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에 대해서
지금 불교는 한국불교는 특히 마음이 부처라고 합니다. 마음이 부처. 이걸 어려운 말로 하면 심즉시불이라고 합니다. 심즉시불. 마음이 부처라는 가르침을 천년도 넘게 여러분들이 여러분 조상들이 들어왔습니다. 여러분도 세뇌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자재만현이라는 사람이 책을 펴내고 TV석상에서 나와가지고, 그것이 아니요 그것은 시작입니다 붓다 이루는 시작입니다
견성은 견성은 붓다 이루는 시작입니다 깨달음은 붓다 이루는 시작입니다 깨달음 깨달아서 하는 말이지만 공을 이야기하는 말이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고 이제 시작입니다 하는 정말로 폭탄적인 법문을 쏟아 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 이후 정말 처음으로 경전에도 금광명최승왕경이라는 경전이 있지요. 거기에 부처님의 삼신설이 나옵니다. 그리고 잘 보면 법화경에서 행간에 읽을 수도 있고 화엄경을 보면 알 수도 있고 많은 논장을 보면 정의한 그런 부처님에 대한 불신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자재만현의 법문은 너무도 생소하게 때문에 그 경에 있는 말 논장에 있는 말은 와 닿지 않기 때문에 상당히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 논 겁니다.
이야기를 하니까 선종의 기본명제인 심즉시불 그 다음 불교의 기본명제인 무아설 무아설 무아설 이 측면에서 내 법문을 들어보면 이건 아니거든요. 부처님이 있다고 하는 말은 자기들은 용납이 안됩니다. 안되지. 없죠. 부처님도 없고 부처도 없고 극락도 없고 지옥도 없고 또 귀신도 없고 영혼까지도 없다 이렇게 봅니다.
무아설에서는요. 잘못되어 있지요. 대단히 잘못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승복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것이 진리기 때문에 이건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부처님의 거룩한 인격에 대해서 신력에 대해서 덕성에 대해서 그 존재에 대해서 이야기 할 것이고 부처님을 믿는 그 신앙을 고취할 겁니다. 이것이 불교입니다.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그건 불교가 아닙니다. 마음 마음하는 것은 심교지요. 마음심자 심교지요. 그건 아닙니다.
부처님 되는 데는 붓다 이루는 데는 실로 실로 억겁의 수행이 필요합니다.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견성과 같이 견성과 같이 어떤 하나의 사건을 만나서 깨달음이 오듯이 그렇게 간단하게 오는 것이 아닙니다 불과는요. 그런 후로 실로 백생 천생 억겁을 수행해오고 보살도를 완성을 해야 불과를 이룬다는 겁니다. 부처가 된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을 구체적으로 많이 했지만 오늘 삼법인설을 들어가기 전에 또다시 부처님에 대한 말씀을 10분 정도로 집고 넘어가겠습니다. 억겁 동안에 수행을 하고 이타행을 해서 탐진치 삼독 내지 백팔번뇌를 소멸시키고 또 업장을 녹이고 업장을. 과보 받을 업장을 녹이고 또 천만생의 행한 습 습 중에 사악한 습 사악한 기를 없애고 전생의 모든 빚을 갚고 그래서 깊은 삼매 대적정삼매를 통과하면 자기 불신을 얻는 불과를 증하는 부처가 됩니다.
깊은 삼매 자재해서 이 우주 진리와 하나가 되어가지고 억겁을 수행하고 보살도를 완성했기 때문에 만덕을 갖추게 됩니다. 가령 지혜 그리고 또 자비 그리고 또 복덕 온갖 팔만 사천 신통 그리고 중요한 것은 법신 보신 화신 이 세 몸을 얻는 삼신을 구족한 붓다가 됩니다. 붓다가 되면 미래제가 다하도록 죽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가 될라고 하는 겁니다. 영원히 생사를 자재할 수 있습니다. 아라한과 같이 한번 생사를 자재하는 것이 아니고 실로 미래제가 다하도록 천번만번이고 얼마든 생사를 자재할 수가 있습니다. 붓다가 되면. 그리고 항상 대적정삼매를 수용합니다. 붓다는. 그런 부처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수행자들의 꿈은 성불 붓다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여러분도 거기다 목표를 두어야 됩니다. 깨달음 얻어서 보림을 완성하면은 아라한이 되는데 누구나 아라한까지는 될 수 있다고 스님이 많이 말씀을 했습니다. 아라한 거기다 목표를 둘 것이 아니라 붓다 되는데 목표를 두어야 된답니다. 여러분. 그런데 그럴꺼에요 스님이 이 말씀을 하면 나는 아직도 아라한이 되는데도 도저히 앞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붓다 되라는 그 말씀까지 하실까 그런데 법화경에서는 그것을 강조한 책이 법화경이올시다.
