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무엇인가?
이 몸뚱이가 있어서 내가 있다고 그래요. 그러지요? 이 몸뚱이가 있어서 내가 있다 그래요. 이 몸뚱이, 이것을 불교 교학에서는, 여러분! 우리 대구 불자님들은 교학을 많이 했다고 그래요. 나는 내 노래를 부르기 때문에 교학 교리를 잘 인용하지 않습니다. 지금 불교의 교학 교리는 많은 조명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새로 조명을 해야 될 부분이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인용을 잘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태여 인용을 합니다. 이 몸뚱이를 교학에서는 오온(五蘊)이라고 합니다. 오온이라고 하지요? 이 몸뚱이를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라고 해요. 이 몸뚱이를 한번 따져 봅시다.
색(色)-색은 뭐냐?
물질로 이루어진 것이 몸뚱이어요. 몸뚱이, 물질로 이루어진 것을 색이라고 그래요. 색, 지수화풍(地水火風). 지수화풍으로 이루어진 것이어요. 더 깊이 말하면 현대과학에서는 104원소, 108원소... 시간이 없어서 이것까지 이야기 못합니다. 이 몸뚱이하고 또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지요? 정신적인 것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사람은 육체적인 것, 정신적인 것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렇잖습니까? 정신적인 것을 수상행식(受想行識)이라고 그래요. 그렇지요? 이건 다 잘 아셔.
수(受)는 뭐냐?
스님이 여러분을 딱 보니까 내 눈 안으로 전부 들어온다고. 여러분들이 ‘예~’ 하면 귀로 들어온다고. 이런 모양이나 소리에 대한 인상. 감각되고 감수되는 느낌, 이 감각과 느낌을 수(受)라고 그래요. 정신적인 요소를 이루고 있는 것들이 있어요. 수(受).
그다음에 상(想), 상(想)은 뭐냐?
어떤 사람이 말씀을 하는데 내가 눈을 감고 있다 합시다. 말씀을 하는데 내 머리 속에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그 사람의 이미지가 딱 떠올라요. 그리고 어떤 관념, 그것을 상(想)이라고 그래요. 표상.
행(行)은 뭐냐?
저 목소리가 아주 아름답단 말이오. 예쁘단 말이오. 그러면 호감이 가요. 그러면 어떠냐? 내 마음이 많이 관심이 가요. 그래서 말을 걸고 싶고 무엇을 해주고 싶어. 이렇게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그 의욕, 그것을 행이라고 그래요. 아주 쉽게 말씀드립니다.
자, 수상행식(受想行識)인데, 이 수상행(受想行)은 의식 ․ 식(識)에 의해서 일어나요. 식(識)이 없으면 일어나지 않아요. 식(識)은 자각적인 의식작용을 말해요. 마음 밖의 대상, 사물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일을 합니다. 이 식이 수상행을 가능하게 하는 바탕이 되요. 그렇지요? 이 식(識) ․ 의식과 수상행의 작용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우리의 생각이. 그렇잖습니까? 무상(無常)해요. 무상하단 말이에요. 고정불변하지 않는다 그거예요. 변하지 않아야 되는데 시시각각으로 변하더라 그거라. 수상행식(受想行識)이 그래요.
몸뚱이도 그래요. 이 몸뚱이는 지수화풍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10년 다르고 20년 달라요. 저기 계신 할머니, 70년 전 꼬마였을 때에는 피부도 아주 포동포동하고 예뻤지. 70년이 흐르니까 지수화풍 육신이 어떻게 됩니까? 자꾸자꾸 세포가 죽고 죽고 해가지고 그냥 꼬부랑 할머니가 되지. 그래서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이것은 모두 믿을 것이 아니란 말이어요. 이것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거예요. 변해져. 무상(無常)해. 무상해. 이것은 결국에는 무너져버린단 말이에요. 무너진단 말이에요. 무너질 존재란 말이에요. 이것은 진짜가 아니란 말이에요. 진짜 내 것이 아니어요. 진짜는 변하지 않아야 진짜라고 하는 거예요. 그렇지요? 또 내 것이라고 하면 내 마음대로 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 몸뚱이와 이 생각을 내 마음대로 하겠습디까? 이 몸뚱이 보고 ‘아프지 마라!’고 하면 아프지 않습디까? 아프지요? 이 생각보고 ‘저 남자 또는 저 여자 사랑하지 마라!’고 합니다. 이미 퐁 빠졌는데. 그렇게 명령한다고 듣습디까? 여러분들이 경험이 많으니까 스님이 지금 직설로 말씀드리는 거예요. 못하겠지요? 내 마음대로 못한단 말이에요.
여러분이 은행에다가 저금한 돈은 내 것이어요. 내가 저금한 돈은 내 것이어요. 찾아서 얼마든지 내 마음대로 쓸 수 있지요? 내 것이니까 그래요. 그런데 이 몸뚱이나 내 생각이나 이건 진짜도 아니고 내 마음대로 못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가짜라고 그래요. 가짜. 가아(假我)라고 그래요. 거짓 나(我). 거짓 몸뚱이.
오온(五蘊), 사대 오온은 거짓이어요. 거짓이어요. 이건 믿을 것이 못 돼.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이 몸뚱이가 있어서 나라고 생각한단 말이어요. 이 몸뚱이가 있어서 나라고 생각해. 이 몸뚱이를 자기로 안다고요. 자기로 알아.
