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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뉴스 2003년 08월 20일자-"견성은 공부의 시작일뿐 염불·禪으로 결판

불제자 2010. 4. 6. 11:23

 

 

 

 

붓다뉴스 2003년 08월 20일자 - "견성은 공부의 시작일뿐 염불·禪으로 결판내세요"

 

 

 

만현스님(춘천 현지사 회주)

                    -  견성은 공부의 시작일뿐 염불·禪으로 결판내세요

 

 



오늘의 한국 불교, 부처님의 가르침은 많이도 왜곡되어 있습니다. 생사관(生死觀) 하나 뚜렷하지 않습니다. 특히 승려들의 지계정신은 심각할 정도로 타락해 있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크게 눈뜬 성자가 없기에 그렇습니다.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으려고 하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구하는 것과 같다고 지금의 불교에서는 말을 합니다. 이 마음이 부처요, 마음자리가 극락이라 합니다. 지옥과 극락을 마음의 산물로만 봅니다. 마음 밖의 지옥, 극락, 불·보살 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에 안팎이 있다는 말입니까? 공(空)에 안팎이 있습니까? 마음은 시방법계를 싸고 있는데 말입니다.
여러분, 지옥과 극락은 실제로 있습니다. 불, 보살도 계십니다. 윤회도 사실입니다. 200여 불교 경전에 지옥 등을 분명히 말씀하신 부처님은 거짓말장이가 아닙니다. 무아속 삼매에 들어 그동안 보고 들은 것을 간략히 줄여 전합니다. 공부해서 뚫은 바를 수행인의 양심으로 말씀드립니다.
지옥은 있습니다. 우리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영체세계의 남방 지장궁쪽에 있습니다. 제가 삼매에 들어보니, 지장본원경에 나오는 지옥은, 그 일부에 불과합니다. 중지옥, 무간지옥 중 그 한 군데만 소개할까요? 열 손가락 손톱 밑을 바늘로 찌르는 그런 지옥도 있습니다. 하루에도 우리의 영체는 고통으로 까무러쳐서 만번 죽고 만번 살아날 정도입니다. 그 고통은 육신이 당하는 고통과 똑 같이 느껴집니다. 오역죄, 사중죄를 지으면 보다 무서운 무간지옥으로 갑니다. 그곳의 수명은 한량없는 시간인 겁(劫)으로 정해집니다.
출가 수행하는 스님들이 음행죄를 지으면, 즉 단 한번이라도 사음죄를 범했다면 일단 중지옥이나 무간지옥에 떨어집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전생에 선근공덕이 있어 겹겹이 몰려오는 온갖 마장을 이겨내고 정진 잘 해서 크게 도를 깨친 이라 하더라도 음행을 저지르거나, 불보살과 지옥 및 극락이 없고 이 마음 속에만 있는 것이라고 부처님과 법을 모독, 능멸한다면 그것은 무간지옥에 떨어져 미래제가 다해도 나올 기약이 없습니다. 이 말씀은 불·보살님들께서 누누이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불교는 기본적으로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여러 선행을 하라’는 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 衆善奉行)을 가르칩니다. 궁극에는 생사의 해탈을 바라는 위대한 종교입니다. 여기에는 자력(自力)과 타력(他力) 수행이 구족되어야 합니다. 먼저 자기 구제후 남을 제도하는 게 순서입니다.
중생은 불성을 지니고 있어 도를 이룰 수 있습니다. 무명의 껍질이 벗겨져 자성이 들어나 견성한 후 보임(保任)을 잘 마친 이가 아라한이라고 부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라한의 성과(聖果)를 얻으면 윤회를 벗어난 세계에 납니다. 인간은 구조상 아라한 이상은 오를 수 없습니다. 신라의 자장율사는 대아라한과를 증하셔서 윤회밖 성중 제 1하늘에 계십니다. 자성(마음자리)이 드러나는 것은 간화선, 위빠사나, 밀교 수행으로도 가능합니다. 이때는 경계가 뒤집혀 온 세계가 훤하여 공이 됩니다. 그러나 깨침에도 강약이 있습니다. 목숨을 떼어놓고 사생결단해야만 자나 깨나 한결같은 오매일여(寤寐一如)가 됩니다. 이러한 정도가 되어야 아라한이 됩니다. 그러나 붓다는 아닙니다.
