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사의 불서/깨달음을넘어붓다까지

보살에서 붓다로

불제자 2010. 2. 22. 22:27

 

 

 

 

 

 

보살에서 붓다로

 


큰스님의 최상승의 가르침은 다름 아닌 보살에서 붓다로 이르는 도정(道程)이라고 말하고 싶다. 큰스님께서는 이렇게 설법해 주셨다. “다시 보살이 붓다가 되기 위해서는 보현행원을 해야 하고 참회를 해야 하며 이타심과 회향심, 그리고 남이 잘되는 것을 기뻐해야 하며 수행도중에 무량광을 보고 그 후 부처님을 친견하고 또 하나의 관문을 통과해서 법문을 들으면 불신(보신)이 생겨난다.”고 말이다.


 이 얼마나 미증유의 가르침이 아니겠는가? 참으로 학문과 지식을 초월한 절학(絶壑)의 경지가 아니고서야 어찌 이와 같은 대법문(大法門)을 펼칠 수 있겠는가? 큰스님께서 설하신 보현행원은 <<화엄경>>에서 선재동자가 53인의 선지식을 찾아 구도한 끝에 마지막으로 만난 보현보살이 가르쳐 준 법문으로 그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그것은 첫째 모든 부처님을 존숭하는 것이며, 둘째 모든 부처님을 찬탄하는 것이며, 셋째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는 것이며, 넷째 모든 죄를 참회하는 것이며, 다섯째 남이 쌓은 공덕을 진정으로 기뻐하는 것이며, 여섯째 부처님께 법륜을 굴리도록 간청하는 것이며, 일곱째 부처님께 이세상에 영원히 남아 있기를 간청하는 것이며, 여덟째 항상 부처님의 모범적인 삶을 본받고자 하는 것이며, 아홉째 항상 일체 중생의 행복을 보살피고자 하는 것이며, 열째 자신의 모든 공덕을 남에게 회향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부처님의 존재를 믿고 부처님을 높이 우러러봐야 한다. 그것이 부처님의 세계를 향한 불제자의 도리인 것이다.


 부처님과 부처님 세계는 거룩하고 희유하며 장엄하다. 따라서 그 부처님과 부처님 나라를 존숭하는 것은 불제자에게 고원한 향상심(向上心)을 구족하게 하고 발심(發心)을 더욱 돈독하게 해 준다. 자신보다 훌륭하고 모범이 되는 지고한 존재자를 숭앙(崇仰)하는 것이 바로 자신이 후학(後學)들로부터 존경받는 길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물론 자신이 남들로부터 존경받을 것을 생각하고서 부처님을 존경하고 높이 모시는 것이 아니라 그냥 순수한 마음과 무주상의 마음으로 부처님을 존경하고 경배해야 할 것이다.


 그 다음으로 모든 부처님을 찬탄하는 것이다. 이는 정말 가슴 벅차고 환희를 일으킨다. 부처님의 법문, 부처님의 생애, 부처님의 심법(心法)을 대하면 그렇게 아름답고 멋지고 진실되고 거룩할 수가 없다.

 부처님의 경전과 큰스님의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읽으면서 여러 번 눈물도 흘렸고 가슴에 강한 감명과 울림 그리고 정신에 강한 전율과 지고한 법열(法悅)을 경험했다. 정말로 부처님의 가르침과 세계는 찬탄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숭고하고 고원하며 거룩하다.


 찬탄할수록 마음의 정화(淨化)를 얻고 눈물을 흘릴수록 부처님께 지은 죄업이 조금이나마 소멸되는 것을 느끼는 것 같았다. 아니 죄업 소멸을 경험했다고 말해야 하리라. 힘든 사바세계에 오셔서 자비롭고도 보배로운 대법문(大法門)을 펼쳐주신 석가모니부처님과 광명 만덕 큰스님 그리고 자재 만현 큰스님께 너무 감사드린다.


 부처님의 존재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광영이며 우주에서 생명체로 태어난 것이 하나의 축복이 되었다. 사실, 많은 불제자들이 부처님이 안 계시면 삶에 회의와 정신세계의 극심한 빈곤감을 느꼈으리라. 또한 부처님은 우리의 생(生)과 명(命)의 존재 의미를 부여해 주시는 거룩하신 존재자임을 우리는 명각할 필요가 있으리라.


 그 다음으로 셋째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오늘날 영산불교 현지궁의 존재 의미를 크게 깨닫게 해주며 광명 만덕 큰스님과 자재 만현 큰스님의 존재하심에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한다. 만약 두 분 큰스님께서 안 계셨다면 어찌 우리가 석가모니부처님(보신불)께 공양을 드릴 수 있겠는가?


 그리고 불과(佛果)를 이루신 두 분 큰스님께 공양을 드릴 수 있겠는가? 이 힘들고 험한 사바세계에 두분 큰스님께서 오신 것을 정말 눈물로 감사해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현지사와 인연된 것만으로 그리고 큰스님의 법문을 듣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지만 공양까지 드릴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우주적인 복운(福運)이 아닐 수 없다.