그래가지고 얼마만큼 이 몸뚱이를 위하는 줄 압니까? 얼마만큼 위합니까? 이 몸뚱이가 죽어버리면 큰 일이기 때문에 몸뚱이가 아프면 병원에 가서 의사한테 진료받고 약 사먹습니다. 배고프다고 하면 그냥 뛰어가서 밥 사먹고 하지요. 안 그럽니까? 잠도 그렇지. 편안한데서 자고 싶고 침대 위에서 자고 싶고... 이거 이거 이 몸뚱이를 자기로 알고 상전으로 받든다고요. 이거 죽어버리면 다 끝나는 것으로 알아요. 중생들은 그렇게 생각해요. 요놈이 전부예요. 나의 전부예요. 이것이 인생이어.
그건 이제 아니어요. 이제 스님이 말할 게요. 그건 정답이 아니어요. 그건 성자가 보니까 잘못 안 거예요. 부처님이 보니까 잘못 알고 있어요. 이건(-몸뚱이) 완전히 가짜예요. 가짜이지만, 사실은 중요해요. 가짜라고만 치부할 것이 아니어요. 요놈이(-몸뚱이) 착한 짓 했으면 착한 과보가 옵니다. 못된 짓 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압니까? 고통스러운 과보가 옵니다. 그렇지요? 세속법으로도 나쁜 짓하면 형사한테 잡혀가요. 상 받을 일하면 대통령 표창 받아요. 안 그럽니까? 이거 중요해요. 이 몸뚱이가 또 중요한 점이 있어요.
이놈이 사람을 죽이면 어떻게 되는 줄 압니까? 이제 조금 깊이 들어가서 이야기할게요. 이 몸뚱이가 사람을 죽이면 어떻게 되는 줄 압니까? 내가 언젠가 그 사람한테 죽어요. 이거 잊지 마세요! 이것을 카르마 법칙이라고 그래요. 이것을 업의 법칙이라고 그래요. 이것은 우주의 법칙이어요.
내가 전생에 A라는 사람을 죽였다? 인연이 있으니까 언젠가 언젠가 그 사람하고 만날 때가 있어요. 여러분은 나하고 인연이 있으니까 이렇게 만나는 거예요. 죽였다? 그 사람이 언젠가 나하고 만나가지고 나를 꼭 죽입니다. 반드시 죽입니다. 이것이 법칙입니다. 이게 우주의 법칙입니다. 이것을 카르마 법칙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교학 한 분, 알지요? 카르마 법칙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이 몸뚱이는 정말로 할 일 ․ 해서는 안 될 일을 잘 생각해가지고 신중히 처신해야 되요. 이 몸뚱이를 함부로 놀리면 안 되어요. 자기 집이 가난하다고 해서, 배가 고프다고 빵집에 가서 슬쩍하면 안 되어요. 그건 잡혀가요. 안 됩니다. 업을 지으면 안 돼. 지은 업은 반드시 결과가 있어. 과보가 있어. 반드시 과보가 있어.
자, 이제 스님이 간단 간단하게 이야기합니다. 700년 전 인도에서 우리 불교가 망했는데, 망한 이유가 있습니다. 망한 이유가 있어요. 앞에서 스님이 말씀했지만 불교가 망한 것은 정말 통한의 슬픔이올시다. 전 인도를 불교화 할 수 있었는데, 잘못된 어떤 사상 때문에 그랬어요. 그것이 뭐냐? 이 문제는 교학을 가지고 얘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많은 분들이 교학을 했으니까 스님이 이야기합니다. 힌두교는 아트만(atman)을 이야기해요. 지금 스님이요 우리나라 최고의 학자들을 모아놓고 이 말을 한다고 생각하고 말해요. 다 앉혀놓고 말하고 싶어요.
그들은 진실을 몰라요. 아트만(atman)을 주장하는 것이 힌두교예요.
그러면 아트만(atman)이 무슨 말이냐? 나의 주인공 ․ 내 실체 ․ 윤회의 실체예요. 아트만(atman)이요. 나(我)예요. 진짜 나(我).
그런데 불교에서는 어떻게 이야기하느냐? 불교,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무아(無我)예요. 알지요? 무아(無我)지요? 그런데 무아(無我)를 잘못해석해 버렸단 말이에요. 잘못 해석했단 말이에요. 잘못 해석해 가지고 안아트만(anatman), 이렇게 나갔다고요. ‘나(我)가 없다’고 나갔다고요. 그러니까 아트만(atman)하고 안아트만(anatman)하고 갈라지잖아요. 아(我)와 무아(無我). 힌두교에서는 아(我), 불교에서는 무아(無我).
여러분, 우리 신도분들 여기에 많이 오셨는데 우리 신도분들이 내 법문을 한 200번 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알아들을 거예요. 여기 대구 지방 불자들은 아주 뭐 그 불교대학이 많다고 그래요. 아주 전통이 있고. 그러니까 스님 말씀을 못 알아들으면 이건 교학 공부를 하지 않았지. 헛 배웠지. 여러분, 알아듣겠지요?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자, 아트만(atman). 아트만(atman)이란 무슨 말이냐? 힌두교에서는 BC 이전부터 많은 성자가 출세했어요. 기원전 1000년 이전부터 많은 성자가 출세했단 말이에요. 그건 아마 히말라야 산의 정기 덕분이어요. 그렇지요? 그분들이 그 지혜의 눈으로 보니까 사람은 몸뚱이가 태어나서 죽어버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더라 그거라. 윤회를 하더라 그거라. 다음 생이 있더라 그거요. 저 세상이 있더라 그거야. 맨 먼저 그렇게 주장한 것이 힌두교입니다. 얼마나 우수합니까?