‘견성 즉 성불’(見性卽成佛)이란 말은 위험한 표현입니다. 화두 참구를 통해 얻은 견성은 이제 공부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견성한 이라도 성중 하늘에 났다가 남섬부주에 다시 와 잘못된 길에 빠져 악도에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10지 보살도 붓다의 진신(眞身)을 볼 수 없습니다. 무량광(無量光)을 보고, 안으로 육종진동이 없으면 부처님의 법문을 들을 수 없고, 무아속 삼매에 들 수 없습니다. 도를 이루었다는 분들은 이러한 경지가 되지 않고는 대망어(大妄語)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라한 성자는 조그마한 열반에 만족치 않고 법화경의 부처님 가르침 뜻에 따라 보다 높은 위(位)인 보살이 되기 위해 이 사바세계에 몸 받아 옵니다. 보살 8지가 되어야면 부처님은 ‘보살’이란 칭호를 부치십니다. 이 경지에 올라야 신장(2명)이 호신하고, 극락정토에 왕생하게 됩니다. 여자라면 남자 몸을 받아 극락세계에 납니다. 우리나라의 원효 스님, 11세기 티베트의 전설적인 성자 밀라래빠는 극락에 왕생한 보살입니다. 티베트의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는 극락세계 상품보살의 후신입니다. 보살이 남섬부주에 여러 번 생을 받아와 붓다(붓다는 삼계의 법왕이다)를 이루는 데 있어 억겁다생의 업장과 습기, 악연 그리고 탐·진·치 삼독의 뿌리가 녹아져서, 털끝 만큼이라도 그 찌꺼기가 남아 있으면, 불신(佛身)을 얻을 수 없습니다. 불과(佛果)를 증할 수 없습니다.
불신은 열반광(무량광)이라고 하는 빛으로 이루어집니다. 붓다는 빛으로 계십니다. 빛이시기에 삼세의 여래는 일체가 동일합니다. 한 티끌 한 생각이 같습니다. 불과를 증한 이는 거짓 몸뚱이와 네 가지 영체가 모두 빛덩이가 되어 자기 불신과 계합합니다. 더 깊은 말씀은 여래의 밀장(密藏)이기에 함구합니다. 불신을 이룬 빛은 삼천 대천세계를 두루 비춥니다. 변조광명입니다. 비로자나 법신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새벽 별을 보고 깨쳐 붓다가 되었다 합니다. 이 말은 선가에서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깨쳐서 확철대오 했다 해서 붓다라 할 수 없습니다. 금강불괴(金剛不壞)의 불신을 얻어야 비로소 붓다입니다. 오랜 기간 여러 관문을 통과해서 불신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대오견성은 아라한 자리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불신은 백천만억 화신을 나툴 수 있습니다. 백천삼매, 나아가 해인삼매, 대적정삼매를 자재하시고 팔만사천 신통을 구족하십니다. 지혜와 복덕, 자비자체가 됩니다. 현신할 때의 본불신은 32상80종호 그 이상입니다. 그 모습과 일거수 일투족은 자비의 극치이시며, 한 순간 뵙기만 해도 삼재와 업장이 소멸되는 선정자체이십니다. 교종에서는 이 몸을 보신(報身)이라고 합니다. 제가 말하는 불신은 법신과 보신을 합친 개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안팎, 마음속까지 비추는 그런 빛으로 이루어졌고, 대적정삼매에 항상 들어 계심으로 미래제가 다하도록 멸도할 수 없습니다. 붓다 이룬 이가 혹 출타할 때에는 백천의 신장님들이 앞뒤를 호위하는 광경은 장관입니다. 부처님만이 소위 법신, 보신, 화신 등 삼신을 구족하십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삼계의 지존이자 남섬부주의 대교주이시며, 구원실성 최초불(久遠實成 最初佛)이십니다. 그후 수보리, 사리불 존자 두 분께서 처음으로 불과를 증득하셨습니다. 한 분의 아라한, 보살을 내는 데 있어 절대적인 공이 있는 사람은, 지옥과 축생 업을 벗고 곧 천상에 납니다. 하물며 불과를 증한 대성자가 이 땅에 출세함에 있어 큰 공을 세운 이는 극락까지 왕생할 수 있답니다. 이 대성자에게는 무한한 권능이 주어집니다.
여러분, 윤회고를 벗어나 도를 이루려면 첫째 계율, 그 중에서도 ‘음행’을 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이렇게 한다면 성불은 불가능합니다. 설사 도를 이루어 보임중인 수행자라도 음행을 무애(無碍)로 보아 저질렀다면, 마치 한 컵의 물에 똥물 한 방울 떨어뜨리면 그 물을 마실 수 없는 것처럼 만사가 무위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행자는 마장을 막아줄 수 있는 대선지식 밑에서 공부를 해야 합니다. 또한 효를 다하고 공부 이룰 생각을 해야 합니다. 금강경 같은 대승 경전을 독송하고 진언과 염불을 해야 합니다. 물론 선(禪)으로 결판을 내십시오. 목숨 떼놓고 공부해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비었어라 비었어라
삼천대천 세계가 비었어라.
먼지하나 티끌하나 없는
공의 세계
맑고 깨끗한 청정자체
환희 환희
환희 그 자체인 것을.
(만현스님의 ‘대적정삼매송’중에서)
정리=김재경 기자 jgkim@buddhapia.com

