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에서 삼매까지/부처님의 세계

부처님은 계십니다.

불제자 2010. 12. 16. 13:43

 

 

 

 

부처님은 계십니다.

부처님은 무아속 절대계에 여여히 계십니다.

부처님은 유․무를 초월한 무아속 절대계에 빛의 인격체로 여여히 계십니다.

 

 

 

오늘 위대하시고, 희유하시고, 거룩하신 우리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응화신으로 이 사바에 사람 몸 받아 오신 날을 맞이해서 전국의 영산불교 현지사 2만 신도 여러분과 이 나라 1,200만 불자들, 그리고 이 지구촌에 사는 3억 불자님들 앞에 꼭 전해야 할 부처님의 말씀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우선 오늘을 진심으로 봉축합니다. 지혜와 자비, 복덕을 두루 갖추신 우리 교주 불세존께 한없는 공경과 고마움, 자재 만현의 일편단심을 10만개의 붉은 초롱 등에 담아 오체투지로 오늘을 봉축합니다.


지금까지의 불교, 즉 남방불교, 북방불교, 티베트불교, 한국불교 등은 거룩하신 우리 부처님의 실존(계심)을 모릅니다. 따라서 우리 부처님의 크신 위신력을 또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단히 불행한 일입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무아설(無我說)의 진의(眞意)를 왜곡함으로서 인간의 실체인 '영혼체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또 본체계의 깊은 적멸의 세계를 모르고 있습니다. 자재 만현은 실로 2000년간 왜곡된 무아설(無我說)과 무아윤회(無我輪廻)의 질곡(桎梏)과 어둠에서 부처님께서 친히 부촉하신 대로 지금의 왜소화된 불교를 인연 있는 중생을 위해 이 목숨 다하는 그날까지 '영혼체 윤회설(영혼체 윤회론)'을 새로운 교설로 삼고, 부처님의 실존과 위대한 실상을 세상에 드러낼 것입니다. 사랑하는 불자 여러분! 영산불교 현지사 자재 만현입니다. 오늘 뜻 깊은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해서 자재 만현은 또 한 가지 세상에 다시 선포할 명제가 있습니다.

 


오늘 여러 많은 불자들에게 이점을 힘주어서 선포합니다. 마음이 부처라고 합니다. 아닙니다.《법화경》〈비유품〉에 “공(空)을 깨치고 공성을 깨친 후 32상을 갖춘 색신을 절대계에 두어야 붓다이다”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마음이 부처라고 하는 데서 백 천만리 더 들어가야 됩니다. 그러면 무아속 절대계의 부처님을 뵙습니다. 여러분에게 스님이 지난 5년 동안 많이도 설법을 했습니다.

 

여러분의 집에서(공부방에서) 스님처럼 이렇게 앉아서 합장을 하고, 눈높이에 마음의 점을 찍고, 석가모니불을 봉창(칭명)하라고 했습니다. 그러기 전에《금강경》1독을 하고, 비로자나총귀진언을 1독하고, 석가모니불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공부를 해가면(달이가고 해가가면)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업장이 씻겨지고, 그리해서 여러분은 좀 더 깊은 경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삼귀 오계 십선을 지키면서 과거생에 또 지난날 자기의 잘못을 참회하면서 열심히 열심히 공부를 해가는 불자들은 급기야는 두 귀가 철커덩하고 막히는 경계를 맞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깊은 경계올시다. 여기서도 공부를 더 정진해 들어가면 시공을 초월한 적정의 상태로 퐁 빠지게 됩니다. 여기가 무루대아라한과의 자리입니다. 여기까지 들어가는 데는 수많은 마(魔)의 장난이 따릅니다. 마장(魔障)이 따릅니다.

 

그것을 극복하고 우리 인간은 여기까지는 갈 수 있습니다. 이제 더욱 정진을 하고, 선근공덕을 쌓고 정진을 해 들어가면(무루대아라한과에서 백천만리입니다), 보살의 경계가 나옵니다. 보살의 경계는 부처님이나 보살과 같은 위대한 성자의 가피 속에서 가능합니다.

