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사/영산불교 현지사

자력과타력

불제자 2022. 4. 17. 15:19

자력과 타력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는 자력으로서는 아라한까지 도달
할 수 있으며 그 이상 위로 오르기 위해서는 타력에 의존해야
된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타력이란 바로 칭명염불 등으로 불보
살의 가피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저 또한 자력만으로
안 되는 것이 수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스승을 구하고
큰스님을 친견하려고 하는 것이 모든 수행자와 구도자들이 추
구하는 바램이 아닌가 합니다.

만사를 성취하는데 있어서 혼자서 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
며 정신계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21세기 수행 문화
의 한 흐름이며 사조입니다. 21세기에는 특히 자력이란
의미가 퇴색되어 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21세기는 유례와 전
례 없이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보다 긴밀한 인연법에
의해 자신의 존재 구조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고 인연이 생기면 생하게 되는 것이 불
법의 이치이므로 자신의 구도과정 또한 인연에 의해 만들어지
고 인연에 의해서 전개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자신의 존
재성 자체는 자신 스스로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절의 인연과 선지식들 그리고 불보살님의 가피가 있어
야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해득하는 선결 요건이라고 말
씀드리고 싶습니다. 정신계와 존재의 하이어라키(중생, 수다원, 사
다함, 아나함, 아라한, 대아라한, 보살(하품, 중품, 상품), 붓다, 석가모니부
처님)를 투철하게 통잘하지 않고서 큰스님의 글과 말씀을 무조
건적이고 부정적인 단식 판단과 단견으로 비방하는 것은 지중
한 죄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고대 이집트의 현자 헤르메스는 "위에 있는 대
로 아래에도 그러하고, 아래에 있는 대로 위에도 그러하다."라
는 가르침을 갈파하였습니다. 이 말은 하늘 아래의 세속에서
벌어지는 세상살이가 정의와 자비 그리고 위용과 겸손을 수호
하는 존재들에 의해서 주도되어지는 것처럼, 하늘 위의 불보살
의 세계 또한 얼마나 정의롭고 자비로운가에 따라 그 위계가
정해진다고 해석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속에서 친구들을 사귀고 가족의 도움으로 커가는
것처럼, 수행자는 불보살의 가피를 받도록 염불선을 통해서 정
신계의 길을 열어 나가는 것이 매우 평이하면서도 빠른 방법이
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알기에 어느 누구도 정신계의
상위 존재의 가피와 보호가 없이는 제대로 수행을 정진해 나갈
수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초불이신 석가모니부처님이 얼마나 뼈아픈
고행을 감내해야 했는지 이루 형언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점에 대해서 석가모니부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한 21세기 불교계의 거대한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최고의 진법
서를 집필하신 큰스님의 자비로움과 이러한 진경을 쓰기 위해서
그동안 큰스님이 얼마나 치열한 구도 여정을 행했는가는 가히
저와 같은 수행자의 식견으로서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 사자후하신 대로 아라한까지
는 자력 신앙이면서 동시에 타력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큰스님께서는노력 없이 불보살의 가피만을 말씀하신 것이 아
니라 염불선, 지계(계율을 지킴), 효, 5대 대승경전들의 해의 및
독송 등 다양한 노력을 통해서 아라한까지는 어는 정도 자력으
로 해야 하고 어는 정도는 불보살의 가피가 있어야 된다고 말
씀하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전혀 발심도 하지 않고 정진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즉 염불
선, 효, 천도제, 지계 등 아무 노력 없이 불보살님의 가피를 기
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를 비방하는 구도자들은 큰스님께서 하신 말씀의 저변 지식과
지혜를 통찰하셨으면 합니다. 큰스님께서 말씀하시면 그것만 가
지고 비방하려고 하지 마시고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가를 둥그
렇게 유기적이고 전체적으로 이해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혹한 구도자들의 단견으로 큰스님의 말씀에서 일부분을 부
정적으로 확장해서마치 전체가 부정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행
위는 삼가야할 것입니다. 이웃 종교에서도 믿음을 강조하고 선
행을 강조하는데 어찌 불교의 가르침을 설파하신 큰스님께서
오로지 자력은 필요 없고 타력만이 필요하다고 하셨겠습니까?

