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사/영산불교 현지사

[불교---2]왜곡되고 왜소하된 오늘날의 불교

불제자 2022. 3. 16. 09:00
 

 

왜소화된 오늘날의 종교


2600여 년 전 영산 당시 이후로 불신관佛身觀, 불佛의 삼신설三身設은 두터운 장막 속으로 가려져 버렸습니다. 사람 사람 마음 속 자성에서 삼신三身이 해석되고 있습니다. 크게 왜곡된 것으로, 눈 먼 선량한 중생을 오도誤導하고 있습니다.

우주적인 불교는 여기서부터 왜소화矮小化돼 버렸습니다. 축소화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오늘날의 여러 나라 불교, 특히 한국의 선禪불교는 깨달음만을 소중히 하고 있습니다.

선불교에서는 깨달음이 목표요, 수행의 종착지입니다. 이제부터가 중요한데도 말입니다. 음계‧중계를 철저히 지키면서 나없는 공부, 두타행으로 공성空性을 증득하여 아라한과를 증해야 합니다.

나아가 자·타력수행으로 정토업을 닦아 삼계를 완전히 탈출하여 보살이 되어 서방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영원히 불퇴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보살도를 완성하여 절대계에 빛으로 이루어진 자기 부처를 이뤄야하고, 상적광세계에 자기의 청정법신불을 두어야 비로소 수행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실로 위대한 우주적인 메타 불법佛法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





왜곡된 부처님의 가르침

오늘의 한국불교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많이도 왜곡되어 있습니다.
생사관生死觀 하나 뚜렷하지 않고 불교수행의 기본은 철저한 지계持戒에
있는 데도 승려들의 승행僧行은 심각할 정도로 타락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크게 눈뜬 성자가 없어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으려고 하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구하는 것과
같다고 지금의 불교에서는 말합니다.

이 마음이 부처요, 마음자리가 극락이라고 합니다.
지옥과 극악을 마음 안에서만 찾으며 "지옥과 극락은 따로 존재하고
있는 실재가 아니라, 우리 마음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마음 밖의 지옥 극락, 불 보살 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과연 눈을 뜨고 나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인지요? 불안佛眼이나
오안五眼을 갖추고 나서 하는 말인지요? 실제로 지옥과 극락이 안
보입니까? 정말로 마음에도 안팎이 있다는 말입니까? 공空에도
안팎이 있습니까?

마음眞如自性은 수긍삼제竪亘三際요, 횡변시방이며 불생불명不生不滅입니다.
일심一心 혹은 법성法性은 시방법계 어디에도, 심지어 티끌이나
먼지 속에도 주변하여 뻗쳐 있습니다.

동시에 시공時空을 초월超越해 있습니다. 영원히 경계에 물들지
않습니다.
자성自性은 청정무구요, 여여如如부동不動입니다.
그런데 이 마음자기를 깨친 정도로는 아직 지옥과 극락이 안보입니다.
이 경지에 이르러서는 결코 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려분! 지옥과 극락은 실제로 있습니다. 불 보살도 계십니다.
윤회도 사실입니다. 200여 불교 경전에서 지옥 등을 분명히 말씀
하신 부처님이 거짓말쟁이란 말입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공空을 지나, 무아 속 삼매에
들어 그동안 보고 들은 것을 간략히 줄여 전합니다. 공부해서 뚫은
바를 수행인의 양심으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왜소화된 불교

붓다님들이 계신 절대계 - 여기를 공空에 못 미치는 세계로 보고, 따라서 마경‧환영으로 보고 또는 천마의 소작所作으로 보고 비방한다면 법法을 모독‧능멸하는 대망어로서 무간지옥행 한다는 것을 확실히 해둡니다. 천마는 하늘1~6하늘의 외도 마魔일 뿐입니다.

붓다는 하늘天上을 지나 성중하늘, 천녀정토, 서방극락, 약사정토를 지나서 연화장세계의 무아 속 삼매에 들어계십니다. 법‧보‧화 삼신을 구족하시며 상모 단엄하시고 백종오색광의 광휘光輝 속 32상의 불신佛身을 갖추시고 자비‧지혜‧삼매‧자재한 신통력이 있어서 실로 어느 존재神와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경스럽습니다.

붓다는 겁劫에 한 분 출세할까말까 하는 그런 어른입니다. 따라서 부처님의 실체 - 불신이나 덕성과 실제 능력에 대한 이야기는 세월이 지남에 따라 왜곡되거나 묻히기 마련입니다.

불멸 후 600년쯤 출현한 인도 대승불교의 거성이요, 제2의 석가라고 불리는 용수龍樹에 의해 이신설二身設_生身, 法性身이 제기되었습니다. 이 이신설에는 보신의 개념이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의 법성신법신 개념 속에는 색상 단정, 상호 장엄, 엉ㄱ종광명 등 보신의 개념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불멸 후 900년쯤 가서 유식의 조사 무착Asnga보살이 불신을 삼신설三身設로 자리매김합니다. 그것도 당시 잠깐 왔다 간 미륵Maitreya불의 가르침에 따라 부처님은 법신, 보신, 화신을 구족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이 사실인데도 먼 훗날 선불교에 와서는 자성불自性佛을 말하고 심즉시불心卽是佛을 주장합니다. 부처는 사람이 지닌 마음자리 이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곧 부처라고 보는 것입니다. 지옥도 극락도 없어져 버렸습니다. 행복을 느끼는, 고통 떠난 자리가 극락이요, 고민이 있으면 무간지옥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은 한낱 마음 깨친覺 이로 전락하여 이해되고 급기야 저 우주적 메타종교인 불교는 심교心敎로 왜소화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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