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사의 불서/붓다의메시지존평

무아

불제자 2009. 9. 25. 21:30

 

 

 

 

 

무아

 

 

우선, 무아사상은 매우 고도로 난해한 불교의 가르침이

며 최상승의 가르침입니다.  결국 불교 공부는 무아로 시작

해서 무아로 끝난다고 합니다.  큰스님의 성전 <<21세

기 붓다의 메시지>>에는 붓다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불신

을 얻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생사경(영원히 죽지 않은

불신을 얻어 생사를 초월함)을 얻게 된다는 말씀으로 저는 이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붓다의 몸과 생사경에 이르기 위해서는 수행

자는 '나 없음'의 두타행을 해야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즉 무

아 수행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어다에도 집착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물질에도 재산에도 여색에도 그리고 친구와 가정에

도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자신의 몸에 대해서도 집착

해서는안 됩니다.  이 말은 몸을 소중히 하지 말고, 자신을 소

중히 하지 말고, 가정과 친구를 소중히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

라 청정한 마음으로 소중히 여기되, 한편으로는 오탁에 물

들고 삼독심, 즉 탐(탐냄), 진(분노), 치(어리석음)에 물들은 중생심

을 비리고 영겁을 통해 쌓아온 삿된 기운과 악업을 청산하라는

가르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영혼의 성장이란 바로 존재의 정체성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며 과거의 구습에 얽매여 있던 정체성을 송두리째 재설

계해 나가는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존재의 재설계 과

정은 자신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과 탐구 정

신을 갖고 매사에 자기 성찰과 반성을 통해서 자신의 본성을

바로 보는데 있습니다.

 

그리하여 내면세계와 외면세계가 하나로 통합 및 통일되어

현현할 때 우리는 '나'라는 존재성과 '남'이라는 존재성의 경계

를 허물고 하나의 새롭고도 광대하고 무한한 지평을

창출하게 됩니다.  이러한 무경계는 바로 현대 서양 초인

격 심리학의 거장 켄 윌버의 저서에서 역력이 표방하고 있는

신조어입니다.

 

물론 이는 <<화엄경>>의 이시무애, 사사무애의 가르침을 본

받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는

무량광이라는 엄청난 가르침을 통해 모든 경계를 타파하

고 초월합니다.  무량수, 무량광은 부처님의 본성이요 특질이라

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어마어마한 가르침은 영원성과 초시간성

그리고 초공간성을 뛰어넘어 대적정 적멸의 화엄바다를 건너야

얻을 수 있다고 설파하고 계십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를 경탄해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구도자들의 혼미스럽

고 분열적인 세계를 하나로 아울러서 구도자들이 통합적 사유

를 증험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는 21세기 수행자들과 불제자들에

게 새로운 수행적 사유를 할 수 있도록 서광을 비추었다

는 점에서 진지하게 그 영향력의 추이를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

다.  아마, 큰스님 말씀대로 지금의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

대한 환호보다는 후대에 더 커다란 찬사와 반향을 일으킬 것이

라 생각합니다.

 

또한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는 시중의 선서에서는

거의 일말의 언급을 하지 않고 있고 불교학자들 간에도 희미하

고 어렴풋이 알고 있는 무아사상을 지극히 명료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무아사상에 대한 설명을 책 여러 곳에 두루

두루 포진지켜 놓으셨다는 점은 읽는 이로 하여금 많은 감명과

환희를 느끼게 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불교학자들은 무아의 개념을 '나가 없음'으로 이해

하는데 큰스님은 이를 '비아'로 새겨야 한다고 말씀하셨습

니다.  붉교에서 말하는 무아의 참 뜻은 내가 없다는 것이 아니

라 업장, 탐욕, 습, 탁한 기운과 같은 비본질적인 것이 나에게

지저분하게 붙어있는 그 나를 부정한 것입니다.  그 나는 윤회

할 수밖에 없으니까 잡스러운 찌꺼기들을 빼야 한다고 말씀하

신 것입니다.  이 찌꺼기가 빠지면 청정한 참나를 얻는데 이를

아라한이요, 더 나아가면 보살이요, 궁극적으로는 붓다라고 말

씀하셨습니다.  백 번 옳으신 말씀입니다.

