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사의 불서/깨달음을넘어붓다까지

알아차림 -- 위빠사나선 수행법

불제자 2009. 9. 8. 19:34

 

 

 

 

 

 

 

알아차림 -- 위빠사나선 수행법

 

 

 

 

여기서는 앞서 논급한 성과 명을 수행하는 관법으로서 위빠사

나 수행을 본격적으로 소개한다.  위빠사나선의 본질을

핵심적으로 논한다면 그것은 바로 오늘날의 현자로 알려진 에크하르트

톨레가 말한 것처럼 알아차림이다.

 

이러한 알아차림을 통해서 김열권 법사가 말한 대로 보면 욕망과

잡념이 사라지게 된다.  심오한 통찰과 지속적인 주시를

통해서 번뇌와 잡념의 본질을 규명하고 그것의 뿌리를 뽑아버

리는 것이 위빠사나선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마음에 미심쩍은 생각이 일어난다면 무엇인가 문제의 소

지가 자신의 환경과 주변에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큰스님께서는 성서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 위빠사나선도 휼륭한 수행법이라고

하셨으며 다만, 이 수행법을 통해서도 아라한 위 정도까지 얻을 수 있

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안다.

 

왜 아라한 위까지 얻을 수 있느냐는 위빠사나선의 한계를 명확하게

알면 된다.  사실, 위빠사나선은 생각을 다듬고 정리하고 생각을 타파하

는 수행으로서 생각에 끄달리지 않는 수행법으로서 서양철학자 헤켈이

말한바대로 절대정신을 증득하는 데 있다.  이러한 절대 정신이 바로

참나 또는 본래 면목이라는 것이다.  위빠사나선은 사념처관이

라고 해서 신(몸), 수(느낌), 심(마음), 법(현상)을 있는 그대로

살펴서 참 자아, 즉 본 면목을 찾는데 있다.

 

그리고 큰스님께서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 그토록 강조하신

수행의 요체는 깊은 삼매에 도달하는 것이다.  수행법은 이러한 깊이

있고 그윽한 삼매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휼륭한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깊은 삼매를 얻도록 도와주지 못한다면 그 수행법은 별로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위빠사나선은 생각을 타파함으로써 중생심을

제거하고 내면의 공인 청정심의 본 자성을 깨어내는데 있다.  큰스

님께서는 견성의 순간을 내면의 자성이 터져나와 하늘과 땅을 뒤엎는

경지라고 설하신다.

 

큰스님의 견성에 대한 오도송은 매우 휼륭한 말씀이 아닐 수 없으며

가장 명료한 체험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삼천대천세계가 눈앞에서 허

물어지고 태평양의 물을 모두 마실 수 있는 경지가 되어야 한다.  마찬

가지로 위빠사나선이 증위하는 경지도 바로 생각을 지멸하고 단멸하여

맑은 본 성품이 오롯이 두되에 깨어나와 내외명철이 되는 경지이다.

 

사실 수행을 하면 자타불이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데 자타불

이를 얻기 위해서는 무아를 체험해야 한다.  하지만 견성 수준에서의

무아와 아라한 수준에서의 무아 그리고 보살 수준에서의 무

아와 최고 수준인 불과에서의 무아는 그 차이를 갖고 있다.

 

즉, 욕계정삼매, 명진정삼매, 해인삼매, 대적정삼매 각각의 삼매의

심화 정도에 따라 자타불이의 경험을 다르게 느낀다는 점이다.  이는

견성을 얻은 후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여러 번 읽어보면 반추해

볼 수 있는 사실이다.

 

위빠사나선은 바로 욕계정삼매를 넘어 명진정삼매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수행법이다.  이 수행법을 하기 전에, 즉 수행에 대한 초발심 이

전에는 주관적이고 주체적인 자신과 객관적이고 상대적인 타인과의

분명한 구분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위빠사나선을 하게 되면 보다 분명

하고 명료하게 자신의 내면에 혼재하는 자신의 의식과 타인의 의식

들을 간파하게 된다.

 

<<능엄경>>에서는 나그네를 모두 쫓아내어 자신의 몸에 주인공이 되

면 깨달음이라고 말한다.  결국 자신의 몸을 잠식해 들어오는 잘못된

의식과 빙의적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자신의 청정심을 도야하는 것

이 위빠사나선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빙의를 제거하고 불순한 영혼을 제거하는 것은 혼자서

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위빠사나선을 잘못하면 상기명, 주화입마, 청

신질환 등을 겪게 되기도 한다.  참고로, 큰스님의 바르고 청정한 칭명

염불 수행은 먼저 부처님이 주관하시는 천도대재를 지내야 한다는 것

을 명시하고 계신다.

 

따라서 큰스님께서 제시하는 수행법은 부처님의 가피와 위신력 하에

수행되는 매우 체계적이고 부작용이 없는 수행법이라 할 수 있다.  자

세한 내용은 칭명염불 수행에 대한 단원에서 다루고자 한다.

 

한편 청정심은 수행자 마음의 본체로서 진실된 것이며 중생심

은 수행자 마음의 때처럼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변화하고 덧없는 것이

다.  즉, 청정심은 영원한 빛이라면 중생심은 어둡고 지저분한 탁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청정심과 중생심의 구분은 삿된 욕망이라는 매개

를 통해서 구분된다.  만약 우리가 아침, 점심, 저녁 공양시간이 아닌데

무엇인가 먹고 싶고,  자녀를 두고자 하지 않는데도 음욕이 일어난

다면 그것은 올바른 욕망이라고 할 수 없다.

 

이러한 식욕과 음욕은 순간적인 욕망이라는 것을 여실지견으로 통찰

해야 한다.  만약 무엇인가를 먹고 싶다는 욕망이 1초의 순간이라도 끊

이지 않고 우리의 삶 속에서 영구적으로 지속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청

정한 본심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식욕이나 음욕은 모두 순간적인 만족이고 만족을 얻

으면 욕망은 잠둘어 버린다.  이러한 삿된 욕망이 바로 인간을 윤회시

키는 무지의 그물이요 어둠의 굴레이다.  참고로 큰스님께서도 <<21세

기 붓다의 메시지>>에서 <<원각경>>을 언급하시면서 음욕이 바로 윤회

생사를 일으킨다고 사자후하셨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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