여러분! 죽으면 저 세상이 있어요. 저기 할머니! 저 세상이 있어요.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그 말을 하면 다 웃어버려요. 자기의 눈으로 안 보이고, 자기의 상식으로 와 닿지 않아요. 이것(-몸뚱이)이 자기인데, 죽어버리면 끝나는 것인데, 아! 묘를 가봐라. 공동묘지를 가봐라. 뭐가 있나? 아무 것도 없더라. 죽어버리면 끝나는 것이다. 저 세상이 있다는 것은 다 거짓말이어. 말도 아니어. 저 세상이 없다고 믿고 주장하는 수가 전 세계 인류의 절반 이상이 되요. ⅔는 됩니다. 공산주의를 위시해서 무신론자들이 ⅔는 됩니다.
자, 종교를 아주 성실하게 믿는 분들은요 그래도 저 세상이 있다는 말씀을 조금 믿어요. 다 믿는 것은 아니어요. 불교 신자들도 다 저 세상이 있다고 믿지를 않아요. 우리 스님들도요, 내가 총무원에 있어도 보았고, 종단의 상임포교사도 했으니까 다 알아요. 소수예요. ‘아! 죽어버리면 인과가 끝나버리는 것이지’ 이렇게 말해버려. 그래 놓고 법좌에 올라가서는 ‘아! 저 세상이 있다. 뭐 어쩐다 어쩐다...’ 하지요.
그런데 내면으로 들어가서는 확신이 없기 때문에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스님들도 함부로 업을 짓더라 그거예요. 그러니까 불교가 망하지. 한국불교가 망하지. 저 세상이 있어요. 인도의 성자들은 저 세상이 있음을 알았어요. 저 세상이 있는데 자세히도 알았어요. 육도를 윤회한다는 것까지 알아버렸어요. 육도 윤회 알지요?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아수라, 천(하늘), 이 여섯 하늘을 이렇게 윤회하는 것까지 힌두교에서 알았다고요. 윤회를 하는데 계속 윤회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계속 윤회하는 이유가 있어요.
이유까지도 알았어요. 내가 짓는 업이 있으니까 계속 윤회를 하는 거예요. 이 업은 반드시 과보가 오기 때문에 이것은 끝이 없어요. 계속 윤회한다는 것까지 알았어요. 윤회한다면 주체가 있어야 할 것 아니냐 그거라. 윤회의 주체가 있어야 할 것 아니냐 그거야. 내가 업을 지었으면, 내가 전생에 사람을 죽였으면 언젠가 내가 저 사람한테 죽는다는데, 내가 죽는 거요. 내가 죄를 지었으니까 과보를 내가 받는 거예요. 다음 생에 과보를 받을 내가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이것이 주체라고. 주체. 윤회의 주체가 있어야 된다 하는 것을 힌두교에서는 주장한 거예요. 이것이 아트만(atman)이어요. 아트만은 ‘나(我)’라는 말이에요. 조금 어려운 말로 자아라고 그래요.
그런데 불교에서는 ‘무아(無我)!’ 한다고요. 무아(無我). 삼법인에 나와요. 불교의 법인(法印), 불교의 교리가 모든 종교와 다른 점 세 가지를 들어요. 무엇을 드는 줄 알죠? 제행무상(諸行無常) ․ 제법무아(諸法無我) ․ 열반적정(涅槃寂靜), 그렇지요? 그러니까 제행무상 제법무아는 현상계의 특징을 가지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리고 본체계는 열반적정이어요.
현상계가 생멸변화 하는 무상한 세계라면 본체계는 생멸변화가 없는 비무상의 세계지요. 열반적정은 이 본체계의 진리를 가리키는 거예요. 그런데 이 무아(無我), 제법무아, 이 무아(無我)를 갖다가 현상세계, 상대세계, 이 경험세계 너머 저쪽 절대세계 본체계까지 무아사상을 적용하다가 보니까 문제가 생긴 거예요. 본체계는 무아가 아니거든요. 그리고 힌두교 하고도 맞지 않아요.
힌두교는 나의 주체 ․ 주인공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불교는 무아(無我)를 주장하잖아요. 무아(無我)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없다’라는 말이어요. 실체가 없다 그 말이어요. 윤회하는 주체인 ‘나’가 없다는 말이라. 나(我)라는 것이 없다 그 말이어요. 나(我)가 없다는 거야.
자, 이 현상계에서는 증명이 되요. 이 컵을 부수고 부수고 분석해 보면 나중에는 공(空)-무아로 되요. 사람도 전부 수술하고 다 갈라놓고 보면 없어요. 실체가 없어요. 무아야. 어디 있습디까? 다 인연으로 모여서 있다가 인연이 흩어져버리면 공(空)이 되는 거예요. 현상세계는 그래요.
그런데 중요해요. 내가 짓는 업이 흘러가는 곳이 있어요. 내가 짓는 업이 가는 곳이 있어요. 이것을 불교계에서는 몰랐어요. 내가 짓는 업,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로 짓는 모든 경험 그 모든 것, 그 업으로 인한 탁한 기 등, 내가 짓는 나의 모든 것은 나한테 가야 되는 거요. 나의 어떤 것한테 가야 되는 거예요. 흘러가는 거예요. 거기 그 장소가 있어요. 그 처소가 있어요.