자 좋습니다. 아라한에 다 목표를 두십시오 일단. 아라한에 다 목표를 두면 아라한과를 얻으면 이제 윤회를 벗어나기 때문에 윤회를 벗어난다는 말은 여러분 아실 겁니다마는 윤회를 벗어나기 때문에 윤회를 벗어난다는 것은 생사를 마음대로 합니다. 거기도요. 마음대로 하는데 부처님 붓다 붓다의 생사를 마음대로 한다는 것하고는 좀 다릅니다. 한번입니다. 한번. 원력수생 할 수 있지요. 인간세상 영원히 안 올 수도 있는데 보살이 되기 위해서 오지요. 원력수생합니다. 안 오고 싶으면 안 옵니다. 인간세상. 자 아라한이 되는 데다 목표를 두세요.
그러면 이 지겨운 인간 안 옵니다. 인생. 인생 몸 인간 몸 안 받을 수 있습니다. 저기 하늘도 뛰어 갑니다. 54품이나 되는 저 하늘의 세계까지 훌쩍 뛰어서 삼계를 초월해야 아라한입니다. 시공을 초월한다고 합니다. 여기가 아라한입니다. 아라한과를 얻는 데다가 목표를 두십시오 여러분. 그런데 자력으로는 대단히 어렵다고 했습니다. 타력에 의존하십시오. 자력에 의존하지 마십시오. 타력에 의지하면 여러분들도 다 가능합니다.
현해탄을 헤엄을 쳐서 일본 건너가는 그런게 자력입니다. 자력수행입니다. 타력은 배나 비행기를 타고 일본을 가는 그런 방식 그게 타력입니다. 그래서 스님이 여러분들한테 여러 번 칭명염불을 하라고 권했을 겁니다. 칭명염불 하십시오. 구체적으로 내 수지교본에 나와있습니다. 칭명염불법이요. 그래서 부처님의 위대한 위대한 부처님의 절대적인 가피를 업어야 업어야 이제 아라한이 되는데 대단히 수월합니다.
여러분들 공부하면은 그 경계를 적어서 노트로 써가지고 일기 써서 나한테 제출하라고 했는데 한 30명이 그 동안에 제출했습니다. 그분들의 일기를 쭉 보니까 한 10명 정도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늘 말해드립니다. 10명 정도는 가능성이 있구나 하는 것을 말씀 드립니다. 스님은 부처 없다는 그런 종내 이 불교계의 언급에 대해서 가르침에 대해서 정면 도전 했습니다. 있다 하는 것이죠. 있다. 근데 어떻게 계시느냐.
유무를 초월한 무아속 절대계에 여여히 계시더라 그럽니다. 유무를 초월한 무아속 절대세계에 여여히 계신다. 이렇게 말을 하고 나갔습니다. 아까도 말씀을 드렸지만 경을 보면 일체중생이 실유불성이라고 합니다. 모든 중생은 다 불성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열반경에서. 그런데 무아사상에서 볼 때는 무아의 사상에서 볼 때는 그 말도 흠이 잡힙니다. 그 말도 맞지 않습니다.
불성 불생불멸의 불성이 그 존재가 있다고 있다고 말하는 그 말에 대해서도 불교의 기본명제인 무아설에 입각해서 볼 때는 정면 정면에서 볼 때는 그것은 외도적인 외도적인 냄새가 풍긴다 그럽니다. 힌두교에서 아뜨만이라고 나오지요 아뜨만. 외도적인 아뜨만 사상으로 본답니다. 그래서 여래장 사상 모든 중생에게는 불성이 있다는 여래장 사상은 불교가 아니다라고 합니다. 이것이 지금 불교의 주장이올시다.
재래불교의. 근데 그건 무아를 잘못보고 하는 말이다 나는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요. 무아를 잘못보고 한 말이다. 앞으로 나오는 삼법인설에서 제법무아인이 나옵니다. 그때 가서 말씀 드립니다.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은 여러분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은 알아야 되요.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은 생사해탈에 있습니다.