 

불보살님의 위신력(가피)없이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방금도 말씀드렸듯이 인간의 능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이길 수 없는) 천마(天魔), 색심(色心), 색마(色魔), 용신 등 기타 많은 마(魔)들의 장난에 도저히 그 이상 뚫고 들어갈 수 없답니다. 그리해서 부처님의 가피가 필요합니다.

 

이제 정토의 빛을 보고, 문수 ․ 보현 ․ 관음 ․ 세지와 같은 큰 불보살님의 빛을 보고, 부처님께서 몇 가지 작업을 해주심에 의해서 우리는 극락에 왕생할 수 있는 보살과를 증오(證悟)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백 천만리 더 들어가야 붓다의 경계가 나옵니다. 여기서부터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마장(魔障)을 맞이하게 됩니다. 부처님의 가피로 해서 뚫고 들어가면 부처님의 몸을 이루고 있는 무량억종광을 봅니다. 그 무량억종광에 대해서는 스님이《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Ⅱ》권에 자세히 써놨습니다.

 

그 누구도 모르는 불가사의한 빛입니다.《법화경》,《화엄경》,《열반경》,《반야경》에서 나오는 그 빛입니다. 부처님의 청정하신 빛(천 만억 색깔의 광명, 백 천만 나유타 색깔의 빛)을 봄으로 해서 이제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는 날이 가깝습니다. 부처님 이후로 그 많은 선지식(큰스님)들이 이 세상에 왔지만, 부처님께서는 부처님의 몸을 이루고 있는 무량억종광을 본 사람이 없다고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저 절대계에 계시지만, 그 누구도 친견하거나 법문을 들은 선지식이 없었습니다. 오직 '사리불 존자'와 '수보리 존자'가 보셨고, 그리고 2600년 만에 우리 광명 만덕님께서 이 무량억종광을 분명히 보셨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의 일입니다.

 

그리해서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었고, 수많은 부처님들의 법문을 들었고, 수많은 부처님들과 대화를 하셨고, 지금도 그렇게 하시고 계십니다. 여기는 삼매로 보면 상품보살이 드는 해인삼매를 뛰어 넘어서 붓다가 드는 대적정삼매가 있습니다. 해인삼매,《화엄경》을 쓸 수 있는 경지입니다. 해인삼매에서 붓다의 삼매인 대적정삼매를 논하라고 하면, 바위에다가 계란던지기 식의 정도입니다. 해인삼매와 대적정삼매는 비교 자체가 안 됩니다.


여러분, 내면세계로 내면세계로 들어갈수록 우리의 기쁨은 더하답니다. 선정삼매에 들어간 그 기쁨은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기쁨이랍니다. 보살이 드는 삼매정도에 들어간 사람이 나와서 그럽니다. 너무너무도 환희스러워서 그 기쁨을 말로 할 수 없으니까 이렇게 묻습니다. ‘사람들이 세상을 살면서 정말로 내가 행복하다(정말로 나는 행복하다)고 할 때의 기분과 어떠하냐’고 물어보면, 그것은 비교가 안 된다고 대답합니다. 비교가 안 됩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드는, 붓다가 드는 대적정삼매는 그것의 백천만배입니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쾌락 기쁨 환희의 백배에다가 지수 7이라고 합니다. 100의 7승(100^7). 그러므로 붓다가 드는 삼매는 여러분이 헤아릴 수가 없고, 상상할 수가 없지요. 이게 불교입니다. 이러한 대적정삼매에 드는 분이 2600년 이후로 몇 사람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시절 때, 이 종교에 관심이 있어서 깊이도 공부를 했는데 그때 내 생각은 이랬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출세했던 신라시대의 원효스님 ․ 의상스님, 고려 당시의 보조스님, 이조 당시의 서산스님, 최근의 성철스님, 그 다음 일본으로 가서《법화경》을 너무도 깊이 연구하셨고 일련종에서는 부처님과 같이 보는 일련스님(니치렌) ․ 조동종에서의 도오겐, 중국의 달마 ․ 혜능 ․ 마조 ․ 법장 ․ 현수 ․ 청량 ․ 진관, 태국의 아짠문, 요즘 프랑스에서 수행중인 베트남 출생의 틱낫한, 티베트의 파드마삼바바 ․ 밀라레빠․ 지금의 달라이 라마, 인도 쪽으로 가서 자기의 나라에는 100~200명에 달하는 세계의 그 어느 성자가 따라갈 수 없는 성자를 배출했다고 자랑합니다. 밀교 쪽에서는 84명의 구루를 들고 있습니다.

