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사의 불서/.....법문집 3권

2008.10.21.화(음9.23) 큰스님 부산 법문

불제자 2010. 8. 9. 22:46

 

 

 

 

 

 

 

            대적광전 개원을 앞두고 Ⅳ

 

현지궁 불교사상 Ⅳ (부처님의 위대함)


 

 

  오늘 우리 법회에 처음 나와 주신 분들 손을 들어 봐 주세요.

  춘천의 우리 본사 대적광전개원이 이제 22일 남았습니다.

  스님이 항상 이야기 하지만 '대적광전개원 행사' , 앞으로 있을 '다보탑개원 행사' 는 대단히 중요하고 불교사상, 인류역사상 처음 있는 행사입니다. 이 법좌에 올라와서 스님이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 역사적으로 그렇고 그런 사건들 때문에 우리 착한 백성의 심성이 많이 황폐화 되어서 진실을 말해도 믿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 이 동영상을 보시는 전국의 많은 불자들, 각성하고 이성적으로 법문을 검토해 주시고 믿어 주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네 번째로 우뤼 부처님은 얼마만큼 위대한 어른인가를 말씀 해드립니다. 그 거룩하고 희유하고 위대하신 우리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2600년 정도 되니까 그 위대함이 묻혀버렸고, 부처님이 열반에 든 것을 공(空)이나 적멸(寂滅)로 돌아가 버린 것으로 알고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굉장히 희석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다음시간에 내가 <<법화경>>을 중심으로 해서 말씀을 드리겠지만 2500년 이후 뿐만 아니라 그분이 최초로 불과를 이루신 때는 상상할 수 없는 겁 전입니다.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여래수량품> 에서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는데 그와 같이 오래 전에 우리 부처님께서는 불과를 이루셨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무아속 절대세계에 계십니다. 이것을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불교가 오늘날처럼 왜소화(矮小化)되어 버렸습니다. 힌두교, 자이나교, 중국의 도교, 이슬람 수비즘 등 그러한 종교도 깨달음 내지 신(神)과의 합일을 목표로 해서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불교가 사실은 우주적인 종교인데도 그 정도로 떨어져 버렸습니다. 불교는 우주적인 종교입니다. 부처님은 우주아(宇宙我)입니다.

우주 자체입니다. 우주의 본체와 하나가 되어버린 것이 법신불이어요. 그 법신불이 형상화한 것(구체화한 것)이 보신불이어요. 그 부처님은 곧 우주이어요. 우주적인 능력을 행사해요. 지금 이것을 몰라요. 그래서 앞으로 우리 현지궁 현지사의 소의경전은 <<아함경>> <<지장경>> <<반야경>> 중에서 <<금강경>> 그리고 <<법화경>> <<화엄경>> 그렇습니다.

<<법화경>> <<화엄경>> <<반야경>> 이런 대승경전에 부처님의 거룩하고 불가사의한 면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것이 사실임에도 이것을 하나의 픽션(허구)으로 봅니다. 비유와 방편으로 봐버립니다. 그래서 너무도 안타깝고 안타깝습니다. 비유가 아닙니다. 방편으로 그렇게 설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법화경>> <서품> 격에 해당하는 <세주묘음품> 이 있어요. 거기를 보면 참 잘 그려놓았습니다. 거의 사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한테 그것을 사실이라고 강조하면서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아하! 부처님은 그만큼 위대한 어른이시구나, 불교는 그만큼 위대한 종교이구나' 하는 것을 알으시라고. 그렇게 함으로서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더욱더 심화되고, 간절하고, 우리 현지사에서 주장하는 석가모니부처님 칭명염불을 더 잘하게 됩니다.

 

  이제 말씀드립니다. 부처님께서 설법하실 때에는 깊은 삼매에 들어갑니다. 여러분 그걸 아십시오. 깊은 삼매에 들어갑니다. <<법화경>> 을 8년간 설하셨다고 합니다. 8년간 설하신 주요내용을 8품으로 묶었고, 그다음 우리가 보는 8권의 <<법화경>> 으로 편집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법화경>> 을 설하실 때에는 영축산에서 '무량의처삼매' 라고 하는 깊은 삼매에 드십니다. 그렇게 되니까 꽃비가 내립니다. 꽃비가 내리는 거예요. 극락세계의 바로 아래세게에서 관장합니다. 큰법을 설하실 때에는 꽃비가 한없이 내려서 1미터까지 쌓여요. 여러분들의 눈에는 안 보이지만 하늘사람들은(천안으로는) 봐요.

꽃비가 내리고, 그다음에 삼천대천세계는 여섯 가지로 진동을 합니다. 육종진동을 하는 거요. 이것도 맞습니다. 부처님께서 깊은 삼매에 들게 되면 '무엇인가 큰 법을 설하신다' 이렇게 보고 하늘에서는 꽃비를 내리고, 하늘과 땅은 육종으로 진동을 합니다. 이 지구하고 하늘만이 아니라 삼천대천세계가 육종으로 진동을 하는 거예요. 그 다음에 부처님께서 그 삼매에서 깨어가지고 빛을 방광하는 거예요. 어떻게 방광을 하느냐?

여기 양미간(兩眉間), 여기 양미간을 백호상관이라고 하는데 백호상이 아닙니다. 그 설명은 접어두고, 양미간에서 · 혹은 입에서 · 몸 전체에서, <<화엄경>> 에서는 다섯 여섯 군데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은 열 군데입니다. 열 군데에서 빛을 방사합니다.

