다. 전번 시간에도 이건 말씀드렸지요. 아뢰야식, 그 식(識)으로는 윤회의 주체가 안 돼. 왜 그러느냐? 전번에 입적하신 그 어떤 스님이 있지요? 법정스님이지. 신도 분들이 그러더군요. TV를 잠깐 보니까 ‘우리 스님, 극락왕생 하소서’하고 축원한다는(기도한다는) 것을 들었어요. 식(識)이 어떻게 극락을 가고 지옥을 갑니까? 식(識)이 어떻게 느낍니까?
생각합니까? 식(識)은 아닙니다. 식(識)의 몸뚱이가 있어야 돼. 그걸 식신(識身)이라고 해. 식신(識身)이 있어야 극락을 가든지 말든지 하지. 몸뚱이가 없이 식(識)이 어떻게 극락을 가고 지옥을 가냐 그거예요. 그리고 이 식(識)의 활동은(정신 활동은) 이 몸뚱이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몸뚱이하고 대경계, 이 세상 대경계(바깥 경계)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바깥 경계하고, 이 몸뚱이 하고 합해가지고 그것이 식(識)으로 전달되면 ‘하아! 이 경치가 참 아름답구나. 현지사에 와보니까 오늘 정기법회도 아닌데 이렇게 신도 분들이 많이 모였구나.
하아! 저 사람은 참 예쁘구나.’하는 거예요. 이것이 전부 눈 귀 피부 등 오근을 통해서(근을 통해서), 이 근(根)이 대상을 보고 분별하는 것이 식(識)이 되는 거예요. 이 근(根)이 없으면 식(識)은 활동을 못합니다. 눈을 안근(眼根), 귀를 이근(耳根), 혀를 설근(舌根), 코를 비근(鼻根), 이와 같이 근(根)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몸뚱이가 가가지고 ‘기분이 좋다. 경치가 좋다. 저놈은 선하게 생겼다. 악하게 생겼다’하는 분별을 하는 것이지, 이 몸뚱이가 없으면 식(識)은 안 됩니다. 활동을 못합니다.
그런데 이 식(識)이(아뢰야식이) 어떻게 갑니까? 그래서 힌두교에서는 그건 말이 안 된다 하는 거예요. 대승불교 유식학파의 아뢰야식은 아니다 그거요. 아뢰야식은 식(識)의 주체가 될 수 없다 그거요. 윤회의 주체가 될 수 없다 그거예요. 그러니까 부파불교나 대승불교 쪽에 와서 무아설(無我說)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해석을 하면 저 힌두교 학승들과 대항을 해서 이기느냐? 인도를 떠나기 전에는 이런 관심밖에 없었다고요. 여러 가지 설이 나오지만 그것은 식(識)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스님도 그것을 정말로 지지합니다. 그건 유식학의 기본 올 시다.
이제 현상세계(경험세계), 우리가 사는 이 현실세계에서는 모든 것은 인연으로, 인연이 만나서 된 거예요. 인연이 모아진 거예요. 그래가지고 우리가 보고 듣고 하는 것입니다. 이 경계 간에는 전부 인연이 모여가지고 되는 거예요. 모든 것이 인연이 모여가지고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인연이 다하면(흩어져버리면)없어요. 그렇지요? 그것은 확실히 무아(無我)예요. 실체가 없어요. 인연(因緣), 여러 가지 인연이 때가 되어서 만나가지고 이루어졌으니까 실체가 있는 것 같지만, 인연이 다하면 그대로 흩어져버려. 그러니까 공(空)이 되어버려. 어디에 실체가 있습니까? 자아(自我)가 있습니까? 이건 없어요. 맞지요? 그건 맞아요. 이 현상계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람은 어쩌냐(어떠하냐)? 여러분들이 좀 배우시고 법문을 들으셨으니까 이해하실 거예요. 사람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이걸 오온(五蘊)이라고 해요.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으로 이루어진 것이 사람이어요. 바로 이 색(色)이 물질이어요. 지수화풍이라고 하는 물질이어요. 요즘은 원소라고요 원소. 104가지 원소가 있다고 하잖아요. 그건 맞아요. 그걸 색(色)이라고 해요. 물질을 색(色)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수상행식(受想行識)을 정신이라고 해요. 이걸 정신(정신활동)이라고 해요. 수(受, 느끼고), 상(想, 느낀 것을 생각하고), 행(行, 정신적으로 행위하고, 이리저리 생각한다, 굴려버린다는 거예요), 식(識, 판단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수상행식(受想行識)을 정신활동이라고 해요. 또한 이것을 마음, 생각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묘하다고요. 우리 사람은 생각, 마음이라는 것을 지니고 있는 동물이어요. 마음이라고 하는 동물 띠예요. 그래서 이 다섯 가지의 요소를 낱낱이 따져보면 공(空)이어요. 무(無)이어요.《아함경》에 나옵니다. 색(色)-그래서 눈이 내 것 아니고. 전번 시간에 말했지요. 몸뚱이도 나(我)가 아니고. 수(受)-느낌, 그것도 나가 아니고. 상(想)-생각이 쌓인 것, 그것도 나가 아니고. 행(行)도 아니고, 식(識)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나(我)라고 할 것은 하나도 없다. 더 조합해서 말하자면, 몸뚱이도 내 것이 아니고(나(我)도 아니고), 이 정신(생각)도 나(我)가 아니다(내 것이 아니다) 그거예요. 그러니까 사람도 인연이 다하면(흩어져 버리면) 없다 그거예요. 무아(無我)다 그거예요. 무아(無我)는 무아(無我)인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현상세계에서 모든 존재의 속성으로 무상(無常)하고, 무아(無我)이고, 고통스럽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속성이어요. 지금 이것은 현상세계의 일이어요.