 

우리 인류문화사,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예수님 ․ 공자님 ․ 소크라테스 ․ 마호메트 ․ 노자...이런 분들 외에 우리 인류가 낳은 수많은 무명의 성자들이 왔다가 갔습니다. ‘그런 분들은 붓다가 되었겠지. 불과를 증한 훌륭한 어른들이겠지’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불과(佛果)를 이룬 후에 보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저 무아속 절대계에 자기의 32상을 갖춘 빛의 인격체인 보신 부처님(佛身)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해서 이것은 붓다가 되느냐의 여부를 가리는 절대적인 잣대입니다.


여러분! 우리 석가모니부처님은 붓다 중의 붓다올시다. 말로 할 수 없는 나유타하고도 아승지겁 전에 처음으로 불과(佛果)를 이루신 어른입니다. 우리 영산불교 현지사는 그것을 깨닫고, 불교가 왜 그 너른 땅 인도에서 쫓겨났는지를 연구했습니다. 13억 인구 중에서 힌두교가 80~85%입니다. 지금 현재 불교인구가 0.12%~0.7%정도로 올라갑니다.

 

이 원인이 어디에 있는 것인가를 면밀히 연구 검토를 해 본 결과 이 스님이 지난 BBS TV에 두세 번 나가서 힘주어 말씀했듯이(많은 부분을 잘라버렸지만) 진리인 '영혼체 윤회론'이 묻혀져 왔습니다. 이것은 진리인데 이 '영혼체 윤회론'이 묻혀져 왔습니다.

 

삼법인(三法印), 사법인(四法印)에 나오는 무아설(無我說)을 주장하면서 윤회를 주장하고, 육도에 윤회한다는 진리를 접목시키려 하다가 보니까 무아설(無我說) 때문에 안 되어요. 이것이 접목이 안 되고 2600년 동안 내려왔습니다. 접목이 될 수가 없지요.

 

윤회의 주체가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윤회를 합니까? 이번에 스님이 TV에 나가서, ‘윤회의 주체는 우리의 영혼체이다. 유아윤회(有我輪廻)라고 봤다. 유아윤회(有我輪廻)이다. 바라문교(힌두교)에서 주장하는 것은 옳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교 중에 가장 우수하다고 하는 종교인 힌두교, 그 힌두교보다도 훨씬 차원이 높은 그 심오한 데까지 뚫었습니다.

 

윤회의 주체는 영혼체이고, 그 영혼체는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탐진 삼독에 의해서 많이도 오염되어서, 그 오염된 비본질적인 것들이 영혼체에 엉켜가지고 숯검정처럼 되어버렸어. 그래서 비아(非我)라고 한 거예요. 나(我)가 아니다. 그 오염된 비본질적인 것(업장)을 씻고 씻으면 완전하고 순수한 영혼체가 드러나게 됩니다.