그 빛은 내가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에 처음 부처님의 깨끗하고 청정한 빛을 소개해야 되겠는데, 이것은 역사 이래 처음 소개하는 것이기 때문에 경전의 개념으로 무량광이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억종광 혹은 백종오색광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화엄경>> 에서는 달리 해석을 합니다. 그것을 풀어서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꺠끗하고 청정한 부처님 무량광명 빛, 무량억 나유타 아승기광명, 한량없는 억 나유타 아승기광명, 백천억 묘한 빛광명, 백천억 나유타 아승기의 청정한 광명' 이런 말로 부처님의 광명을 풀어서 썼습니다. 절대계에 계시는 원만보신부처님이 이런 빛으로 이루어졌다고요.

 

  여러분들은 몸뚱이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 줄 압니까? 지 · 수 · 화 · 풍(地水火風)이라는 사대로 이루어져 있어요. 이 육체인간은 요. 그런데 불과를 증한 붓다들은 '무아속 절대계' 에 계시는데 지 · 수 · 화 · 풍으로 안 되어 있어. 지 · 수 · 화 · 풍의 입자 보다 더 작은 입자, 그보다도 더 작은 입자인 초미립자, 극미립자, 그것으로도 이루어져 있지 않아. 공(空)을 넘어서 빛으로 이루어져 있다고요.

빛도 여러분의 마음광명을 자성광명이라고 그래요. 진리의 광명. 그것도 아니어. 그것은 견성할 때 드러나는 것인데 그 빛을 초월한 빛이어. 극락세계를 이루고 있는 정토의 빛도 아니어. 그것도 훨씬 초월해가. 극락세계를 이루고 있는 정토의 광명도 무량광은 아니어. 붓다는 몸뚱이가 무량광으로 이루어져 있어. 말하자면 무량한(헤아릴 수 없는), 무량(헤아릴 수 없는 종류)의 빛깔 광명이란 말이어요.

  억종광, 억이 숫자가 많잖아요. 억이나 되는 빛깔의 광명이란 말이어요. 억의 종류의 빛깔이다 그 말이어요. 그 다음 백종오색광, 오색광이 백가지나 된다 그거요. 무량광이 그 다발이어요. 그 빛, 경에는 안 쓰여 있지만 우리 현지사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에는 이 무량광에 대한 이야기를 좀 했습니다. 뭐냐?

이것은 '깨끗하고 청정하고 아름답고 영롱하고 예쁜 빛, 혹은 안팎이 없는 빛' 이렇게 말했어. 안팎이 없어. 여러분, 개울물이 깨끗하고 청정하면 속이 들여다보이잖아요. 안팎이 없잖아요. 그 빛이 그렇습니다. 이것은 희유하나 빛이어요. 안팎이 없고, 그러면서 깨끗하고, 청정하고, 맑고, 영롱하고, 예쁜 빛이어. 그런 빛으로 부처님의 몸뚱이가 이루어졌다고요.

  그래서 <<화엄경>> <현수보살품> 을 보면 그 빛이 이러이러하다고 40가지로 해석을 해놓았어요. 가령 청정이라는 광명이다. 그 빛을 보면 환희스러워. 물론 빛을 보는 수준은 정말로 등각보살 정도 올라가야 봅니다. 이 중생의 눈으로는 안 보입니다. 여기에(우리 중생 앞에) 와 있어도 그 빛이 안 보여.

그 빛은 밝기가 한이 없어. 이것을 내가 천문학적이라고 말을 했는데 그 빛을 여러분이 보면 가루가 되어버려요. 그런 강하고 밝은 빛이어요. 여기 와있어도 여러분들은 못 봐. 부처님이 지금 그 빛덩어리로 와 계서도 못 봐. 그러니까 희유한 빛이지. 그런 밝은 빛인데 여러분들 눈에는 왜 안띄느냐 그 말이어요. 희유한 빛이지요. 이것은 심지(深智, 깊은 지혜)의 광명이다.

보면 깊은 지혜의 빛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그런 불가사의한 빛이다. 이것은 청량한 빛이다, 적정의 빛이다, 단음의 빛이다... 이렇게 쭈욱 40가지로 설명을 합니다. 이 빛이 얼마나 불가사의한 빛인 줄 압니까? 그래서 부처님께서 깊은 삼매에 들어가니까 하늘에서는 꽃비를 내리고, 삼천대천세계는 육종으로 진동을 합니다. 육종으로 진동한다는 말은 땅 · 하늘이 여섯 가지로 흔들린단 말이어요.

그런 후에 그 정(靜)에서(삼매에서) 쑤욱 나와가지고 양미간에서 빛을 내던지, 눈에서 빛을 내던지, 입으로 빛을 내던지, 양손으로 빛을 내던지, 온 몸의 털구멍으로 빛을 내던지, 양 무릎으로 빛이 나가던지, 발바닥으로 빛이 나가던지, 겨드랑이에서 나가던지 이렇게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서(용처에 따라서) 나갑니다. 이 빛이 쭈욱 나가는데 그 빛을 보면 그렇다 그거요.

그 빛이 <<법화경>> 으르 보면 동방으로 만팔천국토를 지나서까지 그 안의 전 세계를 다 비춘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한군데 탁 머물렀는데 그 한군데 딱 머무른 그 모습이 구름같이 보인다 해서, 그 구름도 희한(稀罕)하게 보통의 잡스러운 구름이 아니고, 그 지혜의 빛이 뭉쳐진 구름이기 때문에 경전에서는 여러 가지로 표현합니다.

'원만한 광명의 구름, 자비의 구름, 지혜의 구름, 반야의 구름, 삼매의 구름, 길상의 구름...' 10여 가지로 표현합니다. 그 구름이 어째보면 지혜, 어째보면 자비가 뚝뚝 흘러. 그 색깔 구름에서 어째보면 삼매에 쑤욱 들어가 버릴 정도의 구름 같다 그 말이오.

