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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소화된 불교/삼신

불제자 2022. 3. 16. 09:01

왜소화된 불교/삼신


우리 불교는, 위대한 우리 불교는 왜소화 되어버렸습니다. 현재 아라한이 목표입니다. 아라한도 아닌 깨달음을 종착지로 하고 있습니다. 대단히 슬픈 일입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공부한 바로는 이거 안 되겠다 싶어서 책을 썼고,
70여회에 거쳐서 이 문제에 대해서 법문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래의 불교로 올려줘야 됩니다. 불교는 위대합니다. 본래 불교는 아라한을 넘어서 보살, 보살을 넘어서 붓다 이루는 것입니다. 붓다를 이루었다고 하는 것은 우주 진리․ 우주 본체와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 합니다.

우주 본체와 하나가 된 것을 법신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법신불이라고 하는 개념을 학자들도, 그 어떤 스님들도 모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법신불에서 보신불이 나옵니다. 불과를 증한 분은 유․무를 초월한‘무아 속 절대계’에 자기 불신을 두는 겁니다. 이건 대단히 엄청나고 매력적인 이야기입니다.

그 불신에서 천백억 화신을 냅니다. 천백억 화신을 내어서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중생 국토에 가서 그들을 교화 합니다. 그리고 그 보신에서 이 사바세상에 사람 몸을 받아 옵니다. 인신을 받아 옵니다. 그 인신을 응신, 응화신, 화신 그럽니다. 이렇게 불과를 이룬 어른은 세 몸을 둡니다. 법신불․보신불․화신불. 이제 조금 더 깊이 이야기 해드립니다.

보신불은 상대세계(경험세계)를 초월해서 저 절대계에 몸을 둡니다. 그 절대계에 몸을 두는 그 보신의 모습은 32상80종호를 갖춥니다. 그 이상입니다. 그 몸뚱이는 부처님의 개끗하고 청정한 광명의 빛입니다. 무량광입니다. 그 무량광으로 이루어집니다. 무량광은 소위 모든 존재의 근원인 빛, 그것을 자성광명이라고 하는데 그 자성의 광명보다도 훨씬 더 깊이 들어가야 정토(극락세계의 빛)세계의 빛이 나오고,

거기서 한없이 수행하고 보살행을 완성해서 절대계에 이르는데 그 절대계는 무량광의 세계입니다. 그 무량광으로 붓다의 몸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몸뚱이를 원만보신(줄여서 보신불)이라고 합니다. 빛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미래제가 다하도록 영원히 멸도 할 수 없습니다. 죽을 수 없습니다. 그 절대세계는 환희의 세계입니다. 환희의 세계. 여러분, 극락을 표현 할 수 없어서 극락(즐거움의 극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절대계의 부처님 세계는 극락을 백 천 만 배 보다도 훨씬 뛰어 넘어서 환희 자체입니다. 빛으로 이루어져 있지, 환희 자체입니다.

환희 자체인 그 세계는 대적정삼매(대적광삼매)를 통과해야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원만보신(보신불)의 세계는 그러합니다. 이 지구가, 이우주가 완전히 파괴되어도 거기는 미칠 수 없습니다.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수행자는 목표를 붓다 이루는데 두어야 됩니다. 원만보신이 필요에 따라서 자기 몸뚱이를 백 천 만억의 몸으로 동시에 나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우주의 수많은 중생국토에 가서 교화를 합니다. 인간 몸으로 받아 온 이 몸뚱이를 화신불(화신, 응화신)이라고 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 여러분한테 스님이 간곡히 말씀해 드릴 바가 있는데, ‘광명 만덕 ․ 자재 만현’을 우리 입으로 부처님이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내 책<21세기 붓다의 메시지>이 나가고 해서 여러분들이 그렇게 부르는데, 앞으로 부처님․ 붓다라고 부르지 마시길 바랍니다. 여기 화신은 어디까지나 화신입니다. 저기 절대계에 있는 불신(원만보신)은 부처님이올시다. 여기 와서 처음으로 깨달았건, 어떤 겁 전에 불과를 이룬 분이 사람으로 와서(인신을 받아와서) 다시 불과를 이루었던 간에 이 몸뚱이는 화신입니다.