 넷째는 모든 죄를 참회하는 것이다. 수행이라는 것, 그리고 구도라는 것은 자신의 악업을 제거하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큰스님께서는 이를 성서(聖書)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 여실히 설해주셨고 수많은 현지사 법회에서 누차에 걸쳐 설법해 주셨다. 그리고 큰스님께서는 매우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다. 바로 억겁동안의 죄업, 빚, 악연(원결), 습, 기, 착, 삼독심 등으로 말이다. 이렇게 자세하게 설해주시는 대선지식을 지금까지 수백 여 권의 정신세계 서적과 수많은 선지식을 직․간접적으로 만났어도 한 번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은 치열한 수행을 해 본 불제자라면 알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떠한 죄들이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타파하는 지에 대해서 명료하고 실제적이며 현실적으로 설해주신 분은 큰스님 밖에는 없다 하겠다.


 다겁 생으로 내려오면서 부모․조상님들께 진 빚을 갚을 수 있는 현지사 조상 천도대재를 통해서 자신과 원결을 이룬 영가들까지도 천도해주고 효를 다하는 것, 그리고 칭명염불선을 매우 절실히 수행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마음 속 깊이 절절히 참회하는 것이 주요하다고 본다.


 다섯째는 남이 쌓은 공덕을 진정으로 기뻐하는 것이다. 이는 사실 보통 사람으로서는 매우 힘들다. 하지만 나와 남이라는 것을 구별하지 않고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유기적 생명체로 함께 호흡하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 운명체라는 거시적 인식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우주에 자신 혼자만 존재한다고 했을 때 얼마나 고독할까? 우리는 인연의 연쇄 속에서 그리고 인과의 흐름 속에 인드라망처럼 공존(共存)하는 것을 기뻐하고 고마워해야 한다. 그러므로 남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남이 괴로울 때 아파하고 남이 힐들어 할 때 도와줄 수 있어야 하고 남이 기뻐할 때 함께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해나갈 때 큰스님께서 그토록 역설하신 이타행으로서 보살행이 무르익고 무아(無我)를 더 깊이 증득해 나간다고 본다. 또한 자신이 그동안 남에게 지은 죄를 씻는 길이기도 한다.


 우리는 큰스님의 법 세계와 실천적 사상 체계를 깊이 우리의 몸과 마음에 각인시켜 이를 실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여섯째 부처님께 법륜을 굴리도록 간청하는 것이다.  과거 불교 TV에

서 큰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미혹한 구도자들이 내리도록 한 적이 있

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불과를 이루신 큰스님의 법문을 내리도록 한 것은 불교의 가르

침을 파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즉, 불제자로서 자신은 부처님

을 안 믿는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하리라.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우리

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친견할 수 없으므로 대신 큰스님의 법문을 들어

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몽매해 지고 교만해 질 수 있다.

 

나름대로 불교 공부를 많이 했다고 자부했지만 큰스님의 불후의 성

서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읽고 끔벅 머리를 땅에 조아리지

않을 수 없었다.  큰스님의 성서의 내용  모두가 한결같이 참으로

위대하시고 거룩하시며 희유하신 부처님의 법 세계를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부처님의 법 세계를 묘사한 큰스님의 성심이 담긴 필력은

가히 누구도 흉내낼 수 없다.  자비로우면서도 힘이 넘치는 생동감을

엿볼 수 있어 숙연함을 넘어서 경건하기까지 했다.  그것은 불과를

증위하신 큰스님만의 독특한 필체와 자비로운 법력이 실려 있기 때문

이다.

 

우리는 이러한 큰스님의 대사자후를 많이 듣도록 법문을 많이 청하

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큰스님께서 영원히 멸도하지 않은 체 사

바세계에 남으시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하루

하루가 아깝다고 생각한다면 큰스님의 법문을 많이 구하고 간청하고

듣는 것이 우리 불제자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일곱째 부처님께 이 세상에 영원히 남아 계시기를 간청하는 것이다.

사실, 본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광명 만덕 큰스님과 자재 만현 큰

스님께서 언젠가는 이 험하고 힘들고 지저분한 사바세계를 떠나신다는

사실이다.  다른 현지사 신도들이나 참된 불제자들은 본이과 같이 두

분 큰스님께서 우리가 생사 해탈을 하고 보살과를 얻고 더 나아가 불

과를 얻을 때까지 계속해서 영원히 영산불교 현지궁에 상주해 주

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는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계실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를

절실히 체감해야 한다.  그래야 두 분 큰스님이 얼마나 소중한 분이신

지 절감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본인은 두 분 큰스님께서 억조창생의 미래를 위해서

는 길이길이 사바세계에 머무르시면서 중생들을 제도해 주셨으면 하고

간절히 염원한다.

 

여덟째 항상 부처님의 모범적인 삶을 본받고자 하는 것이다.  이 대

목은 정말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아함경>>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석가모니부처님은 친히 모범적 전형이 되어주셔서 많은 중

생들을 돌보아 주시고 제도해 주셨다.