 

이것은 진짜 나(我)입니다. 이렇게 되면 윤회를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체가 업장(비본질적인 것들)에 의해서 숯검정이 되고, 숯덩어리가 되고, 진흙덩어리가 된 것은(이 非我는) 육도를 윤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전부 수행에 의해서, 선근공덕에 의해서, 단 부처님의 가피에 의해서 그 영혼체에 얽히고설킨 그런 찌꺼기들을 모두 다 씻어버리면 이제 자기의 순수 자아(自我)가 나옵니다. 여러분, 이제 해탈입니다. 윤회에서 해탈하는 거예요.

 

이러한 진리를 지금까지 2600년이 흐르는 동안 그 어떤 사람도 말을 못했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큰 선지식도,  그 어떤 성자도 말한 적이 없습니다. 일부는 보았습니다. 일부는 알았습니다.


그 다음, 오늘 여러분에게 힘주어서 또 선포한 것은 즉,


부처님은 계신다.

부처님은 절대계에 계신다.

부처님은 무아속 절대계에 여여히 계신다.


하는 이 폭탄선언을 여러분들한테 오늘 말씀드립니다. 내가 지난 5년 전에《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 썼습니다.《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Ⅱ》권에 상당히 자세하게 썼습니다. 이 부처님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는 불교를 알 수 없습니다. 대승불교를 논할 자격이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오늘의 불교는 부처님이 없다고까지 합니다. 부처님에 대해서 모릅니다.《법화경》,《화엄경》, 다른 대승경전에서 상당한 설명을 해놨지만 그것을 이해 못합니다.

 

문학적인 픽션(fiction,虛構)이라고 합니다. 지옥도 있고, 극락도 있고, 불․보살님들도 계시고, 무주고혼들도 있고, 하늘도 있고, 아귀세계도 있는데, 지금의 불교는 이것을 모릅니다. 이래가지고는 중생제도를 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존재를 부인(否認)하고, 육도를 부인하고, 마음속에서(인간 내부에서) 찾는 그런 불교는 21세기 인류를 향도할 수 없습니다.

 

불교경전을 볼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이제 자재 만현의 법문을 듣고, 이번에 출간한〈영혼체 윤회론〉의 책자를 구입해 보시고, 우리 영산불교에서 내놓은 그 동안의 책자가 10권~20권이 됩니다. 이것을 구입해 보시면 모든 경전을 볼 수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던 오리무중한 불교, 어렵기만 한 그 불교가 이제 선명하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다음 법문을 들어가기 전에 오늘 여러분을 위해서 그 거룩하신 우리 부처님의 칭명염불을 30초간 하겠습니다. 모두 합장하시고 따라해 주십시오.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고아일심귀명정례 


부처님께서는 아주 오래 전에 불과(佛果)를 증하시고 보니까 중생들이 너무너무도 불쌍합니다. 육도를 윤회하는 그 고통의 쇠사슬에서 도저히 나오지를 못합니다.

 

그리해서 우리 부처님이나 불과를 이룬 대성자들은 화두가 ‘어떻게 하면 저 불쌍한 윤회중생을 건질까’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어서 절반은 중음계에 떨어집니다. 절반정도는 명부를 들어갑니다. 이것도 진실(사실)입니다. 명부에 들어간 사람들의 절대다수가 지옥을 가게 됩니다.

 

이것을 본 부처님께서는 그 최고의 진락을 누리시는 무아속 절대계에 그대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끔 이 사바세계에 몸 받아 오십니다. 몸 받아 오실 때에는 많은 고통이 따릅니다. 이것을 각오합니다. 우리 부처님을 두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부처님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대한 어른이다’라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2600년 전 인도 땅, 지금의 네팔 국 땅입니다. 카빌라국의 조그마한 나라에 왕자로 오셨습니다. 여러분들도 다 알고 계시죠? 외동아들인 왕자로 오셨습니다. 그러면 아버지 정반왕의 왕권을 자연히 승계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부처님께서 사바에 오신 서원이 있습니다.