  그 다음에 이제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신단 말이에요. 법을 설하시는데 그 목소리는 어째보면 시바라밀음이고, 시바라밀이라는 것은 계율, 계율을 몇 겁을 통해서 청정히 지켰기 때문에 부처님 말씀을 어째들으면 그 목소리에서 계율정신이 뚝뚝 흐르고, 어떨 때에는 보시의 단바라밀음, 인욕바라밀, 정진바라밀, 선바라밀, 반야바라밀, 자비반야바라밀, 해탈바라밀, 사자후바라밀, 운뇌음바라밀입니다.

어째들으면 인욕을 잘한 성자의 목소리 같고(목소리에서 인욕을 느끼고), 성(적정)을 느끼고, 자비가 뚝뚝 흐르는 그런 느낌이고, 완전히 해탈해 버리는 성자의 음성이고, 사자후 음성이고, 운뇌음(천둥번개 칠 때의 무서운 소리)등으로 목소리가 들리는데 목소리도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실 때의 그 목소리가 이러한 목소리를 낸단 말이에요. 부처님의 목소리는 아주 청아하고 그윽하지만 들어보면 이러한 목소리더라.

 

  부처님의 눈매, 부처님의 모든 거동, 부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면 모두 때가 묻지 않았어. 때가 묻지 않았기 때문에 눈, 거동 거동이 지계의 빛이 역력하고, 반야의 빛이 역력하고, 삼매의 빛이 역력하고, 무애의 빛이 역력합니다. 이 눈빛, 여러분들 눈빛을 거울로 한번 보세요. 삼매의 빛도 나오고 지혜의 빛도 나오고 그러는가.

그게 안 되지요. 그러나 부처님의 눈빛과 거동 거동은 그렇다 그거요. 이렇게 해서 법을 설하는 거요. 그렇기 때문에 시방에(시방이라는 것은 우주 전부를 말해요), 우주에 윤회를 벗어난 해탈오계의 성자들(아라한이나 보살 같은 분들), 하늘의 왕들(제석천왕, 6하늘 5하늘 4하늘 3하늘 2하늘 1하늘의 왕)이 부처님 법문을 들으려고 모두 몰려오는 거예요.

  우리는 6하늘 5하늘 4하늘 3하늘 2하늘 1하늘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불교교리에서는 안 그러지요. 사왕천 도리천 야마천 도솔천 타화천... 이렇게 이야기 하는데 여러분들에게 알기 쉽게 이야기하려고 6하늘 5하늘 4하늘 3하늘 2하늘 1하늘 이렇게 이야기 해. 부처님의 법문을 들으려고 백 천 만의 무수히 많은 그 성자들, 무수히 많은 그 하늘 왕들, 무수히 많은 청중들이 모이는 거요.

그렇게 해서 법문을 하는데 부처님의 몸은 완전히 무량광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부처님의 법문은 삼천대천세계 전(全) 성자들이 들을 수 있도록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100리 안으로 수천만 성중 · 청법대중이 모였다고 하면 그 정도는 다 들을 수 있도록 자유자재로 법을 설하는데 이건 사실입니다.

사실인데 (지금의 불교에서는) 이것을 비유라든지 방편으로 해석을 해 버립니다. 대단히 안타까워서 말씀을 해드립니다. 이렇게 불과를 증한 분이 법문을 설해도 똑같습니다
. 불과를 이룬 붓다의 법은 그렇습니다. 붓다가 법을 설할 때에는,

  (이 사람(자재 만현)이 완벽하고 빵빵한 붓다는 다음 생에나 기약을 할 것입니다. 이제 처음 불과를 증한 사람들은 의과대학을 갓 졸업한 정도라고 했었잖아요. 그래서 지금도 저 절대계에 있는 자재통왕불은 다 합니다. 다 나가고 다 하는데 육신 속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이 육신 속에서는 그렇게 크게 못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오시는 거예요.)

  이 위에(큰스님 정수리 위에) 게셔서 방광을 해주는 거요. 방광을 하는데 여러분들은 복이 많지요. 옛날 대승경전을 설할 때에는 '중생들(청법대중)의 업장을 씻어주었다 소멸해주었다' 는 말은 없습니다. 여러분 지금은 해 줍니다. 그래서 이 붓다의 법문은 여러분들이 오셔서 청법하고 들으십시오. 법문 내용이 '말씀이 너무 격이 높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다' 라고 하는 말도 들립니다. 좋아요,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오시면 돈으로 환산 할 수 없는 업장이 벗겨져 나간다는 사실은 확실합니다. 이 업장이 씻겨나가고 벗겨나가고 해야 여러분의 운명이 바뀝니다. 업장이 안 씻어지면 안 됩니다. 스님이 중생의 업장은 태산만 하다고 이야기 했지요. 확실합니다. 억겁을 살아오는 도중에 지은 업이 그렇습니다.

태산 같아. 놔둬버리면 큰일이어. 안 씻고 가면 큰일이어. 여러분 알지요. 대부분 무주고혼이 되더라고요. 명부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거의(절대 다수)가 지옥을 가더라 그거요. 그런데 업장을 씻으면 그런 것이 벗겨 나간다고요. 그 과보가 벗겨 나간다고. 가령 지옥을 거쳐 축생으로 와서 닭으로 23생을 산다?

스물세 번을 닭으로 태어난다 그 말이어. 업장이 벗겨 나갈 때 1생이 떨어져 나가기도 하고, 10생이 떨어져 나가기도 하더라 그 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이 붓다의 법문은 삼생을 두고 복을 짓는 것보다도 더 수승하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어떤 분(달라이 라마)이 보살인데 그분 법문이 그런다 해가지고 세계 각국 사람들이 가서 듣는 모양인데 그 보살의 법문은 그렇지 않습니다.

