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열반과 큰 열반
아라한이 작은 열반에 만족하지 않고 <<법화경>>에서 가르
치는 대로, 보다 높은 위인 보살 붓다가 되기 위해 이사
바세계에 몸을 받아와야 한다. 아라한이 되고 난 뒤 다시 대비
심을 발해서 자기의 원력에 따라 이 세상에 몸을 받아온 뒤에
후퇴 없는 수행 정진을 거듭해야 한다. 그 뒤 결정적으로 부처
의 위신력이라는 절대적인 가피에 의해 비로소 얻을 수 있는
다음의 단계가 바로 보살.
"아라한이라 해도 성중 하늘에 태어났다가 남섬부주(인간세상)
에 다시 오면 잘못된 길에 빠져들 경우 악도에 떨어질 수도 있
다."(<<21세기 붓다의 메시지>> 45쪽, 이하 같은 책)는 만현 스님의 지
적도 도를 이뤘다는 수행자들 사이에서 섣부른 법을 설하는 행
위에 대한 천둥소리로 들어야 옳다. 어쨌거나 이렇게 해서 불
과를 증한 대성자는 엄청난 빛으로 이뤄진 자신의 불신을 무아
속의 절대계, 즉 상적광토인 부처의 나라에 비로소 두
게 된다.
흥미롭다. 고백하지만 미욱한 나는 평소 의문 하나를 품어왔
다. 인간 생사에 관한 의문과 연결된 것인데, 밝히자면 이렇다.
화두를 타파했다는 수행자들의 마음 세계란 어는 정도일까? 확
철대오를 했다는 선사들이 도달한 깨침의 수준이란 과연 어느
정도일까? 또 전등 조사들의 깨침이란 과연 어떤 종류의 것일
까? 여전히 미욱한 나는 이런 의문 앞에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이유는 경계에 매달려 사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그 오묘한
깨달음의 세계를 전하기 어렵다는 말 앞에 질려서 그만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현 스님의 법문 이후
앞서의 의문들은 조금은 명쾌해졌다. "경계가 뒤집혀 온 세계가
안팎이 훤하여 공이 되는 세계"(44쪽)인 견성에도 강약의 단계
가 여럿 있다. 크게 깨쳐 오매일여가 되어 꿈에도 법문을 하는
단계에서 더욱 계율을 견지하여 두타행으로 나가는 것이 필요
하다는 것이다.
또 화두 타파 이후 아라한에 이른 뒤에도 무수한 단계가 더
있으며, 이런 단계는 인간의 노력이라는 자력 외에 타력의 부
처님 가피가 전제가 된다는 것을 안 것이다. 이 경우 불교의
세계란 더 할 나위 없이 장려해지고 지옥과 극락이란 마음의
산물일 뿐이라고 하는 섣부른 통념에서 벗어날 경우 불교 세계
란 진정한 위용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를테면 만현 스님에 따르면 지옥은 분명히 존재한다. 비록
우리 육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영체(영혼체)세계의 남방 지장궁
방향에 있다는 점, <<지장경>>에 등장하는 지옥이란 분명 존재
하는 지옥의 일부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그 중 중지옥의 한 곳
의 경우 열 존가락 손톱 밑을 대꼬챙이로 찌르는 그런 지옥도
존재한다. 이곳에서 우리의 가련한 영체는 무시무시한 고통으로
까무러쳐도 하루에도 만 번이나 죽고 다시 만 번을 되살아나야
하는 지독한 벌을 받게 된다.
앞에서 영체를 말했지만, 자재 만현 스님에 따르면 영제야말
로 진짜 생명체로 파악된다. 매미가 허물을 벗을 때 빠져나가
는 몸이 진짜 매미이듯, 사람이 죽을 때 사대로 이뤄진 것
에 불과한 거짓 몸뚱아리를 떠나는 진짜 생명체가 바로 영체이
다. 따라서 이런 파악에서 앞서 언급했던 서구의 심리학자 핑
커가 냉소적 시각으로 언급했던 육체 마음의 이분법은 보다
큰 설득력을 가지고 다가온다.