그것을 아뢰야식이라고 그래요. 유식(唯識)에서는 아뢰야식이라고 그래. 알지요? 들어보셨지요? 아뢰야식으로 흘러간다 그래요. 거기에 전부 보존이 된다고 그래요. 업이 모두 저장이 된다고 그래요. 거기서 저장이 되어가지고, 마치 거기가 밭이라고 합시다. 밭. 밭에다가 씨를 뿌리면 싹이 나지요? 거기서 이제 성장을 한다고 그래요.
착한 업, 나쁜 업 등 모든 업이 그쪽으로 가가지고 거기서 이제 싹이 튼단 말이에요. 싹이 트는데, 이 몸뚱이는요, 착하고 선하고 악하고 한, 이런 업의 결정체입니다. 업의 덩어리예요. 이숙신(異熟身)이라고 그래요. 조금 어려운 말입니다. 이숙(異熟)이라는 말은 말하자면 그 업이 보존 ․ 저장되어 있다가 그 종자가 다르게 자라난다 그거요. 생김새라든지 성격 등 모든 것이 다르게 자라나더라 그거예요.
이 업의 종자가 저장되는 있는 창고를 아뢰야식이라고 해요. 그러면 유식(唯識)은 무착이라고 하는, 무착이란 분은 용수(나가라쥬나) 다음가는, 부처님 다음가는 인도의 큰 스승인데, 정말로 위대한 어른이올시다. 위대한 스님이거든요. 무착 ‘아상가’, 그의 동생이 세친 ‘바수반두’이지요. 범어로 각각 아상가(무착) ․ 바수반두(세친)라고 합니다. 이런 분들이 유식학(唯識學)을 완성시킨 거예요. 그래가지고 아뢰야식을 내놨어요.
무착은 부처님 가신 후 1000년 후쯤 태어난 분이어요. 1000년 후쯤 태어난 분인데, 정말 위대한 학자이자 큰스님이어요. 이 분이 소승경전과 대승경전을 아무리 연구해 봐도 윤회의 주체에 대해 말하는 바가 없어요. 불교에 윤회의 주체가 없어요. 무아라고만 하지 윤회의 주체에 대해서는 말이 없어. 그런데 윤회의 주체가 없으면 말이 안되잖아요. 윤회의 주체가 없는데 어떻게 윤회를 하느냐 그 말이어요. 그래서 무아와 윤회의 주체 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도 안되니까 자결하려고 했어요. 그때 미륵부처님을 만난 거예요. 그 당시 미륵부처님이 잠깐 왔다 가셨어요.
그래서 인간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각각에 상당하는 여섯 가지 식이 있잖아요. 이를 육식(六識)이라고 하지요. 그 위에다가 ‘말라식’ 하고 ‘아뢰야식’을 고안해가지고 해결을 본 거예요. ‘햐! 이거 해결했다’ 한 것이 아뢰야식설이어요. 그런데 아뢰야식은 영 이설(異說)이어요. 나는 무착이 간 후 이제 1500년 만에 자재 만현이 아뢰야식을 전부 도마에 올려놓습니다. ‘아니다!’ 그거예요. 잘 몰랐다. 아뢰야식은 윤회의 주체가 못 된다 그거라. 왜냐? 서너 가지의 이유가 있어요.
‣첫째, 윤회의 주체가 되려면 업, 앞에서 이야기한 업력 ․ 업식 ․ 식(識) ․ 기억 ․ 탁한 기를 전부 받아들일 수 있는 처소, 공간적인 개념이라야 되요. 아뢰야식은 식(識)일 뿐이어요. 공간이 아니어요. 식(識)이어요. 식(識)인데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장소가 있어야 돼. 장소가. 식(識)은 장소의 의미가 아니어요.
‣둘째, 식(識)은 근(根)이 죽어버리면 즉 근을 가진 몸뚱이가 죽으면 죽어버립니다. 없어져버립니다. 근(根)과 경(境)이 없으면 식(識)은 존립할 수 없습니다. 이건 조금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이야기인데, 교학을 하면 그냥 알아요. 여러분들도 조금은 알 거예요. 지금 학자들이 유식에 대해서는 너무도 모르고 있어요.
‣셋째, 영원히 살아야 되요. 죽지 않아야 되요. 윤회의 주체는 죽을 수가 없어요. 주체가 죽어버리면 영원히 반복 ․ 윤회를 못하지요. 그러니까 주체의 자격은 영원히 죽지 않아야 되요. 그런데 아뢰야식은 찰나생 찰나멸이어요. 그러면서 이어간다는 거예요. 이건 아닌 거예요.
그러니까 이것은 장소적인 개념도 없고, 영원히 산다는 것도 없고, 언제 태어난 것도 없어요. 이 근(根)이 죽어버리면 근을 가진 사람이 죽어버리면 식(識)은 살 수가 없는 거예요. 그렇잖습니까? 이거 깊이 들어가 집에서 생각해 보세요. 맞는 말이니까요.
‣넷째, 윤회의 주체가 되려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육근을 구족해야 되요. 육근을 구족하지 않으면 윤회의 주체가 못 되요.
이것은 조금 더 예를 들어줄게요.