보살은 이 몸뚱이가 무량광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보살은 청정하고 깨끗한 광명으로 이루어져 있지요. 그러나 억종광명으로는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보살이 법문할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을 아십시오. 오직 붓다만이 업장을 소멸해 준다는 것. 이건 사실 밀장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여러분한테 해주니까 스님 법문이 약간 어렵다고 하더라도 꼭 법회에 참석해서 청법하십시오. 사실은 스님이 상당히 쉽게 풀이해서 이야기를 해줘.

여러분! 스님법문이 어렵습니까? 다만 다른 절에서, 다른 학승들이 지금까지 불교사에서 이야기를 못한 이야기를 해주니까 거기에서(선불교 등) 젖어버린 그 법문으로만(그것이 법문인 줄만) 안 사람들이 우리 스님법문은 무슨 업장도 씻어준다 또 무엇을 한다고 하니까 이게 이상하다는 것이지. 사실은 경전에도 다 있는데.

경전에 부처님 법문이 이렇다 하는 것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학승들이(학자들이) 전혀 그 경계를 모르니까 그냥 지나가버린단 말이에요. 지나가버려.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보지요. 도인, 몸에서 불을 뿜지요. 그런데 그 불(빛)이 무량광 아니지요. 맑고 청정한 것이 아니어. 부처님 광명은 아니어. 탁하지. 도인이라고 하면 아라한 또는 아라한 밑의 외도, 불을 뿜거나, 이렇게 법문을 하다가 없어져 버리거나, 공중에 올라가서 설법을 하거나(그런 경우가 역사이후로 있었으니까), 축지를 하고, 둔갑을 하고, 이산도수를 하지요.

  축지(縮地), 예를 들어 몸은 부산에 있으면서 서울 광화문 앞에다가 무엇을 놔두었다고 합시다. 가져오라고 하면 순식간에 가서 가져오거든. 분명히 서울 광화문 앞에 갔다 왔단 말이에요.

그걸 축지라고 그래. 둔갑(遁甲)이라는 것은 여기서 이렇게 이야기하다가 없어져 버려. 이산도수, 이산은 저 산을 들어서 다른 데로 던져버리는 것이고, 도수는 강 또는 바다를 걸어서 건너가는 것이어. 예언을 하고, 병을 낫게하고, 이러한 도인들의 모습에 여러분들 누구나(절대다수)가 취해버립니다(빠져버립니다). '최고로구나' 한단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 아닙니다. 이것은 최고의 도인이 아니다고요. 이것을 신통이라고 그래. 이런 신통은 내가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에서도 다루었지만 바람직하지 않다.

이것은 업을 짓는 것이다. 왜 업을 짓느냐? 이 신통이 오는 이유가 있어. 신통을 부리는 이유가 있어. 어떻게 해서 신통이 일어나느냐(벌어지느냐)? 귀신, 하늘 외도, 축생귀신 이것들이 들어와서 그래.

  축생귀신이 뭐냐? 그 많은 축생 중에서 구렁이 · 여우 · 학 · 기린등 이것들이 100년 500년 1000년 동안 오래오래 살면 도중에 신통이 벌어집니다. 그 속에 사람 영체가 들어가 있거든(그것들이 사람이 들어가 있는 것들이 거든). 그런데 그것들은 전생에 많이 수행한 놈들이어. 그런 것들이 이제 신통이 벌어진다고요.

몸에서 쑤욱 빠져나와. 영체이탈(유체이탈)이라고 그래. 이런 축생들이 어느 날 갑자기 몸에서 쑤욱 빠져 나올 정도의 신통이 나올 수 있다고. 구렁이의 예를 들자면, 남방이나 아프리카 같은데 가면 굵기가 아름드리이고, 길이도 수 미터 되는 것이 있잖아요.

요놈들이 몇 백 년을 살다가 신통을 할 수 있게 된다고. 이 몸에서 쑤욱 빠져 나온 놈은 사람이여(영체여). 그 놈(그 사람)이 마음대로 둔갑을 해요. 그걸 의생신이라고 해. 여러분들은 부모님으로 해서 나왔잖아요.

그런데 그놈은 생각(뜻) 의(意)자여. 생각을 따라서 몸을 마음대로 나투어요. 그래서 의생신이라고 그래. 요것이 의생신을 부릴 줄 알아. 그래가지고 요놈이 도중에 나와서 자기 몸뚱이를 깊은 구멍에다가 감추어 놓고 나와 돌아다니면서 온갖 나쁜 짓을 한다고. 축생이니까 생각해 보세요. 생각이 맑고 고상하겠습니까?

요것이 사람 몸에 들어가 빙의한다고. 요놈이 빙의를 하는데 그것들이 그런 짓을 하는 이유가 있어. 자기의 종족(자기의 사람들)을 넓히려고 해. 자기 군단(자기 조직)을 확장하기 위한 것이어. 그래서 여자 속으로 들어가. 여자는 밑으로, 남자는 입으로 들어가.

그래서 그놈이 들어가면(용신이 빙의하면) 몸에 이상이 오고 생각에도 이상이 와. 자기하고 용신하고 인격이 둘이 되니까. 어떤 경우 빙의된 이 사람이 그 용신 때문에 신통이 벌어져. 그 큰 신통력을 가지고 있는 용신이 들어오게 되면 큰 신통을 할 수가 있게 되어 있어.

여기서 소련 · 미국을 순식간에 왔다 갔다 할 수 있고, 둔갑도 할 수 있고, 온갖 신통변화를 한다고요. 그러한 저급한 인간, 그것들은 기껏해야 축생 아닙니까.