화신과 보신은 대단히 차이가 있습니다. 화신과 보신은 한 몸이지마는 유한한 물질로 이루어진 이 육신의 능력과 지혜는 저 보신의 능력과 지혜를 따를 수 없습니다. 저 보신이 이 육신(화신)속으로 들어와도 그 무량한 지혜와 능력을 주지 않습니다. 내가 받으면 이것이 가루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받을 수 없습니다.

죽을 때 이 네 개의 영체가 자기 불신과 합일이 됩니다. 계합이 되어버려요. 그 때의 그 불신의 능력은 무한하지요. 합일이 안 된 상태의 그 절대계에 있는 보신불의 능력은 무한합니다. 능력이 무한합니다.

자, 삼신을 갖추고 있지요, 소승이나 대승에서 이야기하는 18불공법이 있는데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무한한 능력이 있습니다. 붓다라고 하면 엄청난 능력이 있습니다. 내가 한 70여회를 두고 가끔 가끔 부처님세계의 이야기를 하는데 여러분들도 어느 정도 이해를 하실 겁니다.

2008. 9. 7. 토(음8.8)큰스님 춘천법문중 발췌






왜곡되고 왜소화된

세계 불교의실상을 안타까워하며
무량겁 전에 우주 법계 최초로 불과를 이루시고, 다
시2600여 년 전에 사바세계에 몸 받아오셔서 위없는
가르침을 주시고 대열반에 드신 후, 무아 속 절대계에
빛의 인격체로 여여히 살아계신 거룩하신 우리 교주
불세존께 백천만 번의 오체투지로 예경 드리옵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우주적 진리의 불교가 2600
여 년의 오랜 세월을 거쳐 오면서 너무도 많이 왜곡
되고 왜소화 되어 위대한 불교 본래의 진면목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
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 왜곡된 우리 불교의 실상을 반성
적 차원에서 냉철하게 파악하고 왜곡의 원인을 정확히
밝혀, 진정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토대로 새로운 불교
의 방향을 정립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위대한 우리 불교의 진면목을 드러내어 정법을 세상에 널
리 알려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불교는
환골탈태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우리 불교도들이 깨어나야 합니
다. 긴긴 잠에서 깨어나, 훌훌 털고 일어나야 합니다.
눈을 똑바로 뜨고 귀를 크게 벌리고 마음을 활짝 열고
진리의 말씀 - 정법의 사자후를 드러야 합니다.

한구절 진리의 게송을 듣기 위해 흉악한 나찰에게 한 몸
을 기꺼이 던지는 설산동자와 같이 진리를 갈구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귀 기울여야 합니다.

수천 년 간 많은 훌륭한 학자들이 해설하고 주석을
해놓은, 그래서 불교의 정설로 굳어진 교설조차도 때
로는 과감하게 버릴 줄 아는 용기와 지혜를 가져야 합
니다. 이제까지 나의 분신처럼 가지고 있던 불교에 대
한 지식도 버릴 줄 아는 아픔도 감수해야 합니다.

지금 세계불교는 남방불교, 북방불교, 티베트불교라
는 세 갈래의 큰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중 어느 불교도 부처님의 법통을
이어받지 못하고, 왜곡되거나 왜소화되어 있습니다.
정법불교의 위대한 면면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
다. 이제 우리 불교의 실상을 아주 포괄적으로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불자로서 현행 불교
를 비판할 목적은 추호도 없음을 미리 밝혀 드립니다.
오로지 우리 불교의 앞날을 위해서라는 것이 유일한
이유입니다.

고대 인도의 마가다국 아쇼카왕 때 스리랑카로 전해
져 꽃을 피운 동남아시아 중심의 남방 상좌부불교는
스스로의 틀에 갇혀 감히 그 틀을 깨고 밖으로 나올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계율을 엄격히 지키는것은 높이 사줄만합니다. 위빠사나
수행법도 불교 경론에 있는 수행법입니다.