공부를(수도를) 많이 해서 ‘도대체 이 정신, 이 생각이라고 하는 놈이 뭐냐?’하는 것을 윤회를 벗어나고 탈삼계(脫三界)한 성자들이 삼매에서 관해보니까 뿌리가 있더라 그거예요. 본체가 있더라 그거요. 여러분한테 쉽게 말해주려고 하니까 예를 듭니다. 본체가 있더라 그거예요. 무아(無我)가 아니더라 그거예요. 본체가 있더라. 이 몸뚱이는 태어났다가 죽고, 태어났다가 죽고 하기를 한 없이 해왔더라 그거요. 여러분, 스님이 항상 이야기 한 것이지요. 이 몸뚱이는 생사를 많이많이, 다겁생 이래로 살아왔더라 그거예요.
꼭 지금의 몸뚱이처럼 생긴 것은 아닙니다. 이다음은 금생에 와서 지은 업이 조금 다르니까 또 다릅니다. 생각을 많이 하고 사려 깊고 한 사람들은 눈이 아주 곱겠지요. 또 식탐(食貪, 먹을 탐)이 세서 먹는 것만 밝히고 하면 입이 커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생에 와서 어떻게 업을 지었나에 따라서 이 몸뚱이는 다음 생에 좀 바뀌어 집니다. 어쨌든 이 몸뚱이는 생사를 무수히 반복해 왔단 말이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하나를 간과해왔습니다. 이 몸뚱이가 많은 겁을 통해서 나고 죽고 했는데, 이것이 가능하려면 본체가(뿌리가) 있어야 가능한 거예요.
나무도 뿌리가 있잖습니까? 나무도 뿌리가 있어야 그걸 베면 또 나잖아요. 그런 나무가 있잖아요. 나무를 베면 또 싹이 나와요. 뿌리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뿌리가. 그걸 토대(土臺), 혹은 기체(基體, 기본이 되는 몸뚱이)라고 합니다. 본체(本體), 기체(基體), 토대(土臺)라고 하는데, 토대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토대가 없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공부를 해보니까 기체(基體)가 있다 그거예요. 토대(土臺)가 있더라 그거요. 본체(本體)가 있더라 그거요. 여기에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것 가지고도 힌두교한테 두들겨 맞았어요. 이걸 몰랐어요.
오늘 영산불교에서 내놓습니다. 본체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몸뚱이는 마치 이 본체의 복사체인 거예요. 복사체(모조품), 모조품인 거예요. 어디까지나 이 본체는 영원불사(永遠不死)해요. 영원불사라고만 표현하겠습니다. 영원불사의 본체가 있어요. 그래서 이것이(몸뚱이가) 죽어버려도 어쩌지요? 요놈이(영혼체가) 떠나잖아요. 이 몸에서 떠나잖아요. 그래가지고 착하게 살면 저 하늘에 가서 살다가, 이제 사람 몸을 받을 때가 되면 어머니 아버지가 주무실 때(교합할 때) 이 영혼체가 오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갖추어야할 조건이 있습니다. 반드시 어머니가 욕심(정욕)을 가지고 있어야 되고, 건강해야 되고, 남자가 꼭 와서 같이 자야 돼. 그렇더라도 이놈이(영혼체가) 안 가면 안 되는 거예요. 천 날 만 날을 살더라도 아들딸이 없는 거예요. 요놈, 이 본체, 이것을 스님은 영혼체라고 했습니다. 영혼체. 이놈이 와서 수정할 때 들어가 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그때부터 생명활동이 시작됩니다. 전번에 ‘영혼체가 수정할 때 들어갑니까, 나올 때(해산할 때) 들어갑니까’라는 문제가 있었지요. 그런데 스님이 어떻게 알고 그냥 해산할 때 들어간다고 말했는데, 그건 정말 잘못한 거예요. 정정을 했지요. 다시 말씀드립니다. 영혼체는 수정할 때 들어갑니다. 한번 딱 들어가 버리면 그 감옥에서 못나옵니다. 명이 다해서 죽지 않는 이상은 못나옵니다.
혹은 신통이 벌어져가지고 이 몸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힘을, 그런 신통을 얻게 되면 나올 수가 있어요. 그러나 그것도 다시 연줄이 있어가지고 다시 들어와야 됩니다. 일단 나가는 거예요. 나갔다가 들어왔다가는 할 수 있어요. 큰스님들이 삼매에서 그러잖아요. 나갔다가 들어왔다가, 또 나가잖아요. 이것이 바로 본체예요. 이것이 1․2․3번 영체예요. 그래서 1․2․3번 영체는 항상 붙어 다닌다는 것입니다. 이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을 내 법문에서 항상 강조했을 것입니다. 이 영혼체는 불사(不死), 죽지도 않고 영원한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 몸을 받을 때가 되면 부모님을 정해서 들어오게 되는데, 그 부모님하고 전생 인연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딱 들어가 버리면, 이제 그 몸뚱이가 자라면서 1․2․3번 영체와 몸뚱이를 접촉해 주는 4번 영체가 생깁니다. 이 4번 영체는 1․2․3번 영체와 이 육신의 영향을 받아서 이놈(육신)하고 똑같이 생겼어요. 그러니까 19살 먹어서 죽었다? 4번 영체(나간 놈, 비명해서 나간 놈)속에는 3번․2번․1번 영체가 있습니다. 그놈은 19살이어요. 90살이 되도록 꼬부랑 할머니로 살다가 죽었다? 그러면 그것도 4번 영체이니까 꼬부랑 할머니예요.