 

무아를 '나가 없다'로 하면 분명히 엄존하는 실존적 자아를

부인하는 것이므로 그것은 현상계의 시각으로 봤을 때 옳지 못

합니다.  따라서 큰스님의 말씀처럼 '나가 아님'을 깨우치는 것이

무아를 증입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조하는바

큰스님께서는 무아를 설하시면서 "나의 본질, 즉 '참나'까

지 없다고 보는 선 불교의 잘못된 인식이 생기니 비아라

고 해서 비본질적인 것을 빼면 참나가 된다고 보아 비아의 개

념이 더 맞다."라고 설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나라는 병 때문에 탐욕과 집착이 생기고 근심

이 일어나고 고통 받는 원인이 되니 이 비본질적인 것을 털어

버리라는 실천 수행의 방편으로 무아를 설하셨습니다.  즉, 나를

부인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기적이고 소아적인 것을 수행으로

털어내라고 설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논리 정연하게 선 불교의

오류를 논파하시는 말씀입니까? 선 불교를 옹호하는 학인들은

큰스님을 비방하기에 앞서 스스로가 얼마나 제대로 깨우쳤으며

논리 정연한가 자문자답해 봐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큰

스님을 비방하는 것은 자신의 위상과 명예를 실추시키는 길임

을 명지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의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82~283쪽에 나오는 큰스

님의 이야기는 무아 개념을 이해하는데 금상첨화라 생

각합니다.  완전히 두뇌에 이해되고 각인될 때까지 반복해서 정

독하시길 권청합니다.

 

"어느 날 세존께서 원만 보신으로 현신하셨습니다.

깨끗하고 탐스러운 꽃 한송이를 드시고서, "이게 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물론 깊은 선정 속의 일입니다.

만덕 큰스님이 "본래부터 없는 것, 이름하여 꽃이라 합니다."

하고 대답하시니, 다시 물으셨습니다.

"이 꽃의 실체가 있느냐"

"없사옵니다."

"영산 당시의이 일은 있다 없다를 초월한 자리를 가르치고

자 함이다.  살아 숨쉬는 모두는 이 꽃과 같이 허망하여 실체가

없으니 믿을 것이 없다는 무아사상을 가르침이니라."

 

불세존의 말씀이셨습니다.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이 다하면 꽃과 같이 시들

어 없어지는 것이니 그 무엇에 착하여내 것이다 네 것이다 분

별하며 아옹다옹 하는가, 꽃과 같이 인생도 허물어지는 것이니

그 어떤 것도 실체가 없음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다음은 만현 큰스님과 만덕 큰스님이 처음 만나서 만현 큰스

님께서 2500년 전 영산 당시 부처님께서 거염화하시고, 곽시쌍

부한 의미가 뭐냐고 물으시니 답하신 게송입니다.  너무 귀중한

법문이라 이 자리에 다시 소개합니다.

 

 

만덕 큰스님 게송

 

 

본래부터 없는 것

 

이를하여 꽃이라 하네.

 

시들어 없어지면 허망한 줄 알고

 

허망한 줄 알았기에

 

나 없는 행을 철저하게 하라는 것.

 

육신의 인연도 다 했기에

 

대성자 부처님도 이 땅에서

 

두 발을 거두셨네.

 

무아라는 글자 한 마디 한 마디는 큰스님께서 친히 선별하신

주옥같은 다른 어휘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영롱하게 서광을

발함으로써 마음을 맑게 하고 의식을 명료하게 해주는 정신의

청량제와도 같았습니다.

 

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석가모니부처님과 큰스님의 법력

이 실려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 저는 생각하는 바입니다.

한국 불교 더 나아가 세계 불교를 쇄신하고 환골탈테를 이루는

데 있어 시발점이자 여명을 비추는 금세기 최고의 불교

성전임이 자명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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