 

“많은 중생을 건진다” 하는 서원이 있습니다. 이 서원이 너무도 절실합니다. 사람 몸을 받아온 후에도 그 생각이 항상 잠재의식 속에서 가끔 불쑥불쑥 일어납니다. “이 많은 사람들을 구원(구제)하려면 내가 일단 붓다가 되어야 겠다”해서 스물아홉 살 때 출가를 합니다.

 

여러분, 아시죠? 6년 동안을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고생, 고행, 각고의 수행을 해왔습니다. 2600년 전의 히말라야 산을 상상해 보십시오. 지금은 모두 개발이 되고 교통이 발달했지만, 그 당시는 자연 그대로였을 겁니다. 2600년 전입니다. 히말라야 산은 정글(밀림)입니다. 밀림, 그 속으로 들어가면 뭐가 많지요?

 

독사, 코브라, 전갈, 맹수... 그 밀림 속으로 들어가서 6년을 고행합니다. 당신은 왕의 자리를 자연히 승계 받을 수 있었지만, 그것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사문(沙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사문(沙門)의 길은 4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이것을 사의법(四依法)이라고 합니다. 사의법(四依法), 4가지 원칙에 의해서 살아가는 거예요.

 

①도를 이룰 때까지는 걸식(탁발)을 한다는 것입니다.

 

②도를 이룰 때가지는 분소의(糞掃衣)를 입는다. 분소의(糞掃衣), 옛날 농촌에 가면 똥 푸는 사람 있지요. 그 사람들이 깨끗한 옷을 입고 똥을 풉니까? 그런 사람들이 걸친 갈기갈기 찢어진 옷, 그 천도 거의 낡아 가지고 살이 비칠 정도이며, 그런 천을 입고 평생을 살아야 됩니다.

 

③수하좌(樹下座). 지붕이 있는 데에서는 잠을 잘 수 없습니다. 그것이 규칙입니다. 엄한 룰(규칙)이 되어 있습니다. 지붕이 없는 곳, 그러니까 숲속, 나무 밑, 강가, 광야, 그리고 공동묘지, 이곳을 내 집으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수행을 해야 됩니다.

 

④그 다음에 진기약(陳棄藥). 사람의 몸뚱이는 가끔 아프게 되어있습니다. 지금은 약국에 가면 온갖 약이 있지요. 그 당시는 없었어요. 그리해서 진기약(陳棄藥), 부란약(腐爛藥), 부뇨약(腐尿藥)이라고 합니다. 이건 뭐냐? 소똥을 가지고 만든 약이에요. 소똥을 버무려가지고 환을 지은 거예요. 혹은 사람 똥이나 오줌을 버무려가지고 환약을 만든 거예요. 몸이 아플 때에는 이것을 먹어야 돼. 이게 4가지 수행의 원칙 올  시다. 수행자는 이 고난의 길을 가야 됩니다.


우리 부처님께서는 “좋다. 나는 사문(沙門)의 길을 택한다. 나는 도를 이루어야 되겠다. 그리고서 길을 모르는 이 불쌍한 중생들, 우주와 인생의 진리를 모르는 이 불쌍한 중생들에게 진리를, 살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줘야 되겠다.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줘야 되겠다. 윤회의 고통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줘야 되겠다.”

 

해서 그런 어려운 수행을 6년 동안 하셨답니다. 그리해서 서른다섯 살이 되던 해에 크게 불과(佛果)를 증합니다. 증한 후 이제는 전법(傳法)으로 나섭니다. 중생을 위해서 법을 전하는 전도(전법)의 길을 떠납니다. 45년 동안 마지막 사라쌍수 하에서 반열반에 드실 때(임종하실 때)까지 중생을 제도합니다. 그날 밤을 넘기면 이제 반열반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103살이 된 '수밧다'라고 하는 수행자가 부처님을 뵙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부처님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거예요. 그런데 아난존자가 ‘지금은 부처님을 면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뵙고만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제 소원입니다’하고 청을 간절히 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그 소리를 들으시고, “아난아! 그 수밧다를 나에게 안내하고, 그의 청을 들어 주도록 해라”고 하십니다.