큰스님의 심오한 가르침을 해의하려면 깊이 있게 책을 통찰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큰스님께서 아라한 이상의 경지에 대해
서는 타력으로 가능하다고 말씀하신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고 저는 생각합니다. 보편 타당한 이해의 견지에서 봤을 때 아
라한만 되도 엄청난 공능을 갖게 되고 정신계에서 높은
위계와 서열을 차지하게 되는데 그 이상의 경지에 대해서는 책
임과 임무(사명감)가 막중하기 때문에 석가모니부처님과 불보살
님의 가피 및 위신력이 없으면 보살위를 증위할 수 없다고 보
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고 하겠습니다.

아라한 이상은 불보살님의 가피를 받아야 한다고 하신 말씀
은 100번 이치에 타당하며, 심지어 불보살님을 믿고 불보살님
을 위해서 목숨을 거는 용기와 결단이 없이는 자신도 불보살위
는 고사하고 확고한 아라한 증위도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불가
에서도 백척간두 진일보라고 하여 목숨을 걸어랴 한 고비를
넘고 공과를 증득함을 이야기합니다.

서양의 실존주의 철학의 대가 야스퍼스는 이를 '한계 상황'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물론, 이는 아라한의 경지로 가는 과정이지
결코 불보살의 경지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불보살의 경지는 인간으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경지이며
참으로 이루기 힘든 경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큰스님께서 설
하신 말씀대로 수행자가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는 것마저도 참
으로 힘들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물론 자신의 힘으로 뚫고
아라한까지 올라갈 수 있어도 그것은 무척 힘든 일이며 만약
우리가 쉬운 길을 안다면 누가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가겠습니까?

큰스님의 자비로우신 마음으로 출간하신 서적 <<21세기 붓다
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쉬운 길을 가르쳐 주신 불가의
종풍을 진작시키는 종지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
다. 아라한까지는 자력 신앙에 의해서 좌우되지만, 물론 타력
신앙에 의존하면 더 빠르게 올라갈 수 있다고 이해하고 있습니
다. 그러나 큰스님 말씀대로 아라한 위의 불보살의 경지는 다
른 역대의 부처님들과 보살님들의 가피가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또한 지혜의 눈을 구비
한 수행자와 구도자들께서도 이미 큰스님의 가르침을 매우 긍
정적으로 이해하고 깨우쳐 수지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의심이 가는 구도자분을 위해서 세상의 이치를 통해서 타력
이 필요함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봄이 오면 들에는 새싹이 자랍
니다. 새싹이 자라기 위해서는 토양과 수분이라는 타력이 요구
되고 또한 자신 스스로 생존 본능에 의해 토양을 뚫고 대지로
솟아 나오려는 자생력(자력)이 요구됩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아라한까지의 경지는 타력과 자력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입
니다. 하지만 새싹이 더 커져 어린 나무가 되면 그 어린 나무
는 여름이 왔을 때 태풍과 폭풍우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면 생명
을 잃게 됩니다. 즉, 혹독한 비바람에 견딜 만큼 큰 나무가 되
지 않고서는, 어린 나무는 거목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어린 나무가 잘 자라 거목이 되기까지는 사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즉 어린 나무에게는 타력이라는 버팀목이 필요합니
다. 이처럼, 아라한이 잘 성장하여 붓다가 되기 위해서는 불보
살의 가피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삼라만상의 묘법은 풀 한 포기가 자라나는 것에도 있다는 역대
고승의 가르침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도자들이라면 좀
더 폭넓은 사유와 통시적 사유를 하셔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이
치도 제대로 꿰꿇어 보시지도 않으면서 큰스님의 거룩한 대법륜
의 가르침을 비방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구도자가 아닐 것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자력문自力門과 타력문他力門

현재 세계 불교의 수행의 문門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무명 곧 어리석음, 무지無知 때문에 탐심과 진심을 내어 여러 나쁜 업을 짓고, 윤회생사하는 과보를 받아 사는 것이 중생의 삶의 실상입니다.

탐진과 무명을 떨쳐 착하고 바르게 살아 청정심을 되찾고 지혜바라밀로 윤회생사를 해탈할 수 있다는 자력문自力門의 교설이 있고, 아미타부처님의 측량할 수 없는 크나큰 가피와 손길에 의해 구원될 수 있다고 보는 타력문他力門인 정토문의 교설이 있습니다.

여기서 나는 새로운 타력문, 타력불교를 따르라고 간절히 권하는 바입니다. 우리가 인도에 꼭 가야할 경우에 자력으로 걸어서 가는 길이 있고, 승용차나 배, 비행기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마땅히 비행기나 배, 승용차를 이용할 것입니다.

출처 :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Ⅱ≫ 9장
광명 만덕, 자재 만현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