지옥을 갔다? 식(識)이 어떻게 지옥 갑니까? 식(識)이 어떻게 지옥 갑니까? 식(識)이 가서 ‘아! 무서워라!’ 합니까? 눈도 안 달리고, 귀도 안 달리고, 몸뚱이도 없는데? 몸뚱이가 있어야 되요. 몸뚱이가 있으니까 눈으로 지옥 벌을 보고 바들바들 떠는 거예요. 여기 몸뚱이에다가 고문을 하니까 무서워하는 거예요. 극락에 가니까 이거 너무너무도 환희의 세계거든요. 왜? 눈이 있어서 보이니까, 귀가 있어서 법음(法音)이 들리니까, 몸이 있어서 그 향긋한 바람 그 향기로운 그 감촉을 느끼니까. 또 정토보살님들 하고 이야기를 하려면 입이 있어야 되잖아요. 그분들은 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갖추고 있다고요.
부처님들도 절대계에 거룩하게 32상을 갖추고 있다고요. 아, 그런데 아뢰야식이라는 거야. 이것은 윤회 주체의 자격이 없는 거예요. 이건 1500년 만에 이 자재 만현이 처음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 오늘 18일 재일에 뭐 저기 자재 만현이라는 스님이 와서 법문을 했다는데 무슨 말을 합디까? 누가 그러거든 한 토막만 말씀하지 마세요. 그러면 오해를 합니다. 테이프를 갖다 주라고요. 그 사람이 학자든 세계 석학이든 원효스님같이 훌륭하든 내 놓으라고요. 알았지요?
그 다음에 선(禪)에서는 주인공을 아뢰야식이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선(禪)에서는 주인공을 우주본체인 공(空) ․ 불성(佛性)이라고 합니다. 불성이라고 합니다. 불성 ․ 법성 ․ 진여 ․ 일심․ 한 물건,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우주만물의 근본, 우주만법의 근본인데 그것을 주인공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틀린 말인 거예요. 주인공이라는 말은 내 주인공 다르고, 당신 주인공 다르고, 김 선생님 주인공 다른 거예요. 내 얼굴이 당신 얼굴과 다르고 내 운명이 당신 운명하고 다르잖아요. 다르잖아요? 내 주인공 달리 있고 여러분 주인공 달리 있는 거예요. 그런데 법성 ․ 불성 ․ 공 ․ 자성 ․ 일심, 이것은 우주 전부의 근본이어요.
저 토끼의 주인공도 불성이고, 저 돼지의 주인공도 불성이예요. 나의 불성도 주인공이고 너의 불성도 주인공이라고 한다면 이게 주인공입니까? 주인공이라고 하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선(禪)에서는 주인공이라고 그래요. 그것은 틀린 거예요. 뭘 모르고 하는 말이라. 그게 어떻게 주체가 됩니까? 눈도 없고 코도 없는데. 우주본체인 공(空)은, 불성(佛性)은 눈도 없고 코도 없어요. 그런데 어떻게 그것을 주인공이라고 합니까? 영원한 것은 맞아요. 그건 되었어요. 그러나 불성은 눈 코 입 등이 없다 그거라. 그렇지요?
그리고 다시 이야기하지만 내 주인공 다르고, 여러분 주인공이 각각 달라요. 그런데 선(禪)에서는, 또 기존 불교에서는 주인공을 우주의 본체인 공(空)으로 봐요. 불성으로 본단 말이어요. 그거 틀렸다 그거지. 기존의 불교가 이렇게 많은 결함을 지니고 있어요. 이것을 지금까지 2600년 동안 그 어떤 분도 지적을 못했단 말이에요. 하나도 지적 못했습니다.
지금 스님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뭐냐? 내 업이 내 주인공으로 흘러가요. 내 주인공, 불성을 지닌 영혼체가 있어요. 불성을 지닌 영혼체, 나의 주인공이 있어요. 이 영적인 몸뚱이가 있어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다 갖추고 있어요. 이 영혼체는 힌두교에서 알았어요. 알았지만, 우리 영산불교만큼 자세히 모릅니다. 이 영혼체는 네 개의 영 체로 겹쳐져 있습니다. 비밀입니다. 생명의 비밀입니다. 1․2․3번 영체는 항상 뭉쳐 다닙니다.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4번 영체는 사람 몸, 엄마 뱃속에 들어가서 생깁니다. 4번 영체가 없으면 인간구실을 못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뭐냐? 인간이란 뭐냐? 스님이 이제 정의를 해줄게요.
『오온(五蘊), 이 몸뚱이 ․ 거짓 몸뚱이인 오온(五蘊) 플러스(+) 나의 주인공 ․ 불성을 지닌 윤회의 주체인 영혼체』
이것을 결합한 것이 완벽한 인간의 정의예요. 여러분 테이프에 녹음되어 나올 거예요. 이 중요한 법문은 꼭 구입하셔서 다시 들어십시오.
그러면 힌두교의 아트만(atman)하고 어떻게 다르냐? 아트만(atman)은 1번 영체예요. 그러나 2번․3번 영체가 붙지 않으면 윤회를 못해요. 4번 영체가 붙지 않으면 인간이 될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힌두교의 아트만(atman)은 청정무구해가지고 윤회할 수가 없는 거예요. 업을 지어야 윤회를 하는 거예요. 2번․3번․4번이 업을 짓는 거예요. 업이 더덕더덕 붙어야 윤회를 하는 거예요. 돼지 업을 지으면 돼지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인간이 짓는 업이 우주본체인 공(空)에 붙는답디까? 못 붙어요. 우주본체인 공(空)은 청정무구해요. 공(空)이라는 것은, 불성이라는 것은 있다 없다를 초월한 초월적인 존재예요. 아예 기존 불교의 유식(唯識)이라든지 선불교에서는 지금 너무도 몰라요. 이것을 가지고 어떻게 21세기를 향도합니까? 불가능한 거예요.