축생의 사특한 힘이 들어가게 되면서(이 사람은 그 큰 힘이 들어오기 때문에) 저 사람을 움직이려고 하니까 움직일 수도 있거든. 그래서 돈 많은 사람, 얼굴 예쁜 여자 등을 상대로 많은 죄를 짓습니다. 많은 죄를 지어.

그러니 이런 신통을 해야 하는 거요, 안해야 하는 거요? 내가 지금 비근한 예를 들어주는 거예요. 신통이라는 것은 하면 안 되는 거요. 신통은 악도에 떨어지는 원인이 됩니다. 이 신통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 신통을 부리면 세상 사람들은 다 그냥 최고 도인이 나왔다 해가지고 거기에 빠진다고. 우리는 그것이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신통은 필요 없는 거요.

  우리는 업장이 닦여져야 돼요. 우리는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지은 그 악업(나쁜 업, 죄업), 그 업의 힘을 죽여야 된다고요. 그래가지고 그로인한 과보를 안 받아야 돼. 이게 수행 목적인거요. 최고의 수행 목적인거요. 그래서 수행의 진짜 목적은 영혼을 맑게 하는 거요. 업장을 정화시키는 것, 업장을 소멸시키는 것, 이것이 수행의 제일 목적인거요. 이거 이렇게 봐야 돼.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

 

  내가 작년인가 2년 전에 말씀 드렸을 것입니다. 법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이름을 밝힐 수도 없고, 말은 꼭 해줘야 되겠고 해서 소개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이 대한민국 어느 집단 안에 어떤 분이 그런 신통이 있었습니다. 거기는 뱀신(구렁이신, 사신)이지요. 용신도 아닙니다.

사신이었어. 사신으느 또 무엇이냐? 축생들이 비명에 죽은 경우가 있어. 코브라 · 독사 · 구렁이가 비명에 죽은 경우, 그러면 명부에 못 들어가거든요. 그런데 그 비명에 죽은 그 애들이 힘이 있는 놈들이 뭉칩니다. 동아리를 이루는 거요. 동아리를 이루어 힘이 세어버리니까 명부에서도 어쩌지를 못해요.

이것이 한 군단, 그러니까 몇 만을 헤아리는 구렁이 집단(독사집단)이 된다고. 이걸 이매망량이라고 그래요. 독사 구렁이뿐만 아니라 여우도 있고, 학도 있고, 거북이도 있습니다. 이 사람이 그런 집단하고 통했더라고요. 그 집단하고 신통이 통했어. 그래가지고 이 큰 힘을 쓴다고. 너무너무도 많은 업을 지었더라고.

그 힘으로 정말 너무너무 큰 업을 지었어. 어떤 여자를 딱 찍으면 얼마든지 자기마음대로 해요. 돈까지 와요. 그런 못된 짓을 했더라고. 그러면서 그 사람이 나하고 우리 광명 만덕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는 내가 했지요. 몇 번에 걸쳐서 계속적으로 죽이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때그때 전부 물리치고, 얼마 전에는 그 사신 집단모두를 완전히 명부로 집어넣어 버린 거요.

 

  아무리 공부를 많이 했고, 학식이 높고, 고관대작의 자리에 있고, 재산이 많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런 사람을 부러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 부러워해야할 대상은 사람으로 와서 사람다운 사람, 부모님께 효를 할 줄 알고, 나라를 사랑할 줄 알고, 스승을 공경 할 줄 알고, 불쌍한 이웃을 내 형제처럼 보살필 줄 아는 영혼이 맑고 성품이 착한 사람이 더 훌륭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미래가(장래가) 있어요. 다음 생이 밝습니다.

  그러나 이조 오백년을 관존민비(官尊民卑)로 살은 그 선조(조상), 우리 이 세상 사람들은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고개 숙이고, 공부 많이 한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고(입으로는 아주 석학이지요, 학식이 많기 때문에), 재산이 많기 때문에 허리를 굽히고 그럽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부모 조상에게 효를 할 줄 알고 나라와 스승을 공경하고 사랑할 줄 알고 불쌍한 사람을 생각할 줄 알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이 다는 그렇지 않더라고.

그래서 비록 미인은 아니라 하더라도, 배운 것이 많지 않다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지위가 낮다 하더라도, 사람다운 사람 · 착한사람 · 영혼이 깨끗한 사람, 우리는 그것이 목표가 되어야 해요. 우리는 그쪽으로 가야 됩니다.

 

  타력이 아니고 자력 수행으로 우주 본체의 마음자리를 보는 정도인 견성까지는 간다고 스님이 그랬어요. 경계가 뒤집혀 가지고 모두가 공(空)이 되어 버리는 그 자리까지는 갑니다.

  그 자리까지는 가는데 이제 보살이 되면 어떠냐? 그 수행자의 몸속에 여체가 네 개라고 했지요. 그 네 개의 영체가 각각 분리가 됩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데 분리가 안 되면 보살의 경계를 못갑니다.

혼자는(자기능력으로는) 분리를 못시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위신력이 필요한데, 분리가 되어가지고 1번영체로 이제 극락을 가는데 그 1번영체는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부처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극락세계에 가서 입을. 옷을 하사 받는 거요(극락세계 옷을), 그리고 정토보살이라는 인가증을 받습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주십시오.

  그 다음에 처음으로 불과를 증하는 무상정각을 이룬 분은 자기의 불신이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 억종광으로 이루어진 불신이 저 절대계에 생깁니다. 그 생기는 이유는 말씀을 못 드립니다. 그 뭐가 있습니다. 깊은 어떤 과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특급의 밀장이기 때문에 말씀은 못 드리나 그 절대계에 자기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그 자기의 불신과 자기의 거짓 몸뚱이 영체가 하나로 계합이 되거든요. 하나로 계합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부처님으로부터 이제 "불과를 증했노라" 하는 '선 · 인가' 를 받습니다. 선언 받고 인가증을 받습니다. 그리고 삼천대천세계 부처님 대장(臺帳)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화엄경>> 을 보면 첫 번째로 여러 가지 희유한 일들이 일어나는데 그럽니다.

