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불교의 흠결을 말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부처님에 대한 신행, 즉 부처님의 존재를 믿는 불제자로서의
기본 수행 마음 자세가 안 되어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 부차라고 하는
실정인데 말해야 무엇하겠는가? 마음이 부처라면 모든 중생이 이미 다
부처인데 수행은 왜하고 불교는 왜 믿는지 의문스럽다. 마음이 부처라
면 종교는 종교도 아니고 존재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신심 깊은 불제자들은 알 것이다. 그리고 믿음이 없는 종
교는 세계 그 어는 종교에도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둘째, 견성, 즉 깨달으면 부처가 됐으니 막행막식하고 사음도 가하다
고 하는 것이 오늘날 선불교의 현주소다. 계율이 없는 불교는 불교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계율이 있기 때문에 불교가 2500여 년을 존속 유
지되어 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셋째, 경전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어찌 잘해야 아라한 자리에
불과한 조사들의 어록들을 부처님의 경전보다 더 소중히 하는지 이유
를 모르겠다. 이제부터라도 한국불교가 살아남으려면 대승경전을 읽고
공부해야 한다.
넷째, 염불을 하근기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 어찌 염불 수행을 제대
로 해본 적이 없이 하근기라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염불 수행
의 오묘한 맛과 쉽고 빠른 경지 증득을 모르고서는 절대 염불선을 하
근기 수행이라고 모독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화두
선은 상기병, 정신질환, 주화입마에 걸리기 쉬운 수행법인 반면 염불
수행은 부작용이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다섯째, 효를 다해야 한다. 부처님이 주관하시고 불과를 중한 청정하
신 큰스님이 집전하시는 천도대재를 치르고 돌아가신 부모와 조상
그리고 친인척들을 하늘로 천도해야 할 것이다.
여섯째, 부처님은 마음의 산물이 아니다. 어찌 마음이 부처님이 될
수 있을까? 마음이 부처님이라면 그것은 부처님을 모욕하고 능멸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법화경>> <비유품>의 부처님 말씀처럼 공성의 증득으로 붓다라
할 수 없다. 32상 그리고 10력 등 모든 붓다의 공덕을 갖춘 색신보신
을 성취해야 붓다인 것이다. 큰스님께서는 불신을 얻지 못하면 붓다가
아니라고 확인하신다.
일곱째, 생사관이 없고 육도 윤회를 인정하지 않는다. 만약 지옥이
없고 천상이 없다면 <<아함경>>에서 설한 육도 윤회는 거짓이란 말인
가? 그것은 부처님을 능멸하는 행위임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여덟째, 참선만이 유일무이한 깨달음의 수행법이라고 생각한다. 독선
적이고 배타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함경>>에서 부처님께서는
위빠사나선이 깨달음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이라 분명히 하셨다.
출처/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 117~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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