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불교, 자기 갱신 없이 앞날 없다
-조우석-
우리가 덕담을 겸해서 던지곤 하는 한국 불교에 대한 호의적
평가란 대강 이쯤 된다. "고대 이래 10세기 넘는 지금까지 동
북아시아 선 불교의 수행 전통을 간직하고 있고, 특정 종교의
차원을 넘어선 우리 기층문화의 소중한 유산."
사람들의 평균적 인식을 반영하는 이런 평가에 단골로 따라
붙는 메뉴는 또 있다. 통通불교라는 자랑..... 선 수행을 중신
으로한 종풍에다 교종과 밀교가 두루 포함된 불교 백화점이라
는 주장이다. 이런 통념이 분명 검증된 것은 아닌데도 우리는
종종 턱없이 비약과 함께 '기분'에 취한다.
"이웃 궁국은 문화혁명 이후 망가진 자기 전통을 복원하기
위해 한국 불교를 배우려고 유학생 파견하고 있잖아. 일본 불
교? 그들은 스즈키 다이세츠 이래로 '학문화된 불교'라서 선 수
행의 전통은 부실하다고 봐야지. 서구 사회가 1868혁명을 전후
해 불교에 괸심을 가진 게 벌써 수십 년인데, 불교 세계화의
이 시대에 한국 불교의 전망은 좋다고 봐야지."
과연 그럴까? 의심받지 않은 진리란 썩기 마련인데, 1천 년
전통의 한국 불교는 과연 건강한가? 조선조 때 권력에 의해 강
제로 선종과 교종이 합쳐지고, 이후 축소 일변도로 흘러와 조
선 중기 이후 지금까지 정말 필요했던 자기 갱신에서 한참 멀
었던 역사를 막연하게 '통불교'라고 일컫고 있는 것은 아닌가?
9세기 중국 고대의 당나라에서 시작된 선 불교란 본디 인도
불교와 중국 문화, 도교의 사이에서 만들어진 제3의 변용인데,
그 조사선만이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불교 패러다임의
전부일까? 혹시 조사선이란 오랜 동어반복의 과정 속에서 많이
진부해지고 활력을 잃은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은 한국 불교의 역량이 만천하에 유리알처럼 들여
다보이게 된 이 시대 더 이상 피할 수 없다. 21세기 초입의 지
금 시대란 불교가 고대나 중세 때와 또 달리 '전 지구적 종교'
의 차원으로 대두된 시기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에 앞서 티벳 불교나 남방 불교, 여기에 위빠사나
선 등이 서구에 먼저 소개됐고, 영향력 역시 한국 불교에 비해
크다. 티벳 불교 들이 '속이허한' 한국 불교에 여수입된 지도
10여 년이 됐다. 달라이라마와 틱낫한 스님을 포함해 불교 관
련 영문 저술의 번역물이 독서 시장에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
다. 급한 마음에 사람들은 미국 명문대 출신 제자들을 길러낸
숭산 스님의 업적을 들먹이지만, 그건 외려 서구 콤플렉스를
반영할 뿐이다.
서구사회가 그들 언어로 노자의 <<도덕경>>이나 공자의<<논
어>>등 동양고전들을 휼륭하게 번역해 온 역사가 이미 2백여
년이고, <<법화경>>을 포함한 불교 경전의 번역 역시 우리를
앞선 지 오래라는 점도 이미 상식이 됐다.
선 참구 수행만이 정통이고, 나머지는 속 좁게도 외도로 내
모는 이 와중에 '동북아 선 불교의 본거지'라는 덕담 혹은 자랑
이란 철모르는 소리가 아닌지를 되물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
다.
출처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조우석
'현지사의 불서 > 붓다의메시지존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 불교를 대망한다 (0) | 2009.06.25 |
---|---|
[스크랩] 염불선이야말로 수행의 으뜸 (0) | 2009.06.20 |
[스크랩] 법신에서 보신 개념으로 대전환 (0) | 2009.06.05 |
[스크랩] 한국 불교는 우물 안 개구리? (0) | 2009.06.03 |
[스크랩] 머리말 (0) | 2009.0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