  처음으로 불과를 이룬 분은 우리 부처님의 아버지 · 어머니가 첫 번째로 오셔서 배알(拜謁)을 합니다. 그러면서 축하를 드립니다. 그리고 <<화엄경>> <세주묘음품> 에 있는 것처럼 많은 정토보살들, 하늘 왕들, 우주적으로 볼 때 서열이 높은 성자들이 와서 배알(친견)을 하고 찬탄 게송을 읊고 합니다. <세주묘음품> 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부처님의 천 만 억 화신을 내는 장면을 이야기 해주면 좋겠는데, <<화엄경>> 에 있는 그 장면이 사실입니다. 그건 뒤로 하겠습니다.

  오늘은 여러분한테 불자로서 이제 여러분이 여러 기도도 많이 올리시고, 공양도 많이 하시고, 조상님 부모님 천도재도 많이 하신 분들이기 때문에 이제는 공부 쪽으로 법문을 한번 해주어야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공부를 하시라고요.

  칭명염불을 권하는데 먼저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왜 여러분들한테 칭명염불을 권하느냐? 불교 수행의 첫 걸음이 여러분 마음속에 있는 탐심 · 진심 · 치심 이런 것들을 전부 뿌리를 뽑는 것입니다.

이게 수행이거든요. 수행인데, 쉬운 말로 '놔버려라' 하는 말이어요. '놔버려라' 하는 법문입니다. '놔버려라' 하는 법문이어요. 여러분! 여러분은 머리에다가 등에다가 양손에다가 무거운 짐을 다지고 있어.

지금 이고 지고 들고 있거든. 이것들을 '놔버려라' 하는 거요. 그것들은 전부 여러분이 아니어. 여러분 자신하고 떨어져있는 것이어. 그렇기 때문에 놔버리라는 거요. 놔버리면 이 마음이 평화로워. 근심 걱정이 없는 거요. 그래서 '놔버려라' 하는 법문입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방하착(放下着)이라고 해. 착(着)은 집착을 말해. '집착을 놔버려라' 그거요. 방하(放下), 놔버려라. 또 불교에서 '도방하(都放下)' 그래. 도(都, 모두를) 방하(放下, 놔버려라). 똑같은 말이어. '놔버려라' 그거요. 여러분, 스님 법문을 이제 이해해야 돼. 무엇을 놔버리라고 하느냐? 아시는 분은 아실 거요.

 

  내가 어려서 10대 때인가? 어느 정신분열증 환자가 포대자루를 가지고 다니는데 따라 다녀보니까(하도 정신이 이상해서 몇몇 친구들하고 그 뒤를 따라 다녔어) 그 정신분열증 환자가 돌무더기에 가서 그 포대자루에다가 크고 작은 모양 없는 돌을 막 담아요.

또 유리병 깨어진 것도 담고 해서 하나 가득 채워가지고 짊어지면서 하는 말이 지금도 안 잊어버렸어요. '죽기보다도 더하랴, 죽기보다도 더하랴' 하는 것이었어요. 그것을 뭣 하려고 하지요? 죽기보다도 더 어려운데 힘든 것을 뭣 하려고 하느냐 말이요. 지금 보니까 그게 불교더라고요.

  여러분, 여러분도 그럽니다. 사실은 그래요. 모양다리 없는 돌, 새금파리, 유리조각을 뭣 하려고 막 포대에다가 그렇게 하나 가득 채워가지고 짊어지고 다니느냐 그거요. 그게 바로 뭐냐? 스님이 이런 말을 하면 좀 이해가 안 될 거요. 좀 너무 하다고 할까?

  자식 손자 머리에 이고, 남편 등에 업고, 재물 모든 것 양 손에 들고, 여러분들 지금 그렇게 살고 있거든. 그것은 사실 아무 필요가 없다니까. 나하고 관계없는 것이어요. 우리는 윤회를 해요. 끝도 없이 미래제가 다하도록 윤회를 하게 되어 있어요. 도저히 언제 시작했는지를 알 수 없을 만큼 무량겁 전에 우리는 생을 받아가지고 윤회를 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와. 업을 짓는 한 앞으로도 계속 그래. 불과를 증하면 자기가 억겁 다겁생 동안 지은 업이 전부 다 제로(zero)가 되는데(없어지는데) 그렇지 않는 한 윤회를 받는다고(업의 과보를 받는다고). 업을 지으면 큰일이어.

어떻게 하든지 업을 안 지어야 하는데 업을 안 지을 수가 없어. 탐 · 진 · 치가 있어가지고 업을 안 지을 수가 없어. 탐 · 진 · 치 삼독은 나를 죽이는 못된 독약이라고.

독약인 줄 모르고 탐 · 진 · 치를 다 끌어안고, 이것으로 인해서 남편 · 내 자식 · 내 손자 · 내 사업 이것 밖에 없어. 저 굴지의 재벌인 이병철 정주영 등이 세상을 떠날 때 100원 하나 안 가져가더구먼. 안 그렇습디까? 그 세계는 1,000원짜리 한장 못 가져가거든요.

빈손으로 가거든. 우리 불자들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돼. 놔버려야 돼. 궁극적으로는 탐 · 진 · 치 삼독을 놔버려라 그거요. 업을 짓지 마. 지은 업은 이제 부처님의 위신력을 빌어서 닦아야 돼.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업을 닦는 데는 여기 현지사 밖에 없어.