이제 정말로 새로운 불교가 나와야 되는 거예요. 힌두교를 능가하고, 모든 종교의 그 철학사상을 제압할 만한 우수한 철학사상이 나와야 되는 거예요. 그러한 우수한 사상은 윤회를 벗어난 보살이나 불과를 이룬 분이 나와야 되는 거예요. 그런 스님한테서 어마어마한 사상이 쏟아져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이러한 법문을 안 들으려고 해요. 이런 법문을 듣지 않으려고 해요.
자, 유식학에서는 아뢰야식, 이거 뭐 누가 건드릴 수가 없지요. 감히 아뢰야식이 어떻다 어떻다 하면 그건 뭐 큰일 나는 거예요. 금과옥조(金科玉條)예요. 정말로 엄중하게 가르침을 교조로 삼고 있어요. 무착을 이길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그거요. 누가 있느냐 그거요. 여러분, 원효보다도 더 훌륭한 분이어요. 이 세상에 원효를 이길 사람이 어디에 있어. 지금까지 아무 말 못해 왔어요.
지금까지의 불교, 우주본체인 불성을 가지고 주인공이라고 하는, 그렇게 말을 해도 아무 말 못하고 그런가 보다하는 불교. 이때까지의 불교가 그래 왔다 그거지. 그것은 헛 배운 것이지.
불교가 13세기 때 결정적으로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했던 이슬람세력의 침공을 받아가지고 큰 사원들이 파괴되고 많은 스님들이 학살되었습니다. 그것을 불교가 망하게 된 주된 이유라고 학자들은 들고 있는데, 아닙니다. 아닙니다.
또 어떤 학자들은 대승불교가 밀교화 되면서 힌두교에 흡수되어버렸다? 아, 부족하니까 흡수되었지.
또 어떤 분들은 불교의 그 번쇠한 철학적 교리가 일반대중에게 먹혀들지 않았다. 이런 말을 하지.
또 어떤 분들은 불교 내부의 부패와 분파-20개 부파로 나누어졌잖아요. 그런 것들을 듭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고 사실은 ‘아트만(atman)과 안아트만(anatman-무아)'의 문제입니다.
안아트만(anatman)은 이 현상계에서는 안아트만(anatman)이어요. 무아(無我)예요. 그러나 본체계에 들어가면 뿌리가 있어요. 이 거짓 몸뚱이의 뿌리가 있어요. 주인공이 있어요. 뿌리가. 엄마가 있다고요. 요놈(-몸뚱이)은 아들놈이고요. 엄마가 있다고요. 윤회의 주체가 있다고요. 윤회의 주체는 불과를 이루지 않으면 못 봅니다. 불과를 이루지 않으면 지옥도 안 보여요 여러분.
화두타파는 이제 시작이어요. 거기서 정말로 무아행(無我行)으로 들어가야 아라한이 되는 거예요. 더 들어가면 무루대아라한이 되고요. 그런데 들어갈 수가 없어요. 거기서도 더 들어가면 보살인데 공부를 할 수가 없는 이유가 있어요. 이것도 너무도 중요한 이야기인데, 여러분 알아둬야 되요.
공부를 해서 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마(魔)의 장애가 그만큼 높아져요. 무서워요. 이것을 도고마성(道高魔盛)이라고 해요. 여러분들은 몰라요. 공부한 사람은 알아요. 공부가 깊으면 깊어질수록 온갖 마장이 들어와요. 인간의 힘으로는 이것을 이길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름만 들려 드립니다. 용신 ․ 천마 ․ 이매망량 ․ 원결영가, 이런 것들이 빙의되면 절대로 앞으로 못 나가고 미쳐요. 인생 끝나는 거예요.
그 다음에, 지금까지의 불교는 내마(內魔)만 알았어요. 번뇌마 ․ 사마 ․ 오음마, 이런 것만 알았지요. 그런데 외마(外魔)가 있더라 그거요. 앞에서 말씀한 용신, 천마, 원결영가... 많은 마(魔)들이 있어요. 이것들에 한번 빙의되어 버리면 공부는 끝나는 거예요. 앞으로 나갈 수가 없어요. 그 원인이 있고.
둘째, 사성제에서 집성제를 보면 윤회의 원인을 무엇으로 봅니까? 집착, 갈애. 비슷한 말로 하면 탐욕과 아집(我執), 혹은 탐욕과 미망으로 보는 거예요. 모두 번뇌지요. 그 원인을 말하면 12연기의 맨 처음 무명. 그것을 없애야 되는 거예요. 그것을 없애면 윤회에서 벗어나는 거예요. 그러나 그것을 없애는 작업이 너무너무도 어려워요. 무서운 수행을 해서 탐욕과 아집을 극복해야 되는데 인간은 그럴 수가 없어요. 그러기에는 육신을 가진 인간의 힘이 너무 미약해요. 그래서 절대적으로 타력이 필요하더라 그거라. 부처님의 가피가 있어야 되겠더라 그거지
부처님을 뵙고 나니까, 부처님을 뵙고 나니까 부처님을 찾지 않은 사람이 그렇게 불쌍하더라 그거예요. 2600년 동안 부처님을 찾지 않았더라 그거라. 진정한 염불을 안 했더라 그거라. 그래가지고 거의 절대다수가 지옥을 가더라 그거예요
그런데 부처님은 얼마만큼 능력이 있느냐? 오직 부처님만이 업장을 씻어주고 업장을 소멸해주는 능력이 있어요. 여러분이 짓는 죄를 씻어준다니까요. 소멸해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다니까요. 지옥에 빠진 사람을 건져내줄 수 있는 힘이 있다니까요. 오직 부처님만입니다.
