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에서 삼매까지/전생사례

조선시대 선조대왕 때 일어난 실화입니다

불제자 2010. 6. 25. 20:17

 

 

 

 

 조선시대 선조대왕 때 일어난 실화입니다

 

 

 

가끔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 있는데, 조선시대 선조대왕 때 일어난 실화입니다. 선조대왕은 임진왜란(1592~1598년)이 일어났던 그 당시를 살았던 왕입니다. 선조대왕은 덕이 있는 대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역사에서도 명군으로 기록됩니다. 상당히 덕이 있고, 지혜도 있는 명군으로 인정해 주는데, 그 당시 동인·서인이라고 하는 당쟁(黨爭)이 심한 때인지라 어진 정치를 펼치지 못했습니다.

 

그 때 전라도 진도 군수로 발령을 받아 부임해 간 ‵이응′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름이 외자이지요. 이분은 대단히 선정(善政)을 베풀었습니다. 어느 날 일본 선박 한 척이 조선의 수군에게 나포(拿捕)되었어요. 조선의 관리들이 그 선박 속의 일본 사람들을 묶어가지고 데려왔어요. 그런데 진도 관아의 아전들은 일본 선박 뱃사공들의 수괴(수장)를 죽이려고 해요. 이 사람만은 죽여야 된다 그거요. 말도 통하지 않고, 왜 우리나라에 왔느냐 그거요.

 

‘이건 필시 무슨 뜻이 있다. 스파이가 아니냐. 이 못된 놈들. 이 중에서 한 놈은 죽여야 된다’

하면서 참수(斬首)할 찰나입니다. 진도군수 ‵이응′이 그 사실을 보고 받고 곧 명령을 내렸어요.

‘절대로 참수하지 마라. 심한 풍랑이나 태풍을 만나가지고 불시에 기착했을 것이다. 죽이지 마라. 내가 지령한다.’

하고 명령했습니다. 그런 후에 오히려 10일 동안 융숭한 대접을 해서 일본으로 돌려보냈답니다. 진도군수 ‵이응′에게는 ‵창해′라고 하는 손자가 있었어요. ‵창해′는 머리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기골이 남자답고, 지혜 총명하고, 빼어난 용모를 갖추었답니다. 어느 날 ‵창해′라는 분이 제주도 목사로 발령을 받아 관속 20여명을 거느리고 부임하는 길에 태풍을 만나 조난을 당하여 ‵이 창해′등 관속 3사람만이 겨우 목숨을 건졌습니다.

 

한참을 표류하다가 ‵지마도′라고 하는 일본 땅에 기착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 일본 섬의 도주(島主, 섬을 다스리는 어른)앞에 끌려가 가지고 심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서 손짓 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했지만, 도주가 볼 때는 죄인(스파이)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날 자기들처럼 한때 조난을 당하여 조선의 진도 땅으로 표류해서 그렇게 고생을 한 사람들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도주가 바로 진도군수 ‵이응′이 살려 보낸 일본 선박의 수장이었습니다. 그 도주가‘너희들 ‵이응′이라는 사람을 아느냐?’라고 묻더랍니다. ‵이응′이 누구죠? 진도군수로 살았던 ‵창해′의 할아버지이지요. 그러니까 ‵창해′라는 사람이‘우리 할아버지입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도주는 너무도 반가워하며 융숭한 대접을 합니다. 그 창해라는 사람이 머리도 총명하고, 용모도 잘생기고, 남자답고 하니까 도주가 정을 붙입니다.

 

도주는 아들이 없고 딸만 하나 있었습니다. 가끔은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시키다가, 차츰 상당한 어느 직책을 맡겨봅니다. 맡기는 쪽쪽 착실하게 일을 잘 처리했답니다. 그러니까 도주의 눈에 들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창해′를 불러가지고‘우리 딸하고 네가 평생 가약을 맺고 살아라. 부부인연을 맺고 살아라.’라고 말했습니다.

 

그 당시는 적어도 300~400년 전이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민주사회는 아니었습니다. 그 섬의 도주이면 그 섬에서는 완전히 삼권을 쥐고 있는 거요. 그런데 ‵이창해′는 그 당시 나이가 아마 30세 정도 되었습니다. 일찍이 12살 때 18살 처녀와 결혼해 가지고 살다가 19살 때 상처(喪妻)했어요. 일본여인들은 일반적으로 남편을 대단히 공경하고 예절이 분명해요.

 

‵이창해′는 도주의 딸과 결혼을 하여 사는데 이름도 성도 바꿉니다. ‵창해′는 놔두고 그 도주의 성을 따서 ‵모찌모또 창해′가 되었어요. 나중에는 도주가 모든 도의 정사(政事)를 ‵창해′한테 맡겨 버립니다. 그래서 30년을 삽니다. 슬하에는 아들 딸 12명의 자녀를 두었답니다. 그 중 큰아들 이름이   ‵의충′이었어요. ‵의충′은 자기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닮아가지고 도량이 넓고, 잘생기고, 아주 용맹스러웠어요.