그런데 우리 현지사에 와서 천도를 하게 되면, 중음계에 있던 무주고혼을 명부로 보내 줘버리잖아요. 명부로 갈 때에는 4번 영체로 갑니다. 그래서 49일 동안에 열시왕의 논죄를 받고 난 후에 갈 곳이 정해집니다. 그러면 지옥이다 할 때 4번 영체는 잘려져 버려요. 잘려지는데, 그 4번 영체는 두 겹으로 되어 있어요. 표층부가 있고, 그 표층부 안이 있습니다. 그래서 표층부는 잘라져 버리고, 그 안의 것으로 지옥을 갑니다. 그러니까 지옥에 가면 ‘아! 이 사람은 90살 먹어서 왔구나. 이쪽은 모녀가 물에 빠져서 죽었구나(애기를 데리고 있으니까)’하고 아는 거예요. 이제 천국(하늘)을 가게 될 때에는 그 4번 영체의 겉 부분이 잘려 나가버려.
그래서 1․2․3번 영체가 3번 영체로 삽니다. 그리고 성중하늘을 갔다? 그때는 2번 영체가 앞장을 서요. 앞에 나오고 1번 영체하고, 3번 영체는 겹쳐져요. 극락을 간다? 그러면 1번 영체가 나와요. 2번․3번은 겹쳐져 있고요. 그렇게 해서 1․2․3번 영체는 항상 붙어 다니더라. 그중에서 1번 영체는 본체이더라.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보고 알고 난후, 모든 종교를 훑어보고 사상․종교․철학을 다 훑어봐도 누구도 이 말을 한(영혼체에 대한 언급을 한)적이 없어요. 2600년 동안에 이 말을 한 적이 없어. 이것은 깨달음 후에 아라한이 되고, 보살이 되고, 상품보살이 될 때부터 압니다. 인간의 본체는 1․2․3번 영체이다 하는 것을 알아요.
그런데 윤회를 하려면 1․2․3번 영체가 윤회를 하는데, 이것이 아주 오염이 되어 있어야 돼. 1․2․3번 영체인데 대단히 오염이 되어 있어. 숯검정덩어리란 말이어요. 진흙덩어리로 되어 있어요. 중생들은 진흙덩어리 같이 되어 있어. 사람인 것 같고, 사람 아닌 것 같이 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 진흙덩어리가 된 그 사람이 수행을 많이 하게 되면 그것이 닦여져(정화 되어). 그러니까 덕지덕지 붙은 그런 업장들이 다 씻겨나가야 돼. 다 씻겨나가면 사람이 쏙 드러나. 이때가 이제 아라한입니다. 여기가 아라한이어요.
그러니까 우리의 수행 목적은 이 덕지덕지 붙은 비본질적인 것들, 즉 업장 ․ 탐진 삼독 ․ 악과 기의 습 등을 씻어내고(제거하고) 소멸하는데 있는 거예요. 1․2․3번 영체에 덕지덕지 붙은 것을 비본질적인 것들이라고 합니다. 철학에서는 비본질적인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본질적인 것들, 즉 업장 ․ 탐진 삼독 ․ 악과 기의 습 등 이런 것들로 1․2․3번 영체가 아주 먹칠이 되어 있단 말이어요.
어찌나 업을 많이 지었던지, 그 업으로 해서 사람의 형상을 도저히 인식할 수 없는 그러한 진흙덩어리가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비아(非我)라고 합니다. 비아(非我), 그건 나(我)가 아니다 그거예요. 그 비아(非我)가 다 씻겨 지면 자기가(자기 몸뚱이가)나온단 말이어요. 그게 아(我)입니다. 그것은 아(我)인데, 그것이 극락을 가게 되면(물론 1번 영체가 주가 되어서 극락을 가는데) 깨끗하고 청정히 닦여진 것은 더 넘어서 빛이 납니다.
어찌나 많이 더 닦고 닦고 좋은 일을 많이 했던지 빛이 납니다. 그래서 극락세계는 아(我)예요. 여기는 무아(無我)지만(나(我)가 없지만), 거기는 아(我)예요. 그 세계의 속성을 상락아정이라고 합니다. 아(我)예요. 여기는 무상(無常)하지만, 거기는 상(常)이어요. 여기는 허망하고, 무상하고, 세상 꿈같지만, 거기는 상(常)이야. 항상 상(常)자, 여기는 항상 상(常)이 아닌 무상(無常). 여기는 항상 한 것이 없잖아. 여러분, 70살 잡수신 분, 10살 때가 엊그제 같지요?
엊그제 같은데, 금방 이렇게 늙어 가지고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어. 이게 얼마나 무상(無常)하오. 이걸 허망하다고 그래. 부자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파산해가지고 돈이 없어서 망해 버릴 수가 있어. 하루아침에 거지가 돼. 얼마나 무상(無常)한가. 상(常)은 그렇지 않아. 상(常)의 세계는 그런 것이 없어요. 변화가 없어. 여기 현실, 현상계, 경험세계는 무상(無常)하고 무아(無我)예요. 비아(非我)이어요. 몸뚱이로 보면 비아(非我)이지만, 거기는 어떻다고? 아(我)라고. 아(我)예요. 그런데 이 학자들이 잘못 이해를 했습니다.
부처님의 이것은 상식인데, 이 상식 하에서 법문을 하는데, 무아(無我)를 왜 그렇게 말씀하셨느냐? 무아(無我)를 말씀하신 이유가 있어요. 무아(無我)를 말씀하신 것은 집착을 떼어주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몸뚱이에 대한 집착, 전번에 이것 때문에 죄를 짓는다고 했지요. 이 몸뚱이에 대한 집착, 나(我)라고 하는 생각 때문에 재물 욕심이 생기고 그러지요. 또한 성욕심이 생기고, 명예와 권력을 바라는 생각이 생기고 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냥 여자만 더트고 다니고, 주색에 빠지고, 도박도 해가지고 재산을 다 날려 버리지요.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다가 결국은 집, 토지 등 재산을 다 털어먹고 망하는 것 아닙니까. 안 그렇습니까? 그것이 이 몸에 대한 애착(집착) 때문에 그럽니다. 그래서 이 몸에 대한 집착을 떼어줘야 중생들이 업을 안 짓겠다 해서《금강경》도 설한 거예요.《금강경》에 무아상 무인상... 이렇게 나가지요. 나(我)라는 생각을 버려라 그거예요. 이것이《금강경》이어요.