 

수밧다가 부처님 앞에 가서 삼배를 하고, 자기는 ‘도를 얻기가 소원인데 100살이 될 때까지 수행이 안 되어서 이렇게 도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는 말을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수밧다에게 마지막 설법을 하셨습니다. 그 수밧다는 부처님의 크신 위신력으로 아라한과를 증했습니다. 그때는 아라한과는 아니었습니다. 아라한과는 아니었는데 어쨌든 견성을 했습니다.

 

그래서 몇 시간 더 정진해서 곧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부처님보다도 몇 시간 전에 그냥 이 몸을 벗어버리고 갔습니다. 우리 부처님께서는 오직 중생을 건지는 일, 이게 화두입니다. 얼마나 자비하시고, 얼마나 대자대비하십니까?


이제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간략히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1,000명 정도의 제자들을 데리고, 우리 부처님께서 6년 동안 고행하셨던 산(가야산이라고 하는 산입니다), 그 가야산 산정에 오르십니다. 그들에게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시가지를 보시면서 말씀을 하십니다. 유명한 산상의 설법을 하십니다. 500년 후의 인물 '예수'가 산상설교를 했다고 하지요.

 

카시아파(가섭,迦葉) 삼형제(우루빈라가섭(優樓頻螺迦葉), 나제가섭(那提迦葉), 가야가섭(伽耶迦葉)의 삼 형제. 본래 외도(外道)의 무리였으나, 성도(成道)한 석가모니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그 제자가 되었다)와 그들을 추종하는 외도 1,000여명의 대중을 이끌고 가야산 산정에서 “모든 것은 불타고 있다”하는 법문을 하십니다. 여러분이 조금 알아듣기 쉽게 부연설명을 하겠습니다. “비구들아! 사람들의 눈이 불타고 있고, 또 눈의 대상도 불타고 있느니라...”

 

이렇게 주~욱 나갑니다. 번뇌의 불꽃이 모든 것을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과 세계의 모습을 비유로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이렇게 보는 자는 능히 모든 것에 염오(厭惡: 싫어하다)하는 마음이 생기고 즉, 눈에 있어서 눈을 염오(厭惡)하고, 귀에 있어서 귀를 염오(厭惡)하고. 자, 마음에 있어서 마음을 염오(厭惡)하고, 일체 염오(厭惡)하는 마음이 있으면 곧 탐내는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단다. 탐내는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곧 해탈을 얻을 수 있단다 하는 산상설법을 하십니다. 그리해서 많은 대중들이 이 자리에서 아라한과를 얻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모든 것은 불타고 있다”고 하는 가야산 산정에서 설법하는 골격입니다.

 

우리 불교는 탐진 삼독을 대단히 주목합니다. 욕심(지나친 욕심),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 탐진 삼독을 비롯해서 모든 번뇌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합니다. 모든 번뇌의 뿌리인 탐․진․치, 이놈의 뿌리를 뽑아야 된다는 것이 우리 불교의 종지(宗旨)올시다. 다른 종교는 안 그럽니다. 우리 종교는 탐․진․치를 거세(去勢)하는데(뿌리 뽑는데) 수행의 목표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해서 사성제와 팔정도를 통하지 않는 저 외도의 인물들, 교주 내지 그 지도자급들, 그 모두는 아라한 성과를 정통 아라한 성과가 아니라고 합니다(그 모두는 아라한 성과에 해당 된다고 하지만, 면밀히 보면 정통 아라한 성과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인격과 신통에 있어서 우리 불교의 보살, 상품보살까지도 인정해 줍니다만, 어쨌든 그분들은 마음속의 탐․진․치를 완전히 뿌리 뽑은 그런 사람들은 아니라고 합니다. 이것을 알아주십시오.

 

 

출처/2010.5.21.금(음4.8) 큰스님 춘천 법문중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