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사의 불서/깨달음을넘어붓다까지

영성 수행 문화의 기초적 수행세계

불제자 2009. 7. 16. 10:59

 

 

 

 

 

영성 수행 문화의 기초적 수행세계

 

 

여기서는 다양한 동서 고금 영성 수행 문화의 기초적인 수

행 세계를 알아봄으로써 이러한 잡음과 불협화음을 잠재우고자 시도해

본다.  힘이 어디까지 미칠지 모르겠으나 최선을 다해보고자 한다.

 

먼저 우리는 영혼의 의미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일반적으

로 학자들이나 지성인들은 의식의 다변화와 양태에 깊고 지대한

관심을 가져왔고 지금도 가지고 있다.  즉, 의식의 다양성을 통해서 기

존 의식을 토대로 새로운 의식을 얻아가고 새로운 의식을 통해서 깨우

침, 즉 작은 각성을 얻는다.

 

상념을 조작하고 구상하고 해체시키는 과정을 통해서 상념들의 구조

와 얼개를 통해서 상념의 체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상념

조작과 가공을 통해 얻는 순간순간의 기쁨이 바로 학자들이나 지성인

들의 기쁨이다.

 

이를 소위 수행 문화에서는 소쿤달리니 현상을 통한 의식의 각성

이라고 한다.  쿤달리니는 영어로 인체의 꼬리뼈 부근에 담재된

순수한 에너지체, 측 샥티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두뇌에 위치한 쉬바 에너지와 합일을 통해 의식

으로서의 힘, 쉬바 샥티를 잉태하게 한다.

 

정설에 의하면 쉬바와 샥티가 결합된 힘으로서의 의식, 쉬바-샥티가

쿤달리니인 것이다.  쉬바는 의식의 고용한 정성이며, 샥티는 의식

의 역동적인 동성을 의미한다.

 

학자들이나 지성인들은 쿤달리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소쿤달리니를

통해서 자신의 멘탈체를 발달시키고 계발하면서 동시에 작

은 깨우침들과 희열을 누리며 살아간다.  하지만 지성적 세계만을 지나

치게 고집 및 고수하명 결국 영혼의 개화와 마음의 개오는 멀어지게

된다는 것을 명각해야 한다.

 

더욱이 사변적 지성만으로는 큰스님의 성서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성을 관장하

는 멘탈체를 넘어서 예지체라 불리는 코잘체를 계발하면

어렴풋이나마 보다 진지하게 큰스님의 불신사상을 이해하게 된다.  물

론 이것도 상념에 의한 이해일 뿐이다.  하지만 보다 가깝데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진일보가 아닐 수 없다.

 

코잘체, 즉 1번 영체는 극락세계에 왕생하는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실제로 큰스님의 불신사상을 사변적으로나마 이해하기 위해

서는 의식의 순수성을 무엇보다 빠르게 증득해야 한다.  즉 밝고 명료

한 의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성인들이나 학자들은 신비주의를 미신으로 취급하거나 불

필요한 행태로 치부하고 있다.  학자들이나 지성인들이 좀 더 예지체를

계발시키고 향상시켜 나간다면 분명 의식의 다변화와 양태를 증득하는

데 치우치지 않고 의식의 순수성과 명료성, 그리고 의식의 청정함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지성인들과 학자들이 추구하는 것은 지식으로서의 앎과 그것으로부

터 얻어지는 지혜이다.  하지만 이러한 지혜는 성질상 마른 지혜일 수

밖에 없다.  체험이 없기 때문이다.

 

쿤달리니를 통해 의식의 각성을 얻고 천재성을 발현하게 되

는 것도 실제 몸 속으로 쿤달리니가 타고 흘러 나디

라고 하는 기경팔맥을 소통시키고 타통시켰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사실 천재 중의 천재인 대석학들은 거의가 쿤달리니 각성을 통해서 완

성된다.

 

이러한 실제적인 쿤달리니 증험을 얻지 않은 상태에서의 학문 탐구

는 거시적이고 올바른 지혜를 잉태하지 못함을 우리는 명지해야

한다.

 

 

 

출처/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36~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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