이 경험세계, 현상세계에서 볼 때에는(저 절대계, 극락이 아닙니다) 제행이 무상(無常)이어. 허망해. 그리고 무아(無我)여. 모든 물질, 사람 등 모든 것을 보니까 무아(無我)여. 나(我)라는 것이 없어. 그러나 그것은 현상계의 일이어요. 현상계의 일이고, 본체계로 쭈~욱 들어가서 보니까 뿌리가 있다 그거야. 뿌리가(본체가) 있더라 그거요. 본체가 있으므로 해서 모조품이 얼마든지 찍어 나와. 사진 원판이 있으면 100장 1,000장...얼마든지 현상하잖아요. 할 수 있는 거예요.
이 육신은 거짓 몸뚱이예요. 이 육신은 본체의 모사품이다. 이 육신은 모조품이어. 이 육신은 복사체예요. 본체가 있더라 그거예요. 이것을 알려면 적어도 화두타파해서(견성해서), 보림을 해서 아라한이 되어 나(我)를 찾아가지고, 더 쭈~욱 본체계로 들어가서 보살이 되고, 상품보살 정도 되면 보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이것을 볼 수가 없어. 부처님 이후로, 그러니까 상품보살 정도의 성자가 나오지 않았고, 또 학승들은 더더욱 견성을 거의 할 수가 없는 입장이어. 문자만 가지고 공부한 사람들은 거기에 빠져가지고 결코 도를 이룰 수가 없는 거예요. 도를 이루기가 어려운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단지 세상에 나온 경만 훑어보는 거예요. 경만 훑어 봐. 그런데 그 경이 어떻다고? 부처님 가신지 몇 백 년 후에 편찬 되었어요. 벌써 많이 왜곡되어 버렸어. 지금 같이 마이크가 있고, 나같이 이렇게 말했으면 다 알아들어가지고 어디가 제법이 무아(無我)다고 우기겠습니까? 그 분간을 해야지. 그래서 나이가 3, 4년 밖에 안 된 우리 영산불교에서 이제 무아설(無我說)을 들고 나오는 거예요. 무아설(無我說)이라는 것은 불교의 근간입니다.
집 같으면 대들보입니다. 감히 대들보를 들고 나온 거예요. 왜 나왔느냐? 부처님의 교법이(가르침이) 너무도 왜곡이 되었어요. 이런 불법(佛法) 가지고는 안 돼. 이런 불법(佛法) 가지고는 다음 세대를 이끌 수가 없어요. 이 훌륭한 불교가 21세기의 대안이 될 수가 없어. 그래서 ‘큰 법회 때, 라디오나 TV법회 때 내가 이걸 가지고 나온다’하고 지금까지 이 무아설(無我說)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분들한테 안 했습니다. 이제 TV측에서 나와달라고 해서 첫 번째 시간을 대충 그렇게 하고,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시간에 더 보완을 해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 많은 나라에 불교가 있고, 불교가 2600년이나 흘러왔지만, 그 어느 나라 불교, 그 어느 나라 학승들이 감히 힌두이즘의, 그 학파의 그 도전에 대해서 반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2회에 걸쳐 강의를 해드립니다. 그러면 세 번이죠? 또 할 거예요. 그렇게 되면 이 녹음을 여러분들이 전부 보관하시고, 틀어보고 틀어보고 해서 이 불교의 진면목을 알아줬으면 합니다.
이 과학에서도 물리학, 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소립자 물리학인데, 이 소립자 물리학에서도 공간․진공을 이야기하면서 진공이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그러니까 유․무(有․無)의 논쟁이 2000년간 내려오고 있습니다. 우리의 지금 종교집안도 그렇지만, 과학계에서도 공간이, 공간의 진공, 이 진공이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의 논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진공을 아시죠?
유(有)냐, 무(無)냐 하고 그리스 철학 때부터 원자론을 이야기한 데모크리토스(Democritus. BC 460경~370경.그리스의 철학자), 그때부터 논쟁이 아리스토텔레스를 기점으로 오다가, 또 잠잠하다가 지금도 논쟁이 붙어 있습니다. 사실 물리학계에서 위대한 어른이라고 불리는 걸출한 대학자 '아인슈타인', 그분은 돌아가셨지요.
그분이 나와서 유(有)·무(無)의 싸움을 어느 정도 재워놨습니다. 그분은 뭐라고 했느냐? 장이론(통일장이론: 물리학에서 기본력은 분리되어 있는 물체 사이에서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장(場)으로 설명한다)을 말했는데, 여러분들이 아시는지 모르겠어요. 대학교 학부에서 자연과학 개론에 나올 겁니다.
철학에서도 나오고요. 그분은 ‘이런 모든 물질이 장이 거기에 밀집한 것’ 이렇게 말이 나옵니다. ‘장이 거기에 밀집한 것이 물질이다’라고 해서 물질과 에너지를 같이 본 거예요. 장이라는 것은 어떤 힘, 아인슈타인에 와서는 입자를 인정하지 않아버립니다. 깊이 들어가 보니까 그렇습니다. 아인슈타인도 견성단계에 이른 물리학자이었기 때문에 그 말이 나오지요. 물리학적인 깊은 사유 끝에 장이론을 이 세상에다가 내놓은 거예요.
물론 장이론은 그 이전에 나왔습니다. 그 이전에 나왔지만, 아인슈타인 쪽으로 와가지고 사실 이 물질이라는 것은 장이 거기에 밀집된 것이다. 어떤 힘이 압축되고 압축되고 압축되어 가지고 물질이 된 것이다. 사실은 장이 밀집한 것이다. 그러니까 입자하고 공간하고를 하나로 봐버린 거예요. 이제 아인슈타인 쪽에 가서는 있다 없다가 아니어. 너희들 그것이 아니다. 입자, 물질하고 이 공간은 하나다. 물질은 장이 밀집한 것이다.