다음 자재 만현 스님의 발언을 귀담아 들어보자. 불교가 훨
씬 위대한 종교 세계로 성큼 내 안에 들어온다.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생에 선근 공덕이 있어
온갖 마장을 이겨내고 정진을 멈추지 않아 크게 도를 깨친 이
라도 음행을 저지르며, 또는 불보살과 지옥 극락이 실제로 있
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있을 뿐이라는 망언을 통해 부처님
과 법을 왜곡 능멸한다면 무간지옥에 빠져나올 기약이 없습니
다. 불교에서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많은 선행을 행하라'고 가
르칩니다. 궁극에는 자정기위해서 생사의 해탈을 바라는 위대한
종교입니다."(43쪽)
이 밖에 변화술에 능한 천마의 속임수로 부처님을 보았
다는 등속의 언술에는 상대적으로 초연해질 수도 있다. 확실히
우리 중생들은 과거의 도인들이 보여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능력인 천안통,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것을
알아체는 타심통, 나와 다른 사람의 전생을 아는 숙명통
을 포함한 신족통, 누진통 등의 신통력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인간의 앞날을 말하고 병을 낫게 해주는 영
체은 주로 저급한 영이 인간 몸에 빙의하여 생기는 수준의 신
통력이라는 것이 만현 스님의 말이다. 하지만 아라한 성자만
돼도 빙의가 일절 없으며, 영체에서 보름달 같은 백색광이 뿜
어져 나와 일체의 귀신이나 외도의 하늘 신들이 혼비백산한다
는 메시지는 명쾌하기 짝이 없다.
이런 생사관을 전제로 하고 우리가 알만한 동서고금의 주요
수행자와 철학자들의 깨침의 정도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대목도
이 잭에는 꽤 등장해서 여러 가지로 흥미롭다.
이를테면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 그는 '자성은 본 사람으로
규정된다. 11세기 전설의 성자인 밀라레빠. 그는 정토의 상품상
의 보살로 왕생했다. 또 인도의 용수 마명 무착 천친 호법,
중국의 현자 혜원, 우리나라의 원효 의상 서산 함허 스님들
의 경우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한 정토 보살들이라고 언급된다.
이런 언급이란 '큰 종교'의 본래 모습을 회복한 불교의 세계
가 동서고금의 주요 수행자들과 종교인들을 배척하지 않고 외
려 끌어안는다는 점에서 눈 여겨봐야 한다. 불교 외에도 윤회
를 말하는 등 불교에 버금가는 철학을 가진 힌두교나 자이나교
의 경우 그 세계의 위대한 성자들도 "중국이나 한국 불교의 대
선사라는 분들보다 못할 게 없고"(133쪽) "불교의 관점에서 볼
때 아라한급이나 상품 보살급의 수준"(13쪽)이라는 발언은 정말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그런 발언은 우리 한국 불교가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자기
자랑에 정신 팔리지 말라는 것, 그러나 그들은 '작은 열반'에
이르렀을 뿐 진정 불신(보신과 법신)을 구족한 부처의 존재와는
거리가 있다는 당당한 발견으로 이어진다. 자이나교 힌두교
유교 유태교 이슬람교 등의 수행법으로도 휼륭하게 삼매에
들 수 있고, 윤회를 벗어난 초인이나 도인이 될 수는 있으나
부처와 부처의 위대한 법에 귀의하지 못한 '외도'일 수밖에 없
다는 것이다.
"나는 말합니다. 유교의 격물치지, 힌두교의 유가 탄트라, 이
슬람교의 수피즘의 명상 수행, 유태의 카바리즘 수행으로도 우
주의 궁극이나 존재의 근원까지를 깨칠 수 있습니다. 힌두의
요기인 부레 바바, 조선 유가도인인 정북창 같은 도인도 이 세
상에는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붓다는 아닙니다."(135쪽)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46~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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