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에서 삼매까지/칭명염불

염불선으로의 회귀

불제자 2010. 2. 19. 01:12

 

 

 

 

 

 

염불선으로의 회귀

  

 

돌계집石女의 겁외가劫外歌와 동산수상행東山水上行을 말하고 '덕

德山' 의 30방을 흔들며, 상에 집착 없는 언어로 공을 읊고

마치 우주의 주인이 다된 양 착각하여 오만을 떨었던 지난날을 생

각하면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30대 중반 서울에 올라와 상임포교사로서 불법을 포교하기 위해

법상에 앉은 지 채 2~3년도 못 되어 나의 공부禪수행 保任에 회의

를 품기 시작했습니다.

 

히말라야 초인超人들, 힌두교 성자요기 Ylgi들 및 티베트 밀교의

성자 미라래빠의 수행담을 접하고 법화경, 화엄경 등 대승경

전을 정독하면서 나의 선수행을 비교 점검해본 결과 중대한 발

견을 하게되었습니다.

 

자성을 깨치는 것은 공부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견성見性이 곧

성불成佛' 이라는 산가의 기치旗幟는 분명코 잘못됐으며, 설사 견성

하고 나서 보림을 마친다 하더라도 곧 붓다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부처님이 거룩하시고 희유하시며 거의 절

대자라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또한 인간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 아라한에 그칠 뿐

이라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아라한으로서는 우주와의 계합이라는

것이 결코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실존철학의 소위 존대sein 불교의 법성法性, 선禪의 자성自性에 해당

드러나서 머무는 건 순간일 뿐입니다.  영원히 우주와 계합을 이루

는 성불만이 완벽한 생사해탈을 보장합니다.

 

소위 견성에 이름으로써 저 일신교에서 말하는 '하나님' 이 우상

일 뿐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말하자면, '절대적인 창조주란 없

다!' 고 선언하는 단계가 바로 견성의 경지였습니다.

 

이 경지에 이르면서 이 몸뚱이란 4대지수화풍로 이루어진 옷이나

집과 같은 '가짜 나假我' 라는 것과, 나라는 것도 오온五蘊-色受想行

으로 이루어진 인연소생의 가아假我이며 이 세상은 꿈이나 그림

자 또는 이슬과 같은 무상無常한 존재라는 사실도 발견하였습

니다.

 

분별하고 사량하는 것은 생각일 뿐, 마음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

습니다.  이것만 해도 크나큰 깨침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지天地 이전, 곧 부처 나기 이전의 적멸寂滅과 우주가 생

기기 이전의 면목을 깨친 이라면 당연히 불교의 연기법만이 진리

라는 것을 사자후할 것입니다.

 

내가 갑자기 염불선 공부로 용감하게 회귀할 수 있었던 것은 화

엄경 입법계품, 법화경 본문 팔품에서 가르친 대로 무엇보다

도 계율을 존중하며, 경전을 읽고 염불하는 수행만이 부처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토삼부경에서 수행인이 생사윤회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지름길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경전 읽고 염불하는 것만이

우리가 보다 잘 살수 있는 오직 하나의 대안代案임을 확실히 보았

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나는 인도의 용수, 마명보살, 중국의 혜원 조사, 진晋의

각현, 담란, 천태지의, 선도, 도작, 영명연수 선사, 한국의 의상, 원

효스님, 서산 선사의 염불선을 크게 주목하면서 우주생명의 실상

實相을 관하며 보림을 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미모의 젊은 여인을 보고 마음이 설레는 자신을 발견

했습니다.

 

그 순간 '진여실상이라는 용광로에 무명번뇌나 억겁의 죄장 따

위가 모조리 녹아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고 주장했던 지난날의 나

의 법문을 스스로 반추하고 의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혼자 산행山行을 하던 중에 쉬어갈 만한

곳에서 선정禪定에 들었습니다.  그 선정 중에 문둥병을 심하게 앓

고 있는 남자가 들어와 한 이불 속에서 자고, 밥지어 먹고 지냈을

때, 정말 선정에 들었으면서도 알고보니 천인天人의 선정이었다 중생심의

로 돌아가 역겹고 싫은 생각이 줄곧 따라붙고 있었습니다.

 

또한 태백산의 토굴에서 보림하던 어는 여름날, 커다란 구렁이

가 내 곁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너무도 긴장하여 진땀을

흘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하면서 본래면목의 실상, 진여자성眞如自性을 철

견하고 보림한다고 해서 붓다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오백생 이전에 수행하실 때에 '가리왕' 이라는 포

악한 악인을 만나 난자당해 돌아가셨을 때에도 그에게 성내고 원

망하는 마음이 조금도 일어나지 아니하셨는데, 도대체 나는 어디

쯤 와 있단 말인고?  결국 인간 능력의 한계라는 명제와 타력他力, 곧

'부처님의 가피' 라는 주제를 두고 차츰 골똘히 생각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나는 깊은 선정에 들어서 그것을 진짜 삼매라고 오해

한 나머지 불 보살을 뵙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친견은 고사하고

지옥 천상세계도 관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윤회를 벗어난 해탈

오계解脫梧界, 곧 도솔정토나 서방극락세계도 끝내 관할 수가 없었

습니다.

 

그러나 내가 선승禪僧이었음에도, 이 모두가 실제로 존재할 것이

라고 믿었기 때문에 염불선으로 과감히 방향전환하였으나 특히

1970년대 당시의 한국불교에서 선수행이 강고되다 보니, 염불하

는 행자들을 무조건 외도로 몰아 배척하였기 때문에 겉으로 내색

하지 못하고 침묵 속에 정토업淨土業을 쌓았습니다.

 

또 하나 내가 염불선으로 방향전환을 결심한 데는, 선재동자와

같은 나의 과거 행각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마친 화엄경 입법계품의 선재동자처럼 나이와 성별, 출가

재가를 가리지 않고, 이단異端-제2의 예수라 자칭하는 어느 목사님, 부처라

고 떠받드는 어는 재가보살 그리고 전라도 토굴의 어느 도인 등을 이해하고 오랜 세월 교유함으로써 선의 참구參究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