그래서 장이론을 내놨는데, 우리한테 물어본다고 하면, 이것은 견성단계에서는 아인슈타인의 손을 들어줍니다. 아인슈타인의 말이 맞아요. 무아속 삼매에서 볼 때, 모든 물질이라든지 공간을 보면, 유·무를 보면, 그 속에서 보니까 ‘상주불생 상주불멸’그럽니다. 이 말이 뭔 말이냐? 물질도 아니고, 그래서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고, 아인슈타인이 본 것처럼 하나의 어떤 새로운 물질이라고 할까, 그 전에는 그렇게 봤는데 아인슈타인에 와서는 장이라는 말로 어떤 새로운 물질, 아주 미세한 물질로 듬뿍 우주가 가득 차 있다는 거예요.
유독 꽉 밀집해버린 것이 물질이 되더라 그거예요. 그래가지고 그 유명한 특수상대성이론(特殊相對性理論)인 E=mc^2이라는 것이 있지요. 그것이 그거예요. 우리 불교에서 보면 색즉시공 공즉시색이어. 그러니까 이 물질과 에너지를 같이 본 거예요. 그래서 1g정도의 물질을 가지고 에너지화 할 수 있다면 10만㎾의 전기를 250시간 생산할 수 있는 양이어요. 대단하지요. 1g정도면 아주 적은 양이지요. 앞으로 정말 첨단의 기술이 개발된다면, 1g의 물질을 가지고 그것을 에너지로 변화시킬 수 있다면 그 정도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시대가 오면 기름 걱정 없지요.
우리가 방금 이야기했듯이 ‘상주불생 상주부작’이라. 이 말은 선정가운데서 보니까 어떤 물질이라든지 에너지가 다 공(空)으로 보인단 말이에요. 이것이 다 업보중생들로 해서는 물질로 보이고, 에너지로 보이지만, 더 깊은데 들어가서 볼 때는 모든 것이 난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고 만든 것도 아니고(부작), 상주부작 상주불생 그래. 그래서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니다. 이러한 아인슈타인의 견해가 옳은 것 같습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보살의 삼매 쪽으로 들어가면, 이제 분명히 본체가 나옵니다. 그때 본체를 봅니다. 영혼체를 봅니다. 영혼체는 아주 옛날인 기원전에 힌두교에서도 영혼체를 알았어요. 큰 성자가 나왔어. 네 겹으로 된 것도 알았어. 거기까지도 알았는데, 우리 영산불교에서처럼 자세히는 몰랐어요. 이 우주도 성주괴공을 따라서 없어질 수도 있고, 또 생겨나기도 합니다. 공겁으로 가면 모든 것이 자체 폭발되어가지고 공(空)으로 돌아갑니다. 그것이 다시 성겁에 와서는 또 새로운 우주가 태어납니다.
이 우주도 이것을 무수히 반복했습니다. 앞에서 사람도 그랬다고 했지요. 우주도 그럽니다. 현재 우주의 나이만 해도 150억년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없어지려면 그보다도 더 오랜 세월이 되면 없어질 겁니다. 그러나 또 그런 세월이 가면 또 우주가 생겨납니다. 생겨나는데 반드시 이렇게 무수히 반복하는 생멸 뒤에는 본체가 있습니다. 본체가 있어야 그것이 가능합니다. 본체가 없으면 그건 불가능합니다. 본체가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여러분. 사람도 영혼체라고 하는 물체(본체)가 있어서 이 몸뚱이가 태어날 수가 있고, 이것이 없으면 이 몸뚱이는 한번 태어나서 죽어버리면 끝납니다. 가는 것이 없으니까.
여러분, 그 복제인간이라는 말이 있지요. 복제인간에 대해서 해답을 드릴게요. 이 원리를 알면 답을 알 수 있습니다. 복제인간을 만들 수 있지요. 지금 로봇에다가 인식 능력을 넣어줄 때입니다. 앞으로 많은 시간이 흐르면 로봇이 거의 사람의 IQ를 따라갈 거예요. 그런다고 하지요? 그러나 그 로봇에게는 본체가 없습니다. 그렇지요? 본체가 없으니까 그놈은 인연이 다해서 그 쇠붙이가 다 마모되어 버리면 끝나는 거예요. 그렇지요? 본체가 없다는 것. 복제인간도 본체가 없습니다. 태어나긴 하지만 본체가 없기 때문에 어쩌지요? 죽어버리면 영혼체가 없기 때문에 그대로 그것으로 끝납니다.
우리의 영혼체가 들어가지 아니한 곤충류가 있지요? 영혼체가 들어가지 아니한 곤충류가 일부 있고, 조류도 일부 있고, 어류도 일부 있고, 그리고 습으로, 화로 생긴 것들이 있잖아요. 모기라든지, 습으로 생긴 이(louse)라든지, 이것은 본체가 없으니까 ‘자연생(自然生) 자연사(自然死)’합니다.
그러나 윤회를 하는 영체가 깃든 고등동물, 사람을 비롯해서 열두 띠, 열두 띠 외에도 또 많잖아요. 조류 중에서도 학․공작이라든지, 어류 중에서도 물개․물범․악어․고래․잉어 등, 이런 놈은 영체가 들어갑니다. 영체가 들어가지 않는 것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인식하는 이유도 있어요. 모든 우주만물에 무엇이 충만해 있는 줄 압니까? 불성, 법성, 일심진여, 법신, 힌두교에서 이야기하는 범(梵), 또 서양에서 이야기하는 스스로 있는 자존자, 이런 표현이 조금씩 다르지만, 이런 것이 우주에 변만(遍滿)해 있다고 했잖아요.