그런데 선불교(禪佛敎)에서는 부처님을 찾지 않아요. 마음이 부처라고 해요. 부처님 없다고 해요. 답답하지요? 마음이 부처라고 그래. 마음은 비인격입니다. 인격이 아닙니다. 마음이 어떻게 눈 코 귀가 달렸답디까? 여러분? 아, 그것을 알면서도 당해. 이것을 몰라. 전혀 몰라. 1300년 동안 선불교한테 어떻게 세뇌 당했던지 최고인 줄 안다고. 선불교가 최고라고 안다고.
마음이 부처라고 안다고.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은 부처 아니어, 내 마음은. 붓다가 될려면 내가 겁을 두고 무수겁을 두고 닦고 닦고 보살행을 보살행을 해서 내 마음의 업장을 정말로 씻고-앞에서 탐진의 그 뿌리를 완전히 뽑아버리고 습과 악의 탁한 기를 완전히 뽑아버리고 나쁜 악연을 완전히 단절해버리고,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지은 은혜 갚지 못한 은혜 ․ 빚을 다 갚아버리고 해야 붓다가 되는 거예요.
마음을 봤다고 해서 붓다가 아닌 거예요. 마음보는 것을 견성(見性)이라고 해요. 견성은 이제 근본을 봤다는 거예요. 봐 가지고는 안 되어요. 그래가지고는 곧 그 경계가 없어져버려요. 그 영상이 한두 달은 가지요. 그것을 가지고 공부가 다 되었다고? 나는 이제 시작이라고 했어요.《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내면서 처음 ‘견성은 공부의 시작이다. 이제부터 무아행을 해라. 두타행을 해라’라고 했습니다.
무아(無我)라는 말은 부처님께서 왜 하셨느냐?
실천 수행하는 지표예요. 지침이어요. 아집(我執)으로 말미암아 죄를 짓기 때문에 나(我)라는 것이 없다고 생각해라 그거예요. 나(我)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거예요. 실제의 주인공은 있지. 그것을 싹 감추고 방편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거예요. 아집을 없애려고 하니까. 아집을 털어버려야 되는데 내가 있다고 털어버릴 수가 있나? 그러니까 ‘무아(無我)!’ 하신 거예요. 무아(無我). 이 뜻을 알고, 어떻게 공부해야 되느냐?
청정계율을 지키면서 ‘나 없는 공부’를 해가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착이 떨어져가지고 아라한으로 올라가요. 무루대아라한으로 올라가요. 여기서부터는 너무너무도 어려운 일이 있어요. 너무너무 어려운 일이 있어. 앞에서 몇 가지 들었는데 더 있어요.
‣여자가 극락 가려면 남자가 되어야 돼. 그것 못해요. 수행 가지고는 못해요. 고추 못 달아요 여러분. 영체 4개가 남자 못 되요.
‣정토에 자기 꼬마가 있어야 되요. 정토에 자기 꼬마보살을 만들어 놔야 되요. 거기는 여기 사바 세상하고 환경이 다릅니다. 조건이 달라요. 그렇기 때문에 정토에 내가 있어야 되요. 내 꼬마가. 그래서 내가 죽으면 내 영체가 그놈하고 합일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그런데 그 꼬마 정토보살을 만들 장사가 없어요. 부처님 밖에요.
‣그리고 다겁생으로 내려온 죄를 다 소멸 받아야 되요. 그 중에서 꼭사중죄는 소멸 받아야 되요. 사중죄를 누가 어떻게 소멸한답디까? 수행해가지고 안 되어요. 천만생을 수행해도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지은 사중죄는 소멸 못해요. 그렇기 때문에 위대한 부처님한테 우리가 귀의해가지고 위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부처님을 부르면서 참회하면서 발원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부처님 가신 이후 지금까지 숙제가 2개 있었어요. 불교계에 큰 숙제가 2개 있었어요.
‣거룩하신 우리 부처님이 반열반 하셨는데 어디로 가셨나? 이것에 대한 대답이 없었어요. 거룩하신 부처님이 반열반, 돌아가셨는데 어디로 가셨나? 힌두교에서는 ‘아! 하늘 아니면 하늘을 벗어나서 해탈 열반을 이루었겠지’ 하고 대답하겠지요? 그런데 우리 부처님은 너무너무도 위대해요. 열반, 열반도 작은 열반이 있고 큰 열반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현지사에서는 윤회를 벗어난 니르바나의 세계, 상락아정의 니르바나의 세계를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어요. 아라한세계 ․ 무루대아라한세계 ․ 보살세계 ․ 붓다의 세계, 이렇게 자세히 나눈 데가 현지사예요. 역사 이후 처음이어요. 어쨌든 위대한 부처님, 이 위대한 부처님한테 완전히 귀의해야 돼. 지금은 말로만 귀의했어요. 입으로만 귀의했다고요. 그래서 포교사들은 부처님 이야기를 2600년 전의 화신부처님 이야기만 하고 있어요. 선(禪)에서는 마음만 이야기하고 있어요. 마음이 부처라고 해요. 그러나 그렇지 않더라고. 부처님이 계시더라고요. 부처님이 정말로 계시더라고. 앞에서 부처님 이후로 두 가지 숙제가 있다고 했지요?