 

  <<아함경>> 말씀에

  "무엇인가를 구하고 바라는 것이 있으면 바로 괴로움이니라. 마음속에 바라고 원하는 것을 다 놓아 버리면 세상의 즐거운 마음 그 가운데 있으리. 자신의 소유가 아닌 것은 집착 하지 말고 다 버려라. 내 것이 아닌 것을 모두 버릴 때 세상을 소유 할 수 있으리라."

 

  우리 부처님께서 설산에서 6년 동안 고행하시면서 손에 100원 한 장 없었어. 가진 것 하나 없이 다 버려버렸어. 왕으로 세습 될 수 있는 그런 자리를 버려버렸어. 마누라 · 자식 · 집 등을 전부 버려버렸어. 100원짜리 하나 안가지고 가셨단 말이어요. 그래서 붓다가 되어가지고 이 세상 삼천대천세계를 전부 얻을 수 있었던 거예요. 버림으로서 오는 거예요.

  '완전히 버리면 전부를 소유 한다' 고 그래. 여러분, 이렇게 버리는 공부, 이것이 불교입니다. 버리는 공부를 해주십시오. 칭명염불은 버릴 수 있는 그러한 힘과 지혜를 주는 거예요.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해서 어느 덧 여러분이 욕심도 적어져 가고, 집착도 적어져 가고 그럴 거예요(칭명염불을 잘 하다가 보면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그래서 칭명염불을 권하는 것입니다.

  "자기 소유가 아닌 물건에 대하여 애착을 버려야 할 것이니 버릴 것을 버릴 수 있어야 마음이 평온 하나니라."

  이런 부처님의 말씀을 여러분들이 꼭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은 재미있는 경전의 말씀이 있어서 여러분한테 읽어드릴게요.

 

  부처님께서 비사리국 대림정사에 계실 때의 일이다. 한 바라문이 아침에 소 한 마리를 샀는데 그 값을 치르기도 전에 그만 소를 잃어버렸다. 그는 꼬박 엿새 동안 헤매고 다녔지만 잃어버린 소를 찾지 못했다.

어느 날 숲속을 방황하던 바라문은 대림정사에 이르러 나무 밑에 앉아 계시는 부처님을 뵙게 되었다.

잃어버린 소 때문에 마음의 평정을 잃어버린 바라문은 자신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부처님을 뵙자 신기한 생각이 들어싸. 그는 부처님을 향해 아무것도 구하지 않고 이렇게 쓸쓸한 곳에 혼자 계셔도 마음이 즐거울 수 있느냐고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얻거나 잃는 것 때문에 나는 마음이 어지러워지지 않는다. 나는 너와 같지 않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얻고 잃는 것을 그 마음에 두면 그 마음은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바라문은 부처님의 말씀에 쉽게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비록 말씀은 훌륭하지만 부처님이 평화로운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다른데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즉 부처님은 잃어버린 소를 찾아 온 동네를 헤매고도 끝내 찾지 못하는 일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평화롭게 앉아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뿐만 아니라 부처님은 밭을 갈아 씨앗을 뿌려놓고 잡초가 우거질까 걱정하지도 않고, 모를 심은 뒤 논에 물이 모자라 말라 죽지 않을 까 걱정하지도 않고, 과부가 된 일곱 명의 딸이 유복자를 기르는 일을 당하지도 않았고, 방탕한 생활로 빚진 일곱 명의 아들을 두지도 않았으며, 빚쟁이 들이 몰려와 이자를 독촉하는 일을 당하지도 않았고, 일곱 채나 되는 이불을 쌓아놓고 좀먹을까 뒤져보는 일도 없으며, 사나운 아내에게 밤낮으로 욕 듣는 일도 없고, 창고에 쥐가 들끓어서 양식이 떨어질까 걱정하는 일도 없었기 때문에 태연히 앉아 평화를 이야기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부처님은 바라문이 물었던 그 내용과 순서대로 하나하나 되짚어가며

  "나는 바로 그런 것들을 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더불어 언제나 집착하고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중생들은 안락하게 지내지 못한다. 탐욕을 끊고 은혜마저 여의면 언제나 안락하게 지낼 수 있느니라"

  하고 말씀하셨다. 바라문은 일상의 문제는 인간에게 불가피한 것이며 그런 걱정은 누구나 다 안고 살아야 하는 숙명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일을 하지 않으면 마음의 평화와 육신의 고요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것은 포기의 대상이 아니라고 믿었다. 그러나 부처님은

  나는 너가 말하는 바로 그런 것들을 과감히 버렸기 때문에 정신적 평화와 안온을 지키노라"

  고 자신 있게 말씀하신다. 바라문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이 움켜쥐고 있는 것은 모두 버릴 수 있는 것이며 그런 것들을 버려도 여전히 삶은 존재하며 오히려 참다운 평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잡아함경>> 44권 <<실유경>> 이라고 하는 경전 이름으로 실려 있는 이 경전은 세속적인 삶과 출가의 삶이 어떻게 다른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소를 찾아 방황하던 바라문은 진짜 중요한 것은 소나 자질구레한 일상의 삶이 아니라 자신임을 깨닫고 부처님을 따라 출가의 길을 선택한다.

우리는 얻고자 안달하는 것들을 내려놓기만 하면 당장 평화와 안락을 얻을 수 있음에도 그것을 율법처럼 떠받들고 스스로 노예의 삶을 고집한다. 부처님은 이 같은 인식의 굴레를 깨고 일상의 삶 저편에도 위대한 삶이 존재함을 일깨워 주신다. 소를 찾아 나섰던 바라문은 부처님을 만남으로서 소유에 대한 갈망에서 존재에 대한 확인으로 극적인 반전을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 같은 전환은 밖을 향해 질주하며 구하는 것을 멈추고 지금 가진 것을 내려놓을 줄 아는 방하착의 순간에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자, 재미있지요. 여러분도 이제 놔버리는 공부를 해야 돼. 놔버리는 공부를 할 줄 아아야 돼.