우주에 꽉 충만해 있다 그거요. 그러면서 초월해 있어요. 앞에서 영체가 들어가지 아니한 일부 곤충이라든지, 조류라든지, 어류라든지, 화생, 습생, 이런 놈들은 영혼체가 안 들어가지만, 이 법신 ․ 공(空) ․ 마음 ․ 범(梵), 그런 불성이 전부 들어가 있다고. 우주에 꽉 차있다고. 그런 것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생각하고 행위하고를 못해. 법신은 그러합니다.
그래서 힌두교의 범(梵)설명이 틀렸다 그거예요. 범(梵)이 만물을 창조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거예요.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을 굴리고 하는 것은 이 몸뚱이가 하는 거예요. 눈, 귀, 코가 분별하는 거예요.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분별은 안 합니다. 그러니까 법신불은, 법신불이 나기 전의 법신은, 우주의 본체는 눈 코가 없잖아요. 텅비어가지고 실체가 없잖아요.
몸뚱이가 없기 때문에 느끼지도 못하고, 생각도 못하고, 판단도 못하는 거예요. 느끼지도 못하고, 생각지도 못하고, 판단하지도 못한다면 각본을 쓸 수가 없고, 어떤 의지도 없잖아요. 그것이 어떻게 세상만물을 창조합니까? 그건 아닌 거요. 그건 비인격인 거예요. 그 본체는 비인격입니다. 비인격이지만 대단히 신령스러워. 왜 신령스러우냐?
그 본체 안에는 분별은 하지 않지만, 지혜․사랑․조화 등의 원리가 있어요. 그래서 밝고 텅 비어 있지만 어딘가 신령스러운 거예요. 견성해서 볼 때요. 거기에 치우치다가 보니까 범(梵), 하나님이라는 인격을 부여해서 그것이 창조해버렸다, 거기에서 나왔다, 이렇게 한다고요. 그런데 우리는 비인격으로 철저히 해버린다는 것. 철저히 비인격인데, 다만 뭐가 인연을 따라서 생기는 거예요. 전번에 성냥불의 예를 들었잖아요. 그런 거예요.
자, 본체가 있다. 중생이(사람들이)윤회를 하는데, 윤회를 하는 것은 본체가 있어야 된다. 본체가 없으면 어떻게 되어버리느냐? 어떤 사람이 꼭 착하게 살라는 법이 없어. 어떨 때에는 인연 따라서 전생의 악연을 만나면 죽일 수도 있어. 살생의 업(죽이는 업)도 지을 수도 있어.
착한 사람도 잠깐의 그 화를 억제하지 못하면 사람에 따라서 오역죄도 지을 수 있어. 그런 업을 금생에 받아버린다고 하면 되지만, 어떤 사람에 따라서는 금생에 안 받고 다음생에 받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 따라서는 지금의 업이 이생 삼생 사생 후에도 받기도 한다고요. 이것은 뭘 의미하느냐? 업을 지으면 이제 본체로 전부 입력이 됩니다.
다 입력이 되었기 때문에 이 본체에서(영혼체에서) 어떤 업이 때가 되면 무르익어서 열매를 맺을 때가 있어. 가령, 못된 짓을 했다? 저 사람의 영혼체를 보니까 머리부터 발끝가지 쇠사슬로 얽혀있다. 쇠도 큰 쇠사슬로 묶여있다 그 말이어요. 아! 저 사람은 언젠가 쓰러져서 식물인간이 되겠구나. 식물인간이 될 업을 어느 생엔가 지었어.
그 업의 종자가, 그 업의 종자 모든 것은 영혼체 안의 아뢰야식에 잠재해 있다가 그것이 인연을 따라서 세월의 인연이 되면 그것이 드러난다고요. 그러니까 붓다의 경계에서 볼 때는 ‘아! 저 사람은 머지않아서 식물인간이 되겠구나’라고 보는 거예요. 시간까지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쇠사슬 업장을 끊어 주면 돼. 업장을 끊어 주기만 하면 되지만, 그 끊어 주는 분은 부처님뿐이더라 그거예요. 부처님뿐이더라. 저 사람이 아무리 신심이 장하고, 산에 가서 수도를 하고 해도 그 업장은 어떻게 하지 못하더라 그거예요.
다른 웬만한 것은 씻을 수 있는데, 그런 큰 업의 과보(업보)는 완전히 해결을 못하더라. 다만 부처님 외에는 해결할 수가 없더라. 이렇게 영혼체에 지은 모든 업이(모든 종자가) 전부 이쪽으로 이쪽으로 흘러들어 갑니다. 그래서 업보를 받을 세월이 되면 그것을 다 내가 받습니다. 받는데, 이것이(본체가) 있어야지, 이것이(본체가) 없어버리면 금생으로 끝나거나, 먼 훗날 나 아닌 어느 사람한테 이 업이 가겠습니까? 내가 지은 업은 내가 받는 거예요.
내가 지은 것은 철저히 내가 받아야 되기 때문에 본체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자기가 뿌린 것은 자기가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의 모든 현재는 전부 원인이 있습니다. 결과는 반드시 원인이 있더라. 이것이 인과법칙(因果法則)이어요. 이것이 우주법칙이어요. 그래서 이 본체가 반드시 있어야 된다. 이 성주괴공을 하는 이 세상도 본체가 있더라 그거예요. 본체가 있더라.
힌두교에서의 아트만은 윤회의 주체가 못되더라. 왜? 지고지선한 것이라고 그래. 아트만을 불변하는 것이라고 해. 범(梵)이 세상만물을 만들어 가지고 다시 들어갔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모든 사람들의 아트만, 자기는 범(梵)과 똑같다고 해. 그 범(梵)이, 아트만이 있어서 윤회한다고 하거든. 윤회의 주체가 된다고 하거든. 그러나 스님은 그건 아니다 그거예요.