‣첫째, 부처님이 어디로 가셨나?
‣둘째, 윤회의 주체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이것이에요. 이 두 문제를 아무도 확실하게 풀지 못했어요. 이 두 개의 숙제를 완전히 푼 데가 현지사예요 여러분.
나(我)의 주인공 ․ 불성을 지닌 영혼체 ․ 윤회의 주체, 이것을 완전히 해명해서 이 세상에 내놓은 곳이 현지사예요.
또, 부처님은 계시더라 그거예요. 삼매에 들어가지 못하면 부처님을 못 봐요. 삼매도 너무너무도 깊은 삼매에 들어가야 되요. 화두타파 해가지고는 삼매에 못 들어가요. 삼매에 들어간다고 하지만 아니어요. 못 들어가요. 못 들어가지요.
기껏 어느 정도 들어가느냐? 이 몸에서 빠져는 나가지요. 이 세상 돌아다니는 선정, 그건 삼매가 아니어요. 이 몸에서 빠져나가 가지고 하늘세계를 돌아다니는 것, 그건 좀 깊은 선정이라고 할 수 있지만 참 선정이 아니어요. 참 선정은 이 몸에서 완전히 빠져나가 가지고 적멸로 들어가야 되요. 깊은 선정에 들어가야 탐욕심이 떨어져나가요. 여자를 봐도 꼼짝 안 해요.
목석이 되는 거예요. 물건을 봐도, 천만원 값어치의 보물 덩어리를 봐도 욕심이 안 나는 거예요. 자기를 죽인다고 칼을 들이대어도 두렵지 않은 거예요. 중생이라면 화가 치밀어 올라올 때도 화를 낼 줄 모르는 거예요. 이게 자유인 거예요. 이게 자유인 거예요.
삼매에 들어가야 그 힘이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그 깊은 선정, 더 깊은 삼매, 더 깊은 삼매인 보살의 해인삼매, 보다 더 깊은 삼매인 대적정삼매에 들어가야 부처님을 뵈어요. 부처님을 뵈어요. 2600년만에 처음으로 부처님을 친견한 분이 우리 태사부님 광명 만덕님이어요.
자,시간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야기할 것이 많은데, 오늘 좋은 이야기를 더 해드리려고 했는데, 흑백이서라든지... 오늘 이만합니다. 시간은 앞으로 많기 때문에 오늘 이만 합니다. 이만하는데 스님이 결론을 내립니다. 정리합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이 거짓 몸뚱이, 교가에서는 사대 오온이라고 그래요. ‘사대오온(四大五蘊)’에다가 나의 주인공인 ‘불성을 지닌 윤회의 주체인 영혼체’를 플러스(+) 해줘라』
플러스(+)라는 것은 거기에다가 더해라 그거라. 이것이 완벽한 인간입니다. 우리 인간은 나고 죽고 나고 죽고 그럽니다. 영원히 윤회합니다. 이 우주도 영원히 성주괴공을 합니다. 우주와 같이 더불어서 인간은 영원히 나고 죽고 나고 죽고 합니다.
윤회를 벗어나지 않는 이상 육도 윤회를 합니다. 이게 인간이어요. 이게 인간이어요. 우리는 죄를 지으면 큰일 나요. 오계(五戒)를 범하면 전부 삼악도에 떨어져요. 그걸 알아야 되요. 큰스님 작은 스님 다 상관없어요. 종교를 초월해요. 국경도 초월하고 고금(古今)도 초월해요. 오계를 범하면 지옥이어요. 그것을 아셔야 되요. 오계를 지키면 누구나 하늘에 태어나요.
이제 결론입니다.
우리 사람들, 법을 몰라서 얼마나 많이 죄를 지었습니까? 많은 생을 통해서 과거 다겁생래로 말입니다. 그렇잖습니까? 지었지요? 지금 어제까지 지었지요? 오계, 파(破)했지요? 지금이라도 부처님 회상에 귀의해라 그거요. 부처님 회상으로 귀의해라. 아직도 늦지 않았다. 아직도 늦지 않았어. 부처님의 그 큰 가피로 업장소멸 받아서 삼악도는 면할 것이다. 그러면 하늘 갈 것이다. 하늘 간 사람이 백에 한두 사람이어요. 그러나 정법문중을 만나라 그거라. 정법문중을 만나라.
그래서 염불을 해라. 착하게 살아라. 그러면 하늘 간다. 공부시키는 대로 더 잘하면 공덕을 짓고 하면 성중하늘도 간다. 윤회도 벗어난다. 극락까지 간다. 극락을 가면 이제 영원히 불퇴전이다. 거기는 하늘에서 하늘이다. 영원히 불퇴전이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이렇게 행복해서 되느냐. 그것의 수 백천만 배 되는 행복을 누리는 곳이 극락이다 그거예요. 보살인가를 받으면 극락 가는데 우리 현지사 정법문중으로 귀의하면 된다. 이 말씀을 드립니다.
출처/ 현지사 지장재일(2012.11.1.) 자재만현 큰스님 대구 특별 법문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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