기자가 본 만현 스님

강원도 춘천시 사북면 지촌리, 춘천댐 상류 풍광 좋은 곳에 위치한 아담한 절 현지사는 2년전 새로 지은 현대식 사찰이었다.
제방의 선원과 토굴에서 오랫동안 수행에만 매진해오다 3년전부터 이곳에서 법을 펴고 있는 현지사 회주 만현(滿顯) 스님은 아직 불교계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분이다. 하지만 최근 춘천 불교방송을 통해 스님의 법문이 전파를 타면서 법을 구하는 출·재가 수행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스님의 방송 설법은 올해로 세 번째인데, 방송이 나갈 때마다 궁금해 하는 불자들의 전화가 방송국과 신문사로 쇄도하곤 했다. 그만큼 만현 스님의 법문은 어느 절에서도 듣기 힘든, 체험해서 우러난 진솔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만현 스님이 강조하는 법문은 ‘견성은 부처되는 공부의 시작일 뿐이며, 견성한 이라도 계율을 철저히 지키고 부처님과 불법을 모독하는 말을 삼가야 한다’는 말씀이다. 특히 스님들의 경우 ‘사음’은 금기해야 하며, 참선 수행을 통해 견성한 일들은 ‘극락과 지옥이 없다’고 하는 등 경전에 어긋나는 말을 절대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만현 스님은 수행법과 관련해서는 간화선 수행 못지 않게 위빠사나, 밀교 수행법을 높이 평가하면서 염불선을 권하신다. 성불(成佛)에 대한 견해도 독특하시다. 수행자가 남·북방의 다양한 수행법으로 깨달아도 아라한과(果) 이상은 증득하지 못한다고 한다. 진정한 붓다가 되기 위해서는 보살에 이어 불신(佛身)과 하나되는 더욱 더 어려운 공부과정이 남아있다는 설법이다.
1960년 부산 선암사에서 율사인 석암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만현스님은 통도사 경봉 선사 문하에서 화두 공부를 했으며, 조계종 총무원 교무, 포교, 재무부장 등을 역임했다. 동산반야회 법주인 무진장 스님과 함께 조계종 중앙상임포교사로서 전국에서 설법했으며 해동불교대학 학장을 맡아 재가자 포교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20여년전부터는 만행과 토굴 수행 등으로 오로지 성불을 향한 일념으로 매진해 왔다. 비구, 비구니 제자 8명을 지도하는 한편 69세의 세수에도 매일 깊은 삼매에 들어 정진의 끈을 늦추지 않고 계시다.
 
 

2003-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