아니어. 윤회를 하려면, 사바세계에 사람으로 태어날 정도가 되면 1․2․3․4번 영체가 있어야 돼. 4번 영체까지 있어야 돼. 내가 하늘로, 성중으로만 윤회하려면 1․2․3번만 있어도 가능해. 그런데 윤회라는 것은 오염이 되어서 윤회를 합니다. 영체가 더러워지니까, 죄를 지으니까 윤회하는 거예요. 업을 지으니까 윤회하는 거예요. 이 아트만은 업을 지을 수가 없어. 행위 하지 않는다고 하거든. 행위 하지 않는다고 하면 생각하지 않는다 그 말이어요. 생각하지 않는다, 행위 하지 않는다, 어떻게 업을 짓습니까? 아트만으로서는 업을 지을 수가 없어.
어떻게 업을 짓는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아트만이 윤회의 주체가 된단 말이어. 지고지선 하는데. 아트만과 같은 것이 1번 영체입니다. 우리가 많은 세월을(겁을) 통해서 살아오는 도중에 성중하늘이 중생의 업으로 이루어진 거예요. 하늘도 중생의 업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지옥도 중생의 업으로 이루어진 거예요. 성중하늘까지 생겨나기 때문에 2번 영체가 생겨난 거예요. 그 다음에 더 타락해가지고 인간 조상이 업을 지으니까 3번 하늘(3번 영체가 가는 하늘)이 생긴 것이어요. 3번 영체가 생긴 거예요.
더 타락해져가지고 사람 몸을 받아오니까 4번 영체가 생기는 거예요. 반드시 1․2․3번 영체가 생겨야 윤회를 합니다. 3번이 생겨야 윤회를 하는데, 이 3번은 불사(不死)이지만 변화하다가 행위하고, 사고하고, 이것이 있으니까 업을 짓고(나쁜짓 하고) 그 과보로 해서 윤회를 하는데, 1번(아트만)만 가지고는 윤회가 안 되는 거예요.
둘째, 힌두교의 맹점은 범(梵)이, 비인격이, 비인격의 원리가 어떻게 만물을 내느냐 그거야. 자기들을 전개해가지고 만물을 창조했다고 그러는데, 그것도 기독교의 창조설 보다는 상당히 깊은 철학이지만, 그것도 아니어. 범(梵)에서, 범(梵)이 만물을 낸다? 거미가 거미줄을 내듯이 범(梵)이 낸다? 범(梵, 브라만)이 우주만물을 낸다(유출한다)? 아니어.
이건 어디까지나 비인격이어요. 어디까지나 비인격인데 인연을 따라서 된 것이어. 그래서 불교의 인연설(因緣說)․연기설(緣起說)이 우주 만고에 제일가는 최고의 법칙입니다. 범(梵)이, 유일자가 욕심을 내어가지고 만물을 창조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요. 중생이 욕심이 있지, 비인격은 욕심이 없어. 여러분, 그걸 분간할 줄 알아야 돼.
셋째, 힌두교는 우수한 종교임이 분명합니다. 스님도 불교다음으로 대단히 매력이 갑니다. 다른 종교는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힌두교는 동물의 피를 내서 제사를 지냅니다. 브라만의 시대에는 제사만능주의가 아주 일반화 되었어요. 여러분, 우리 영산불교에 와보면 음력 초하루(1일) ․ 초닷새(5일) ․ 보름(15일) ․ 스무닷새(25일)날에 불․보살님께 공양을 올리지요.
이 공양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힌두교도들도 알았어요. 알았는데, 왜 동물을 죽여서 피를 빼가지고 제사를 지내느냐 그거예요. 기독교도 초기에는 '번죄'라 해가지고 그랬습니다. 동물의 피를 뿌리고, 그걸 태워가지고 그 냄새가 배이도록 고기를 장만해서 그 신들한테 헌공한 거예요. 외도 쪽 신들 중에는 그걸 좋아하는 신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 신이 보살이겠습니까?
보살은 말이 아니어. 보살정도 되면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아라한 정도 되어도 그렇게 안 해. 정토하늘 사람도 그것은 싫어해요. 그러므로 뿌리가 그렇다면 그건 외도인 거예요. 외도도 대단한 신통이 있지요. 마왕 파순이 정도의 신통은 어마어마합니다. 외도 수장들의 신통이 어마어마해. 붓다 정도는 못되지만 상품보살을 능가합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고기도 먹고, 술도 마시고 하는 신들이 있다 그거예요. 그 신들을 찬양하고 공양을 올리면 그 신들이 철저하게 밀어줍니다. 아픈 것도 낫게 해주고, 못살면 잘살게 되고, 그런 능력이 얼마든지 있어. 그러니까 최고라고 하지만 알고 보면 외도신이다 그거예요.
여기 불교 집안에 연비(燃毘)하는 사람이 있잖아요.《법화경》에 근거합니다. 그《법화경》의 한 장(章)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아니라고 하셨어요. “내가 사람고기를 먹느냐” 그거예요. 몸을 태워가지고 소신공양(燒身供養) 한다고 하잖아요. 여러분 같으면 소신(燒身)해서 잡수라고 하면 먹겠오? 불교신자는 그건 아니어요. 그러나 사람고기를 좋아하는 신이 있어요. 여러분, 인당수에 누가 빠져 죽었지요? 장사꾼들한테 팔려서 심청이가 빠져 죽었지요.
사람고기를 먹는 외도신이 있습니다. 저쪽 미국 밑의 마야문명(중앙아메리카의 과테말라 고지에서 유카탄 반도에 걸쳐 번성한 마야 족의 고대 문명), 잉카문명(1438년부터 1533년에 걸쳐 번성한 제국이며 현재 페루 영토에 주로 자리 잡고 있었음)은 사람의 심장을 100개나 먹었어. 또 사람을 죽여서 심장을 바치고 제사를 지낸단 말이에요.