 

그리고 큰스님께서는 하루가 바쁘게 중생들의 애환을 달래주시기 위

해서 천도대재를 지내주고 계시며 영체를 씻어주고 계신다.  우리는 이

러한 석가모니 부처님과 두 분 큰스님의 모범적인 모습을 통해서 깊이

감사하고 존숭해야 할 것이다.

 

휴먼 모델링(Human Modeling)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즉, 어떤 이상적

인 분을 자신의 가슴에 새겨두고 그 분과 같은 삶을 살기를 열망하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그 분처럼 되지는 못하더라도 그 분의 일부를 닮은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이는 나다니엘 호오돈의 큰바위 얼굴이라는 소설에서도 엿볼 수 있

다.  그리고 이는 실제로 의미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 불제자들

도 항상 석가모니부처님과 만덕 큰스님 그리고 만현 큰스님의 성의

와 성덕을 본받고 그 분들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아라한을 넘고 보살을 지나 지고한 붓다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아홉째 항상 일체 중생의 행복을 보살피고자 하는 것이다.  일체 중

생의 행복이 결국 자신의 행복이라는 것을 알고 남들의 행복을 위해서

살아갈 필요가 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머무르셨을 당시

유마 거사께서는 중생이 병들어서 당신도 병이 들었다고 하셨다.  이는

유마 거사의 보살도 정신이 얼마나 투철한지 여실히 알 수 있다.

 

즉, 우리 불제자들도 유마 거사처럼 중생들이 아플 때 아파하고 중

생들이 행복해 할 때 행복해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진실된 보살도가

아니겠는가?

 

열째 자신의 모든 공덕을 남에게 회향하고자 하는 것이다.  공덕이라

는 것은 자신 혼자서만 짓는 것이 아니라, 인연 따라 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공덕을 다른 인연에게 회향하여 흘러 보내는 게

필요하다.  과거 인연을 통해서 공덕을 쌓았다면 그 공덕을 새로운 인

연에게 회향하는 것은 정말로 복된 일이라 생각한다.

 

한편, 불과를 증득하기 위해서는 보살이 남섬부주에 여러 번 생을

받아와 불과를 이루어야 하며, 최종적으로 상품보살 중의 상품인 최상

품보살이 인신을 받은 후 약사정토로 가서 상수보살이 된 후 상수보살

이 그대로 수행을 해서 불격을 갖춘 최상수 보살이 될 수 있으며, 남

섬부주 사람 몸을 받아와서 불과를 증하게 된다고 하신다.

 

정말 큰스님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법 세계임은 너무나 자명하

다.  전 세계 어느 민족, 어는 종교에서 이와 같이 붓다가 되는 과정에

대해서 심도 있게 고찰한 적이 있는가 말이다.  실로 큰스님이 아니고

서는 감히 할 수 없는 가르침이다.

 

또한 큰스님께서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보현보살의 십대 행원을

지키고 실천하면서 육도 만행을 무량겁으로 해서 보살도를 완성해야

한다고 하신다.  그리고 대적정삼매를 통과해야 하며 억겁 다생의 업장

과 습, 기, 악연, 그리고 탐  진  치 삼독의 뿌리가 녹아져 털끝만큼도

찌꺼지가 남아 있지 않아야 불과를증할 수 있다고 하신다.

 

부처님을 친견하고 법문을 들을 수 있어야 하고 무량광을 보아야 한

다고 하시며 이것이 붓다의 첫 번째 관문으로서 무아 속 절대계에 빛

으로 이루어진 자기 불신(빛의 존재)을 얻어야 한다고 하신다.  그

리고 최종적으로 붓다를 내는 데 있어서 그 열쇠는 석가모니부처님만

이 가지고 계신다고 하신다.

 

한편 붓다가 되기 위해서는 사바세계나 삼천대천세계를 다 살만한

복덕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하신다.  붓다의 경지는 겁에 하나 천만 생

에 하나 나올까 말까하며, 우주와의 하나로 계합이 이루어지며 붓다의

몸은 우주 자체인 빛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하시며, 보살이 지니

지 못한 18가지 불공법(14무애력 4불사의 덕)을 구유하시며 삼신

을 구족하시며 삼명, 사지, 오안을 갖추시고 오안 중에서도 불안, 자

비, 복덕, 대자유를 가진다고 하신다.

 

거짓 몸뚱이와 네 가지 영체가 모두 빛덩이가 되어 자기 불신과 계

합하며 좌우보처 보살이 배정되고 50명 이상의 아라한급 성중이 호신

하며 황금 장삼과 빨강 가사 그리고 불자가 주어진다고 하신다.

이 얼마나 미증유의 설법이며 가르침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지금까지 열거한 붓다의 특성은 극히 일부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큰스님께서는 밀장이라서 다 말할 수 없다고 하셨다는 점을 충

분히 해의해야 할 것이다.  재차 강조하는 바, 금생에 불과를 이루신

큰스님 회상을 만난 것에 우리 불제자는 큰 환희로 두 분 큰스님을 모

셔야하겠다.

 

 

출처/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