 

  저기 춘천에 상당히 가진 것도 많고, 이름도 누구하면 알 정도의 어떤 60대 사장(社長)분의 이야기를 합니다. 이건 꼭 필요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그 사람한테는 따님이 한 분 있고, 아드님이 한 분 있어요. 그런데 부인이 기독교신자이고 자기는 사실 불교신자였어.

그러나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기독교로 개종을 했습니다. 개종한 이유가 있습니다. 따님이 한 분 있었는데 그 따님이 성장하면서 피부병을 얻었어.

고름이 나오는 피부병. 여기저기서 고름이 나오는 이상한 피부병을 얻었어. 이 피부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 양방 한방 다 다니고, 무속인, 절 다 다녔어. 기도를 다 해봐도 안 돼. 기독교 교회당에 가 가지고 기도를 하니까 치유되어 버렸어. 자, 들어 보시라고.

그러니까 남편이 부인의 기독교로 개종하는 수밖에요. 안 그렇습니까? 딸이 치유되었으니까. 그래서 그 부인이 다니는 교회에다가 10억을 헌금(시주)했어.

그런데 5대 독자인 외아들은 그 후로 국가에서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지어서 사형선고를 받아가지고 무기수가 되어버렸어. 이제 들어 봐요. 남편은 지금 60대 후반인데 눈 하나가 멀어 버렸어.

  이것을 어떻게 해석 하겠습니까? 이것에 대한 대답입니다.

  인연따라서 무당에게 가 가지고 그런 병이 나을 수도 있고, 인연 따라서 불교 절에 와서 나을 수도 있고, 저기 이슬람 마호메트 예배당에 가서 기도로 나을 수도 있는 거요. 그 이유는 이 법계에는 주인이 없어. 내가 여러 차례 이야기한 거예요. 이 법계에는 주인이 없어.

그러나 부처님처럼 최고로 거룩하고 위대한 어른은 없어. 아마 내가 앞으로도 계속 이 다음 법회 때까지 하겠지만 무량광이라고 하는 그 세계, 그 환희의 세계, 그 몸뚱이 원만보신(불신)을 갖춘 그런 어른의 대성자는 부처님 이후로 없어. 그러면 이거 어떻게 해서 병이 낫느냐?

쉽게 말하면, 영계에 기독교의 하나의 집단이 있다고 합시다. 기독교 집단이 커. 그 보스(우두머리)는 상당한 신통력과 상당한 권속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하고 이딸하고 인연이 있으면 이 사람이 치유해 줄 수가 있어. 이 사람의 힘이죠. 같은 권속이니까 낫게 해 주어.

  그러나 대단히 중요한 점이 있어. 우주질서 우주이법을 역행하면 큰일 나. 우주의 제재를 받는 거요. 만약에 그렇게 해서 낫게 해 주었다면 그 집단의 두 번쨰 보스던지 세 번재 보스던지 그 사람은 지옥에 떨어질 거요. 그 사람은 사람 몸을 받아 오더라도(받아 올 거요) 그 병을 대신 앓을 거요. 앞으로 이렇게 됩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시공을 초월해 버렸어. '무아속 절대계' 는 인과를 벗어나버린 곳이어. 인과를 벗어나버린 우리 부처님. 우주아(宇宙我), 우주와 하나가 되어버린 우리 부처님(곧 우주이법 우주진리 자체가 되어버린 부처님)의 능력은 그 사람이 가령 현지사에 어떤 큰 대작불사를 했다 할 때(공덕을 세워 줬을 때) 낫게 해 줄 수가 있는 거요.

이렇게 되는 경우는 우주이법을 따라서 했기 때문에(우주질서를 따라서 인드라망을 이렇게 비켜가면서 해주기 때문에) 과보가 올 수 없고, 부처님에게는 그런 인과법이 미칠 수가 없는 거요. 그러나 여타 보살, 상품보살 정도의 외도, 거기는 인과가 미쳐.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은 지옥에 떨어지는 거요.

금방 지옥으로 가는 거요. 우주의 힘이 그래. 이 사실을 여러분한테 말을 해줍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그런 상식이 있어야 돼. 다른 종교 광(狂)들 있잖아요. '당신은 왜 그렇게 그 종교에 철저한 신앙으르 갖게 될 수 있었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이런 비슷한 말을 하거든 속으로 그렇게 아시라고.

  무당도 낫게 할 수
있는 거요. 무당도 집단이 있어. 최고 위에는 큰 분이 있어. 그 분 밑에 있는 사람도 낫게 해 줄 수도 있어.

  그러나 그 사람들은 우주질서 우주이법을 이렇게 거슬리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몰라. 콱 낫게 해 준다고.

  예수같이 훌륭한 위인도, 예수는 훌륭한 분입니다. 대단한 성자이지요. 바이블(성경)을 보면 죽은 사람도, 환자도, 꼽추도, 많이 일으키고 안 그렇습니까? 그건 업입니다. 절대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같이 훌륭한 분도 과보를 받는 거요. 십자가에 못 박힌 건 예사 일이 아닌 거요. 그렇게 아십시오.

 

  <<화엄경>> 에 전체적으로 나오는 우리 부처님의 어마어마한 위신력이 있습니다. 이건 다음 시간으로 미루겠습니다.

  자, 합장하십시오. 스님 따라서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고아일심귀명정례.

 

 

출저/법문집 3권

펴낸곳/현지사-영산불교사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