생사해탈. 생사해탈이라는 것은 자, 나고 죽는 것을 마음대로 한다 그 말이어요. 그래서 나고 죽는 나고 죽는 윤회에서 훌쩍 뛰어나가지고 생사를 마음대로 하는 대장부가 되라고 가르칩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그겁니다. 생사 생노병사 조금 더 부연하면 생노병사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고통스럽지요. 생사는 고통스러운 겁니다. 고통스러운 것이요. 우리가 생사를 벗어나고자 하는 것은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말이에요. 그래서 부처님은 생사해탈을 가르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사해탈을 하기 위해서는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깨달음. 둘째 깨달음이 필요해요. 둘째 본성을 깨닫는 것이 하나가 있고 이 우주 자연 인생의 속성 존재의 특성이라고 하는데 세가지가 있어요. 요건 삼법인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요것을 깨달으면 이제 생사를 해탈할 수 있는 길에 들어선다 그럽니다. 그래서 아함경 같은 책은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을 말씀하신 겁니다.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을. 아라한이 되는 방법에 대해서 많이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만현 자재만현은 그렇게 정의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여러분들로 하여금 아라한이 되고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라는 데 있다 요렇게 더 부연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은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소하고 묻습니다. 어떻게 하면 나도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지요?
자,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면 견불요생사라고 합니다. 생사를 다 마쳐버렸다고 마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부처님의 그 상호가 너무너무도 아름답고 깨끗하고 청정하고 광휘 빛 자체이든 빛 자체기 때문에 너무너무도 지혜롭고 자비롭고 하기 때문에 이렇게 한순간만 부처님만 뵈올 수만 있다면 생사를 마칠 수 있다 그럽니다. 나고 죽는 고해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말이에요. 그렇게 부처님의 부처님은 상모에 있어서도 위대하다 그말이에요. 상모에 있어서도. 그런데 그 상모를 어떻게 볼 것이냐. 어떻게 하면 부처님을 친견할 것이냐 하고 많이 물어왔습니다.
여러분도 알고 싶을 거에요. 누구나 친견할 수 있지요. 있는데 어렵습니다. 있는데 어렵습니다. 얼마만큼 어렵느냐 깊은 삼매에 들어가서 보는 건데 그 깊은 삼매에 들어가기가 어렵습니다. 깊은 삼매에 들어 갈려면 탐진치 일체의 번뇌가 녹아져 버려야 됩니다. 그래야 대적정삼매를 들어갑니다. 삼매 중에서도 삼매인 대적정삼매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 들어간 그 수행자가 불제자가 비로소 부처님을 볼 수 있답니다. 만날 수 있어요. 그런데 부처님 이후로 그 수다한 많은 스님들 큰스님들이 나왔지만 대적정삼매를 통과한 분은 두 분밖에 없었다 그럽니다. 수보리 존자와 사리불 존자. 대적정삼매를 통과해야 붓다입니다. 그래야 자기 불신이 생깁니다. 그래서 이건 정말 어렵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탐진 삼독 번뇌를 여의고 업장 습기를 녹아 없애버린 청정한 대 수행인의 눈으로서는 볼 수 있다 그말이에요. 무아속 깊은 삼매에 들어서 빛의 존재인 빛의 존재인 붓다를 뵐 수 있다 그럽니다. 자, 그러니까 그렇게 아십시오.
그리고 불과를 증했으면 불과를 증했으면 이제 대반열반하시는 반열반 반열반은 큰스님 돌아가시는 걸 반열반이라고 부처님 돌아가신 것을 대반열반이라고 합니다. 대반열반하면 자기 불신 진짜 자기 몸뚱이하고 내가 하나가 되어버립니다. 그리 들어가버려요 영체 4개가. 그래서 미래겁이 다 하도록 그 상적광세계에 계시는데 대적정삼매에 들어 계시는데 언제라도 인간 몸을 받아 올 수가 있습니다. 제도하기 위해서 정법을 펴기 위해서 오십니다.
사람 몸을 받아 옵니다. 사람 몸을 받아 올 때는 이미 불과를 증한 분들은 억겁의 업장이 녹아버리고 탐진이 녹아버리고 습도 기도 다 녹아버리고 갚아주어야 할 은혜도 없이 다 갚아버렸고 보살도를 완성했으니까 그러기 때문에 자기 당신 마음대로 날 곳을 정해서 옵니다. 날 곳을 정해서 오는데 정법을 펴야 되고 하기 때문에 보통 왕가 왕가나 왕족으로 오게 됩니다. 여러분 왕가나 왕족으로 오게 됩니다.
