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한에서 보살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항상 마음을 통해서 회광반조를 해야 하지만 행위에 대해서도 자신을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이를 바로 내시반청(內視反聽)이라고 하며 사전적 의미로는 남을 꾸짖기보다 자신을 돌이켜 보고 반성함을 뜻한다.
수행이란 외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찾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종교 영성수행 체계에서는 항상 내면 중심적인 사유를 강조한다. 마음이 바로잡히지 않고서는 수행이란 불가능하다.
이런한 내시반청이 되기 위해서는 역지사지(易地思之)로서 남의 입장에서 자신을 생각해야 하고 운명 공동체 정신을 따라 자신과 남이 모두 선(善)을 향해 가는 도반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혈구지도(絜矩之道)의 가르침, 즉 “자기를 척도로 삼아 남을 생각하고 살펴서 바른길로 향하게 하는 도덕상의 길”을 체득해야 할 것이다. 공자께서도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고 하셨다. 결국 자신의 정심(正心)을 잘 살펴서 자신의 마음에 거스르지 않도록 자신과 남을 대해야한다.
이러한 자세가 확장되면 결국 불가(佛家)의 자타불이(自他不二) 사상으로 이어진다. 회광반조하고 내시반청하며, 이를 위해서는 역지사지, 혈구지도 그리고 팔정도(八正道)와 자타불이 사상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물론 이 과정을 거쳐 아라한과를 얻으면 성중 하늘을 지나 아라한 하늘에 태어난다.
아라한이 성중 하늘로 갔다가 원력 수생하여 인신(人身)을 받아와서 보살과를 증하기 위해서는 자력만으로는 불가능하며 부처님의 위신력과 가피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큰스님께서는 자상히 일러주신다.
즉 타력이 필요하다는 말씀이다. 비유하자면 자력 수행에 매진하는 것이 ‘무거운 짐(다겁 생의 업)’을 진 채 도보로 한반도 삼천리를 경주하는 것이라면 타력 수행을 비행기로 한반도 삼천리를 유람하는 격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보살이 되기 우해서는 <<화엄경>>의 10회향 10지의 보살행을 닦아야 한다고 하신다. 그래서 해인삼매에 들어 시방세계 일체가 선명히 드러나고 금강석 같이 일체를 여읜 마음으로 청정해져야 한 티끌 한 생각이 녹아져 햇빛처럼 밝아야 보살을 이룬다고 큰스님께서 설하신다.
또한 큰스님께서는 이타행과 보살심이 투철해야 하며 삼독의 번뇌를 벗아나 중생에게 기쁘게 회향할 줄 아는 마음 가짐, 나는 살아 남아서 눈 먼 부모님을 봉양해야 한다며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사형수의 처절한 절규를 들었을 때 자기가 그 사람 대신 처형 받을 것을 자원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큰스님의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가르침과 법문이 아니고서는 아라한이 보살로 가는 도정에 대한 설명은 오늘날의 여타의 선지식이나 시중의 명상 수행서적에서는 찾기가 너무 힘들다. 보살도에 대한 가르침은 근본경전의 <<화엄경>>이나 <<법화경>>을 봐야 어느 정도 알 수 있지 그렇지 않고서는 범부 중생이나 일반 선지식으로서는 알지도 못할 뿐더러 깨닫지도 못할 경지이다. 일반 선지식의 경지가 고작 견성에서 아라한 정도이니 할 말이 없다 하겠다.
큰스님께서는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 “<<열반경>> (여래성품)의 ‘대열반 광명이 중생의 털구멍으로 들어가는 자는 반드시 불도를 이루리라’는 말씀대로, 수행인이 공부하는 중에 선정에 들어 빨강 가사, 장삼을 수하신 문수, 보현보살 그리고 관음, 세지보살께서 방사하시는 부처님의 광명(대열반 광명)을 온 몸의 털구멍 속으로 받아들이는 경계를 종종 만나면 보살의 위에 든 것으로 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실제로 큰스님께서 증험한 경지를 소상히 밝히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어떻게 이러한 장엄한 경지를 설하실 수 있겠는가? 보살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대열반 광명을 경험하는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그것이 큰스님 법문의 요체가 아닐까 한다.
또한 큰스님께서는 “성중 하늘에서 보살이 되기 위해서 원력 수생할 경우 자력과 타력에 의지해야 하며 이때는 염불선으로 선정, 삼매를 얻어 삿된 욕망과 삿된 생각을 모두 여의고 오계, 십선을 지켜 탐,진,치 삼독을 모두 제거해야 하며 또한 부처님의 가피를 얻어야 보살이 될 수 있으며, 그리하여 극락세계에 영체 아기가 생기게 되고 결국 극락에 왕생하게 된다.”고 친히 자상하게 법문해 주셨다. 흔히 선불교의 폐습에 얽매여 있는 불제자들은 오직 간화선 또는 화두선으로 자력수행을 하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부처님께서 삼천대천세계를 주관하시며 일체 처, 일체 시 아니 계신 곳이 없는데 왜 부처님을 믿고 의지하지 않고 자력만을 고집하고 고수 하는지 안타까운 실정이다. 큰스님의 칭명염불선 사상이나 염불선을 주장하는 모든 역대 고승(高僧)들께서는 한결같이 부처님의 위신력과 가피를 받으면 순풍에 돛을 단 배처럼 쉽게 구도자는 피안(彼岸)으로 건너갈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왜 부작용이 많고 성과가 적은 간화선만을 고집하는가?
또한 보살과를 증위하기 위해서는 아라한과 마찬가지로 부처님께서 절대 무아세계에 여여히 존재하심을 믿고, 지난 날을 참회하고, 부처님에 대한 공경, 찬탄과 귀의, 귀명하며,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두타행, 육바라밀, 염불선, 부모 조상들게 효(천도대재)를 다하고, 계,정,혜 삼학(三學), 팔정도(八正道), 이타행, 선근 공덕을 이루고 이 공덕을 상대 중생에게 회향할 줄 알아야 한다.
보살과를 증득하면 보살과의 경지는 다음과 같다고 하신다. 물론 보살이라고 하면 8지 이상의 보살과를 증한 이를 보살이라고 한다. 즉 서방 극락정토에 왕생한다. 보살과를 증하면 1번 영체로 극락에 가며 변녀성남(變女成男)이 이루어 진다. 그리고 극락에 왕생한 이는 불퇴전의 경지로서 성불이 보장된다.
해인삼매까지 들며 보살과를 이루면 2명의 금강역사(신장)가 호신하며 영체의 색깔은 아침 8시경 태양의 빛깔이라고 하신다. 정리하자면, 무엇보다 아라한이 보살이 되기 위해서는 칭명염불선에 주력해야 하고 자력과 타력을 통해서 정진하여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등 대보살이 끌어주어야 보살을 증위할 수 있다고 큰스님께서 말씀하셨다는 점을 명각해야 할 것이다.
출처 / 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PP 216~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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