그런 신이 있지만 그건 외도신이어. 정통불법, 불교의 정통신이 아니어요. 외도신이어요. 우리 불․보살은 그것하고 천만리가 떨어져. 그런데 이걸 연비한단 말이에요. 더구나《법화경》에 그 연비한 공덕을 얼마나 써 놓은 줄 알아요? 《법화경》제23장〈약왕보살본사품〉을 한번 읽어 보세요. 그것은 내가 우리 조계종단에 연비한 분이 많기 때문에 전번 법회 때 꼭 말하고 싶었지만,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아닙니다. 그러니까 브라만교에서 보여주는 동물을 희생시켜 가지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닌 거예요.
넷째, 사성제(四姓制, 카스트 신분제)가 있잖아요. 그건 아닌 거요. 태어남으로 해서 신분이 결정 안 됩니다. 행위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어요. 태어난 사람이 얼마만큼 진실하고, 정의롭고, 그리고 이웃을 생각하는 사랑이 있고, 불법을 생각할 줄 알고, 부처님을 따를 줄 알고 하는 이것이 제일이지, 그 사람이 양반집에 태어났다고 해서 끝까지 양반이 되라는 법이 없어. 그건 절대로 기준이 안 돼. 행위가 절대적인 기준인 거예요. 저 인도는 사성제(계급제)가 분명합니다. 그것도 아니다 그거요. 여러 가지 흠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불교는 정말로 흠점이 없습니다. 여러분, 정법에서는 흠점이 없어요. 여기는 정말 청정입니다. 어떻게 고기를 먹습니까?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계율을 정말 생명 같이 압니다. 그렇게 교육을 시킵니다. 조금만 눈에 띄면 큰일 나지요. 500배, 3,000배, 선을 넘었다면 쫓아냅니다. 그건 할 수 없어. 정법을 살리려고 하니까. 우리 절에 와보세요. 안팎으로 얼마나 깨끗한 가. 우리 스님들, 얼마나 깨끗해 가는 가. 다른 절 스님들, 천주교 신부들의 얼굴을 봐 봐요.
틀려요. 틀리는 거예요. 왜 그러느냐? 본체인 영혼체가 수행과 계율에 의해서 깨끗해져 가고, 영체에 그토록 덕지덕지 붙은 것을 부처님께서 씻어주기 때문입니다. 아까도 부처님께서 여러분을 굉장히 씻어주셨습니다. 이 몸뚱이는 모사품입니다. 진품이 아니고 모조품이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영혼체의 영향을 받습니다. 이 영혼체가 뿌리니까요. 그러니까 청정하게 보이고, 기품이 있고 그러는 거예요.
이번에 스님이 이 무아설(無我說)을 가지고 말씀을 드리는 것은, 너무도 왜곡된 불교를 바로세우기 위함의 하나입니다. 부처님 가신지 2600년을 내려오다 보니까 불교가 너무도 왜곡 되었습니다. 스님이 낱낱이 짚어 갈 거예요. 낱낱이 짚어 가는데, 이 왜곡된 것을 그대로 보면 불교는 더 타락합니다. 더 타락해져 가면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당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불교가 설 자리를 잃어버립니다. 진짜 불교가 나오고, 무아설(無我說)이 나가면 왜곡된 불교는 정말로 쓰러집니다. 사상누각이니까. 그러니까 지금 악착같이 이걸 막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 뿌리(근간)부터 바로 세우고, 하나하나씩 개혁해 가고해서 새로운 신불교가 반드시 나와야 됩니다. 반드시 나와야 이 나라가 잘살고, 세계가 평화롭습니다. 새로운 불교의 가르침에 충실한 수행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불․보살님과 하늘 선신이 위해줍니다. 밀어줍니다. 그분이 사는 주소지로부터 십리 백리 천리는 안전한 거예요. 전쟁이 없는 거예요.
선신들이 밀어주고, 보살들이 밀어주고, 붓다가 밀어주기 때문에 문제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현지사는 십 수 년 전부터 우리가 이북으로 생각한 거예요. 여기 춘천 현지사는 38선 이북입니다. 이 나라의 전쟁을 없게 하려면 바로 앞에 있어야 되요. 안 그럽니까? 그래서 38선 이북에다가 현지사 터를 잡아버린 거예요. 지금까지 우리말을 하기 싫기도 했지만, 상을 낸다고 할까 봐 이건 말 할 수가 없었어. 말을 못하지만, 남북이 몇 번의 위기가 있었습니다. 그거 있습니다.
왜 그렇게 좋게 넘어간 줄 압니까? 이건 말을 하게 되면 박덕한 거예요. 덕이 없지. 그러니까 말을 않지만, 하여튼 그럽니다. 또 경제도 그럽니다. 부처님께서 경제를 살리려면 살립니다. 그러나 그 사람, 그 나라 국민들이 잘 살 복을 짓고 나오면 잘 살게 되어 있어요. 전생에 복을 못 지어 놓으면 그 국민은 못 살게 되어 있어. 그렇지만 상당부분 부처님께서 조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 현지사 신도 분들, 앞으로 갈수록 잘 삽니다. 왜냐? 가끔 엄청난 돈을 주신 경우가 있어요. 여러분, 이건 말을 하면 안 되어요. 그래서 말을 못하고 있는데, 돈을 줘요. 또, 질병? 이번에 무슨 병(신종플루)이 있었잖아요. 가끔 약사부처님께서 거둬버립니다. 그 기운이 옵니다. 이렇게 많이 모이면 온다고요. 사~악 거둬버린다고요. 10분을 쉬었다가 이어가겠습니다. 終
작성자/허정(민병식)거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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