그때 당신의 몸 진짜 불신 그걸 원만보신이라고 하는데 불신 빛덩이리로 이루어진 당신의 몸뚱이는 거기 상적광세계 연화장세계라고도 합니다. 거기에 다 놔두고 놔두고 어디까지나 놔둡니다. 당신의 몸뚱이는. 놔두고 몸 하나만 쏙 빠져나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응신이라고 하지요. 이 세상에 온 몸뚱이를 응화신이라고 하지요. 혹은 응신이라고도 하고 혹은 화신이라고도 하는데 그렇게 올 수가 있고, 하늘 그 많은 하늘 그리고 이 우주에 변재해 있는 많은 중생이 사는 불국토에 가서 법문을 할 때에는 당신의 몸뚱이가 직접가실 수 있지만 화신으로 가실 수도 있습니다 화신으로. 그래서 동시에 붓다는 천이고 만이고 억이고 당신의 몸을 나투어서 가서 중생을 교화한다. 이렇게 위대한 분이 붓다다. 여러분 지난 시간에 지금 지금까지 만현스님이 법문한 내용을 대충 집어봅니다. 15분 동안에.
자, 그런데 부처님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니까 공부한 분들은 아니다 마음이 어디까지나 부처다 만현스님이 본 부처는 환상이고 환영이고 환영 환영이고 아니면은 천마 천마다 천마의 나툼이다 요렇게 말을 합니다. 자 다시 말씀드립니다. 중요한 말입니다.
환영이 아니면 천마의 소행이다 여기에 대해서 답해줍니다. 환영은 환영은 실제 존재하지 않으면서 실제 존재하지 않으면서 그러기 때문에 실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환영 환영은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지성 이성을 갖춘 이야기 말은 못합니다. 환영이라면요.
둘째 천마의 소행이다? 삼매속으로 천마는 들어 올 수 없습니다. 그리고 천마의 모습과 부처님의 진불의 모습은 백천만억분의 일도 미치지 못합니다. 천마는요. 화신하고도 부처님의 화신하고도 백천만분의 일도 미치지 못합니다. 천마는요. 천마는 천마뿐만 아니라 지상에 변화해 자재하는 신들의 집단이 있습니다.
고러한 신들도 불보살 모습으로 나툴 수도 있습니다. 공부한 사람들한테 그렇게 나툽니다. 그러면은 공부한 사람들이 둘리지요. 속지요. 그러나 공부한 사람은 깊이 공부한 사람은 속지를 않습니다. 천마는 천마는 불보살의 화신의 모습과 전혀 다르다. 어떤 점에서 불보살의 화신은 빛의 존재이신 붓다의 화신들은 비록 화신으로 나오지만은 몸 주변에 광휘를 띱니다. 빛을 띱니다.
둘째 눈동자 눈 색깔이 대단히 자비롭습니다. 왜냐 탐진치가 완전히 녹아버렸기 때문에. 그러나 천마는 탐진치가 그득하기 때문에 눈에 살기가 있습니다. 셋째 그 모습도 모습도 화신은 대단히 거룩하고 선정 선정 또 삼매 계율 보시 정진 이러한 바라밀을 다 완성을 했기 때문에 붓다는 그 화신이라 하더라도 보면은 너무너무도 선정상이고요 인욕의 상이고 자비의 상이고 계율 그렇게 철저하게 억만겁을 지켰기 때문에 계율의 상이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천마는 그것이 아닙니다. 고렇게 다릅니다. 다르고 공부인들은 부처 부처님을 친견할 정도의 수행자는 이 영혼이 너무너무도 아름답고 청정하기 때문에 영혼이. 청정하다 못해서 빛이 되어 있기 때문에 천마는 정확히 그 천마를 향해서 보면은 도망을 가버립니다. 마치 두더지가 태양빛을 태양빛에 약하듯이 알았습니까. 그래서 도망을 쳐버립니다.
이쯤 부처님에 대한 이야기는 합니다. 자, 부처님에 믿음이 없는 이세상. 그래서 불교라고도 할 수 없는 현재의 현 이 불교. 부처님도 없고 극락도 없고 지옥도 없고 한다고 하면 중이 될 필요도 없고 중이 될 필요도 없고 적당히 살아야 되고 적당히 법을 지키면서 누가 안 볼 때는 원 없이 자기 욕심대로 살고 그래도 좋겠지요. 그러나 자재만현 스님의 법문 내용은 아니지요. 그것이 아니고 부처님도 계시고 따라서 극락도 있고 지옥도 있고 윤회도 하고 귀신도 있고 그래서 천도도 하고 지옥의 실상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그 법문을 하면은 모두모두 귀의하고 올바른 가르침에 대해서 갈구하고 오직 현지사 현지사가
출처/현지사 자재만현큰스님 정기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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