 

이렇게 30년이 흘러갔습니다. 한편 고국에서는, ‵창해′어머니가 오씨인데 강원도 고성사람이어. 불교 신자였는데 관음 행자(관음 신자)였습니다. 자기 아들 제주 목사   ‵창해′일행이 바다를 건너다가 조난을 당했다는 비보를 듣고 실신했어요. 그래서 가까운 낙산사를 다니면서 아들 명복을 비는 것이 일과가 되고 습관이 되었답니다. 강원도 양양 낙산사는 지금도 유명한 곳이죠.

 

낙산사를 다니면서 아들이 조난당한 그날을 기일로 꼭 알고 해마다 천도재를 모십니다. 30년이 흘렀습니다. ‵창해′의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창해′의 어머니 곁에는 ‵남향′이라는 ‵창해′의 남동생이 있었습니다. 돌아가시면서 ‵남향′을 불러놓고 유언을 하기를‘너의 형이 떠난 날(조난당한 날)이 아무 달 아무 날이니까 이날만은 반드시 낙산사에 가서 천도를 해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창해′의 어머니가 신심이 있는 분이었어요.

 

고국에서는 그랬고, 일본에서의 창해는 이제 아들도 그렇게 많이 낳았고, 또 자기 아들이 대단히 남자답고 지성스럽고 일처리도 잘하기 때문에 모든 정사를 아들한테 물려주었습니다. ‵창해′가 하는 것이라고는 날마다 낚시질이나 하면서 소일 했답니다. 하루는 바다에 나가서 낚시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일진광풍이 일더니 무서운 파도가 ‵창해′의 낚시 배를 휘몰아 이끌고 어디로 달려가 버렸습니다. 어디에 도착했느냐하면 강원도 통천에 도착했답니다. 기절을 했다가 깨어나 눈을 떠보니까 조선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있었어요. 고국의 사람들이어요. 낯익은 땅이었습니다.

 

일본과 한국이 얼마나 먼 바다 거리입니까. 자기가 승선했던 배는 낚시 배였는데 옷만 좀 적셨더라 그거요. 정신을 수습해서 물어보니까 강원도 통천이라는 거요. 그렇다면 낙산사가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도 낙산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또 자기 있는 곳에서 가까우니까‘낙산사를 한번 구경해 보자. 가서 부처님께 기도나 올리자’하며 낙산사에 가서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자기 동생을 만납니다.

 

그날이 자기가 조난당했던 날인지 동생 ‵남향′이 천도재를 마치고 귀가하는 중이었고, 형 ‵창해′도 낙산사에서 기도를 마치고 낙사사를 구경하면서 나오는 중이었는데 뜻밖에 동생을 만났어. 마주쳤는데 30~40년의 세월이 흐르다가 보니 동생(남향)이 형(창해)을 못 알아 봤습니다. 그런데 일본 복장을 한 남자가 지나가니까 동생이‘참 묘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다가가 묻습니다.

 

‘당신 일본 사람이오, 조선사람이오’라고 하니까 ‵창해′가‘사실 나는 조선 사람입니다.’‵남향′이‘그러면 당신이 혹시 ‵창해′가 아닙니까’라고 물었어. 30~40년 흘렀다고 해도 동생을 몰라보겠습니까? 알 수 있지요. 그래가지고 서로를 알아보고‘아이구 형님!’하면서 붙들고 뒹굴고 얼싸안고 울었다는 거요. 고국에 계시는 부모와 조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통곡을 했답니다. 이이야기는 실화입니다.

 

이렇게 인과는 분명한 것입니다. 표류하던 일본인 도주(島主)에 대하여 자기 할아버지가 따뜻하고 융숭하게 대접해서 돌려보냈기 때문에 손자인 ‵창해′도 뜻밖의 태풍으로 인한 조난을 당해가지고 일본 지마도 땅에서 그 도주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고, 도주의 사위가 되고 한 그 결과는 인과의 선인선과인 것입니다. 인연의 도리인 거요. 왜 하필 조선 땅으로 태풍이 몰아쳐 버렸어. 인연의 도리인 거요.

 

그래서 모든 인간사는 하나님이 만들고 하나님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전생에 사람을 죽였다? 반드시 죽입니다. 눈을 떠서 보니까 반드시 인과가 있어요. 하나님은 없어. 붓다까지 올라가서 보니까 절대로 하나님은 없어. 이 법계의 주인은 없어. 그러나 다만 부처님은 계셔. 왜? 부처님은 본래 중생으로 해서 수행을 했거든요. 여러분들도 모두 다 붓다가 될 수 있습니다.


 

 

출처/2009. 02. 17. 화(음1.23) 큰스님 부산 법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