그러나 그 수행법에만 집착하다 보니 부처님의 위신
력을 받는, 보다 수승한 수행법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
다. 아라한이 수행 목표이고 해탈신을 갖는 보살이나
불신을 두는 붓다의 경지는 감히 생각하지 못하고 있
습니다.

부처님의 어마어마한 위신력과 심원한 적멸의 해탈
세계를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방불교는 이런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크게 왜곡
되지 않은 것만이라도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북방으로 전해진 중국불교와 한국불교는 소위 선불
교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나, 태동 초기부터
외도사상과 혼합되어 불교의 본질에서 많이 벗어나 있
습니다.

심즉시불이니 견성성불이니 하면서 그럴듯한 교설을
내세우고 있지만, 부처님의 참 경계를 이해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불교를 왜소화시키고 부처님을 격하
시키고 있습니다.

한국의 간화선도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화두를 들
려면 부처님의 성호가 가장 좋은 화두가 되어 밤낮
으로 불러야지, 왜 경전에도 없는 조사 스님의 말씀을
화두로 들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큰 성과도 없고 본격적인 수행의 시작단계인
견성,즉 공을 깨치는 수준에 이르는 것이 고작입니다. 그것
을 위해 고생스럽게 오랜 기간 수행을 해야 하는지 이제 한
번쯤은 되돌아볼 시점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래도 최후의 보루로서 티베트불교가 있지 않느냐
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참 좋겠
습니다. 티베트불교는 수행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긴
합니다.

그러나 수행의 어는 단계에서 하고 있는, 힌두교 요가
수행이 가미된 밀교 수행법은 정법이 아닙니다. 또한 티베
트불교의 지도자는 신통을 사용하여 환생을 함으로써
정법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티베트불교를 위한다고 하지만 정법에 반하
는 것은 하면 안 됩니다. 티베트불교의 우수성으로 주
장하고 있는 즉신성불의 교설은 불자들의 안목을
흐리게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불신보신불이 얼마나 거룩하고 위대하고 차원
높은 존재인지도 모른 채, 중음계에서 우주 본성의 빛인
정광명을 받은 의생신을 보신불이라 여기는 어처구니
없는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세계 불교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
점을 몇 가지로 요약해서 정리해봅니다.

1. 세계 불교는 부처님의 실존과 위신력을 믿지 않
는 부처님 없는 불교가 되어버렸습니다.

2. 세계 불교는 인간의 실체인 영혼체을 부정하고 윤회
주체마저 없다고 하는 주인공 없는 불교가 되어버렸
습니다.

3. 우리 불교는 붓다가 되고 보살이 되는 완전한 생사
해탈을 이루는 수행법이 없는 불교가 되어버렸습니다.

4. 우리 불교는 해탈법위와 해탈의 적멸세계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지 못하는 차원 낮은 불교가 되어버렸습
니다.

불교는 우주 법계의 법왕이신 부처님을 교주로 모시
고 있으며 완벽한 교리체계와 구원사상을 갖추고 있습
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신도 수로 보면 기독교
천주교 포함, 이슬람교, 힌두교 다음으로 겨우 네 번
째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신도 수가 종교 평가의절대적인 지표가 되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이것은 오늘날 불교의 위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하나의 지표가 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입니다.

그리고 불교의 고향 인도에서는 불교가 사라져 버렸
습니다. 불교가 세계로 뻗어나가 널리 정착되지 못하
고, 아시아 일원에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을 정도로 쇠
퇴했습니다.
불교 교리의 위대함과 우주 법계영역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불교의 위상을 감안한다면 이는 초라하
기 그지없는 성적표인 것입니다. 그럼 불교가 왜 이런
모습이 되었을까요? 이제 그 이유를 한 번 찾아보겠
습니다

출처/2천년간 무아윤회 논쟁에 종지부
영혼체 윤회론
펴낸곳/현지사-영산불교사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